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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관람가 / Color, Black & White / 100분



가카, 횡령 말고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릴 때, 신출내기 숯장이나 풀무꾼은 불똥을 뒤집어쓰고 화상을 입기가 십상이었다. 쥐를 잡아서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면 하얀 기름이 엉겼다. 서날쇠는 그 쥐기름을 걷어 내어 불에 덴 자리에 발라주었다...'

-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 중에서



<저수지 게임>은 언론인 김어준과 영화인 최진성이 각각 제작과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연작 '프로젝트 부'의 두 번째 작품이다. 9년간 이어진 이명박ㄹㅎ 정권을 3부작으로 다루며,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 부정 의혹을 다룬 <더 플랜>으로 첫 여정을 시작했다. <저수지 게임>은 주진우 기자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소재로 한다. 개봉에 맞춰 출간된 책인 <주진우의 이명박 추적기: 저수지를 찾아라>와 짝을 이루고 있는 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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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목적



악마기자, 사탄기자.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주기자를 죽이자'로 불리는 주진우 기자. 그는 예전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성한 불법자금을 꾸준히 추적해 왔다. 그러던 중 4년 전 캐나다 토론토 한인 밀집지역인 노스욕에서 일어난 부동산 사기 사건을 발견한다. 한국 기업과 농협이 1500억원이 넘는 돈을 직접 투자해 노스욕에 주상복합 빌딩을 건설하려 했던 거대 프로젝트인데, 추가 자본금 유치 실패로 무산됐고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주진우 기자는 여기서 노스욕 주상복합 빌딩 건설을 주도한 사업가 조셉 리, 한국명 이요섭을 의심한다. 그는 유령 회사를 하나 만든 후, 당일날 한국 농협에서 210억원을 대출 신청했다. 농협은 사업가이긴 해도 딱히 증명할만한 신용도 없는 이요섭에게 무담보 대출을 허용했고, 이 큰 돈은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로 가서는 사라진다. 이요섭 역시 사라졌는데, 농협은 210억원을 사기 당해 놓고도 사람과 돈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는 한국, 캐나다, 케이맨 제도를 오가며 사건을 조사하는 위험한 모험을 펼친다. 이명박 정권 관련자들이 가진 권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협박에서 끝나지 않고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주진우 기자마저도 결정적 순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입을 다무는 증언자들로 인해 취재에 곤란을 겪는다. 이로 인해 <저수지 게임>은 진실을 알아내는데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작품이 된다. 물론 실패 옆에는 '현재까지는' 이란 표현을 덧붙여야 한다. 주진우 기자는 현재 언론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소식을 계속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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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수지 게임>은 작품의 질에 집중하지 않고 변죽만 요란하게 울리는 것일까. 또 그렇지는 않다. 단순히 논란으로 화제가 됐다고 말하기에는 프로젝트 부 연작이 분명 돋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최근 만들어지는 저예산 다큐멘터리들은 흔히 주류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만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작품들은 스스로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상영시간 내내 비루한 화면빨을 뽐내며 '우리가 이렇게 열약한 상황 속에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라고 외친다. 이해는 하겠는데, 나쁘게 생각하면 좀 궁상이다.


개인적으로는 '탐사보도 컨텐츠를 유료 이용한다'는 생각을 하고나서야 이런 작품들을 덜 나쁘게 보게 된 측면도 있었다. <더 플랜>이나 <저수지 게임>은 기술적으로 기교가 있어서 만족스럽다. 꽤 화려한 시각효과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 핵심 단어를 골라 부각하는 자막 처리. 내부고발자와의 통화기록을 (작품에서 누군지 거론되지는 않지만, <주진우의 이명박 추적기: 저수지를 찾아라>에서 소개된 서래마을 사는 '앤소니'로 추정된다.) 공개할 때는 김의성 배우에게 목소리를 맡겨 주진우 기자의 통화 당시 목소리와 어울려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중간중간 선보이는 흑백 애니메이션 효과는 카메라가 찍을 수 없는 부분들을 대신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하는데, 조미래 변호사의 집 내부를 묘사할 때를 비롯해서 꽤 서늘한 순간들도 있다.


