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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는 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한 달 전인 12월, 오랜 기간 세월호의 자리였던 광화문 광장 뒤편에 조용히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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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무나 조용해서 놀랍도록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feat.실시간 시청자 31명)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이틀 동안 광화문에 갔다. 광화문광장 한쪽, KBS 새노조 본부장이 단식하던 천막 옆에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었다. 노조의 입장에선 한 명의 시청자도 고마웠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필리버스터라기보다는 공중에 흩뿌려지는 말에 가까웠다.

 

지난 2012년, MBC와 YTN, 그리고 KBS의 공동 파업 때와 다르게, 이번 파업에서 KBS는 관심 밖이었다. KBS를 향한 무관심을 생각하면 MBC를 향한 악플은 축복이었다.

 

언론의 짠내나는 관심을 받으며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KBS 뉴스, 그리고 기레기가 된 사람들. 대체 그들은 왜 파업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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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파업 101일째가 되던 날, KBS 공식 눈사람 박대기 기자와 정다원 기자를 만났다.

( : 박대기 / : 정다원 / :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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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왜 파업하나

 

: KBS 새노조가 광화문에서 릴레이 발언할 때 갔었어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KBS가 파업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MBC는 그래도 탄압받았던 얘기가 좀 나왔었는데.

 

: KBS에 들어오려고 방송학 개론(KBS 필기시험 필수 과목)을 공부했어요. 제작의 자율성과 편성의 독립성을 위해 방송법이 존재한다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제작의 자율성'이라는 문구가 아직도 기억나요. 데스킹이라는 존재는 더 나은 판단을 위해 있는 거지 권력을 남용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알고 KBS에 들어갔어요.

 

입사하고 3~4개월쯤 됐을 때 기획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웬만하면 기획취재 중에 회사에서 연락 안 하거든요. 사대강 사업을 한 곳 중에서 잘된 곳을 찾아서 인터뷰를 가져오라고. 그 와중에 전화 건 선배는 급해서 목소리가 막 날아가요.

 

: 홍보를 하라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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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원 기자

 

: “사대강 사업 너무 좋아요. 우리 마을 농사 대박 났어요.” 이런 인터뷰를요. 의도를 정해두고 그림을 가져오라고 얘길 해요. 이건 이미 9시 뉴스 큐시트에도 박혀있기 때문에 대단히 압박이 돼요. 뉴스에 나가기로 박혀있는데 제가 그림을 못 가져가면, 취재 못 한 제 탓이 되는 거예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한 거예요. 사대강에 문제는 없었는지 봐야 하는 게 상식적이잖아요.

 

: 그런데 그냥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 해오라는 거예요. 이상하다, 이걸 어떻게 하냐고 전화로 실랑이를 해요. 근데 아예 말이 안 통해요. 이 사람도 자기의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 누가 시킨 말을 그대로 하는 것처럼...

 

: 그치, 누가 시켰는지 우린 모르죠. 근데 그냥 무조건 하래. 한번은 이랬어요. 그럼 일단 나가겠다, 나가서 현실은 어떤지 우리 한번 보자고 했어요. 안 그러면 대화가 끝나질 않으니까. 갔더니 난리에요. 수초가 배수로를 다 덮어가지고 농사가 망했대요. 자전거 길을 해놨는데 아무도 안타러 온대요. 할 수 있는 취재를 하고 회사로 돌아갔어요. 원하던 그림이 없으니 지시한 선배는 막 난리가 나. 그림 없어서 어떡하냐고. 근데 없는 걸 어떡해요.

 

: 없는 진실을 만들어 내라고... 후후후

 

: 그걸 시킨 선배는 막 고개를 조아리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해요. 걔가 현장을 못 찾아왔다고. 근데 신입사원인 제 눈에 몇십 년 차 선배는 얼마나 커 보여요. 그럼 일 못해온 죄책감은 저한테 전가돼요. 나는 너무 상식적인 취재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는 그냥 그림 못 가져온 애인 거예요.

