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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공장을 그만두고 친구가 다니던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다 훗날 이명박처럼 세상의 모든 일들을 경험해 봤다는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이 많아져 사람을 구한 거라 한참 더운 시절 잔업까지 끝내고 나면 옷에 소금 꽃이 피었다. 소금꽃은 쉰내가 난다. 같은 날 입사를 했던 병역 특례 예정자는 반나절 일을 하고 점심 식사 후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별 반응이 없이 무덤덤했다. 급여가 적고 환경이 열악한 공장에서 흔한 일이다.


건설노동에 비해 절대적인 노동 강도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회사가 지불하겠다는 노동의 댓가와 비교하면 절대 만만치는 않다. 육체노동을 해보지 않은 젊은 청년의 첫 경험이라면 불지옥에 가까운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올 여름은 유독 더웠다.


전체 직원은 80명 정도인데 사무 영업직을 빼고 현장 작업자는 50명이 안 된다. 현장 작업자 중에는 40대 이하가 드물다. 병역특례와 외국인 노동자가 그중에서 열악한 작업을 맡는다. 당연하게 더 열악한 곳에서 더 힘든 작업을 하는 이들에 대한 보상은 적다.


정년 퇴직 후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다리를 절거나 손가락 개수가 모자라거나 말을 잘 못 하거나 하는 작은 장애를 갖은 사람들과 장기 근속자는 의외로 많다. 인사담당자가 말했던 것처럼 성실하게 다니면 먹고는 살 수 있는 곳이다. 더 올라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 더 내려가지 않았음을 위안하며 그 나름의 서열을 구분 짓는다.


지체 장애자를 둘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어느 콩나물 공장 사장이 떠올랐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소정의 임금을 가족에게 주고 숙식을 제공한다.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청년은 그래도 상태가 좋은데 숙식을 하는 사람은 방송업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으로도 전락할 수도 있어 보였다. 처음 일을 하게 됐을 땐, 바지에 대변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엉덩이에 독이 올랐던 상태였다. 한글과 숫자를 모르기에 쉬는 날 없이 알람이 울리면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각자의 사정이 적당한 타협을 부른다. 어느 시점에서 적당한 타협은 다른 시점에서 온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시간 작업 후 십 분간 휴식시간에 작업을 하던 자리에서 담배를 문다. 담배 값이 부담스러울 만 할 텐데도 흡연자 비율이 높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인데도 친분은 두텁지 않아 보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무채색에 가깝다. 낡은 공장을 철판으로 이어붙여 확장되어 있다. 계단과 통로는 뜬금없이 이어져 벽을 만난다. 개미굴이 연상되었다.


목공 용접 프레스 미싱등의 공정을 거친 부품을 반 조립상태로 출하하면 팀을 이룬 시공업자들이 제품설치를 한다. 영업 사원들이 물어오는 오더도 있는 것 같지만 공기업이나 군부대로 납품되는 제품들은 브로커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 브로커 마진을 주고 나면 많이 남지는 않을 것 같다. 철거업자와 협력업체를 연결하면 작지만 나름의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끝 공정에서 일을 한다. 생산계획에 따라 물건들을 조립하고 출고되는 물목을 차량에 상차한다. 제품이나 공정에 따라서 철골조에 나사를 박기도 하고 나무판에 구멍을 내는 단순작업을 반복한다. 라인 작업처럼 움직임이 기계화될 것은 없지만 여럿이서 일하다 보니 분업의 효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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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인지 거래처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끔 은갈치의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현장을 돈다. 육체노동을 할 생각도 없고 할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불편할 정도로 헐렁해진 두루마기를 걸친 조선 시대 양반 나리들이 연상된다. 딱히 굽신거릴 필요는 없다.


몰아치듯 밀려오던 일거리들이 잠시 뜸해지고 추석 무렵엔 회사의 방침에 따라 2018년에나 발생한다는 연차를 두 개 써야 했다. 연차가 발생하기도 전에 마이너스가 되었다. 약간의 친분이 생긴 소수의 사람들만 개인적으로 투덜거리는 게 들린다. 투덜거림이 크게 절박해 보이지 않고 관성적이다.


스스로를 위해 슬퍼하고 분노하는 목소리는 별 내용이 없어도 요란하고 강렬하다. 파장과 여운이 길지 않다. 연민이 자신을 향하면 지켜보는 사람을 쉽게 피로하게 한다. 슬픔과 분노의 이유가 타인의 고통인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본능적으로 이를 감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타인을 위한 명분으로 포장하곤 한다.


