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 02.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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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기획이 참 잘된 것 같은’ 아이돌의 특정기간 활동과 노래를 조명해보는 시리즈입니다. 아이돌은 어찌 보면 연예‘기획’ 상품이기 때문에 아이돌의 흥행에 있어 기획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부분을 조명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아 부족하나마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최근에 활동하는 아이돌이 나올 수도 있고 예전 활동들을 거론할 수도 있어서 시기가 일정치 않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2015년 데뷔한 걸그룹 중 가장 핫하다고 할 수 있는 ‘여자친구’입니다. 이 팀만큼 ‘기획’에 관심이 가는 팀도 드무니까요.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강력한 기원
0) 프로젝트 <다시 만난 세계>
데뷔 초에 표절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어찌됐든 이 팀의 가장 강력한 컨셉은 누가 뭐라 해도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입니다. 이 노래는 많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진리의 다만세’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당시에는 별로 흥하지 않았지만) 이 스타일과 컨셉은 상당한 수요를 품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2014년과 2015년 사이에 ‘순수돌’이 여럿 데뷔했음에도 순수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다시 만난 세계>를 제대로 계승한 팀은 오로지 여자친구 한 팀뿐이라는 점입니다. 그 덕분이라면 덕분일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순수돌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내고 있죠.
어떤 면에서 얼마나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의상
청순돌이나 순수돌은 레이스달린 화려하고 반짝반짝한 의상을 주로 입습니다만, 여자친구는 컨셉에 비해 제법 심플한 편입니다. 여자친구의 활동곡인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심지어 <유리구슬>에선 일반 체육복이나 다름없는 의상을 보여주었죠.
<다시 만난 세계> 당시 소녀시대가 입었던 의상
이는 많이 꾸미지 않고, 일상에서 멀지않은 ‘순수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수돌에 설득력을 더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이 점도 <다시 만난 세계> 때 소녀시대가 입었던 의상과 비슷하죠. 소녀시대의 경우엔 당시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화장까지 연하게 했으니 비슷한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군무
초기의 소녀시대를 계승한다는 걸 가장 크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여자친구 본인들 스스로도 이 부분을 ‘파워청순’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격렬하고 칼 같은 군무를 보여줍니다. 이 컨셉에 있어 0순위가 <다시 만난 세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획자의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데뷔 당시 소녀시대의 '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영상
그녀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것은 안무가 격하기로 유명한 손성득 안무가입니다.
(출처- 손성득 트위터 @sonsungdeuk)
순수 컨셉에 맞는 동작을 할 때와 파워풀할 때의 동작을 보면, 이 친구들이 안 뜰 수가 없었겠다 싶은 면이 있죠. 물론 이러한 기용도 회사의 역량이긴 하겠지만, 멋진 안무에는 그에 상응하는 난이도와 노력이 필요하니 기용과 기획의 산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명확한 컨셉과 목표가 있었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있겠지만요.
<오늘부터 우리는> 안무 영상
3) 음악
조금 민감한 이야기지만, 스타일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여자친구의 데뷔곡 <유리구슬>과 후속곡 <오늘부터 우리는>은 모두 <다시 만난 세계>의 문법에 충실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왠지 일본 애니가 생각나는 서정적인 가사고, 다른 하나는 청순함과 격렬함이 적절히 배합된 음악 스타일입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다시 만난 세계>
저 바람에 노을 빛 내 맘을 실어 보낼게 그리운 마음이 모여서 내리는
<오늘부터 우리는>
순수 컨셉의 서정성과 밝고 경쾌한 사운드가 모순된 조합 같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양쪽 모두 ‘밝고 순수한 소녀’ 컨셉입니다. 거기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나중에 재평가를 받았고, 여자친구의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은 훌륭한 음원성적 및 인지도를 올렸다는, 나름대로 시너지도 일으켰고요.
2. 홍보전략
1)포지셔닝
신인 걸그룹, 그 중에서도 청순·순수 걸그룹 중에서 타사의 선대 걸그룹과 유명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그룹이 바로 여자친구입니다.