 

: 그걸 오더 아이템이라고 하는 건데, 저희가 참 층이 많아요. 예를 들어 지역 방송국이면 지역의 보도국장이 있고 그 위에 회사의 네트워크 부장이 있고, 보도국장이 있고, 본부장이 있고, 사장이 있고... 그러니까 오더가 층을 타고 쭉쭉 떨어지면 밑에는 엄청난 짐이 되는 거예요. 위에서 얼핏 생각하기에는 (사대강이 잘 된) 이런 그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현장에 가 보면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 문제를 말했을 때, 그게 쭉쭉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안 올라가요. 그냥 어느 선에선가 ‘애들이 무능해서 못 찾아와’ 이렇게 되는…

 

: 맞아요. 오더 아이템에 반론을 제기하면 ‘얘가 삐딱한 애야’, ‘얘가 무능한 애야’ 그래서 결국 ‘얘기 안 되는 애’로 계속 돌려가는 거예요. 그렇게 1년 반쯤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래도 그때 저희 캡(당시 소속팀 반장)이 박주경 선배였고, 바이스(당시 소속팀 부반장)가 지금 뉴스타파 심인보 선배였어요. 훌륭한 선배들이 그나마 엉뚱한 일들을 막아줬죠.

 

: 그때가 마지막으로 회사가...

 

: 괜찮았을 때.

 

'마지막으로' 회사가 괜찮았을 때.

 

: 그 직후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죠. 제가 그때 담당라인이었어요. 정확히 누가 얘기한 지 모르겠지만, 그 일이 터지자마자 TF를 만들자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왔어요. 근데 그냥 부메랑이에요. 아무도 그 말을 안 받아요. (KBS) 기자협회장이 말하든 말든 아무도 오케이를 안 해요.

 

차라리 기자들이 단독으로 진짜 TF를 꾸릴 걸 그때는 우리가... 참 그 생각을 못 했어요. 지금 정말 아무리 맞아도 할 말이 없어요.

 

 

2. 공정한 기자는 추위를 보도한다

 

: 그때부턴 기자들한테 계속 이상한 걸 시켜요. 딴 일을.

 

: 그때 제가 제일 많이 했던 리포트는 추위 리포트를. 하하.

 

: MBC 소시지 빵이랑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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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던 새가 똥을 싸도 뉴스가 되던 시절

 

: 그래서 소시지빵 기자 보면 남 일 같지 않고 그래요.

 

: 그때를 기점으로 망가졌거든요. 그런 연성 아이템, 날씨 아이템 이런 게 엄청 늘었어요.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건 당연한 건데 그게 뭐 뉴스냔 말에요. 근데 계속 오늘 추워요, 내일도 추워요, 이런 추위 리포트를 계속하고.

 

: 요즘은 언론이 좀 바뀌니까 더 이상 춥다는 리포트를 안 하잖아요. 한 5년 전이었으면 맨날 뉴스에서 춥다 그랬을 거예요.

 

: 춥다는 리포트에 추워서 미끄러지는 그림 붙여서 리포트 하나, 추워서 수도관 동파되고 이런 리포트 하나. 이런 식으로 추위리포트 몇 개씩 하는 거예요. 이거 도대체 왜 하냐고 하면 또 삐딱이 취급을 받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계속 말을 바꿨어요. 원래 없다고 했다가 언론사들, 특히 한겨레나 경향에서 흔적을 찾으면 그것까지만 인정하는 일들이 반복됐어요. 그때 저는 계속 추위 리포트를 하고 있고, TF를 만들자던 선배들 얘기는 전혀 안 받아들여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1월 말, 한겨레 정환봉 기자가 계속 특종을 하던 때예요. 국정원 댓글 사건을 기자가 엄청나게 밝혀내서 경찰이 완전히 시인한 날이었어요.

 

너무 열 받잖아요. ‘경찰이 말을 바꿨다’고, 앵커 멘트에도 쓰고 리포트에도 그렇게 썼어요. 그때 저희 부장이 성품이 참 좋으신 분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화내는 걸 처음 봤어요. ‘어떻게 네가 경찰이 말을 바꿨단 얘기를 함부로 쓸 수 있냐, 네가 뭐라고.’ 그러면서 저의 정치색을 문제 삼더라고요. 내 정치색 알지도 못하면서.

