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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관용어구 중에 “사람을 뭘로 보고?”가 있다. “내가 누군지 알어?”보다는 두어 층 낮은 자존감(?)의 발현이다. 청와대에서 발표한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의 일정표(?)를 보다 보니 “사람을 뭘로 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름 성의 있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적어 놓은 성의가 가상하긴 한데 그 성의(?)를 찬찬히 읽다 보면 그날 그들이 얼마나 무성의하게 대응했는가가 눈에 훤히 들여다보여서 이 따위를 해명이라고 내놓는 자들은 대체 우리를 뭘로 보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다가 대체 그들 나름대로는 이걸 그럴 듯한 해명이라고 판단한 것인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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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링크)

해명에 따르면 결국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언론의 오보다. 해명 그림에는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11시 전원구조 속보”라거나 “12:48 방송에선 '승객 대부분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속되는 오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오보가 판단을 흐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정작 언론의 소스가 어디인가? 정부다. 정부 기관이다. 사고 자체를 YTN 보고 알았다는 청와대도 기가 막힌데 그 뒤 대책의 수립과 집행에서도 ‘오보’에 좌우됐다는 만큼 스스로의 아둔함에 대한 처절한 자백이 있을까?

하도 기가 막혀 2014년 당시 내 페이스북을 뒤져 보았다. 오전 11시 40분에 이런 짤막한 포스팅이 있다. '불길한 예감' 이때쯤 천리 밖 서울에서 속보만 보고 있었던 장삼이사의 한 사람에게도 ‘전원 구조’는 이미 빛이 바래고 배에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소식이 엇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가 밝힌 12시 48분이라면 저 불길함이 두 배는 짙어졌을 때고 배는 완전히 침몰한 뒤다. 그때도 오보가 나와서 헛갈렸다고 말하는 정부, 그게 정부라면 최순실이 성모 마리아다.

기가 막힌 건 그 오보가 13시 7분 국가안보실장이 유선보고하기 전까지 청와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미 배가 완전히 뒤집히고도 두 시간이 지나도록 370명 구조, 2명 사망이라는 정보만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우리나라의 신경망이 총 집중되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팔다리를 지휘해서 그를 수습해야 할 두뇌라 할 청와대가. 그로부터 또 1시간 반이 지난 14:50에야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서해해경청의 보고가 잘못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 수백 명 실은 수천 톤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얘기에 청와대가 한 행동은 몇 시간 동안 '보고 받으며 뭉개기' 외에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다시 페북을 뒤진다. 한 ‘기레기’가 욕을 먹고 있다. SK텔레콤이 여객선 침몰을 맞은 진도 인근에 기지국을 긴급 증설한 사실을 보도하며 SK텔레콤의 광고 문구를 끌어대 “잘생겼다~ 잘생겼다~”를 제목으로 붙였던 것이다. 기사 올린 시간이 오후 2시 55분. 기사는 쌍욕을 들으며 내려졌다. 사람들은 이 무슨 미친 소리냐고 흥분했다. 이미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명이 어처구니없이 사지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그런데 누구보다 빨리 알아야 할 대통령도 비슷하게 상황을 파악했다고 청와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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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런 개판을 치고도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었어요.”라고 당당하게 면상을 내민다. 부지런히 보고는 받으셨다고 쉴드는 치는데 그래서 뭘 하셨어요? 하는 물음에는 본드 먹은 벙어리처럼 “하여간 보고는 받으셨다 하지 않습니까? 딴 소리 마세요.”라고 강짜를 부리고 “팩트는 이것입니다.” 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람을 바보로 아는 정도가 아니라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다. 밥 주면 먹으면 되고 '조용히 해' 소리 지르면 쥐죽은 듯이 조용하면 되고 끙끙대고 다가와 내 자비로운 손을 핥으면 되는 개 취급이고 필요하면 뱃살이든 다리살이든 잘라 살라미나 햄 또는 삼겹살을 제공해야 하는 돼지 취급이다.

이것들이 정말 사람을 개 취급하는구나 모욕감이 일다가도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혹시 저것들이 개 돼지 아닌가? 원숭이에게도 조삼모사를 들이밀어 속이는데 5천만 명의 국민 앞에 이런 쓰레기 일정표를 들이밀면서 “우린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유언비어에 속지 마세요.”라고 지껄이는 것을 사람의 머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언젠가 분노가 아니라 모욕감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수정해야겠다. 모욕감은 인간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짐승이 사람을 모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개나 돼지가 인간에게 대든다고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저 남기는 외마디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그리고 박근혜 선친의 명언을 어금니 깨물며 뇌까리게 되는 것이다. “미친 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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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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