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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촛불집회에서 DJ DOC의 공연이 취소되었다. 이번 무대를 위해 만든 신곡 <수취인분명>의 가사가 여성혐오라는 논란 때문이다. 복수의 여성단체가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주최 측에 항의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가사는 ‘미스 박’, ‘쎄뇨리땅’, ‘얼굴이 빵빵’ 등이라고 한다.




유투브로 '수취인분명'을 듣자마자 광화문 무대에 못 올라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공연이 무산된 과정은 불안한 기시감 그대로였다. 


솔직히 고백컨대 내 취향과 판단력으로는 가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 노래가 ‘문제가 생길 거라는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여성)이 불쾌하다면 그건 그대로 문제가 맞다 믿는다.


가사의 1차적 책임은 당연히 아티스트에게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DOC의 가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합의점을 도출하는 방식에 있다. 공연이 무산된 과정은 지나치게 일직선이다. 불쾌를 유발했으니 책임이 있고, 책임이 있으니 배제하고 무대에서 삭제시킨다. 우스꽝스럽지만 폭력적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폭력의 주동자를 몰고 싶지 않다. 소소한 악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귀결이기 때문이다.



1. 인간성 증명


DJ DOC는 <수취인분명>이 문제라면 다른 곡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거절당했다. 여성혐오 노래에서 갑자기 여성혐오 인간으로 점프했다. 감히 누군가를 불편케 한 ‘죄악’과 인격을 동일해 사람 자체를 무대에서 지워버렸다. 이렇게 사소한 실수는 인간성 증명으로까지 비화된다. 이 지점에서 DJ DOC는 ‘노답여혐종자’가 된다.


노답이라는 말은 전체주의적이다. 진실은 답을 알고 있는 이쪽 편이라는 전제에서나 가능하다. DOC를 시민들이 함께하는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들로 몰고 수취인분명에 긍정하는 사람들까지 악의 편으로 몰 권리를 누가 누구에게 부여했나.


진실은 간단하다. DOC에겐 창작의 자유가 있고, 누군가에겐 수취인분명의 가사를 불편해 할 자유가 있다. 가사에 불쾌함을 느낀 사람들이 DOC로부터 받아내야 할 반응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홍위병재판식 자아비판이 아니라 ‘소홀했다’, ‘미흡했다’는 인정이다. 그 다음 수순으로 '알았다'는 이쪽의 반응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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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듀싱의 부재


뮤직비디오에 나온 대로라면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수취인분명>을 프로듀싱 했다. 적어도 그만한 경력을 가진 입지전적인 언론인이라면 좋은 말로 가사의 위험성을 지적해주는 편이 좋았다. 프로듀서는 노래에 영상과 자막을 입히는 게 다인 사람이 아니다. DOC도 정치적 노래를 발표하다보니 정치적 보도에 있어 입지가 상당한 이상호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 일을 해줘야 한다.


아티스트는 저지르는 사람이고, 프로듀스는 정돈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곡이 끝나고 배부른 표정으로 엄지척하고 있더라. 그는 프로듀싱에 ‘소홀했다.’



3. 주최 측의 관료주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군대문화에 지친 나로서는 가져다 쓰기 싫은 말이지만, 행사 주최 측의 역할은 일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안 되면 다른 곡이라도 부르고, 그것도 안 되면 바닥에서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는 DOC의 태도를 보니 아티스트의 자존심 운운하며 버틸 요량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작업이 완결되지도 않은 비공식 음원이었다. 토씨 몇 개만 바꿔달라고 요청했어도 될 일이었다.


결국 주최 측은 행여나 같이 돌 맞기를 두려워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할 주최 측은 문제의 회피를 선택했다. 누구나 자신의 선의를 보존하고 싶겠지만 책임의 가능성에서 도망가는 것은 책임회피만큼 나쁘다. 불만에 귀를 여는 건 좋다. 하지만 불만의 타당성을 판단해야지 억지에까지 굴복해줘선 안 된다. 주최 측의 안전거리 확보는 전형적인 관료제의 보신주의다.



4. 초식동물 사회의 규범


책임 가능성 회피를 위해 주최 측이 한 행동은 <수취인분명>이 촛불집회 공연에 부적합하다는 '판결'이다. 이 사람들은 문제가 불거지자 재빨리 동업자에서 재판관이 됐다. 그 이유는 여론의 재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시 확인하건대 우리사회는 논의와 합의의 사회라기보다는 재판의 사회이며, 각자가 피고인으로 설 법 한 자리를 분주히 피해 다녀야 하는 초식동물의 사회다. 이런 면에서 나는 주최 측의 판단이 '미흡했다'고 본다.


합의점이 도출될 지점이 많았는데도 관련자들은 그걸 고속도로처럼 뚫고 지나쳐갔다. 지금 우리 사회 논의 방식의 강퍅함의 반증이다. 촛불로 밝힌 민주주의의 한복판에서 합의과정의 부재를 보는 기분이 묘하다. 우습고 허무한 구경 잘했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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