 

: 편향됐다고?

 

: 네. 그러더니 경찰은 원래 수사과정에서 말이 바뀌는 게 맞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새로운 팩트가 나와서 말을 바꾼 게 아니라, 언론이 까발리니 이제 와 시인하는 해명자료를 낸 거라고, 말이 안 된다고 했죠. 결국 심인보 선배가 나와서 더 이상 부장하고 얘기해서 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저보고 그동안의 경찰 브리핑을 다 뽑으라고 했어요. 한 300장 됐어요. 그걸 가지고 국장한테 가서 다 보여주고 경찰이 말을 바꾼 게 맞다고 얘기를 했죠. 이미 여덟시가 넘은 때였어요.

 

아홉시 뉴스 편집부에선 원본 넘기라고 난리가 났고, 온갖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저는 또 얘기 안 되는 애가 된 거죠. 너무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 국장이 일단 알았으니, 그러면 앵커멘트에서 ‘경찰이 말을 바꿔’라는 한 줄을 살려 주겠다고. 대신 리포트에선 다 빼라고 했어요. 그렇게 끝났어요. 정말 그 한 줄을 지키는 것도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게 점점, 점점 악화돼서 지금까지 왔죠. 이미 5년 전, 6년 전에도 그랬어요.

 

: 5년 전에는 그나마 한 줄이라도 지킬 수 있었던 거예요. 요새 같았으면은...

 

: 어림도 없죠, 진짜.

 

: 난리 나죠. 소리 지르고 막… 기자한테 직접 하진 않지만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중얼중얼거리고.

 

 

3. 정상화모임 - 일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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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기 기자

 

: 육아휴직 이후에 2016년 초에 복귀했는데, 그때는 ‘정상화모임’ 이라는 게 발족한 바로 다음 달이었어요.

 

: 이번 파업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정상화모임이었어요. 사실 파업을 하면 생활인들에겐 타격이 크죠. 지금까지 그랬듯이 파업에서 지고 나면 징계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도 파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거더라구요. 보통 회사 안에 같은 학교나 고향 출신이 만드는 사조직을 두려고 하지는 않거든요.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안 되니까. 그런데 저희들은 간부들이 사조직을 만들었어요. 보도국장, 일부 다른 본부장 이렇게 끼워가지고. 예를 들어 딴지일보에서 총수가 자기 가까운 사람들 데리고 사조직을 만드는 거예요.

 

: 하하하

 

: 웬만한 간부는 다 거기 멤버에요.

 

: 사조직을 만들고 기자들한테 선언하는 거예요. 이 모임에 들어와라. 들어오지 않으면 뭐.... 이런 식으로. 상당수 기자들이 그 모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저도 전화를 받았고요.

 

: 들어오라고요?

 

: 예, 그날 아내랑 같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전화가 온 거예요. “박대기 씨한테도 기회를 줄게. 들어와."라고 하더라고요.

 

: 지금 올라타면 살려준다?

 

: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전화를 걸 수 있냐고 말씀드렸더니 전화를 확 끊으시더라구요. 제가 다시 전화를 걸고 따졌죠.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아무튼 이 사조직이 뭘했냐, 저희 편집회의에서 기자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자협회 회장을 공격하더라고요.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 들어가서 어제 뉴스는 너무 편향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 왜 이건 취재 안 했냐 등등의 얘길 하면 정상화모임이 기자협회장을 공격하는 거예요. 기자협회장이 너무 편향되어 있다고 하면서. 너무 이상한 상황이잖아요. 일부 기자들이 우리 회사 분위기 왜 이러냐고, 아주 완곡하고 정중한 어조로 비판하는 글을 협회보에 실었어요, 그랬더니 바로 제주도 발령 내버리더라고요. 바로 인사발령 내버리고 정상화모임 멤버가 대다수인 국부장단 일동 명의로 성명서를 올렸어요. ‘그런 (비판)글로 유명해졌으니 뒷감당은 해야지?’ 이런 식으로.

