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9. 06. 금요일
둥둥님
2부 - 불로하 강변의 애국가
옥수수 밭에서 기절하듯 잠이 든 장준하 일행.
동이 트기 직전, 장준하는 잠결에 기차의 기적 소리를 어렴풋이 듣고 기겁하며 깨어나. 왜냐하면 철길 근처라는 것은 곧 탈영부대 인근이라는 의미거든.
얼마나 잤을까.
어렴풋이 들은 잠결의 소리. 그것은 꼭 기적 소리만 같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쉬저우에서 동북방향으로는 철도가 없다는 나의 판단이 순간적으로 내게 충격을 추었다.
이 기적 소리로 미루어 보면 우리는 철도 연변에서 불과 10~20리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다는 추리가 나온다. 제자리를 개미처럼 헤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나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돌베개 中>
중국군이 있는 동북 방향으로 간다고 갔으나, 중간에 방향을 잃고 헤매서 쳇바퀴 돌 듯 제자리 걸음을 한 거였어. 운하를 건너다가 그만 헤엄에 정신이 팔려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설상가상 성냥이 물에 젖어 퇴갤하는 바람에 나침반은 무용지물, 구름이 잔뜩 낀 날씨 때문에 달도 북극성도 잘 안 보여,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길을 잃는 건 당연지사.
일행은 배고픔을 참고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움직일 지 아니면 계속 이동하며 먹을 것을 구해볼 지 의논하고 있었는데, 숨어 있는 모습을 그만 개똥을 줍고 있던 어느 중국인 농부에게 들켰지 뭐냐.
농부는 일본 군복을 입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놀라서 도망갔고... 어젠 원두막 주인하고 마주치고 오늘은 개똥 줍는 농부한테 들키고... 헐~
"시바, 배고파 디지겠다."
"어차피 들켰잖아. 준하 말대로 밤까지 여기 숨어있다간 모두 굶어 죽을 거야! ㅠ.ㅜ "
장준하는 날이 질 때까지 은신해 있자고 계속 설득을 하려고 했지만, 그만 배고픔에 같이 무릎을 꿇었어. 아까는 갑자기 마주친 농부를 보고 놀랬던 지라 경황이 없었지만 장준하는 골똘히 생각했지.
그 중국인 농부가 일본군 점령지의 주민이 아니라면? 그래서 일본 군복을 보고 놀라 달아난 거라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았어. 지가 일본군 부대로 들어가서 탈영병 봤다고 신고를 할 것도 아니고 말야. 설사 점령지 주민이라고 해도 일본군 행세를 하면서 먹을 것을 요구해도 될 것 같고, 아님 아싸리 돈을 주고 사 먹을 수도 있고. 신고 할 테면 하라지. 그렇다고 니뽄군들이 사설 구급대마냥 5분 안으로 튀어 오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은 당장 너무나도 굶주린 상태라 그냥 미친 척 대담하게 행동하기로 결심. -ㅅ-
우선 밥이라도 얻어먹고 운명에 대결하자.
더 망설일 겨를도 없이 우리는 큰길로 성큼성큼 발길을 돌렸다. 큰길로 내디디는 발걸음은 그런대로 당당한 걸음이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마을이 드러났다. 저 마을까지만 가면 우선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이 우리들의 몸 전체를 움직이며 발걸음에 엄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돌베개 中>
기계처럼 걸어가던 일행은 한 떼의 농군들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광경을 보고 우뚝 멈춰 섰어. 새벽부터 일하다가 부락이 멀어 아침을 내다 먹고 있는 것이 고향과 흡사한 풍경이었지. 아아... 지금쯤 우리 마을에는 바람에 출렁이는 벼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겠구나... 그리운 고향, 보고 싶은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 수천 리 떨어진 아득한 그 곳... 살아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막상 중국인 무리들을 마주하니 일행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어. 마음 같아서는 음식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가고 싶었으나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지. 그때, 농군들이 장준하 일행을 먼저 불렀어.
"래,래!!"
"니츠! 니츠!"
비록 중국말은 몰랐지만 와서 먹으라는 의미인 것은 알 수 있었지. 중국인들은 속마음을 감추는 경우가 많아 그냥 허례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쩌겠어. 먹지 말라고 해도 뺏어먹어야 할 판에.
농부들은 장준하 일행이 걸치고 있는 일본 군복을 보고 무서워서 음식을 양보한 걸 거야. 일본군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르니. 장준하 일행에겐 그나마 다행이었지. 정말 배고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장준하가 조반상을 보니 다행히 절반도 채 먹지 않은 상태였어.
농부들이 먹고있던 음식은 쨈빙(지엔빙,전병)이라는 음식으로,
밀가루를 얇고 둥그렇게 부쳐서 안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돌돌 말아서 베어먹는 거야.
케밥이나 타코, 크레페 샌드위치 같은 거지.
