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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장난감 및 유아용품 전문점 토이져러스가 파산했다. 최근 1년간, 미국에서 가장 경기가 안 좋은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소매업을 들 수 있다. 수많은 소매업체들이 이미 파산했거나, 파산의 위협에 직면했다. 스포츠전문용품체인 Sports Authority, 전자제품체인 Radio Shack, 유아용품점 Gymboree, 청바지 True Religion 등이 이미 파산했으며, 추가적으로 꽤 많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는 크리스마스 쇼핑까지 버티지 못하고 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소매업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소비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토이져러스를 예로 들면, 2000년대 초반까진 매우 빠르게 성장하던 핫한 기업이었다. 토이져러스는 대형쇼핑몰의 넓은 공간을 화려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장난감으로 채워 어린이들을 유혹했다. 그결과 과거 동네마다 있던 조그만한 장난감가게들이 사라지고, 몰마다 토이져러스 가게가 생겨났다.


이렇게 잘나가던 토이져러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강력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는데, 일단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할인마트에서 본격적으로 저가로 장난감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할인마트는 비싼 임대료, 인테리어비를 들인 토이져러스보다 훨씬 더 싼 값에 저가 장난감을 팔 수 있었고, 기존 유통망을 통해 미국전역에서 경쟁하기 시작헀다.


토이져러스 같은 전문소매기업들은 이에 맞서기 위해, 좀 더 다양하고 전문화된 제품들을 들여놓기 시작했으나, 취급품목을 늘린 탓에 재고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또한, 스타워즈 같은 프랜차이츠랑 대형 독점계약을 맺고, 특별판 장난감을 출시했으나, 이 콜라보들이 족족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차별화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여기에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존이 등장한다. 기존 소매기업들에게 월마트가 그냥 위협이라면, 아마존은 단연 TOP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주 소비 방식이 아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굳이 쇼핑몰에 가지 않고, 클릭 몇 번으로 집 앞까지 물건들이 배달되는 (이게 너무 당연할까봐 한 번 강조하자면, 그 땅덩어리 넓은 미국에서 이틀 무료배송을 한다라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절대 아니다) 요즘 시대에, 거의 모든 도시에 지어진 거대한 쇼핑몰들은 이제 낭비에 가깝다. (여담이지만, 많은 쇼핑몰들은 오래된 베드타운 근처 교통이 편리한 요충지에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아마존 등은 장사 안 되는 이 쇼핑몰들을 사들여 물류자동화 기지로 바꾸고 있다. 말 그대로 아마존이 쇼핑몰을 통째로 잡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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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토이져러스는 이러한 온라인 상거래의 활성화를 매우 잘 예측했던 기업이라는 점이다. 2000년도에 소프트뱅크로부터 600억의 투자금을 받아난 토이져러스는 일찍이 온라인 시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해 아마존과 10년짜리 독점공급계약을 맺는다.


토이져러스는 아마존에서 독점적으로 장난감을 파는대신, 매년 500억 + 매출 1프로를 아마존에다가 갖다 바쳤다. 당시 토이져러스가 엄청 잘 나갔던 점과, 아마존이 아직 초창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웬만큼 선견지명이 있지 않고서는 성사되기 힘든 계약이었다.


문제는, 뛰어난 예측이 꼭 좋은 사업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아마존에 장난감 독점공급을 맺은 대가로, 토이져러스는 모든 온라인 판매 계약 권리를 아마존에게 위임했다. 즉, 온라인 상거래 초기, 자체 플랫폼을 구축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물론, 아마존에 장난감을 독점공급함으로써 당장 온라인에서 막대한 매출을 거둘 수는 있었지만, 이 이익은 아마존과 나눠야했기 때문에 제한적이었다. 또한, 같은 상품을 아마존에서도 팔았기 때문에 주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토이져러스는 점점 더 아마존을 통한 판매에 의존하게 되었는 데 반해, 아마존은 이 시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그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목소리가 커진 아마존은, 슬슬 토이져러스에게 갑질을 하기 시작하는데, 독점계약을 유지하고 싶으면 좀 더 다양한 제품을 납품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또한 이를 구실로, 2003년도부터 스멀스멀 다른 사업자들도 아마존에서 완구를 파는 것을 눈감아 준다. 빡친 토이져러스는 2004년도, 아마존에 소송을 걸어 500억 가량 돈을 받아내지만, 이미 온라인 사업의 주도권을 아마존에게 넘겨준 뒤였다.


