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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TN>)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퇴진 후에도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지난 19일 문재인의 발언이다. 국민들에게는 다행히도 박근혜는 거절했고 문재인은 지난 며칠간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강경론으로 선회해 비난을 벗어난 지금도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게 됐다. 그는 현 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대통령 문재인’은 과연 사상 초유의 국가권력 사유화 사태의 범인들을 확실히 처단할 것인가?


문재인의 제안은 틀렸다. 일단 기술적으로 잘못됐다. 분노로 타오르는 국민감정과 동떨어졌다. 이 제안은 적어도 2주는 먼저 나왔어야 타당하다. 이제 문재인의 행보는 가시권에 들어온 차기 대통령 직을 놓치지 않기 위한 소심함으로 비춰진다. 강경론으로 돌아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번 형성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둘째, 만약 상대가 전격 동의했다면 어쩔 것인가. 박근혜의 퇴임 후가 누구 맘대로 명예로워야 한단 말인가? 혹자는 이를 문재인의 정교한 저격술이라 에두른다. 박근혜가 당연히 거절할 것을 예상하고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논리다. 그렇게 텔레파시를 사용할거면 문재인의 ‘우유부단함을 간파한’ 야권지지자들의 텔레파시는 무슨 근거로 무시할 것인가? 국정농단이 드러난 시점에 박근혜는 이미 명예로운 퇴진의 자격을 잃었다. 


문재인은 일개 정치인이다. 명예퇴진론은 격앙된 국민감정을 대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국가를 전락시킨 범죄를 무마해줄 권리가 있느냐의 문제다. 문재인의 언행은 유권대중에 대한 하극상이다. 자기가 이미 대통령이 된 양 행동한다는 안철수 측의 힐난은 그 자체로 치졸하지만 경쟁자가 월권을 저질렀다는 사실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신중하고 겸손하기는커녕 소심하고 오만한 사람이 됐다. 자신의 책임이다.


본질은 안철수 측도 잘못 짚었다. 야당 의원도 대통령도 정치인이라는 점에선 같다. 정치인은 표의 형태로든 지지율의 형태로든 유권자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으로 개인적 관용을 베풀 권리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김대중의 전두환 사면이다.


일부 열성 야권지지자는 전두환·노태우 사면의 주체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을 지목한다.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 김영삼은 식물대통령이었다. 1997년 12월, 대한민국의 권력은 대선에서 갓 승리한 김대중에게 있었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사면·복권을 천명한 그는 이제 공약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독재자 사면의 책임을 혼자 지기는 부담스러웠기에 아직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김영삼을 압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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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면은 AP통신의 표현대로 “김대중이 요청하고 김영삼이 동의해” 이루어진 결과다. 국민과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마저도 실질적인 결정권이 김대중에게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전제했다. 고작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김영삼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부 야권지지자의 모습은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을 낯부끄럽게 한다.


김대중은 수십 년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다. 그렇다고 민주화를 소유할 수는 없다. 전두환 사면은 양김분열보다 지지자들을 더 분노케 하는 일이었다. 김대중은 민주화에 헌신한 이들, 군홧발에 짓밟힌 사람들의 피눈물을 자의적으로 배신했다. 이에 비하면 양김분열은 야심에 눈 먼 양반들의 ‘착각’과 ‘실수’에 불과하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격언이 있다. 나는 용서로 복수를 마친 김대중의 개인적 아량을 나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용서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했다. 그런 면에서 김대중은 제왕적 지도자다. 대통령 시절, 다름 아닌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내뱉은 비난이 무엇이었던가? “민주화의 꿀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성토가 아니었던가?


김대중의 관용은 ‘노무현은 죽었는데 전두환은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불의가 승리하는 세상은 한국인들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속에 살게 했다. 이 폐해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기사 3연작에 상세히 설명했다.



지난 기사


우리는 '최순실'을 정산 받았다

대한민국은 '작은 사회'의 집합이다

야권에 바란다



용서와 관대는 개인적 차원의 이슈여야 한다.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조선일보 세무조사를 추진하다가 포기한 결정을 이해한다. 적대적인 언론을 때리는 민망함과 선의를 지키면 결국 국민이 알아줄 거라는 이상론의 기저에 있는 그의 인간적 품위를 존중한다.


육영재단의 실체를 파헤치고 국고에 환수하는 일을 고려하다가 그만둔 일도 마찬가지다. “정적(政敵)이라는 이유로 법적 처벌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고 말하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은 소탈했다. 고인의 자존심을 인정한다. 그러나 부패한 언론사와 존재 자체가 착복의 결과인 재단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척결대상이어야 한다.


육영재단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지태의 부일장학회을 모태로 한다. 박정희 가족은 부일장학회를 국고로 환수하지 않고 사적으로 착복해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으로 나누어 불렸다. 육영재단은 다름 아닌 최태민 일가가 자라난 온상이다. 노대통령이 개인적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익을 대변하는 의무를 다했다면 국격이 발가벗겨지는 지금의 참극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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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이미 하야가 가능한 선을 넘었다. 하야(下野)는 들판에 내려온다는 뜻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행정력이 온전치 않은 곳으로의 방치이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방생이다. 헌정사상 최대의 범죄자들에게 전근대국가의 허술함과 우아함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는 물론 불법에 연관된 모든 자들의 특권과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구속 처벌해야 한다.


비통하고 수치스러운 만큼이나 천금 같은 기회다. 처벌되지 않는 불의가 처벌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도드라진 지금이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대한민국은 인터넷 농담 그대로 ‘유사국가’가 될 것이다. 문재인은 국민들이 며칠 전 자신의 발언에 김이 새거나 맥이 빠졌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이 느낀 것은 무거운 좌절의 기시감이다. 관용은 부족하다? 아니, 관용은 근본적으로 오류다.


국가의 본질은 폭력을 독점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박근혜 일당 엄벌은 국가의 권리이며 곧 국민의 권리다. 앞으로 국정을 주도해야만 할 야권이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을 처리할 방식으로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서의 제목을 권한다. 철학자들은 이미 근대의 폭력을 고발했지만 지금 우리는 탈근대에 앞서 근대국가부터 성취해야 한다. 그 책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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