 

: (웃음)일진이에요?

 

: 시정잡배도 아니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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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걸 공공연하게 쓰면서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인 거예요. 옛날에는 보도국에서 이런저런 논쟁을 하고 국장이나 부장한테 찾아가서 얘기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기자는 그래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개념이 되게 확실하게 생기고, 윗사람한테 내 의견을 말할 땐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생기고, 실제로 응징을 하니까 어느 순간 다들… 도서관처럼 됐어요.

 

: 분류가 되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비정상 기자, 저쪽은 정상 기자. 정상 기자에 속해야 간부가 되거나 앵커를 맡거나.

 

: 안전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군요?

 

: 네,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버린 거예요.

 

: 뒷감당은 뭘 시켜요?

 

: 지역으로 발령 내거나 한직으로 보내는 거죠. 취재를 할 수 없는, 보도국 밖으로.

 

: 취재를 할 수 없는 영역으로 기자를 보내면 거기서 뭘 하는 거예요?

 

: 회사에 조직이 많으니까 홍보팀으로 갈 수도 있고, 지역 정책실로 갈 수도 있어요.

 

: 저희 선배 중에 정말 천재다, 가장 뛰어나다 하는 선배는 지역 정책실에서 회사 지역국들의 정책을 맡고 있어요.

 

: 가장 뛰어난 기자들은 다 그런 식으로 배제됐죠. 그런데 원래 일을 잘하시니 거기서도 예산 낭비 사례 이런 거 발견하시고 그래요.(웃음) 그렇게 재능을 썩힐 그럴 사람이 아닌데...

 

: MBC처럼 노골적으로 스케이트장 관리를 시킨 건 아니지만, 저희는 서서히, 끊임없이 업무에서 배제시켰죠. 그때마다 스탑을 했어야 되는데 그걸 저희가 못했어요.

 

: 저희 내부에는 아까 말한 ‘정상화모임’처럼 우호세력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집단으로 움직이고, 정교하게 사람을 괴롭혀요. 중요한 취재부서, 예를 들어 정치부 같은 데는 좀 말 안 들을 것 같은 사람들은 웬만하면 가기 어렵고 그런 상황이었죠.

 

 

4. 기자의 성우화, 그리고 수건돌리기

 

: 회사가 망가진 후에는 취재 아이템을 어떻게 잡으셨어요?

 

: 복귀할 시점에 사회1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거기가 복지, 서울시 뉴스 등이 있는 곳이에요. KBS의 연성 아이템을 생산하는 부서죠. 저희가 공범이에요.

 

기획취재 아이템을 열심히 올려요, 그걸 오전에 올리고 편집회의를 하면 열 시가 좀 넘어요. 그 후에 갑자기 와서 오늘 꼭 그거 해야 되냐고 물어요. 동시에 새 오더 아이템을 3개 정도 줘요. 오더 아이템 3개 중 2개는 아침에 연합에 나온 거예요. '이미 나왔는데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 있냐'고 할 때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국장이 하래. 국장 말씀이야” 였어요. 취재하려고 약속도 다 잡아놨는데, 약속을 미룰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해요. 자기가 가져온 거 하라는 거죠.

 

: 그럼 미리 올렸던 기획취재는 어떻게 돼요?

 

: 오늘 아홉 시 뉴스 안 올라갈 거면 내일 내자, 모레 내자 하면서 계속 미뤄요. 그러다 정말 더 미룰 수 없게 되면 아침 뉴스광장으로 보내요. 시의성 다 빠졌을 때.

 

: 리포트 마지막에 KBS 뉴스 누구누구입니다, 이러잖아요. 오더 아이템을 할 땐, 내가 원했던 기사도 아닌데 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어야 되나. 이런 생각 들었죠.

 

: 읽으면서 목소리만 빌려주는 느낌이에요.