이런 노력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수법을 쉽고 빠르게 이해시키고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돈에 관해 한 치 양보가 없으시다는 그 분 수법이 '복잡함' 이다 보니, 작품이 정리를 해도 한 번에 와닿지 않는 구석은 있다. 그러나 의혹을 짧은 시간에 상당히 직관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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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은 소재를 쉽게 이해시키는데 많이 집중했기에 작품 스스로가 돋보이지 못한다는 얘기도 된다. 플롯도 딱히 여러 담론을 형성할만한 구석이 없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행각이 너무 확실하여 의문을 가질 일이 없다는 의미니까 긍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위에서 작품의 긴박감을 얘기했지만 윤색 과정을 거쳐 만든 극영화도 아니고,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를 화면에 담고 있는 상황이라 긴장감 유발에도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자금 조성 의혹에는 관련자들의 의문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만약 이를 많이 다뤘다면 극적 재미를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끝까지 '불법자금'에 집중하고 있으며 현실에 관심 갖게끔 이어주는 다리 역할로 머물기를 자처한다.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에서 2부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하는 셈이지만,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 일부러 절제한 것 같고, 그 정도가 심하여 건조하다 싶을 정도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저수지 게임>은 결국 '탐사 보도 다큐'에서 '탐사 보도' 에 더 방점을 둔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전작인 <더 플랜>은 작품에서 언급되는 수치인 'K=1.5' 가 정확한지를 놓고 네티즌을 비롯해 주류 / 대안언론들 간에 갑론을박이 펼쳐진 바 있다. 언론이 해야할 일을 다큐가 해냈는데 과연 너희가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1.5가 맞는 숫자인가. 어째서 작품에서 조사된 16대, 17대 대선 결과는 외면하고 무작정 수치가 잘못됐다고 하는가 등등. 논쟁의 초점과는 별개로, 그 덕분에 <더 플랜>은 온전히 작품을 기준으로 논의됐으며 그 자체로 기억될 수 있었다. <저수지 게임>은 반대다. 작품이 잊혀지더라도 다루는 소재만큼은 어떻게든 전달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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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기자는 예전부터 타락한 정재계인들을 겨냥하며, 그들이 가진 재산을 모조리 몰수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이 어떻게 불법으로 수많은 돈을 횡령한 것도 모자라 사람까지 의문사 시킬 수 있었을까. 결국은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 하고 법 위에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돈의 힘을 누가 어떻게 가져갈 수 있었으며, 거대한 저수지에 쌓아놓고 축적한 힘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가? 그 돈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이 아닌가? 작품이 누군가의 죽음보다 '돈이 가득 담긴 저수지'를 훨씬 더 많이 언급하며 스릴러적 분위기를 창출하려 노력했던 이유다. 진짜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 돈을 몰수하는 것이며, 이 절차를 먼저 거치지 않으면 어떻게 처벌받든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저들이 쉽게 딴 짓을 할 수 없다는 본질을 명확하게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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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가 재밌기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재미없는 기사치고 나쁜 기사 찾아보기 힘들다. <저수지 게임>은 그런 점에서 기자정신이 냉철하면서도 바람직하게 스며든 다큐멘터리다. '어째서 이토록 지독스럽게, 이명박의 돈에 대해서 이야기할까?'를 생각할 때 이 작품은 존재가치를 더한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일은 국민의 선택이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이뤄져서는 안 되었을 재난이었다. 그 대가로 한국사회는 9년간 크게 데였다. 이제 쥐로 입은 상처를 쥐로 치료해야 한다. 데인 부위에다 쥐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른 후 내장을 발라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아 생긴 하얀 기름을 발라주는 것만큼 좋은 약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자. 이제 유행어 한 번 발사해주고 마무리 하자. 그래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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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이미 VOD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한 작품이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계속 극장 상영 중이다. 아트하우스 모모와 이봄씨어터에서 상영 중인데, 멀티플렉스만 극장이 아니니까 혹시 아직 가 보시지 않으신 분들은 가셔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홍준호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