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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25. 수요일
산하









시사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할 때 일이다. 선배의 명을 받고, 범인이 숨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범인의 친구 가게에 잠입한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직업은 점쟁이였다. 위장 잠입이지만, 도랑 치고 가재잡는다고 진짜 점을 봤다. 점을 보며, 매의 눈초리로 집 안의 이모저모를 살피다가, 운명철학자의 한 마디에 그만 토끼눈이 되고 말았다.


"트럭 모는구나?"


점쟁이의 돌팔이성은 확실히 깨달은 바이나, 직업의식을 발휘하여 나름 능청스럽게 받아 넘기며, 어떻게 아셨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이 점쟁이 양반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한 소리를 남긴다. 


"사주에 역마살이 그득해."


"아니 역마살 그득한 사람은 많을 텐데 어떻게 제 직업을!"


"그건 딱 보면 알지. 평생 그거 할 상이야. 역마가, 역마가…! 장난이 아니야."


완전히 돌팔이는 아니었다. 집안에만 있으면 병이 나는 내 역마살을 짚어 냈으니.



집 떠나면 고생이지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행은 무리해서라도 하는 게 맞다. 기묘한 삼단논법으로서 누군가 여기에 논리적 정합성을 제기하면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겠으나 어쨌건 여행 떠날 때는 항상 이런 맘이다. 비록 여행의 고수들처럼 날렵하게 배낭 짊어지고,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인생의 참맛을 깨치고 어쩌고 하는 것 없이, 그저 여행사 깃발만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 찍다가 쇼핑센터만 실컷 들르는 패키지여행이라고 해도 그렇다.


어쨌건 지도에서만 보고 책에서만 읽던 지역이나 나라를 눈으로 보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언어를 듣고, 향긋하건 퀴퀴하건 그들의 체취를 느끼는 기회가 그리 쉽겠는가. 더하여 국내 역마살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나 해외 역마살은 제대로 펼친 적이 드문 처지로서 기회가 생기면 결코 놓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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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공항...!



오늘, 베트남에 왔다. 하노이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베트남은 예상보다는 선선한 날씨였다. 새로이 지은 공항은 깔끔했고 부대시설도 훌륭했다. 파파이스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변변찮은 기내식으로 배를 곯았던 딸아이가 메뉴 몇 개를 시켰다. 딸아이는 5분 동안 발을 구르며 동남아시아에서도 익히 통한다는 한국어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감자 주워 담다가 감자 다 식겠다!"


눈여겨보니 이 곳의 직원들은 한국의 패스트푸드 점 점원들에 비하면 무궁화호였다. 물론 한국의 점원들은 KTX. 처음에는 우리가 너무 급한 거라고 타일렀지만 메뉴를 바꿔서 내밀었을 때는 딸아이에 이어 나도 부아를 터뜨리고 말았다. 


"바꿔 줘, 빨리."


아열대기후의 나라에 온 첫 신고를 그렇게 한 뒤, 버스를 타고 하노이 시내로 향했다. 느릿느릿해 보이지만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고, 하노이는 이 만만치 않은 나라의 오랜 수도다. 하노이는 현재 베트남의 수도이자 분단 시절 북 베트남의 수도였다. 한자어로는 ‘하내’다. 공항에서 하노이 시내를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홍강에는 바지선들이 분주히 토사를 퍼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강의 흐름을 방해하고, 종국에는 범람의 원인이 된다. 몇 년 전에도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게 가이드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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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 정말 붉다.



홍강은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하는데, 그로부터 실려 오는 황토가 하도 많아 붉게 보인다고 해서 홍강이라고 한다. 월남이라는 나라 이름 자체가 월나라의 남쪽이라는 뜻이듯, 베트남 역시 우리나라처럼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웃 때문에 울고 웃었던 역사의 흔적을 선연히 갖고 있다.


고조선을 멸망시켰던 한무제는 베트남에도 원정군을 보내 남월을 정복하는데, 이때 베트남 북부가 중국의 영향권 하에 들었다. 전한 후한 교체기에 ‘쯩 자매’라 불리는 여성 영웅들이 앞장서서 독립 투쟁을 벌인다. 쯩 자매의 전설은 애틋하면서도 장렬하다. 쯩 자매 중 언니인 ‘쯩짝’은 ‘티삭’이라는 남자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티삭은 은밀히 베트남인들의 반란을 조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중국인 태수가 티삭을 참수하고, 쯩짝을 잡아들여 겁탈해 버렸다.


