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2. 27. 금요일
파토
오늘은 우원이 좋아하는 SF설 중 장편을 딱 3권만 소개해 볼란다. SF 바닥에서는 따로 언급할 이유도 없이 유명한 책들이지만 SF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울나라에서는 대중적인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으니 말이다.
말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블록버스터 SF 영화는 인기도 많고 큰 시장이다. 그 옛날 스타워즈나 이티, 터미네이터 등은 물론 매트릭스, 아바타, 인셉션, 그래비티 등에 더해 작년의 인터스텔라 열풍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SF 영화들이 국내에서 대박을 쳐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 급 영화 외의 다른 매체들, 특히 이들 영화의 모체가 되곤 하는 소설 쪽은 도무지 시장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국내 작가들의 양질의 작품이 알려지지도, 팔리지도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국제적으로 수백 만 권 이상 팔린 레전드급 작품들조차 발간되지도 않거나 절판되기 일쑤인 게 울나라 사정이다. 저변이 이렇게 얇으니 울나라에서 쓸만한 SF 영화나 드라마, 애니를 기대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거다.
캐나다 토론토의 SF 전문 서점 바카-피닉스 북스. 1972년에 열었다.
굳이 전문 서점이 아니더라도 서구의 대형 서점에는 여기에 준하는 SF 섹션이
흔히 있고, 수백 종의 SF 서적들이 철찬리에 판매된다.
무엇보다, 영화 속의 비주얼이나 스피디한 액션 같은 것도 좋지만 소설에는 소설만이 주는 압도적인 상상의 힘이 있다. 영화 화면 속 특수 효과를 되려 시시하게 느끼게 만드는 거대한 스케일과 현실감은 오직 글을 통한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 소개할 세 작품은 발간된 지 40년에서 60년에 이르렀음에도 아직도 영화화되지 못하고 있다.
암튼, 여기 소개하는 장편들은 우원에게 강한 지적인 충격과 강렬한 감정적 파장, 그리고 어쩌면 평생에 걸친 화두들을 던져 준 작품들이다. 일단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고 또 되새길 때마다 당시의 충격과 참신함이 되돌아 온다.
열분들에게도 그 정도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잘 쓴 SF 작품들이라는 점은 보증할 수 있다. 발간된 후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발상이나 접근 자체가 너무나 신선하기 때문에 촌스러움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도 하다.
그럼 가 보시자.
1.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락 / 정영목. 시공사 (1953)
거대한 스케일과 충격적인 상상력의 끝판왕
20세기 중반, 갑자기 세계 주요도시의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들이 나타난다. 압도적인 과학기술과 무력, 그리고 현명함으로 전쟁과 기아, 질병 등 인류의 모든 문제를 (반강제적으로) 해결해 주는 외계인들. 하지만 5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의 진짜 모습이나 진정한 의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갑자기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지난 100여년 동안 소설, 만화, 애니, 영화 등 수많은 SF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수백 년에 걸친 행성들 간의 전쟁이나 거대한 은하 제국이 등장하는 스케일 큰 것도 있고 행성 하나를 한번에 날려 버리는 무기나 죽어가는 별을 되살리는 엄청난 테크놀로지도 등장한다.
하지만 본작 <유년기의 끝>의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머 은하계 규모의 거대한 공간이나 수억 년의 시간을 다루는 건 아니고, 사실 대부분의 사건이 지구와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어느 행성에서 일어난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또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결론 부분에 도달하면서, 배경 시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내용과 상상력 자체가 가진 스케일에 압도되고 마는 거다.
오버로드라고 불리는 이 외계인들은 왜 지구에 왔으며, 어째서 50년 동안이나 진면목을 숨기고 있었을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대체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까. 오버로드의 개입 속에서 인류는 어디를 향해 갔으며, 유년기의 끝이라는 책의 제목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런 의문들이 하나 둘 풀려가면서 책장을 덮을 때 쯤이면 열분들은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묘한 심신 상태에 놓이게 된다. 최고의 SF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센세이션과 통찰, 역설 등이 뒤섞인 충격. 요런 것에 한번 빠지면 열분들은 SF 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가히 세계 최고의 SF 소설. 닥치고 읽으시라.
2. <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 김상훈 . 행복한 책 읽기 (1974)
전쟁의 덧없음, 그리고 시간여행 속에서의 사랑
휴고상과 네뷸러상이라는 것이 있다. 각각 1955년과 66년에 시작된 이 상들은 SF문학에서 최고 권위를 가지는데 휴고상은 팬들이, 네뷸러상은 전문가들이 선정한다. 이런 상을 받았다면 그 해 최고의 SF소설임은 물론, 두고두고 읽을 가치를 갖는 걸작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두 개를 동시에 받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소개하는 <영원한 전쟁>이 바로 이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굳이 상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정교한 플롯과 상대성이론에 관련된 과학적 엄밀성, 그리고 잘 짜인 전투씬과 기발한 소재와 아이디어, 깊이 있는 주제의식에 이르기까지 가히 역사상 가장 재미있고도 잘 쓴 SF 장편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콜랩서 점프라는 신 기술을 통해 항성간 여행을 하게 된 인류가 식민지를 건설하던 중 함대 하나가 그만 괴멸되고 만다. 그런 짓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통 불가능한 외계종족 토오란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주인공 만델라(..)는 전쟁 속에서 장구한 세월을 지나며 수많은 역설적인 상황들에 맞닥드리게 된다. 급기야 사랑하는 전우 메리게이와도 헤어지게 되는데..