위의 기사에선 ‘현역 걸그룹 중 청순 1대는 소녀시대, 2대는 에이핑크, 3대를 여자친구’라고 하며, ‘후발주자 중 청순 걸그룹의 적통을 이어가는 것은 여자친구다’라고 포지셔닝을 하고 있죠.
<스타투데이>의 인터뷰 기사에서 기자가 무려 ‘에이핑크의 대항마’라는 표현을 쓰지만, 여자친구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일으키면서도 적정선을 지키고 있죠. 이러한 기사와 언론플레이를 회사의 능력으로 보았을 때 여자친구의 기획사가 보여주는 능력은 동세대 경쟁그룹의 기획사와 비교해서 분명 상급입니다.
2) 에이스 돌파
① 예린
현재 여자친구의 에이스를 꼽으라고 하면 ‘예린’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런닝맨>, <주간아이돌> 등에서 예능에서 보여준 그녀의 막춤은 여자친구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중화시키고 이목을 끌었으니까요. ‘정제되지 않은 밝고 순수한 소녀’ 비주얼에 적합하다보니 센터로서의 지분도 제법 상당하죠. 객관적(?)인 미모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팀의 아이덴티티에 누가 가장 적합한 비주얼이냐’를 따진다면 단연 이 친구를 꼽을 것입니다. 적어도 앞으로 1년간은 더 ‘보이는 부분’에서 팀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텐데,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팀이 얼마나 클 지는 이 친구하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② 유주
예린이 시각적인 부분에서 에이스라면 이 친구는 청각 부분의 에이스죠. 97년생이 가졌다고 믿기 힘든 가창력과 실적(복면가왕)을 갖고 있는 친구입니다. 여자친구가 강한 퍼포먼스 위주이다 보니 보컬이 가벼워 보일 수 있는데 유주는 이 부분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노래파트에서 난이도가 높은 부분은 이 친구가 거의 다 맡고 있습니다. 유리구슬의 가사처럼 ‘그리 쉽게 깨지지 않을’ 팀 여자친구를 상징하는 멤버로, 신생 걸그룹 메인보컬 중에선 단연 두각을 나타냅니다. 실력을 잘 유지해 발전시킨다면 걸그룹 메인보컬 계보의 적통을 이을 수도 있겠죠.
3) 여담
데뷔 초 표절논란 노이즈를 인지도 향상과 시선집중으로 승화시킨 것만 봐도, 여자친구에 들어간 기획과 홍보 전략이 꽤 치밀해 보입니다. (사실인지는 둘째 치고) ‘사장이 SM 매니저 출신이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SM과 연관있는 인맥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소녀시대 팬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모습은 예사능력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규모에 비해, 홍보마케팅 전술에 대한 이해와 이를 활용할 인맥 모두 제법 상급입니다. 중소기획사(어떤 부분에서는 대형기획사도)에서 참고하고 배울만한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3. 앞으로의 과제
무엇보다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예린과 유주 외 다른 멤버들의 포지션을 어떻게 확고히 할 지가 중요합니다. 메인보컬인 유주의 부담을 나머지 멤버들이 얼마나 줄여줄 수 있을 것인지(거의 은하와 엄지의 몫으로 보입니다), ‘비주얼 멤버’로 팀에 합류한 것이 분명하지만 지분이 높진 않은 리더 소원의 포지션을 앞으로 어떻게 잡을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현재로서는 사실상 신비와 예린이 센터나 다름없으니).
물론 아직 데뷔한지 1년도 되지 않는 그룹이니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멤버 모두를 고루고루 키울지 아니면 특정 멤버를 집중적으로 키울지 결정하는 기점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겁니다. 이 점에 있어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마치며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선택할 정도로 여자친구를 둘러싼 ‘기획’이 실로 흥미롭습니다. 신인이기 때문에 약점도 있고 발전해야할 부분도 있지만, 이것을 커버하고 장점은 극대화해 신인 가운데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 여자친구의 역량입니다. 물론 회사가 만들어주는 가이드선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아마 다음번 앨범 정도가 1.5군에서 1군으로 올라서는 기점이 될듯한데, 과연 이를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그림을 만들어갈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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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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