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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시조이자 중국 문명의 비조 유방은 강소성 패현 풍읍 중양리 출신이다. 중늙은이가 때까지 무위도식한 알콜중독자이며, 허풍꾼에 무능력자였다 인물을 따라 천하를 제패하게 인물들은 태반이 패현, 풍읍 출신이다. 그래서 영웅이 나는 고향을 '패풍지현'이라 한다. 패현의 영웅들 중에는 번쾌도 있다.


번쾌. 사나이 중에 사나이. 순박하고 멋진 남자. 털복숭이 거한에 방패 하나로 예닐곱 명의 경비병을 쓸어버리는 괴력의 소유자. 삼국지의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일컬어 '나의 번쾌'라고 했다그런데 사마천은 <사기>에서 굳이 번쾌의 직업을 '개백정'이라 규정한다. 백정은 백정이지, 개백정은 무어란 말인가? 굳이 원래는 비루한 신분이었음을 강조해, 영웅 신화의 드라마틱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사마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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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200 전이다. 철기시대였지만 철의 제련법이 유치한 시대였다. 병장기는 물론 도축용 칼과 같은 고급 금속품은 아직 청동기가 우월했다. 고온을 가두는 철제 가마솥이 없어 ''이란 없던 시절이다. 곡식은 곱게 갈고 물에 적셔 찐득한 상태로 먹었다.


당시 중국은 습했다. 양자강 이남은 자욱한 정글지대였으며 코끼리와 코뿔소가 자생했다. 황소는 습지를 개간할 힘이 없다. 중국 우경법의 근간은 원래 물소를 이용한 것이다물소를 도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청동기 칼과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청동기는 비싸다. 마디로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200 중국에서 백정이란 '부르주아'.


돼지는 소보다 덩치가 작지만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돼지고기는 빨리 상한다. 우리는 그런 문화가 없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돼지고기 가공육은 거의 모두 짜다. 소금으로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유통과 보관이 불가능한 식재료가 돼지고기다그리고 소금은 돈이다. 당시의 소금장수는 요즘으로 치면 은행가다. 로마군도 소금으로 봉급을 받았다따라서 개백정이 아닌 '버젓한' 백정이 되기 위한 조건은 자본이다. 소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는 것은 은행가와 장기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2200 중국에서 백정은 기업가다.


개백정이라는 직업명은 번쾌에게 기술만 있었지 자본은 없었음을 보여준다. 도축은 복잡한 도구와 시설이 필요없으며, 당일에 고기를 모두 소비할 있다사마천이 분류한 번쾌의 직업명은, 그의 정확한 경제적 배경을 알려주기 위한 불세출의 역사학자의 선택이다. 역시 역사학의 사조라 불릴만 하다.


고대 중국에서 곡식이 현금이라면 고기는 복권이다. 번쾌는 자신이 잡은 개의 고기, 또한 남의 의뢰로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알바' 뛰면서 얻은 '부속고기' 혹은 '뒷고기' 동네 논두렁 건달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마디로 돈을 모을 만한 성격이 됐다. 멋진 형님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소금장수, 비단장수 이야기를 보자.


2200 중국의 소금장수는 현금 자체인 소금을 가지고 도적과 야생동물이 들끓는 삼림과 물가를 돌파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수준 이상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최소 십수 이상의 무장한 부하를 이끈다비단은 심하다. 무게 값어치는 비단이 한결 중하기 때문이다. 치안이 세계제일이라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현금수송차량에는 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포함된다. 비단장수의 행렬은 자체로 군사작전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무협지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표국(镖局)이다. 사람과 물자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고 대가를 받는 기업조직인 표국. 어째 무협지에서는 무척 약하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집단이 표국이었다배를 이용해 민물에서 표국을 운영하며 해적을 겸하면 보통 '수괴'라고 한다. 현재 중국 삼합회도 근간을 살피면 수괴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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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난세를 만나 야심을 불태울 당시 소금장수와 비단장수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지금의 우리가 상상할 없을 만큼 습했다.


지금의 건조한 중국은 가지의 결과다.


첫째, 지난 이천 점점 건조해진 지구.

둘째, 진시황이 시작해 수나라가 답안을 제시하고 남송에서 완성된 치수사업. 치수란 간단히 말해 수분은 하천에 편입시키고 마른 땅을 늘리는 작업이다.


이때는 사방이 진흙이었다. 물품 모두 습기에 취약하다. 물건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고 목표지점에 도달해 이윤을 창출하려면 속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습지와 늪지로 그득한 중원 땅에서 말발굽과 바퀴는 걸핏하면 젖은 땅에 빠져든다따라서 소금장수와 비단장수는 무력에 더해 기동력, 그리고 순발력까지 필요했다. 이들은 기업가임과 동시에 용병대장이기도 했다.


유방은 난세를 만나 거병하고 돌아다니던 중요한 부하를 만난다. 바로 관영이다. 그는 소부대를 이끌고 즉석에서 유방에게 면접을 바로 채용된다많은 텍스트 자료가 관영을 "원래는 일개 비단장수에 불과했다" 기술한다.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비단장수는 자체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용병' 다르지 않다.