농부들의 식사를 모조리 아구아구 싹싹 먹어 치운 일행은 엉터리 중국어와 필담으로 탈영한 일본군 부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물어봤는데 농부 왈,
“쓰까다 부대는 15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해 ^ㅁ^”
1리=약 400m 이므로, 탈영부대로부터 5.9km………….뙇!!!!!!!!!!!!!
연 사흘을 걸어, 죽을 힘을 다해서 나온 것이 겨우 15리 길이라니,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새벽의 기적 소리는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이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150여 리는 걸었을 터인데 불과 15리 길을 150리나 걸어서 왔다니 기가 차서 아무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베개 中>
장준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원래 목표지였던 중국군(팔로군) 유격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물어봤어.
흐...흐...흐윽......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ㅠ.ㅜ
"걔네들 지금 저~기 보이는 산 너머에 와 있다 해. 산까지는 30리(12km)정도 된다 해."
장준하 일행은 우선 중국 팔로군이 있다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으로 농부에게 쨈빙 테이크 아웃 주문을 했어. 기운이 있어야 도망을 가든 말든 할 거 아냐. 굶주리는 것에는 정말 이골이 난 터라 조금 위험 부담을 갖고 지체하더라도 음식을 준비해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거든. 농부는 흔쾌히 집에서 만들어 금방 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로 사라졌지. 그런데 이 노인네가 한 시간 가까이 돼도 안 오네?
혹시나 일본군에게 밀고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시간은 초조히 지나가고, 장준하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농부가 쨈빙을 들고 나타났어. 조선 청년들은 다시 길을 떠났지. 원두막에서 산 참외도 까드득 까드득 먹어가며 말이제. 탈영병의 몰골치고는 제법 여유로웠어. 그런데 참외를 다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뒤에서 무슨 고함 소리가 나는 거야!! 젠장! 어느 놈이 결국 밀고 했구나!!
얼핏 돌아다보니, 수상한 5~6명의 젊은이들이 손을 저으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오라는 것이었다.
이 순간, 싸늘한 냉기가 그곳에 우리를 냉동시키는 듯이 불길한 생각이 맴돌았다. 전신에 그 소름이 끼치는 냉기는 쭉 흘러 내렸으나 우리는 그렇게 약한 기미를 보일 수도 없었다.
우리는 허리에서 권총을 뽑는 체하여 보이고서는 그냥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걸었다.
<돌베개 中>
탕! 탕! 탕!
총알이 바람을 가르며 장준하 곁을 스쳐 지나갔어. 마치 짐승의 본능처럼 일행은 우거진 수수밭으로 달아났지. 수수밭을 정신 없이 가르며 헤집다 보면 감자밭이 나오고, 거기서는 몸을 숨길 수 없으니 또 다른 수수밭을 향해 달려가고... 추격자 무리들은 장준하 일행이 무기를 갖고 있다고 여겼는지 다행히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뒤따르는 것 같았어. 수수밭과 감자밭을 몇 개나 지나쳤을까. 숨이 차서 가슴팍이 쪼개질 것처럼 죄어 오고 헐떡이는 숨에서 쇠비린내가 날 때쯤 야속한 강물이 일행을 막아 섰지.
그제서야 장준하는 추격자들이 마치 짐승을 구석에 몰아 사냥하듯이 여유롭게 뒤를 밟고 있었던 거라는 걸 알았어. 맥주병이니 강물에 뛰어들 수도 없고... 수영을 할 줄 아는 윤경빈은 첨벙첨벙 강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는데...아아, 어떡하지??
"아, 어찌할 것인가, 이 강 물결에 버릴 수 없는 몸들을..."
강물은 흐르는 듯 마는 듯 잠긴 채로, 없어도 될 곳에 강이 나 있듯이 밉게 누워 있었다. 윤 동지는 강변으로 내려 뛰었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기세를 보였다.
이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분명 나의 입속에서 찢어져 나온 비명이지만, 나의 두 눈이 준 환희의 비명이었다.
<돌베개 中>
"...........!!!! 배다!! 배!! 래! 래! 래!!!!!!!!"
장준하의 눈에 마침 굽이를 돌아 나오는 나룻배가 보였어. 다행히 뱃사공은 순순히 노를 저어서 다가왔어. 배가 채 기슭에 닿기도 전에 일행은 펄쩍 날아 배에 탔지. 그런데 어? 잠깐만.
배가 출발하고 나서 보니, 4명이어야 하는 일행이 3명 밖에 없었어. 김영록이 배 안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일행은 서로의 파랗게 질린 얼굴만 쳐다보았는데... 소리를 질러 김영록을 부를 수도 없고 뱃머리를 돌릴 수도 없고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지.
강 기슭에 내리자마자 수풀에 엎드려 숨어서 행여나 김영록이 강을 건너 오고 있는지 지켜보았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
또 총소리가 났다.