 

: 내가 기자지 성우인가... 이런 생각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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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내가 기자지 성우인가. 그런 일의 연속이었어요. 인터넷에서 내 이름 쳐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 그거 진짜 어디 진짜 로켓에 실어가지고 보내버렸으면..

 

: 흑역사죠?

 

: 아휴. 진짜 누가 댓글 한 줄만 남겨 놔도 너무 창피하고 그런 일의 연속이었던 거 같아요.

 

: 세월호 참사 때 어떤 보수 매체에서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종북세력으로 썼어요. 그걸로 압축 리포트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막막해서 쭉 들여다봤더니, 종북적인 내용이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기사가 오보라고 했더니, “너 말고도 리포트할 사람 많다.”면서 딴 사람 시키더라고요. 결국 저 대신 맡은 기자도 결국 안 했던 거 같긴 해요. 기자가 많은 언론사다 보니 ‘너 말고도 리포트할 사람 많다'는 말로…

 

: 배제하는 거네요.

 

: 그런 아이템을 저희끼리는 수건돌리기라고 불렀어요.

 

: 아, 내려주는 아이템이요?

 

: 아무도 안 하고 싶으니까요.

 

: 자괴감 들 거 같네요.

 

: 자괴감, 뭐 무력감... 여길 내가 왜 다닐까… 밖에 나가서 제가 KBS 기자라고 소개한 지는 오래된 거 같아요. 아기가 세 살인데 주변 학부모들은 이번에 파업할 때까지 아무도 제가 KBS 기자인지 몰랐어요. 어느 순간 제 부모님들이 주변에 우리 딸 KBS 기자라고 하면 어디 숨고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좋은 기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이 속물적인 상황이 그래서 더 혐오스러운 거예요. 좀 더 해 봐야지, 해 봐야지, 하는데 제대로 못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 시간 동안 월급은 받고 있고... 뭐 하는 짓인가 계속 그랬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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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최순실이 나왔을 때, 기자협회장이 최순실 TF를 꾸려서 취재해야 하지 않냐고 했었어요.

 

: 최순실 관련 보도를 TV조선이 제일 먼저 하고, 한겨레신문, 경향, JTBC까지 잇달아 보도를 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때 저희는 공방을 보도했어요. 더불어민주당은 비판하고 당시 새누리당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이런 공방 중이다, 나는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 그 유명한 KBS 공방신기요?(공방이 지속될 예정입니다 류의 보도)

 

: 네. 그런데 그건 사실 취재를 안 한 거잖아요. 정치인 말만 듣고 그대로 다 보도할 게 아니라 누구 말이 맞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현장에 보내야 할 거 아니에요. JTBC가 태블릿을 찾아온 것처럼. 다른 언론사들처럼 저희도 아주 늦게 팀을 갖췄는데, 그때 보도국장이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 맞냐, 맞는지 어떻게 아냐. 한겨레가 측근이라고 했으니 측근이냐?” 이런 말을 해서 기각시켜버렸어요. 최순실이 측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팀을 꾸려 확인을 해야 되잖아요. 근데 확인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확인이 두려웠던 건지 뭔지 잘 모르겠으나.

 

: 위험한 걸 안 하려고 해요. 제가 복귀해서 진짜 많이 들었던 얘기가 “말 나와, 그거 보도하면 말 나와.” 그러니까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도 똑같은 비중으로 보도가 되는 거예요. 한쪽에서 말 나온다고. 최순실이 실세인 걸 장담할 수 있냐니... 장담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게 기자가 아니잖아요. 장담할 수 없으니 파헤쳐서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해야죠. 그런데 “장담할 수 있어? 장담할 수 없으면 왜 하자 그래? 너 무슨 의도야?”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게 너무 일상화됐어요. 비정상이 너무 정상화가 되니까, 어느 순간 저희가 되게 무기력해진 것 같아요. 저희가 잘못했죠.


