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7090408508010269_1.jpg



경찰에 대한 부정적 시선의 역사는 깊다.


첫째,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경찰권력에 우호적이기는 쉽지 않다. 국가의 본질은 폭력을 독점한 것이라고 할 때, 공인된 폭력기관이 그 합법성 만큼이나 합리적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공권력 집행은 결국 사람이 하며 인간의 한계란 것이 있다.


둘째, 오랜 중앙집권과 동아시아 관료제 역사를 지닌 한국엔 일부러라도 관료를 낮잡아보는 문화가 깊다. '벼슬아치'란 말도 있잖은가. 조선시대 내내 백성들은 여론으로 관료를 압박했다. 무능하거나 부도덕한 사또는 어떻게 해서든 망신을 주려고 했으며, 반대로 괜찮은 결과를 보여주면 다음 임지로 떠나거나 중앙에 복귀할 때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울부짖는 퍼포먼스를 제공해줬다.


우리는 관료를 선천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않는 민족이다. 그들은 자격시험을 통과했을 뿐인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높은 수준을 요구해왔다. 청백리 관념은 사대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백성이 관료를 평가하는 시험성적표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사적으로는 부패가 심했던 황희 정승도 일을 잘했다는 이유로 청백리 신화를 제공받았다.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차원에서는 이 사람이 정승 자리에 있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은 임금조차도 백성과 책임을 주고받는 기능인으로 파악한 부분이 있다. 임진왜란 초기 경복궁을 불태우고 선조의 피난행렬에 돌을 던진 백성들은 아직 왜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이었다. 왕이 도성을 비우는 행위를 직무유기로 본 것이다. 동시대 유럽의 농노는 왕은 고사하고 남작에게도 이러지 못했다.


비슷한 이유로 의병대장이 더 존경받았다. 정규군 장교에게 교전은 당연한 직무지만 의병의 싸움은 공동체를 위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권위있는 집단이라면 일단 욕하고 시작한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여론의 힘이 강력한 나라다. 월드컵에서 실패하면 여론이 국가대표 감독을 끌어내린다. 프랑스의 도메네크 감독은 홍명보보다 몇 배 욕을 먹었음에도 협회의 계획대로 임기를 채웠다. 수인번호 503까지 포함하면 이 나라는 벌써 민중혁명에 세 번이나 성공했다. 이런 성향은 맹점도 있지만 크게 보면 건전한 역동성이라 확언할 수 있다.


셋째, 한국 경찰조직의 뿌리는 일제시대에 있다. 친일 순사들도 어영부영 해방조국의 경찰로 편입되었다. 완전한 해체와 재건이 실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여기엔 이승만의 책임도 있다. 이 역사가 경찰 무시 풍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도 시골 어르신들이 경찰 업무를 비하할 때 '순사질'이라는 표현을 쓰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아무튼 현재의 경찰인력이 책임질 이유도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넷째, 한국의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를 경험한다. 자신도 총 든 공권력이었으므로 남의 공권력을 딱히 경외할 이유가 없다. 자신보다 젊은 경찰은 그냥 후배다.


3544221_n41.jpg


이런 바탕에서 부산 여중생 사건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한 듯한 경찰의 행태가 보고되면서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됐다. 나도 피해자의 사진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 역시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2차 폭력을 허용한 거나 마찬가지인 경찰의 대처에 실망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해당 경찰서나 해당 경찰의 도덕성을 질타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경찰 내부의 관점에서 왜 1차 피해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행정적 차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충분히 납득했다. 이 얘기는 전문가가 아니라 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나라도 해당 경찰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결론이다. 이건 그분과 나의 인격과는 상관없다.


통계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한국은 대체로 치안수준이 세계 1위이거나 일본에 이어 2위로 집계된다.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조건이 있겠지만 경찰의 노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고 유능하다.


한국 공무원의 질은 (우리의 평소 감정과는 달리)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정도만 우리와 비교될 수 있을 정도인데 일본의 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 수는 우리의 반이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한국의 치안은 납세자가 경찰인력을 착취하는데 성공한 결과다. 한국은 경찰 1인당 담당 인구 수가 매우 높은 나라다. 2016년 기준 한국 경찰 1인은 시민 452명을 담당한다. 독일은 305명, 프랑스는 322명, 미국은 427명, 영국은 421명이다.


예로 든 네 선진국과 한국의 치안은 천지차이다. 한국에 온 구미 선진국 시민은 우리가 누리는 치안에 경악할 정도다. 한밤중에 여성과 어린아이가 골목길을 걸어 귀가하고 커피숍에서 핸드폰을 테이블에 둔 채 화장실을 갖다 오며, '술에 젖은 밤'에도 '어디서나' 안심할 수 있는 나라는 분명 생소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의 경찰 1인당 담당인구는 오백 명이 넘었다. 지금도 경기 남부(용인)같은 곳은 천 명이 넘어간다. 치안에 관한 한 우리는 유래없는 가성비를 누리는 중이다.