이윽고 총성은 강을 건너온 듯 싶었다.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아무런 구별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그저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엎어지며, 미끄러져 옆으로 자빠지며, 그러고도 또 달려가며 벌판을 주름잡고 있었다.
<돌베개 中>
얼마를 냅다 뛰었을까. 앞만 보고 달리던 장준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을 숨길 수 있는 수수밭은 이제 더 이상 없었어. 이미 넓디 넓은 감자밭 평원 한 가운데였지 뭐야. 몸을 가릴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는데 죽어라고 뛰어봤자 인간 과녁밖에 더 됨? 무려 10km를 넘게 쫓겨온 장준하 일행은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 해 있는 데다가 그만 기운이 탁 풀려버려 의욕조차 상실해 버리고 말았어.
내달리던 발 길은 앞으로 쏟아질듯한 터벅 걸음이 되었고... 어느새 일행은 추격자들에게 포위되고 말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서럽고 하늘이 너무한 일이었지. 일본군 병영의 차디찬 철조망을 잡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처절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다니... 체념한 장준하 일행은 천천히 발자국을 옮겨 놓으며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더 봐두었어. 마치 동료들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듯 말이야.
큰길에 다다라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뜻으로 우리는 눈들 감았다. 턱 밑까지 와서 받치는 거친 숨을 달래면서 감은 두 눈에 와 닿는 뜨거운 햇볕을 의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햇볕만은 아니었다. 무엇인가 나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맨 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식 모제르총의 총구였다.
<돌베개 中>
당시 장제스군이 사용하던 모젤 권총
장준하 일행을 포위한 중국 청년들이 쏼라쏼라 떠들었는데, 너네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는 것 같은 눈치였어.
장준하 입장에선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청년들이 어느 세력의 사람들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지. 행여나 일본군에 협조하는 왕정위군의 앞잡이들이라면 탈영병임을 절대 밝혀선 안될 테니까.
그런데 청년들의 총을 보니 일본군이 쓰는 것은 아니었어. 복장도 다행히 친일파 왕정위군의 것도 아닌듯 했지. 그러면 혹시 중국 지방 군벌의 유격대원이 아닐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장준하는 땅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
나의 손목, 한국의 한 손목이 이제 총구 앞에서 한국 백성임을 자백하는 손목. 이 떨리는 손목이 밝히는 그 결과가 저들에게 어찌될 것인가?
"우리는 한국 청년. 그제 밤 일군 병영 탈출, 지금 팔로군(중공군/마오쩌둥세력) 진영을 찾아간다"
<돌베개 中>
굳이 팔로군이라고 쓴 이유는 아까 쨈빙을 얻어먹을 때 마을사람들로부터 팔로군이 인근에 와 있다고 주워들었기 때문. 다행히 중국 청년들은 장준하의 글을 알아보고 역시 땅에 답장을 써 주었어. “우리가 그 팔로군이다. 우리를 따라 오라. 본부로 가자”
사실 얘네는 장제스 세력의 중앙군이였지. 장준하 일행이 안 따라올까봐 거짓말한 거. 만약 장준하 일행이 만난 게 진짜 팔로군이었다면... 공산당 전력이 있는 빨갱이로 몰려...에휴. 안 봐도 DVD네...
어쨌든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가긴 하는데, 이걸 믿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어.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결국 꼼짝없이 연행되어 갔어. 가는 도중에 시계며 안경이며 값 나가는 소지품도 몽땅 빼앗기고.
혹시 일본군에 우릴 넘기려는 것은 아닐까, 팔로군이라는 건 거짓말이고 막상 도착 하고 나서 보니 산적 소굴 같은 데면 어떻게 하지? 김영록 동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수수밭 속에서 어떻게 잘못된 것이나 아닐까?
혼란스럽고 무서운 길을 꾸역꾸역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들의 산채를 지나 작은 마을 같은 사령부라는 곳에 이르렀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초조함과 불안감에 그저 어떤 기적이라도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중, 이윽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중국 군복을 입은 한 홍안의 미청년 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와락 달려들듯이
"한국 분들이죠?"
하고 분명한 우리말로 이렇게 물으면서 바로 우리 앞에 섰다.
<돌베개 中>
그 청년의 이름은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야.(2011년 작고. 국립 대전현충원 안장) 참고로, 아래 사진은 워낙 유명해서 한 번쯤 본 사람들이 많을 거야.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바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님이라네~^^
잠깐 김준엽(존칭생략)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게.
김준엽은 일본 유학 시절, 장준하와 마찬가지로 학도병으로 자원하여 중국 쓰카다 부대로 배치되었어. 김준엽도 장준하처럼 애초부터 탈출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세력에 합류하기 위해서 자원 했다고 해. 이 분도 돌베개처럼 당시의 수기를 쓰신 것이 있는데 바로 <장정>(나남출판)이야. 돌베개를 섭렵하고 나서 덕후에 입문하고 싶다면 <장정>도 꼭 읽어보길 바래. ^^
들어볼텐가 젊은이...? 하얗게 불사른 한 사나이의 청춘을... 호호호!