 

5. KBS,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파업하면서 제가 기자협회 SNS 관리를 하고 있거든요. 아무도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한 프로젝트 중 하나가 사회에 있는 여러 명사를 쫓아 다니면서 혼이 나는 거예요. 저희끼리 만나서 제일 먼저 했던 얘기가 “우리 진짜 혼 좀 나야 된다” 였어요.

 

: 아~ 그래서 문소리 씨 만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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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폭

 

: 맞아요. 초반에 그걸 하면서 진짜 많이 들었던 얘기가 “KBS 파업한 김에 폐업한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이었어요. 지금 MBC 사장인 최승호 PD를 만났을 때 ‘방금 KBS 폐업하란 말을 듣고 왔는데, 그 얘기에 반박을 할 수 없다. 솔직히 저도 월급 받으면서 여기에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국민 세금 도둑인데.’ 이런 고민을 토로했어요.

 

그랬더니 최승호 선배가 눈을 크게 뜨면서 “아니, KBS는 있어야죠.” 라고 하는 거예요. 국민이 수신료라는 시스템으로 유일하게 외부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보장하고 있는 유일한 방송사라는 거죠. 제도적으로 엄청나게 보장해 주고 있는데, 지금 정권을 바라보면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거다, 완전히 그 기존의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KBS에 수신료를 내는 국민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송사로 남을 수만 있으면 무조건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다시 용기를 가졌어요. 저희가 너무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던 거죠.

 

: KBS는 국민의 재산이거든요. 재벌이든 학생이든 똑같이 이천 오백 원 내서 만든 회사가 우리 회산데 어느 날 이분들이 생각할 수 있잖아요. 더 이상 돈을 내선 안 되겠다, 나쁜 회사다, 하면 저희 존재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적어도 수신료를 내는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에요.

 

그래도 아홉시 뉴스 시청률 높다고, 많은 고령층이 보고 있다고 해서 자화자찬을 해선 안 돼요, BBC의 경우엔 시청률이 아니라 도달률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방송이 모든 세대와 계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 뉴스는 20대, 30대한테 별로 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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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시청률은 여전히 높다. 최소 소리없는 살인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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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청 연령은 60대 이상이 압도적이다.

 

: 보는 사람 진짜 못 본 거 같아요.

 

: 회사에 갓 들어왔을 때만 해도 어제 뉴스에서 봤다는 얘길 듣거나 제보를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회사에 제보가 너무 안 들어와서 고민이에요. 왜냐면 이메일로도 카톡으로 제보를 하시는 분들이 다 젊은 사람들인데 우리 뉴스를 너무 안 보니까.

 

: 기획 아이템만 해도 아무리 건의를 해도 어차피 안 나가잖아요. 그거를 시청자들도 다 아는 거죠. 그래서 취재원들한테 “어차피 안 나가잖아요”, “KBS 인터뷰해도 내가 생각한 대로 전혀 안 나가던데?” 이런 말들을 되게 많이 듣고 그만큼 취재가 어려워졌어요. 그때마다 열심히 싸우기는 했는데 결국 원하는 만큼 못 싸웠죠.

 

: 물론 폐업해도 싸다는 말을 이해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에서 지금 밀려나 있는 훌륭한 기자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없애는 것보단 되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들이 공영방송을 두는 이유를 생각하면, KBS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너무 걱정되고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6. KBS의 DNA : KBS, 너는 누구냐

 

: 파업하면서 저희끼리 KBS의 DNA라는 말을 많이 해요. KBS엔 도대체 왜 이렇게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을까, 나름대로 성찰해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가 KBS의 역사를 짚기 시작했어요. 방송국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국이었던 때까지.