복수심에 이를 가는 쯩짝과 동생 쯩니는 한나라의 압정에 시달리는 베트남인들의 봉기를 주도한다. 코끼리에 올라탄 자매는 용감하게 베트남인들의 단결과 잃어버린 땅의 회복을 높이 외쳤고, 베트남 사람들은 그 밑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쯩짝의 부대 지휘관들 가운데에는 여성 장군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대활약을 벌여 한나라 군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성 궁수부대도 있었다. 한마디로 '우먼 파워'가 막강한 모계 

사회적 특성이 발현된 항쟁이었다. 삼국지의 유명한 장수 마초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복파장군 마원'에게 패배하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지만, '베트남의 잔 다르크'이자 첫 독립의 영웅이다. 남부의 호치민 시에 이 자매를 기리는 대로가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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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우먼 파워', 그리고 중국과의 피어린 역사가 두드러지는 나라. 쯩 자매가 강물에 몸을 던진 곳에서 멀지 않다고 하는 하노이 시내에 들어와 보니, 사내들이 하릴없이 길가에 앉아서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꼴이 보였다. 이 사람들, 다 백수란다.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은 여성이 차지하고, 남자들은 멀뚱멀뚱 백수 노릇할 때가 많단다. 가이드의 해석으로는 베트남 남자들은 두 가지에 목숨을 건다.


하나는 결혼. 결혼할 때 모든 경비를 대고, 신부 집에 두둑하게 몸값(?)을 치르기 때문에 일단 결혼만 하면 인생의 큰 고비를 넘은 셈이고, 그때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라 손을 놔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하나는 전쟁. 베트남 남자들은 평소에는 빈둥빈둥하지만 전쟁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여자들이 그 놈팽이 질을 용서(?)한다는 것. 물론 농담반 진담반의 해석이지만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은 눈에 띄는 미인들이 많으나, 남자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친구 김학웅 변호사가 베트남에선 그래도 봐 줄 정도에 든다고 하면 내 친구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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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설날인 'TET'의 풍경. 역시 명절은 거칠게 보내줘야 한다.



오늘은 설날이었다. 베트남도 설 명절을 성대하게 치른다. 그래서 설에 오면 안 좋다. 모든 서비스가 두 배로 뛰고, 식사 메뉴가 두 번이나 급하게 바뀌는 정도니까. 베트남에서 설은 ‘테트’라고 부른다. 'TET' 라고 굵직하게 쓰여 진 각종 플래카드와 광고판들을 보노라니 ‘테트 대공세’가 불현듯 떠올라 온다. 1968년 음력 1월 1일을 별러 단행한 베트콩들의 대공세. 남베트남의 상당부분을 점령하고, 사이공 미국 대사관까지도 공격해 세계를 경악시켰던 ‘구정 대공세’도 바로 이 떠들썩한 설날 분위기를 이용했던 것이었다. 베트남의 귀성 행렬 속에 무기가 반입됐고, 설날 휴전까지 제안하며 펼친 연막작전 속에 정예 병력들이 각지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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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진실, '사이공의 도살자'



아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사이공의 도살자' 사진에 대해서 묻는다. 사이공 시내에서 벌어진 구정 대공세 속에 베트콩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했는데, 현장에서 붙잡힌 베트콩을 경찰서장 '응우엔 으옥 로앙'이 권총으로 머리를 날려 버린 그 사진. 경찰서장이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아니었고, 그는 군복 입지 않은 게릴라 대원으로서 즉결 처분이 가능한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그 사진으로 평생 응우엔 으옥 로앙은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던 사실을 얘기해 주면서 베트남 전쟁을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버스가 한 광장에 멎었다. 바딘 광장. 멀리서 사진에서 익히 보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주석 호치민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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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찍은 호치민의 영묘



호치민에 대해서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말하고, 베트남의 주석이자 대통령이었으며, 대단한 독립 투사였고, 전쟁의 승리자라고 덧붙인 순간 아들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이승만 같은 사람?"