김준엽은 탈영 후 4일간 헤맨 장준하 일행과는 달리 한국에서부터 미리 준비한 고급 나침반, 자세한 지도, 정확한 거리 계산등 치밀한 사전 준비로 불과 4시간 만에 중국군 유격대에 합류했어. 유격대원들과 같이 훈련도 받고 일본군에 대한 각종 정보도 넘겨주며 사령관의 이쁨을 듬뿍 받았다고 해.
김준엽이 <장정>에 기술한 당시의 상황을 잠시 옮겨 볼게.^^
아침에 손 참모가 사령부에 다녀오더니만 흥분된 어조로 우리 유격대의 서남지구에 탈출병으로 보이는 일군 4명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나와 같은 한국인 학병일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날은 하루 종일 그 4명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할 때, 갑자기 마을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 참모가 하는 말이 '일본병사'들이 방금 도착하였다는 것이었다.
마당으로 뛰어나가보니 일본 군복 차림의 청년 셋이 서 있는데, 그 지성적인 얼굴과 느낌으로 대번 나는 나와 같은 한국의 학병일 것으로 단정했다.
“한국 분들이죠?”
<김준엽 장정 中>
이런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나는 절대자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
아직도 공포에 싸이고 지친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이 한마디를 큰소리로 못하고 머뭇거린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탈출이시죠?”
“...그렇습니다”
<돌베개 中>
장형 등은 중국어를 몰라서 벙어리 가슴을 앓았지만 나는 지나간 넉 달 동안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 벙어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과 넉 달에 불과하고 제 나라 말인데도 쓰지를 않으니까 말문이 제대로 열리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 있었으나 내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나 지난 다음에야 입이 술술 트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마치 온 세상이 우리 것이기나 한 듯 한국말로 떠들었다.
세 사람 가운데 장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매사에 침착하였다. 그는 무슨 이야기던지 차분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리고 탈출하다가 헤어진 김영록 동지에 대한 생각도 남달리 깊었다.
<김준엽 장정 中>
그의 통역으로 우리는 그동안 말 못하던 벙어리 가슴을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김영록 동지의 낙오가 우리의 주된 화제였다. 그러지 김준엽 동지는 이미 우리가 처음 붙잡혔던 지대에서 수배를 시작했으니 안심하고 기다리라고 위안해 주었다.
<돌베개 中>
<돌베개 1부-탈출>편에서 쓰카다 부대의 감시가 철통같아서 탈영병이 단 한 명 뿐이었다고 한 거 기억들 나시나? 그게 바로 김준엽이야. 앞으로 장준하와 김준엽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연인(戀人) 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 정도로 평생의 베프로 남게 되지.
김준엽이 탈출한 이후, 쓰카다 부대에서는 장준하를 비롯한 한국인 학도병들에게 이렇게 위협을 했다고 해.
“김준엽이는 중국군에게 붙잡혀서 죽창에 꼬치가 되어 너절한 죽음을 맞이한 후 열흘간 시신이 전시되었다.
우리한테 잡혔어도 살아남지 못했을 테지만...... 그러니까 탈출 따윈 꿈 깨!!”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준엽이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장준하 일행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쁘기 그지 없었어. 모처럼 음식다운 음식으로 배도 맘껏 채우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12시쯤 첫 잠에 들려는 순간, 밖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어.
일행이 침대에서 튕겨 일어나 뛰어나가보니 반쯤은 넋이 나가있는 김영록이 서있지 뭐야.
"김동지이~~~~"
우리 셋은 김영록 동지에게 매달려 마음속에 숨었던 죄를 고하듯이 울음 머금은 그의 동자를 쳐다보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감격도 이때의 우리들 가슴에 출렁이던 그 감격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발을 구르고 주먹을 쥐어짜며 내 가슴의 감격을 부숴보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김동지의 얼굴은 거의 실신한 사람처럼 보였다. 졸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그가 돌아오게 된 경로를 들었다.
<돌베개 中>
장준하의 예상대로, 김영록은 강을 건너기 전 수수밭 수풀에서 그만 일행과는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되면서 낙오한 거였어. 김영록은 총소리를 피해 우거진 수수 속에 엎드려 있다가 일행을 찾아 헤매던 중 수색대에 발견되었다고 해. 탈출 경위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2시가 되었는데, 김준엽이 잠시 나갔다 오더니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김준엽 : ...... 나 오늘 밤에 어디 좀 다녀와야 되겠어요
장준하 : 뭐라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디가는데?
김준엽 : 이 근처에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광산이 하나 있는데, 중국인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어 요. 얼마 전에 대포알로 혼 좀 내주고 최후통첩을 했더니 왜놈 수비대장이 임금 인상 관련으로 오늘밤에 협 상을 하자고 하네요. 전 통역하러 가는 거예요.