벙커 직원의 자존감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읽으면서 그는 절실한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나에게 돌아왔다. 파카자본에게 주먹질을 하던 그 시절 나는 절실했는가. 누구를 위해 분노했던가.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과의 관계와 정의감 대의명분이 떠올랐지만 기저에 깔린 얄팍한 자존심과 개인적인 분노를 부정할 수 없었다.


날이 궂거나 무리를 하면 무릎에 통증이 온다. 파스를 부치거나 약을 먹기도 하지만 가끔은 수영장에 가서 하루 치 요금을 내고 자유 수영을 한다. 정식으로 배운바 없는 헤엄이라 자유형을 흉내 내긴 하는데 속도가 느리고 폼이 엉성하다. 초보자 구역에서 조용히 찰박거리며 열댓 번 왕복을 하면 숨쉬기와 발장구를 이제 배우는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수영을 좀 배운 사람들은 자세를 교정해 주고 싶어 한다.


물을 당기는 손가락을 벌리고 보내는 물을 배로 향해서 부력을 더 주고 호흡을 아끼고 길게 하면 속도를 배는 올릴 수 있다. 수영장의 터주대감이라는 분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물살을 가르고 부유하는 느낌을 좋아하지 속도와 경쟁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호의와 선의를 표방하는 가르침이 불편했지만 예의상 응대를 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다고 착각했었다.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착각에서 깨어나니 부끄러웠다. 자기 기만이었을 뿐 지식도 부족하고 그릇도 작다. 마음이 다시 움추러 들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 고사성어와는 다르게 하층민들의 체험적 지식과 스스로에 대한 위로다. 먹기가 마냥 달지는 않지만 솔잎을 먹고 사는 것들은 솔향이 난다.


마음이 자라는 것이 어쩌면 벌레들이 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통 자라는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성장하는 중간 중간 움츠러들어서 잠을 자기도 한다. 솔잎을 먹고 사는 송충이도 잘 자라다 보면 나방이 될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햇빛 아래 아름다운 나비가 아닌 나방일지라도 날개 비늘에서는 솔향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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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조금 더 자라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인들은 글을 만들기 위해 삶과 언어를 깎고 다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빛과 어둠이 다르듯 나름의 의미는 존재하겠지만 나비의 나방의 삶은 다르다. 높게 보던 이들도 인간적인 결점을 숨겨왔을 뿐이다.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유지하며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려 타협하거나 심리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절제를 내려놓는다.


나만 부족하고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씁쓸하다. 조금은 더 훌륭하고 나은 존재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언젠가 스스로를 다듬고 노력하며 살다 보면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남아 있는 편이 좋다. 힘겹게 스스로를 향상시키기보다 다른 이들을 끌어내려 저급한 심리적 위안을 삼는 게 편하긴 하다.


나이를 많이 먹은 창업주는 아들에게 기업을 승계하는 중이다. 디엔에이를 남기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고 후대의 생존을 배려하는 건 진화의 한 측면이다. 승계와 상속은 강력한 성취동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을 만큼 붙들고 있는 것이 있는가 생각하다 머리를 흔든다. 그릇을 만들지 않고 분에 넘치는 승계와 상속은 본인과 여러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그릇이 만들어지면 스스로가 그릇만큼 채우고 산다.


이정현 씨가 박근혜 댓통령에게 세금으로 싹스핀과 송로버섯을 얻어먹을 즈음 회사에서 출장 뷔폐를 먹었다. 창업주의 동생이 칠순이 되었다. 개미굴처럼 복잡한 현장을 하루에 십 수번씩 순찰을 하며 개인 건강과 노동력의 누수를 관리해서 아직은 건강하다. 현장 순찰은 쉬는 시간이나 퇴근 시간 일 이 분 전도 기습적으로 한다. 자신이 지켜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평소에 표정 없이 무채색이던 사람들이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월드워 Z의 좀비들의 습격 같았다. 부폐음식을 못 먹어 본 이도 없을 테고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빈곤층은 없을 텐데도 반응이 과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닥친 상황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처한 위치에 적합한 모습으로 사람이 변한다. 발가락의 굳은살 같은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면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는 것들이 일단 결핍이 되면 불구가 되거나 전부가 된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