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영화는 결국 현실의 '있을법한'일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느냐이다. 잡다한 세상만사에 비추어 매주 영화 하나를 빗대어 본다. 그럴껄은 2000년부터 딴지에 비정기적으로 영화 관련 기사를 송고하였고 현재 뉴욕 맨해튼에서 모종의 숙박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
1. Hey, you Bastards, I'm still here!! (이새끼들아, 나 아직 살아있다고!!)
이후락 정보부장에 의해 시행된 김대중 일본 납치사건은 실패로 끝났다. 성공했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1973년 현해탄에서 사라졌을 운명이었다. 유신은 엄혹했다. 수많은 인사들이 잡혀갔다. 수많은 학생들이 고문당했다.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고 훗날 끝끝내 김재규에 의해 그 염원을 이루었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진짜 은인은 김재규 ‘열사’다)
부정선거가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되었을 인사마저 현해탄에 빠뜨리고자 시도했던 정권. 국민을 무서워 했을리 없다. 백주대낮에 일어난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은 ‘꼴’ 받았다. 200여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의 80%가 일본인, 그 중 대다수가 기생관광이었다. 몇 안 되는 외화벌이 젖줄이었던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정권은 목이 탔다. 무서웠던 건 국민이 아니라 끊길지 모르는 기생관광객들이었겠지.
그 해 기생관광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추정컨대 2억불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1973년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32억불 정도였다)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침묵했던 자가 다수였지만 그 침묵이 독재의 동의는 아니었다. 수많은 ‘앙리 샤리에르’가 독방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다. 셀 수없는 ‘루이 드가’가 폭력 앞에 침묵했다.
2. 인생을 낭비한 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대답은 야멸찼다. ‘인생을 낭비한 죄'
우리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폭력에 부역할 것인가, 폭력에 저항할 것인가를 섣부르게 정할 수 없었다. 폭력이 집요해질수록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은 닫고 살아야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비가 되어 독재에 항거했으나 끊임없이 잡혀들어갔다. 거대한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감옥에서 인생을 소진했다. 입 닫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은 훗날 권력에 항거한 이들의 과실을 공유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또 아프게 반복됐다. 전태일은 분신으로 장준하는 의문사로 박종철은 고문으로 이한열은 최루탄으로 죽어나갔지만 민주화는 더디게 흐를 뿐이었다. 끊임없이 잡혀들어가면서도 끝끝내 탈출을 포기하지 않았던 수천 수만의 앙리 샤리에르가 어떻게든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권력의 회유는 집요했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며 폭압적으로 몰아붙였다. ‘슬퍼할 시간도 없는 바쁜 벌꿀’을 강요했다. 당근도 잊지 않았다. 아니 당근이 더 큰 문제였다. 경제를 댓가로 더 이상 한강에서는 멱을 감을 수 없게 되었다. 미나마따병과 이따이이따이병은 온산병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수출되었다. 경공업, 중화학공업은 경제개발이란 미명하에 급속도로 환경을 파괴해갔다. 권력은 신세계의 이중구마냥 ‘살려는 드릴게.’했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이었다.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착취했다.
20시간 일하는 공돌이, 공순이가 되지 않기 위해 20시간 책상에 앉아 학교와 학원을 가야했다. 중학교부터 계급을 나누어 줄세우기를 강요했다. 학교에 따라 계급이 나뉘었다. 없는 집에서는 누나나 여동생이 진학을 포기해야했다. 시골 부모는 소를 팔아 학비를 대야했다. 우골탑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본의 아니게 착취를 해야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제도 안에서 돈을 벌어야했다. 권력은 그렇게 국민을 길들이고 저항하지 못하게 감시했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나에게 있고 인생을 낭비할 권리도 나에게 있다. 아니 낭비하는 인생이란 없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바쁜 벌꿀’같은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 악마의 섬
앙리 샤리에르가 마지막에 탈출한 프랑스령 기아나 수용소는 앙리 샤리에르 사망보다 20년 일찍 폐쇄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악마의 섬을 탈출했을까? 기득권자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탈 중 이제 겨우 독재의 탈 한 겹 벗겨냈을 뿐이다. 수 없는 탈출 중에 이제 한 두어개의 탈출을 이루어냈을 뿐이다. 적폐는 곧곧에 산적해 있다. 탈출을 포기하고 수용소가 주는 제한된 자유 안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드가가 될 것인지 끝끝내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코코넛 열매를 묶어 바다로 뛰어드는 빠삐용이 될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
4. 빠삐용
1973년 12월 16일 개봉하였고 2016년 리메이크가 확정되어 그 해 9월 촬영이 시작되었다. 찰리 허냄과 라미 멜렉이 캐스팅되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럴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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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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