장준하 : 그럼 일본군을 만나러 가는 거잖아! 위험한 거 아니야?
김준엽 : 한치륭 사령관과 함께 가는 거니까 괜찮을 거예요. 금방 돌아올 거니까 장형은 걱정하지 마요.
김준엽은 안절부절 못하는 장준하 일행을 어르듯이 달래 놓고, 말에 올라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이 유격대의 우두머리는 한치륭 사령관으로, 말이 사령관이지 사실은 그 지방의 왕이나 마찬가지야. 중국 백성에 대한 생사 여탈권, 재판권, 조세권도 갖고 있었고, 심지어 화폐 발행까지도 하는 사실상의 전제 군주였다고 해. 한치륭 사령관의 입장에서 보면, 광산이든 중국인 노동력이든 자신의 재산을 일본군이 침해하고 있는 상태였던거야. 당연히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지.
뒤척이던 장준하는 묘하게 흥분되었어. 어느 수비대장이 협상장에 나올지는 모르지만, 쓰카다 부대의 탈출병 1호, 그것도 중국군한테 붙잡혀 죽었다는 그 병사가 중국 사령관의 통역으로서 왜놈들과 다시 맞선다고 생각하니 야릇한 기분에 콧구멍이 벌렁벌렁 심장이 쫄깃쫄깃! 유ㅡ후!!♨
장준하 일행의 머릿속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는데......
우리 네 명은 김준엽 동지의 모습, 그 고운 얼굴의 표정을 유심히 그려 보았다. 일군 수비대장과의 담판에서 김 동지는 꼭 통역으로 그를 짓밟아 버릴 수 있으리라...그것은 몸서리치는 기대였다.
우리가 쓰카다 부대로 전속을 갔을 때 들었던 시체의 주인공이, 오늘 살아서 저 싱싱한 얼굴로 수비대장 앞에 나타나 유창한 중국말로 맞선다!!
<돌베개 中>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왜놈들이 김준엽 동지를 알아본다면 유령을 본 거라고 믿고 혼비백산 하겠구나~! 아오~~~씐나!!!♬
그건 김준엽도 마찬가지였지.
나는 문자 그대로 감개가 무량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왜놈들에게 수모 당하던 굴욕과 울분의 나날이 새로웠고, 그럴수록 복수의 일념에 가득 차는 것이었다.
이제 당당한 독립투사로서 중국의 유격대 사령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과 담판을 하러 가니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간교한 왜놈들이니만큼 약속을 어기고 한 사령관과 나를 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다 죽어도 내 일생은 멋지고 값어치 있는 것으로 확신하였다.
<김준엽 장정 中>
김준엽은 그날 말을 달리면서 항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었다고 고백해.
서주는 초나라의 항우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거든. 사면초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극의 여주인공인 우미인을 구하기 위해 말을 타고 밤길을 달리는 항우에 그만 빙의 되어버린 김준엽. 아아~ 이거슨 사나이의 로망!
나는 이 지역을 근거지로 세력을 확장한 영웅 항우가 말을 타고 밤길을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았다.
그가 유방과 합세하여 진나라를 멸망시킨 다음에 유방 이하 18명을 각지의 영주로 봉할 때의 의기 양양한 모습... 그후 유방과의 사이에 벌어진 5년간에 걸친 혈투 초한지쟁! 결국 유방에게 포위당하여 사면초가의 소식을 들으면서 총희 우미인과 작별하고 포위망을 뚫고 오강에 이르러 한군의 추격 앞에 드디어 자결하게 된 비극이 내 머리를 스쳐간다. 우미인은 해하에서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항우의 시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자살하여 항우를 격려하였던 것이다. 내가 마치 그 비극의 여주인공인 우미인을 자살 전에 구하려고 지금 달리고 있는 듯하였다.
<김준엽 장정 中>
난 <장정>을 읽다가 그만 김준엽의 상상 부분에서 배꼽을 쥐고 떼굴떼굴 굴렀어. 아악~ 이 오글거림은 뭐지? ㅋㅋㅋ 아이고......참 <돌베개>도 그렇지만 뭐랄까. 영락없는 젊은 남자 특유의 그 무엇이 가끔씩 언뜻 비친다고나 할까. 적당한 말을 못 찾겠네. 아무튼 좀 귀여워. ^^ 그런 것들이 돌베개와 장정에 따뜻한 온기와 숨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거겠지?
김준엽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장준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초조해졌어. 상상은 상상이고, 일단은 무사히 돌아 와야 할 거 아냐.
어느새 낮이 되고 해가 높이 솟았는데도 김준엽은 돌아오지 않았어. 식사도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지경이었고, 조바심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김준엽과 사령관 일행은 예정보다 훨씬 늦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귀환했어.