이후 관영의 기동타격대는 항우를 악착같이 괴롭힌다. 일개 비단장수가 숨기고 있던 영웅성이나 재능이 아니다. 외려 비단장수라는 직업의 정체성 그대로다 관영은 눈에 보기에도 '늙은 양아치' 교양도 없고 입에는 욕을 달고 사는 유방을 보고 '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을까?


항우와 비교해보자.


항우에게 거병은 신성한 과업이었다. 진나라에게 멸망당한 초나라의 국체를 회복하기 위한 성전이다. 또한 항씨 가문은 오랫동안 초나라의 서열 2 가문으로(1위는 왕족이었던 미씨 부족의 웅씨 혈족), 유서깊은 무장 가문이었다.


진시황의 폭정은 중국인들을 가치중심적으로 만들었다. 항씨 가문 아니라 많은 전통 귀족 가문이 명분과 원칙을 내세우며 '정의의 군대'임을 표방해 일어섰다비단장수 관영은 그런 이유로 칼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관영이 휘하 무장세력을 소집해 '상관' 찾아 나선 "오늘의 고깃값을 번다, 이런 자본주의적인 마인드로다가..."라는 영화 <타짜> 대사와 비슷한 접근법이다. 비단업자가 가만 있어봐야 세를 불리는 먼저 성공한 집단에게 약탈당하는 수순이다. 보스를 찾아나선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 관영의 눈에 하층민 출신인 유방은 자신의 쓰임새를 이해해줄 적절한 보스이자, 모범적인 거래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유방은 난세를 만나 제대로 먹으려는 1차원적인 야심가임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거품을 걷고 미래를 투자할 있는 상대다.


명예와 자신감으로 뭉친 중국사 최고의 무장 항우.


철저한 비즈니스맨 관영.


그러나 자본주의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생활인들만 가지는 경험치라는 있다. 관영은 항우를 극한까지 괴롭혔다. 기병대장이자 별동타격대장으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항우는 이를 갈았다. ? 관영은 항우와 직접 충돌을 철저히 피했다항우에게 관영은 비겁한 들개나 다름없는 인간이지만, 관영의 입장은 합리적이다. 유방은 그에게 항우를 타격하라, 항우에게 피해를 입혀라, 항우의 진격 속도를 늦추라고 명령했다. 무관의 명예를 걸고 항우와 맞서보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점을 사업가의 직감으로 간파하고 유방에게 귀순한 것이다.


"나는 열정을 바쳐 과잉충성을 하라고 특채된 직원이 아니다."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다."


이것이 관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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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이 설계한 초한쟁패의 마지막 , 해하전투에서 결국 항우를 따라잡아 사살한 부대가 바로 관영의 기병대다. 마지막의 결정적인 스톡옵션 기회를 놓칠 양반이 아니었던 거다유방은 천하통일 부하들을 의심하며 숙청의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관영은 문제없었다.


이렇게 계산이 빠른 사람이 갑의 의심을 리가 없다. 어차피 유방과 관영의 관계는 '공정거래'였다그런데 재미있다관영이 '장사치'라면 진평은 '양아치'유방은 자신이 거둔 사람을 이리 시험하고 저리 시험하며, 마치 개가 말을 들을수록 좋은 뼈다귀를 던져주듯 부와 지위를 늘려주었다.


관영과 진평은 자존심이 상하기는커녕 외려 즐겼다. "오늘의 고깃값을 버는 자본주의적 마인드" 사람에게 유방의 태도는 깨끗하고 공정한 마켓이었기 때문이다.


유방이 죽고 태후인 여후의 통치가 시작되자 유씨들은 권력에서 밀려나고 여씨의 세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개의 진가가 드러난다.


개는 먹이를 사람에게 충성한다진평과 관영은 안 해도 모험을 한다. 굳이 힘을 합쳐 목숨을 걸고 여씨천하를 무너뜨리고 유방의 자손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었다. 그리고는 권력의 지분을 순순히 포기하고 유씨천하에 절대복종했다. 이것이 개의 가치다늑대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장사치와 양아치는 전통적인 가치로는 근본이 일천했기에 외려 영웅으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이만큼 성공한 이유가 다름아닌 주인이 거두어주어서였음을 솔직히 인정할 있는 자만 보일 있는 헌신이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근본도 양심도 없는 유방은 어째서 중원천하를 통일하고 무려 '중화문명의 비조' 있었을까? 지나가는 유학자가 보이면 모자를 빼앗아 거기 오줌을 누고 돌려주는 짓을 즐기던 인간이 말이다유방은 신념도 양심도 없었기에,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래서 역이기의 품위있는 민본주의와 장량의 전략적 민중선동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자기 철학이 없었으니까.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던 역이기의 일갈,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법입니다!" 호통을 곧바로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유방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바로 이기심과 솔직한 욕망 때문에, <정치는 권력과 피지배층의 타협의 결과>라는 세련된 결론을 도출했다. 세계사 최초이며, 이것이 그가 '한족의 아버지' 이유다.


(따라서 초한쟁패를 마초적인 영웅들의 신화로 보는 것은 낭만적이긴 해도 사실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 초한쟁패의 역사는 시작부터 귀결까지 유물론적이다. 게르만 서사시적 영웅 항우의 몰락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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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이 길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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