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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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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집트 혁명을 기점으로 아랍 민중들이 자신을 지배하던 독재자들을 끌어내리던 현장을 트위터로 짬짜미 중계했었다. 그 중계의 결과물로 기사도 하나 썼었는데 빌어먹을 해킹 사건으로 복구가 안 되는 기간에 들어간 게시물들 중 하나라 딴지 서버에선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튼, 무바라크의 퇴임 선언을 트위터로 알렸던 즈음에 지금은 세상을 뜬 친구녀석이 꽤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랍 민중들이 바로 자신들이 원하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우리가 노태우와 김영삼을 뽑고 나서야 DJ를 대통령 자리에 앉힐 수 있었듯, 그들도 천천히 바뀌지 않겠냐고 대답했던 것 같다. 행정부 수장을 끌어내리는 것 자체가 그 정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고,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어디든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집트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무슬림 형제단이 헌법 개정 없이 권력을 잡고, 무슬림 형제단의 리더 무함마드 무르시가 스스로 새로운 파라오가 되겠다고 나섰다가 쫓겨나고 군부 출신의 압둘팟타흐 시시가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 자리에 올라 있는 상태다.

도로 군부가 정권은 잡았으니 이집트의 민중들은 실패한 걸까?



<와엘 고님(Wael Ghonim)>

이집트 혁명 과정에선 여러번의 결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 결정적인 장면들 중 하나는 사람들의 분노를 모았던 페이스 북 페이지가 와엘 고님에 의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무바라크가 권좌에 있던 기간동안 이집트에서 집회와 시위는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세 명 이상이 같이 서 있는 것도 불법으로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곤죽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처지에 있던 사람들은 '칼리드 사이드다(We are all Khaled Said)'라는 페이스 북 페이지에 자신들의 분노를 오롯이 담아냈고,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튀니지에서 독재자를 쫓아내는 모습을 보고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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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링크)

그 페이지를 만들었던 와엘 고님은 무바라크를 쫓아낸 직후 이렇게 말했었다. "사회를 해방시키기 위해선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이 헌법 개정 없이 권력을 잡고, 무슬림 형제단의 리더 무함마드 무르시가 스스로 새로운 파라오가 되겠다고 나섰다가 쫓겨나고 군부 출신의 압둘팟타흐 시시가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동안 와엘 고님은 침묵했다.

이집트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로 그 페이스 북 페이지가 각 정파들이 서로 물고 물어뜯는 현장이 되는 것을 보고 있었거든. 올 초에 다시 대중 앞에 섰을 때 그는 그 혁명을 이끌었던 소셜 미디어들이 다섯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토로했다.

첫 번째는 소셜 미디어가 사람들의 확장편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사람들 스스로 같은 의견만 들으려고 한다는 것. 뮤트 혹은 차단, 언팔로우 등의 간단한 수단으로 듣고 싶은 목소리들만 듣기 쉽다는 것.

세 번째, 온라인에서 토론이 쉽지 않다는 것.

네 번째, 소셜 미디어에서 한 번 밝힌 의견은 그 의견이 만들어졌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의견을 낼 수 있었던 사건 배경과는 관계 없이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의견을 바꾸기가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다섯 번째로 소셜 미디어 자체가 진정한 '참여'보다 얕은 촌평에 유리한 방식으로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이 연설을 했던 TED영상과 한글 번역 전문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링크를 따라가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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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만 바꾸면 된다고?>

고님이 지적했던 내용은 전혀 낯선 게 아니다. 지금도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특정 정치인을 갖은 근거로 공격하는 트윗들이 넘실거린다. 어떤 사회적 압력이라는 것은 서로가 가진 의견이 '공유'되기 시작할 때 가능해지는데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면 '거대한 사회적 압력'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특정한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기억하시는가? 그거 근라임께서 대통령 후보 시절 토론회에 나와서 했던 말이라는 거?

무엇보다 특정 정치 세력과 관계 있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특정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10년이 이어지다 보니 지난 10년의 민주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권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최씨네 일가 같은 존재들은 어느 정부 주변이든 있다. 참여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딸에게 접근했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들 딸은 미국으로 유학가야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되자 노무현 대통령의 형에게 접근하지 않았던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닉슨이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만 기억되지만 월남전을 끝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선을 위해 불법을 저질렀고 그 불법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했다. 시스템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그런 자리에 앉았겠나?



<광장>

미디어는 몇 만 명이 모였다는 스펙타클이나 평화시위, 깨끗한 광장 등에 집중하지만, 사실 광장이 중요한 이유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서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며 일방적일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광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가장 잘 보여줬던 것이 이집트였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를 끌어내린 이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The Square>, 우리말로 '그 광장'. 2013년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무바라크를 끌어내리는데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여섯 명이 주인공이다. 다른 나라에선 Netflix로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선 아직 볼 수 없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던 다큐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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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2011년 광장에 나왔던 이들 중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 때문에 영미권 방송을 가장 많이 탔으며 이 다큐에서도 주인공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집트계 영국인 배우 칼리드 압달라다. 연을 쫓는 아이(Kite Runner), 맷 데이먼이 주인공이었던 그린존에도 참여했던 이 배우는 <광장>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양심을 찾는데 들이는 노력 만큼 정치적 리더들을 전력을 다해 찾고 있지 않아요. 무엇을 위한 리더에요? 그들이 천국에서 모든 해법을 가지고 오기라도 한답니까? 그들은 그런 것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우리 사회에 이런 양심을 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좋은 대통령감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우리는 우리를 지배할 리더를 찾고 있지 않아요. 왜냐면 누구나 타흐리르 광장에 오는 이들이 리더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양심을 찾고 있어요."

군부가 현대 이집트 초반부터 권력을 장악해온 나라에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칼리드의 저 말은 민주주의가 이집트에서 꽃 필 날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권력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광장으로 나서는 이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내용의 카카오 톡을 열심히 퍼트린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재미본 경험이 있는데, 탄핵 당해 쫓겨날 판인 근라임씨가 의지할 게 얼마나 되겠는가.

평소라면 참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지만 일단 광장이 열리면 다른 것 필요없다. 그런 카카오톡 돌림 문자를 받는 분을 광장으로 모셔라. 혼자, 혹은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나오지만 말고 그렇게 휘둘리는 분들을 모셔라. 광장이 가진 진짜 힘은 평소에는 정치적인 견해가 달랐던 분들과도 교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근라임을 쫓아내고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건,  모두가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일때 가능한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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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의 저자이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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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