어라? 그런데 같은 해 일본의 경찰 1인당 담당인구는 어째 우리보다 많다. 485명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하필 일본만 못하단 말인가? 여기엔 통계의 함정이 숨어 있다. 우리의 통계엔 일선 경찰병력뿐 아니라 경찰공무원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즉 452명 중 1명은 경찰총장이다. 행정직은 물론 관료까지 숫자에 딸려 들어가 있다.


GYH2017032400190004400_P2.jpg


그럼에도 우리나 일본이나 담당인구가 과중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엔 또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일본 경찰은 업무 중에 일반 시민에게 반말을 한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할 때 젊은 일본 경찰은 나이 지긋한 시민에게 반말로 명령한다. 그들은 감정노동에서 해방된 채 치안을 지킨다.


한국인은 공권력의 권위를 그만큼 인정하지 않는다. 경찰이 시민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난리가 나고 인터넷이 폭발하고 담당 경찰서가 뒤집어진다. 술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봤을 것이다. 난동 부리는 취객을 다루는 경찰의 모습을. 한국 경찰은 극단적일 만큼 친철하다. 최후의 순간까지 권위를 자제한다.


한국은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몇 시간만 지나면 곧바로 경찰을 '동원'하려고 하는 나라다. 하루이틀 지나면 경찰에게 화를 내고 그러면 경찰은 죄송하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부족한 인력으로 세계최고의 치안(이 말인즉슨 인류역사상 최상의 치안과 동의어다)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과로다. 한국 경찰은 많이 죽는다. 자살률도 높다. 한국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은 하나같이 야근 특근에 찌들어 있다. 사실이 그렇다. 과중한 업무에 짓눌리면 당연히 중요한 일에 인력을 매몰할 수밖에 없다. 경찰의 하루도 우리처럼 24시간이다.


한국 경찰은 강력사건 수사라는 늪에 만성적으로 빠져 있다. 살인/강도/강간 검거율이 100%에 가까운 기묘한 나라가 여기다. 당연히 덜 중요한 사건에는 집중할 수 없다. 청소년 비행, 학원폭력이 바로 이 범주에 든다.


어떻게 그런 모습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냐고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해당 경찰서의 인력들은 토막난 시체도 봤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일선 공무원에게 업무의 완결성을 요구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처리'해서 행정적 '보고'를 해야 한다. 묵살되는 민원이란 건 관도 민도 용납하지 못한다.


2017091817121892663_1.jpg


그러면 업무에 치이고 사건 처리는 완료해야 하는 경찰의 입장에선,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으로 매조지할 수밖에는 없다. 고교 시절에 유흥가에서 사고를 치다 걸려 경찰서에 끌려가면 일단 무릎꿇고 손 드는 벌을 섰다. 그 다음엔 경찰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형사 아저씨들한테 박카스 한 병씩 얻어먹고 무죄방면됐다. 다른 수가 없다. 천호경찰서는 조폭들로 미어터지는 중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나마 그때보다는 사정이 나아졌기에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할수나마 있다. 내 학창시절에는 방치와 무관심이 전부였다. 사실 세상은 발전하는 중이라는 증거다. 해당 경관은 공감능력결핍자도 아니고 세금도둑도 아니다.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같은 직장인이다.


경찰조직도 호소한다. 경찰력 부족은 세심함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청소년 보호와 같은 디테일에 무딘 건 특정 개인의 인성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여론재판과 징계는 피할 수 없다. 한국인에게 공권력은 똑바로 못 하면 윽박질러 마땅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인의 이러한 특질은 긍정적이다.


허나 담당 서, 담당 경찰을 응징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틀려먹은 경찰이 틀려먹은 결과를 도출했다는 결론은 간편하다. 못 되먹은 누구누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될 문제고, 우리는 욕하는 것만으로도 시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의 과로에 정신교육 시간이 포함되면 그만 아닌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갑'을 일컬어 악덕고용주라고 부른다.


납세자가 학원폭력에 있어서도 강력범죄에 상응하는 사선해결능력을 원한다면 본질은 비용이다. 경찰력을 증원하고 경찰관의 처우를 개선할 만큼의 증세를 부담하면 된다. 이쯤에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나는 아직 배고프다'를 외치며 지갑을 열 것인가? 한국 경찰은 최근 수년간 10%의 인력이 충원된 결과 범죄발생률을 20% 줄였다. 칭찬받아야 한다.


경찰의 자질이 아닌 우리의 문제다. 사람은 다 거기거 거기고, 공무원이나 납세자나 우리 모두는 동료 시민이다.




필자가 진행하는 방송



122456122.jpg


팟빵 : https://t.co/lIoFGpcyHW 
아이튠즈 : https://t.co/NnqYgf5443


트위터 : @namyegi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namyegi




필자의 신간 


183756842.jpg 



이미지를 누르면 굉장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필독

트위터 @field_dog
페이스북 daesun.hong.58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