그런데 김동지는 이날, 나의 예감대로 언짢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달려나가자 얼른 그 표정을 바꾸는 것을 눈여겨본 나는, 곧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또는 담판 결과가 우리에게 불리한 것인지 새로운 의혹을 자아내게 하였다.
드디어 김 동지가 우리에게 나와서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우리가 탈출한 부대, 쓰카다 부대장의 편지를 가지고 왔어.......
....................우리...쓰카다 부대로 넘겨질 뻔 했어......"
.....요란한 천둥이 갑자기 내리쳤다.....
<돌베개 中>
바깥 날씨야 맑고 훤했지만, 감당하기 힘든 현기증과 갑작스러운 어둠이 장준하 일행을 삼켜 버렸어.
이 넓은 중국 대지에 이 한 몸 편히 뉘일 곳이 없단 말인가? 폭풍에 휩쓸리는 가랑잎보다 못하고 주인없는 가축과도 같은 자신들의 신세가 기가 막힐 뿐이었지.
"귀 부대의 중국인 병사 30명을 우리가 포로로 하여 잘 대우해 주고 있다. 그 증거로 포로의 명단을 드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부대의 탈영병 몇 명이 당신의 부대에 강제로 억류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서로의 포로를 교환 함이 어떠한가? 만약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인 포로의 앞날은 보장할 수 없다."
일본군 수비대장이 만약 김준엽을 알아봤더라면......ㄷㄷㄷㄷ 못 알아본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아,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편지를 읽어내려 갈 때마다 장준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이며 꿈틀거리는 뜨거운 북받침을 느껴. 이 깊은 절망감과 분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를 보호해 주어야 할 울타리는 정녕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로 없는 걸까?
아마 이 순간의 트라우마는 평생 장준하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을거야. 장준하는 어둠이 깔리는 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넘어가는 태양에 벌판 위에 있는 모든 물체는 전부 그림자를 달고 있었는데, 장준하의 조국만은 그림자도 없었어. 나의 조국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름은 있지만 실체는 없는 조국...
장준하 일행은 다시 일본군에 넘겨지느니 차라리 자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실제 실행에 옮길 뻔 해.
만일 김 동지의 다음 말이 아니었으면 우리 네 동지는 그대로 어떤 일을 저질렀을는지도 모른다. 김 동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우리들의 비장한 분위기를 칼로 치듯이 깨뜨렸다.
"한 사령관이 즉석에서 거절했어. 정말야, 정말야! 날 믿어줘...!!"
김 동지는 절규하고 있었다. 날 때릴 듯이, 우리를 때릴 듯이, 믿어주지 않는 듯한 우리를 윽박지를 듯이,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와락 부둥켜 안았다. 나는 김 동지의 손을 잡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그래서 김동지이~~~!!!!"
<돌베개 中>
김준엽은 멘붕에 빠져 새파랗게 질린 장준하 일행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그동안 일어난 일을 얘기해 주었지.
한치륭 사령관은 일본군 수비대장에게 포로로 잡고 있는 탈영병들은 없고, 다만 그 중 한 명은 우리 대원이 추격 중 사살했고 나머지는 중공군이 있는 쪽으로 넘어갔다고 둘러대었어. 장준하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는데 김준엽은 자신이 직접 통역해 준 내용이니 믿어도 된다고 달래줬어.
장준하는 한치륭 사령관의 배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정말로 혼란스럽고 괴로웠지. 아무리 한국인 청년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기의 부하, 자기 민족, 자기 형제 30명하고 어떻게 견줄 수 있겠나? 도저히 인간 한치륭이 겪었을 그 인간적인 고민에 보답할 길이 없었어. 이번은 이렇게 넘어갔다고 치고, 만약 탈영한 조선 청년들이 유격대 내에 있다고 일본군이 확신하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겠나.
도망가다가 붙잡히기만 하면 목을 잘라서 본보기로 전시하겠다고 으르렁거리던 왜놈 소위의 험상궂은 면상이 망막에 스쳐 지나가고...... 목만 잘리면 다행이게? 만약 일본군으로 다시 넘겨진다면 일행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어.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인도된다면 우리는 '탈출병의 최후'라는 그들의 연극에 사체의 연기자로 등장할 것이다. 팔로군의 만행이라는 변명 속에 온갖 짓을 다 당하여 죽어서 우리 한인 학도병 앞에 전시될 것이다.
<돌베개 中>
제목 <중국군에 붙잡힌 탈출병들의 최★후>
각색 및 특수분장 <Team Tsukada Pro>
출연 <=장준하,윤경빈,홍석훈,김영록=>
우정출연 <죽은지 넉달된 시체 역- 김준엽>
사실 난 한치륭 사령관이 인간애적인 마음으로 쓰카다 부대장의 제의를 거절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냉정히 볼 때, 일본군과의 협상에 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어. 당장 30명의 포로는 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당수가 학도병인 일본군 부대 내에서 더 이상 탈영자가 안 나올 거 아니야.