대체 전쟁은 왜 일어난 걸까. 토오란들은 어떤 종족이며 그들과의 소통은 왜 불가능한가. 전쟁은 왜 이리도 오래 계속 되고 있으며, 그 세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가나. 이 모든 증오와 살육의 의미는 무엇이며, 만델라와 메리게이는 과연 다시 만나게 될까.
<영원한 전쟁>의 그래픽 노블. 미래적 액션 밀리터리물과 수준높은 SF,
그리고 연애물의 결합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 소설을 쓴 조 홀드먼은 실제로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이고 그곳에서 겪고 느낀 것들을 이 소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본작의 모델로 삼았던 것은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했던 로버트 하인라인의 밀리터리 SF <스타십 트루퍼스>.
허나 스타십 트루퍼스가 정치적으로 우파인 하인라인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영웅적인 전쟁 이야기에 가깝다면, 본작은 그것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반전 계열 소설이다. 이렇게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경쾌함이 있고, 특히 시간여행의 역설을 역설 자체로 해결해 버리는 쌈빡한 결론 부분이 백미다.
애석하게도 국내에서는 절판 상태인 듯 한데, 몇몇 온라인 서점에서 중고를 구할 수 있다고 나온다. 머 어떻게든 찾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레전드급 걸작. (리들리 스콧에 의해 영화화된다는 이야기가 몇년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3.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클락 / 박상준. 옹기장이 (1973)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가 던져준 묵직한 질문
보다시피 우원은 아서 클락을 무척 좋아한다. SF계에서 장단편을 통틀어 그와 같은 상상력과 스케일,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위 SF계 빅 3라는 아시모프나 하인라인과 비교해도 아서 클락은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그런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본작 <라마와의 랑데부>다.
앞에 소개한 <유년기의 끝>은 50년대 초반의 작품이라 휴고상이나 네뷸러상이 아직 제정되기 전에 발표됐지만, 73년에 발표된 본작은 (당연히) 두 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때는 22세기, 길이 50km 에 이르는 거대한 물체가 태양계에 들어섰다. 지구에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이것이 인공물이라는 점이 확실해지고, 라마라고 이름붙인 이 미스테리한 존재를 탐사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탐사대가 우주선 엔데버 호를 타고 출발한다. 어렵사리 입구를 열고 들어간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철저한 암흑 속의 거대한 빈 공간이었는데…
아서 클락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지만 스토리텔링으로서 <라마와의 랑데부>의 훌륭한 점은 신비로움과 불안감, 경이와 초조함 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과학적이면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점이다. 우주 속에 놓여 있는 거대한 물체의 물리학과 관련 천문학이 정교하게 표현되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조건들 속에서 주인공들은 다양한 모험과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라마와 엔데베호
우주선이라고 하기에는 어처구니 없이 큰 이 구조물. 대체 누가 만든 것이며, 어디서 온 걸까? 왜 태양계를 찾아왔고 그 목적은 뭔가. 지구인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 비밀은 벗겨질듯 말듯, 독자 열분들을 간지럽힐 것이다.
다만 이 책도 요즘 품절 상탠데 – 울 나라 SF계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상황 – 중고라든가 기타 인터넷 특유의 경로들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 영어 좀 되는 분덜은 아마존 E북 등 영어로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다.
자, 이렇게 3편의 장편을 골라 소개해 봤다. 좀 부족한 듯도 싶지만 많이 소개해 봤자 오히려 뭘 읽을지 혼란스럽고, 국내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이 3편 외에 구하기 쉬운 작품으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있는데 역시 대단한 걸작이지만 권수가 많아 당장 접근하기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민음사 계열 사이언스 북스에서 7권 전집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작가와 수 많은 작품이 있지만 이 글은 철저히 우원 취향으로 소개하는 코너니 넘어간다. 지금껏 어떤 SF 를 봐야 할지 잘 판단이 되지 않았던 분덜, 이 세권으로 시작해 보시라. 절대 후회없다.
현재 본지는 <생각비행>출판사와 연계하여 딴지 인기연재물을 출판하고 있다.
첫빠타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가 책으로 나왔고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관련 자료 출처, 계보 등
아주 보기 좋게 정리가 되어 나온 상태.
많은 언론에서 본 저서를 다루었기에 언론사 서평 또한 링크 걸어 놓았다.
관심 있으신 분덜은 아래로 놀러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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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영생, 인류 마지막의 유혹 , Memento Mori 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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