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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추천4 비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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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A의 이야기


시인 이요란과 그의 제자 서지숙의 잇따른 죽음은 그저 동네 복덕방 청년에 불과한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개수익을 벌어들이며 서울 시내 어디에 매입을 하고 경매에 참여하면 좋을지 골머리를 썩이며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책갈피를 넘기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였다. 문학청년. 그렇다, 나도 한 때 문청이었던 것이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청년이라는 말보다는 문학애호가라는 말이 맞겠다. 간편한 E-BOOK도 좋아하지만 종이책의 냄새는 사춘기 소년 적부터 나를 매혹했다. 책상 하나, 응접 세트 하나가 놓인 <비타민 부동산>이라는 내 가게에 들어오면 자그마한 책장이 한 켠에 서 있는데, 거기에는 소설가 서지숙이 친 첫 홈런인 <욕망>이 꽂혀 있다. 그 옆에는 도스토예프스키, 중남미 소설가들, 그리고 이요란의 시집들이 몇 권 있어 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때론 이채롭다는 시선으로 보았고 자주 복덕방이나 하는 놈이 인터넷 장기나 둘 것이지 건방지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교과서에도 그분의 시가 등장해 하늘처럼 높게 보이던 이요란이 60대 후반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로 우리 부동산에 들어섰을 때 나는 흡사 위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멘토입네 명사입네 하는 TV 출연도 극히 드물어 시집 안쪽에 흑백으로 그려진 프로필만이 세간에 알려진 그이의 모습이었는데,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해 가느다란 담배 한 대를 피워물면 어울릴 것 같은, 마치 60대가 된 오드리 햅번 같을 것이라고 내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분의 걸음을 염려하며 팔을 부축하던 서지숙 작가의 모습은 종편을 비롯해 각종 매체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 옆에 선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 시인 이요란이라는 것을 이내 알았다. 이요란 시인은 언론에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으나 문학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면 서지숙이 이요란에게 오래 사사한 제자이며, 마치 딸처럼 그의 수발을 든다는 것을 다 알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각별했다. 본래 간호학과였던 서지숙이 문학을 가르치던 이요란의 수업을 듣고 간호사에서 작가로 바뀐 인생역정도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보고 책상에서 어물쩍 일어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도 못 하고 무릎에 힘이 빠져 이렇게 바보같이 말했던 날이 바로 어제 같다. "조... 조...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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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오드리 햅번 같으면서도 그의 다정함 대신 엄위함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한 이요란은 갑자기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그 미소도 아주 가끔 보여 주는 것이란 사실은 후에야 알았다. “자네 나를 아나?” “선생님 시를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저기...” 나는 싸구려 체리목으로 된 책장을 가리켰다. 동네 중고 상점에서 산 그 허름한 책장이 그렇게 자랑스럽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책장을 찬찬히 살펴본 이요란은 미소를 지었다. “젊은 분이 장사는 잘 못하시겠구만. 이런 걸 좋아해서야. 그래도 집은 잘 찾아줄 것 같으신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이요란은 다시 미소했다. “간판이 맘에 들었소. 보통 부동산은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지. 비타민 같은 부동산이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서지숙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너무 젊으신데, 경험이 얼마나 되시죠?”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건 이제 3년째입니다. 이 동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매매나 전세 경험은 적진 않은 편입니다. 안심이 안 되시면 베테랑 선배들을 소개해 드릴 수도 있구요.”