당시 한치륭은 김준엽과 장준하 일행을 이용해서 선전 공작을 벌여 더 많은 학도병들이 유격대에 합류하게끔 유도할 계획을 갖고 있었거든. 경비가 삼엄한 쓰카다 부대에서야 탈영병이 거의 없었지만 다른 일본군 부대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어. 그리고 김준엽은 일본 명문대 출신 엘리트로, 그런 인재는 통역으로도 매우 요긴했던거야. 그리고 중국인 포로들을 당장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본군들이 마냥 함부로 대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이 길을 위해 나는 가련다. 나의 인생의 과정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 하나님이 날 기어이 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돌베개 中>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후손들이 또다시 이 산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장준하가 평생 가슴에 아로새기고 곱씹은 좌우명. 그것은 이러한 설움과 사선을 넘나드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싸움 속에서 잉태된 것이었어. 평화 시에 정당연구소 나부랭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얄팍한 정치 구호하고는 근본과 태생 자체가 틀려.
우리는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으로서 서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후손으로부터 못난 조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모두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아.
새벽 2시가 되었을 쯤, 유격대는 짐을 꾸려서 행군을 시작했어. 협상도 뒤끝이 찜찜했고, 유격대 사령부의 위치가 일본군에게 대략 파악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어서 부대 이동을 하기로 한거야. 김준엽은 행여나 장준하 일행이 또 불안해 할까봐,
"장형, 원래 유격대 생활이라는 게 이래. 영지 내에 여러 개의 기지가 있고 그곳을 며칠마다 새벽을 틈타 옮겨 다녀. 난 이렇게 지낸 지 넉 달이나 되었어. 일상적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장준하로서도 김준엽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빛이자 든든한 기둥이었지만 그건 김준엽도 마찬가지였어. 아무리 한치륭 사령관이 예뻐해주고 유격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어도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에 울적하고 외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게다가 자신과 같은 뜻을 품고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니 정말로 든든하고 각별했어.
어떤 칠흑의 액체 속을 헤엄쳐 나가듯이 몸이 무거웠고, 앞으로 나가려는 의자와 그만큼 뒤로 처지는 체중이 서로 맞섰다. 마음으로는 가야 할 길이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그러나 막상 이국의 밤을 정처없이 따라가는 심정은 그지없이 서글픈 것이었다.
축축이 두 어깨 위로 안개가 스며들면서 칠흑 같던 어둠의 농도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대륙의 밤이 탈색되듯이 밝아졌다.
<돌베개 中>
새 기지에 도착한 일행은 아침 겸 점심을 배터지게 먹고, 상을 채 물리기도 전에 곯아떨어졌어. 밤에 누가 밥을 먹으라며 깨워서 비몽사몽에 꾸역꾸역 음식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다시 쓰러져서 또 쿨쿨. 일본군 병영을 탈출한 이래로 닷새 만에 처음으로 빠져드는 단잠이었지.
그 다음 날인 1944년 7월 12일.
이른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나 켜켜이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은 조선 청년 5명은 새 군복을 챙겨서 부대 앞에 흐르는 강가로 나갔어. 그 강의 이름은 불로하.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야.
눈부신 아침 햇살이 강물 위에 부서지고 그 부서진 햇살에 비친 강물은 정말로 푸르고 아름다웠다고 해. 장준하는 문득 강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에 먼지와 땀으로 더러워진 몸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치욕과 분노, 고달픔도 모두 씻어버리고 싶었거든.
목욕을 마친 청년들은 거머리 같이 지긋지긋한 일본 군복은 바로 버렸어. 비록 중국 군복이긴 하지만 왜색에서 벗어난 것 하나만으로도 상큼하기 그지없었지. 아아... 지금 입고 있는 것이 조국의 군복이라면...!
국회의원 시절, 국방위에서 활동했던 장준하. 공군 조종사와 함께 비행 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야.
젊었을 땐 날씬하더니 중년 아저씨가 되니까 살이 좀 붙으셨네 ㅎㅎ.
당시 국회의원들은 부정 축재가 용이한 토목, 경제, 개발 분야에나 몰렸지,
별로 돈도 되지 않는 당시의 국방위엔 지원자가 별로 없었대.
태극마크가 그려진 국군 전투기를 타고 조국의 산하를 내려다보던 그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마이크를 갖고 저 사진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다. >_< 선생님!! 선생님~~!!!!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 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고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머리가 깊이깊이 숙여져 내려가기만 했다. 두고 온 산, 강, 뛰놀던 고향이며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욱이 머리에 떠올랐다. 머리를 들었을 때 모두 눈물을 가득 머금어 아침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 다 같이 애국가를 부릅시다!"