순간 나도 모르게 감히 누굴 갖다 대냐며 호통을 치고 말았다. 아마 그 소리를 행여 호치민 주석이 들었다면 영묘 지붕이 들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들었는지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아까 어느 분이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하신 것 같은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과 함께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평생을 베트남을 위해 살았고, 126개의 가명을 쓰면서 비밀활동을 벌였고, 프랑스·일본·미국·중국 등 세계에서 내로라 할 나라들과 각을 세웠던 투쟁의 지도자라고. 베트남을 위한 마음이 덜어질까 두려워 결혼도 하지 않았고, 혈육의 방문조차도 사양했던 사람. 죽을 때 재산 한 조각 남기지 않았고, 자신을 절대 우상화하지 말고 죽은 뒤에는 화장해서 베트남의 국토 여기저기에 골고루 뿌려 달라고 했던 사람. 뭘 도와줄까 묻는 중국·소련·북한에게 직접적인 군사 원조 대신, 베트남 아이들을 데려가 교육시켜 달라고 청했으며, 덕분에 그 아이들이 오늘날 베트남의 리더가 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그러면서 가이드는 덧붙인다. 


"북한 김일성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속으로 키득거렸다. 행여나 빨갱이 소리 들을까봐 이렇게 안전벨트를 매는구만.



영묘 옆에 간판이 걸려있었다. 


'베트남이여 영원하라.'

'호치민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호치민의 영혼은 이 모습이 대단히 유감스러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가를 성역화하려는 간부들에게 그럴 돈으로 공장이나 하나 더 지으라고 윽박지르던 그가, 해마다 거액을 들여 러시아로 방부 처리 (레닌 이후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찌 개운하겠는가. 원래는 일반인들도 그 묘 안을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하지만 패키지 여행의 한정된 시간은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호치민 주석의 생생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 모택동의 넓적한 얼굴을 보고 나오면서, 출구에 운집한 각종 모택동 기념품 상가에 경악했었는데, 호치민도 그럴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바딘 광장을 떠나 시내로 들어오자, 시내는 아수라장에 가까운 사람과 오토바이의 홍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라서 그런지 청년들과 아이들이 온 시내에를 메우고 설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우리는 일제히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이쿠 매연! 오토바이만 700만대라는 하노이의 대기 오염은 예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매연 속에서 우리가 타야 했던 건 스트리트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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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문도 없고 창문도 없는 게 이런 느낌인가...?)



문도 없고 창문도 없는 차로 오토바이의 홍수를 설렁설렁 빠져나가면서, 하노이의 중심부를 드라이브했다. 몽골족들은 아기 때부터 말을 탈 줄 안다더니, 여기 사람들은 걸음마보다 오토바이를 빨리 배우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 오토바이에 아기들까지 6명이 탄 걸 봤는데, 서커스 수준이었다. 아이 둘을 양 팔에 안은 주부는 앞 사람을 잡지 않고도 기가 막히게 중심을 유지했다. 커브를 돌 때는 마치 줄타기하듯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평형을 유지하면서.


거리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거리에 앉아서 쌀국수를 들이키고, 하릴없이 관광객을 구경하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지만 허술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신호등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과 무차별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즐비한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일단 오토바이고 차들이고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속도를 내는 경우가 절대로 없었다. 클랙슨은 '빨리 가자, 비켜라가 아니라 나 뒤에 가고 있으니 조심하시오' 의 표시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클랙슨 소리에 기분 나빠하는 문화가 전혀 없다나. 가이드는 베트남 사람들을 두고 이런 말도 했다.


"이상하다 싶은 게 베트남 사람들은 참 단결이 잘돼요. 

정부가 하자면 별 이의 없이 따르고 신뢰하고,

그러자! 하면 그럽시다! 하고 따라나섭니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는 국경일도 아닌데, 길거리 허름한 가게부터 주택가, 술집에서 환전소까지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붉은 바탕의 오각별. 베트남 사람들은 저 국기를 보면서 어떤 상념에 젖을까? 호치민을 떠올려 보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물론 떠오르는 것이야 있지만, 그렇게 듬직하진 않다. 너무 멀거나 생경하고 때로 감동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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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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