이요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게 비타민 같은 집을 찾아 줘봐요. 비타민제가 흔히 그렇듯이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을 테니까.” 서지숙이 신경을 쓸 만도 한 것이, 이제 70을 바라보는 이요란 선생이 앞으로 남은 생을 다 보낼 곳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오르막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요란은 바깥에 주차된 하얀 프라이드베타를 가리켰다. “내 조랑말이지. 벌써 십오 년이나 나를 태워 주고 있다오. 노인네 치고는 운전도 괜찮은 편이니, 공기가 좋은 곳을 알려 줘요.” 서지숙이 끼어들었다. “선생님이 산보하실 만한 곳도 있어야 하고, 마당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그네를 놓고 싶거든요.” “지숙, 네 집도 아닌데 웬 그네 이야긴가?” “선생님이 계신 곳이 바로 제 집인 걸 아시면서 그러세요.” 모녀 지간만큼 나이 차이가 나면서도 어딘가 모녀처럼 보이지도 않고, 완전히 사제 지간 같지도 않고, 왕후를 모시는 귀족 여인 같기도 한 그들의 모습에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공인중개사인 나는 완전히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이미 외울 정도로 알고 있는 근방의 지적도를 뚫어져라 노려봤을 정도이니, 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아는 변호사나 행정가가 많을 텐데도 이요란 시인이 선생의 유언집행인으로 나를 지정했을 때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비타민’.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샛노란 간판에 주황색으로 비타민이라고 적혀 있는 내 간판을 가리키며 선생은 단단히 여민 봉투를 건넸다. “이것이 독이 될지, 비타민이 될지는 모르오. 그러나 나는 중개사 총각을 믿어. 자네가 찾아 준 집은 튼튼하고 다정했지. 나는 좋은 시간을 보냈소. 그러니 사짜 붙은 사람 중에 내가 가장 믿을 수밖에. 이런 빚을 주어 미안하게 됐어요 ” 그 때만 해도 그 건강한 이요란이 그리 쉽게 숨을 거둘 줄 몰랐으므로, 나는 정말 내가 집행인이 되어도 좋겠느냐고 몇 번을 되묻고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빚이라니요, 일생의 광영입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선생은 동네 길고양이들을 위해 스티로폼 상자에 신문지를 채워 월동용 집을 곳곳에 만들고, 사료와 물을 골목마다 챙겨 놓는 내가 기꺼웠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회적 명사의 유지를 받드는 역할을 집 중개한 것밖에 없는 내가 해도 괜찮을지, 실은 시인의 1주기가 된 아직까지도 자신이 없다. 그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부동산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리고 키가 훌쩍 큰 소년, 인지 청년인지가 들어왔다. 바로 그다. 한은규. 요즘 아이들이 즐겨 입는 스키니 진에 체크 남방 셔츠를 입고 크로스 백을 맨 그는 이제 스무 살일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팔십 퍼센트가 대학을 가는 세상이니 대학에 갔을 것이다. 아름다운 노시인의 마지막 로맨스인가, 생전에 거주하던 집의 월세를 받게 된 H군은 도대체 어떤 연유이느냐고 신문이나 소위 찌라시가 떠들어 댈 때 대학에 재학 중인 H군은... 이라고 수없이 나왔으니 대학생이 맞긴 할 것이다. 고개를 까딱 하더니 한은규는 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 오기 싫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안냐세요. 한은귭니다.” 나는 종이컵에 티백 녹차를 담아 건넸다. 어쩐지 커피냐 녹차이냐도 묻고 싶지 않았다. 물론 시인이 남긴 월세는 고작해야 그가 한 달에 호프집 몇 번 가서 친구들과 치킨샐러드에 맥주라도 들이키면 사라질 만한 돈인데 비해 한은규가 치러야 했을 유명세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불과 며칠 전 열린 이요란 시인의 1주기 행사에 나타나지도 않은 것은 영 마땅찮았다. “얼마 전에 선생님 1주기셨는데...” 시큰둥해 보이는 한은규의 얼굴에 언뜻 어두운 빛이 지나쳤다고 믿고 싶은 것은 오직 나의 바람일 뿐일까. “네, 할무니 돌아가신지 벌써 그렇게 됐네요.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저 할무니 집 월세 필요없어요. 어디 월드비전 같은 데, 아 거기는 선교한다고 꼴보수 개독들한테 돈 주나? 뭐 중개사님이 생각해서 괜찮은 데, 그런 데 보내주세요. 대신 제 이름만 안 나오게 해주세요. H군이니 뭐니 그런 거 말이에요.” “법집행은 유언자가 남긴 대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제가 고작 공인중개사라 해도 엄연히 선생님의 법정 대리인입니다.” 한은규의 하얀 얼굴에 푸르스름한 핏줄이 얼핏 비쳤다. “할무니 집은 할무니 거잖아요! 제가 받은 셈 치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 그의 목소리에, 어쩐지 비통한 기색이 느껴져 나는 힐난하는 시선을 거두었다. 소년과 청년의 어정쩡한 언저리에 있는 그에게는, 뭔가 있었다. 그게 뭘까. 왜 선생은 월세를 이 소년에게 남겼을까. 1주기를 맞아 열어보라고 한 봉투 안에 들어 있던 노트에 도대체 무슨 말이 써 있었을지 한은규는 짐작하고 있을까. 아르바이트, 몇 년 간의 직장 생활, 자영업자 생활에 독신으로 인생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는 기겁할 만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싸인을 하던 단정한 그 글씨체로, 은규. 나의 사랑. 나의 영원한 소년. 나의 영원히 깨끗한 동정. 나의 은규. 나의 은규. 나의 은규. ‘나의 은규’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어, 그 절실함에 늘 건평 몇 평, 용적률 얼마, 이런 것만 계산하는 나의 심장까지 뒤흔들렸다. 나의 은규. 레자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저 한은규가, 위대한 시인 이요란의 ‘나의 은규’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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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