<돌베개 中>
당시 애국가는 일제의 탄압으로 금지된 곡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독립 성향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어. 하지만 장준하는 2절까지는 가사를 외우고 있었어. 김준엽은 애국가 가사를 2절씩이나 알고 있는 장준하가 더욱 좋아졌다고해. 역시 우리 장형 짱짱맨 넘 멋져♡.♡
장준하의 힘찬 선창으로 이국의 강가에 애국가가 울려퍼졌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구를 부를 때쯤, 결국 울음바다가 되고야 말았어.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장준하는 끝내 목이메여 이 마지막 구절은 함께 부르지 못했어.
과연 내 힘으로 나의 조국이 보전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정녕 이 구절을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런 자격이 되는 걸까? 한참 동안 침묵이 강물처럼 흘렀어.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장준하가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기어이 애국가 2절을 선창하기 시작했어. 강변의 모래, 들판의 나무, 밭이랑의 수숫대... 이런 것들이 그들의 목메인 애국가를 묵묵히 들어주었지...
중국의 아침 햇살이 우리들 눈망울 마다에서 빛났다. 한 포기 풀잎의 이슬 방울처럼 우리들의 순수가, 눈망울 마다에 맺혔던 것이다.
지고의 순수는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켜주었다. 아직도 나는 그 불로하 강변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가슴에 아로새겨진 그 조국애의 결의. 애국가의 힘이 그처럼 벅찬 것임은, 아직도 감격스러운 회상의 과제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내가 한반도의 자손임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새삼스러워진다. 그 강변에 선 이후부터.
<돌베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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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강우량이 적어 어디서나 깨끗한 물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간혹 시내나 강이 있다고 해도 물이 더럽기 한이 없었다. 그것은 불로하도 마찬가지였다.
장형 일행이 오기 전까지 내가 불로하에서 수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물이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김준엽 장정 中>
사나이의 무우드를 깰 순 없쥐.
돌베개에 그려진 반짝반짝 불로하 그거슨 준하횽의 티어필터 이펙트 이게바로 real팩트
(BGM: Control Beat ♬)
불로하는 그 이후로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청년들이 부르던 애국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왜냐면 말이야...... 매년 한국 청년들이 찾아와서 힘찬 애국가를 흩뿌리고 가거든. 1944년의 7월 12일의 그날처럼......!!!
<사서고생.jpg>
장준하 기념사업회에서는 1년에 한번 대학생, 대학원생을 모집하여 장준하의 2400km 여정을 10박 11일 일정으로 육로를 통해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이름은 <장정>이야. 본인부담금이 50%인데 올해 참가비는 95만 원이었어.
임시정부 청사에 다다르면 장준하 선생과 일행이 김구선생님을 맞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독립 군가를 제창하고 <청년등불>이라는 이름을 받아. <청년등불>은 오직 그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만 될 수 있어.
만 30세 미만만 참가할 수 있다고 해. 나이 제한이 있는 이유는 장준하 선생이 장정을 떠났던 20대 청춘,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선생의 발자취를 밟아가며 뜻을 기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니까 만 30살 이상이면 아쉽지만 참가할 수 없어. 하지만 우리들에겐 조카도 있고 사촌동생들도 있잖아? ㅎㅎ
난 나이 제한에는 아직 걸리진 않지만 학생이 아니라서 자격이 안되네 ㅠ.ㅜ 얼마 전 기념사업회에 들렀을 때 이준영 국장님에게 왜 울학교엔 홍보 포스터도 안 붙였냐며 신경질(?)을 부리고 오긴 했는데 그때의 나는 장준하 선생이 누군지도 몰랐고 설사 홍보물을 봤더라도 그냥 지나쳤을거야. 나란 여자, 첫 투표 때 친박연대에 도장 찍은여자......또르르......
원래 애초에 내가 돌베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은 바로 이 <장정>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어. 난 이제 자격이 안 되어서 못 가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알았으면 해서...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는 기념사업회가 몰려오는 지원자로 잠시나마 행복한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도록.
실컷 거의 다 써 놓고 나서 그만 내 일에 바쁜 나머지 컴퓨터 하드에서 푹푹 썩히고 있다가 결국 장정 참가 신청 마감일이 한참 지난 뒤에야 <딴지일보>에 12부 연재물을 하겠다며 일을 벌여 놓았는데...... 이제 두 편 끝났네... 쿨럭;
장정의 올해 행사는 이미 끝났고... 내년 참가자 모집 때쯤 기획 기사 하나 들고 다시 오겠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주위에 대학생들 있으면 이 프로그램 홍보 좀 부탁해. 물론 그 전에 <돌베개>를 읽혀야겠지? 다들 물밑 작업 열심히 해 놓도록 -ㅅ-
애국가 합창을 위해 불로하 강변으로 향하는 <장정> 참가자들
청년등불들에게 강의중인 이준영 국장
불로하 강변의 애국가가 내년에도, 후년에도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돌베개> 제2부 - 불로하 강변의 애국가편을 마칠게.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둥둥님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