 

: 방송국들이 다 방송'국’으로 끝나잖아요. 왜 국인지 아세요? 정부 부처를 보면 장관 밑에 차관 있고, 밑에 국장들이 쭉 있잖아요. 그 국장 중 하나가 방송국장이었어요. 중앙 방송국장. 그 중앙방송국에서 KBS가 시작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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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영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본문 중 - 미디어오늘

 

: 그 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로 바꾸니까 국민들이 반발했잖아요. 이건 거의 북한이니까. 그때 명목상 (민주주의처럼) 떼어 준 것 중 하나가 KBS였어요. 그렇지만 진짜 저희를 떼어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손글씨를 내렸어요. 너희가 할 일은 ‘유신 이념의 구현’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그 목적에 맞는 시스템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개정 보완만 한 회사인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친일 청산을 못해서 고생을 하고 있듯이, 우리는 그 DNA가 너무 뿌리 깊더라구요. 고대영 사장처럼 굉장히 위 기수 선배들은 이런 게 당연하다 여기죠. KBS는 다른 방송사와 달리 정권의 안위를 잘 지켜서 다음 정권으로 부드럽게 넘겨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얘기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과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자들의 충돌이 이어지는 거죠.

 

: 사장 하나 바꾸는 것보다 훨씬 큰, 구조적인 문제네요?

 

: 사장이나 이사 한 명 나간다고 절대 바뀌지 않죠.

 

: 그건 KBS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가 되겠죠. 그걸 계기로 오더를 내리는 다단계 구조도 없어져야 하고, 젊은 시청자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야 되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단 걱정을 하면, 나이 든 선배들 중에는 걱정하지 말라고, 누가 집권하든지 쓸모가 있기 때문에 살려둘 거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쓸모가 되고 싶지 않아요.

 

: 그럼 가까운 것부터 얘기하죠. 이사회 구성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 관습적으로 여당 측 추천 이사 7명, 야당 측 추천 이사 4명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여당 이사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되는 그런 시스템이에요.

 

: 한마디로 지금까지는 정권이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입맛에 맞는 이사와 사장을 앉힐 수 있었어요.

 

: 국민의 돈을 받아서 운영되는 회사다 보니 여론을 모아야 하는데, 전국민적으로 투표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야가 나눠 가지면 어느 정도 민의가 반영될 거라는 게 원래 제도 건설자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좀 바뀌어야 해요. 저희가 바라는 게 새로운 제도를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법대로, 법에 정해져 있는 것만이라도 하자는 거예요. 제작자들의 양심을 걸고 일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법에 정해져 있는 대로 만이라도 잘 보장이 됐으면 좋겠다. 이인호 이사장은 저희가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하는데, 법 지키자고 이러는 극좌파가 어디 있어요.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7. 사장이 바뀌면 정말로 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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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파업을 언제까지 하시나요? 지금까지는 중간에 그만두곤 했는데, 이번에는 끝까지 가시는 거예요?

 

: 가시적인 변화가 보일 때까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 그럴 거 아니었으면 100일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 물론 저희는 말단 조합원이라서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지만, 파업이 얼마나 지속되든, 어떻게 되든, KBS가 바뀌지 않으면 힘들다고 생각하고요.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일하게 되면 지금하고는 좀 다른 뉴스를 많이 만들고 싶고, 특히 젊은 시청자와 소통하고 싶어요. 저희가 1TV, 2TV가 있는데 적어도 한 채널에서는 다른 세대와 함께 소통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리고 딴지일보가 이미 훌륭한 길을 걷고 있지만, 인터넷 저널리즘을 저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딴지일보 못지않은 훌륭한 웹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래요.

 

: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완전히 마지막이라고,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을 해요. 저희가 파업을 여러 번 계속해오는 동안, 그때마다 매번 우리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 계속 나빠졌단 말이에요. 우리야 안에서 싸웠다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밖에서 믿었던 분들은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어요. 정말 마지막 기회에요.

 

: 이번 파업 동안 재방송 많이 나갔잖아요. 이번 재방송을 계기로 다들 우리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 만들던 적이 있었냐며 깜짝 놀랐어요.

: 이거 우리가 만든 거야? 서로 물어보고.

 

: 그분들 지금 다 어디 계세요?

 

: 다 파업하죠. 답은 다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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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한 건 기자로 살 때 그렇게 우리 조용하게 살다가 파업하고 나와서 하루 종일 엄청 바쁘고 시끄러운 생활을 살고 있어요. 미래에 관해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다는 걸 정말 오랜만에 느끼고 있어요. 매일 같이 고민하고 싸우고 논쟁하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걸 지금 하고 있죠.