이걸 걍 아마존한테 뒷통수 맞은 걸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마존과 초기부터 협업이나 독점계약을 맺었던 꽤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말로를 겪어왔다. 온라인 거래를 아마존에게 위임한 순간부터, 기존 오프라인 매출감소가 발생하고, 점점 더 많은 매출을 아마존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마존과 손을 잡지 않는다고, 오프라인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어서, 많은 소매기업들이 최근 위기를 겪고있다.


그래서 일부 소매기업들은 아마존 최저가를 매칭해주곤 한다. 문제는, 자체 프로모션도 해야되고, 아마존이 세일할 때마다 최저가 매칭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소매기업 입장에서는 두 배로 출혈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소매기업들만이 제시할 수 있는 가치는,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역시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구매는 온라인에서 최저가로 사는 소비에 손해 볼 수밖에없다. 여러모로 봤을 때, 오프라인 상점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드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답이 없다.


마지막으로, 소매기업들이 최근 줄도산을 하는 다른 이유는, 금융에서 찾을 수 있다. 토이져러스를 비롯한 많은 소매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에 사모펀드들에게 매각되는데, 인수과정에서 사모펀드들은 소매기업들에게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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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당시 토이져러스는 KKR, Bain 등의 유명 사모펀드에게 팔리는데, 인수가는 약 7.5조였다 이 중 사모펀드들이 지불한 자본, 그러니까 걔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약 1.3조였고, 나머지 6.2조 가량은 빌린 돈이었다. 사모펀드들은 흔히들 이렇게 원하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막대한 빚을 낸다. 왜 그럴까.


첫째, 이 빚은 토이져러스 명의로 빌리는거지, 지들 명의로 빌리는 게 아니다. 망해도, 손해는 최초 투자금으로 제한된다. 반면, 잘 풀렸을 때 수익률은 몇 배로 거둘 수 있다. KKR입장에서는, 1.3조 정도 들여서 7.5조짜리 회사를 먹을 수 있게 된다. 만약 회사 가치가 인수후 약 20% 상승한다면? 7.5조 X 20% = 1.5조의 이익이 발생한다. 최초 투자금이 1.3조였으니까 100%를 훨씬 뛰어넘는 수익률이다.


빚을 잔뜩 갖고 시작한 덕에 (이걸 고급진 표현으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X5의 수익률을 내는 사업을 만들어낸 셈이다.


둘째, 기업을 통으로 인수하는 거기 때문에, 기업을 사모펀드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 없이 쉬원하게 기존 경영진을 없애버리고, 이들 사모펀드가 용병처럼 데리고 있는 전문 경영진을 선임해서 기업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당잔치를 벌일 수도 있고, 대규모 경영자문료를 삥뜯을 수도 있다. 토이져러스의 경우, 금융비용 및 경영자문료로 지금까지 KKR이 뜯어간 돈만 5000억에 달한다.


셋째, 세법 상 빚을 잔뜩 지는 게 유리하다. 부채를 잔뜩 지면, 높은 이자비용이 발생하는데, 그 덕분에 순이익은 감소하게 되어, 낼 세금은 줄어든다. 줄어든 세금만큼, 주주몫으로 가져갈 배당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 3가지가 사모펀드들이 빚을 잔뜩 끼고 기업들을 인수하는 일반적인 이유들이다. 좀 시니컬하게 적은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최근에 모 사모펀드 이직면접에 떨어져서 내가 이러는 게 절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인 건 맞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또 면접 볼 거라서 헤헤.


암튼, 이 사모펀드들의 투자들은 최근 몇 년간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한 탕 땡기고 나서, 재상장을 해서 높은 수익을 거두는 투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거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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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매업기업들이 월마트한테 치이고, 아마존에게 뺨 맞은 탓에 급격하게 실적이 나빠지자, 잦은 파산이 이어졌다. 당장 지나치게 늘어난 빚의 이자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워졌고, 만기가 도래하는 (2000년대 중반에 붐이 일었던 탓에 요 몇 년 사이부터 본격적으로 상환이 시작되고 있다) 채권들을 연장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토이져러스도 결국 이 때 빌린 돈 중 5조 가량을 갚지 못해 도산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모펀드에게 인수되지 않고 상장한 채로 남아 있었더라면, 어쩌면 파산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빚을 이미 잔뜩 빌린 탓에, 온라인 사업부 재편등에 필요한 추가투자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사모펀드 매각에 의한 지나친 채무가, 이들 기업들의 재무 건정성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마디로 요즘 일어나는 미국 소매업 기업들의 줄도산을 압축하면, 아마존과 사모펀드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씻퐈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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