 

: 들어보니 KBS는 생각보다 되게 오래 걸릴 수도 있겠네요. 파업이 끝나는 것까지는 일찍 갈 수도 있겠지만, 그 시스템을 바꾸려면 되게 오래 가야 하겠네요.

 

: 특히 저희는 법적인 부분과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방송법 쪽 관련된 부분들 개정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입법의 영역은 국회의원들의 일인데, 국회의원들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저희끼리는 정치인들의 행동을 기다리지 않고, 협회와 노조가 각각 워크숍 열고, 토론하고 있어요. 촛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권을 엎은 거처럼 KBS도 자발적인 힘을 기르는 단계인 거 같아요.

 

: 그래서인지 파업에 참여하는 기자들 중에 상당수는 사실 현업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도 있어요. 파업이 인생에 학교인 것 같긴 해요. 그래서.

 

: 엄청 배우고 있어요.

 

: 마지막 질문인데요. 파업을 하면서 제일 힘든 거는 어떤 건가요?

 

: 제가 먼저 답을 할게요. 저는 파업을 하고 있는 이 상황보다 파업이 끝났을 때, 회사가 안 바뀐 상태로 돌아가는 게 가장 두려워요. 또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징계를 받고, 원하지 않는 부서에 갑자기 발령을 받겠죠. 그들이 말하는 ‘뒷감당’을 해야 할 때가 제일 두려워요.

 

: 사실 저는 작년에 한 번 사직서를 썼기 때문에 지금은 덤으로 다니는 거라 무서운 건 없어요. 이미 그만둘 걸 생각했는데, 뭐가 더 두렵겠어요.

 

: 사직서를 썼는데 왜 다시 돌아오셨어요?

 

: 사직서를 썼다가 반려돼서 휴직을 했고, 돌아왔어요. 그만두려다 돌아온 건, 제가 충분히 싸우지 못한 게 너무 창피했고, 나중에 아이가 엄마는 그때 뭐 했다고 그만뒀냐는 말을 할 것 같아서… 더 싸워서 바꾸려고 돌아왔어요.

 

제가 진짜 무서운 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지금은 현업에서 다들 멀어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파업에만 집중할 수 있죠. 우리가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지를 논의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돌아가면 훨씬 힘들고 지난한 길이 남아있을 거에요, 우리가 이 시스템을 다 바꿀 때까지.

 

각자 가지고 있는 다른 생각들을 하나씩 모아서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힘들 텐데, 파업이 끝나면 다들 현업 때문에 바빠지니 의견을 못 낼 것이고, 그럼 어느 순간, 지금까지 파업 끝나고 우리가 그랬듯이, 어느 순간 사람들이 현업에 적응해 버릴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월급이 안 나오는 건 다들 너무나 각오한 일이니 괜찮아요. 그런 건 애초부터 예상한 거니까 힘들지 않죠. 근데 예상할 수 없는 부분, 그게 불안하고 힘들어요. 우리의 DNA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편한 방식으로 가게 될까봐요.

 

: 이걸 바꾸지 않아 국민들에게서 잊혀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요. 쉽게 바꿔갈 수 있는 일이 아닐 거라서요. 지금은 파업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바꾸겠다 얘기하지만, 걱정이 정말 많이 되죠. 바뀌지 않으면 정다원 기자가 내년 가을에 다시 사표를 낼 수도 있고요.

 

: 그때까지는 안 내요. 충분히 싸우지 않았어요. 2년은 싸워야 해요.

 

: MBC 이용마 기자가 복직하실 때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여러분! 우리 잊지 맙시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요. 작년 엄동설한을 무릅쓰고서 나와주었던 촛불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과연 그게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직도 우리는 암담함 속에 패배감 속에 젖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촛불 시민들의 항쟁, 그분들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겁니다. 앞으로 우리의 뉴스와 시사, 교양, 드라마,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분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딴지일보에 와서 말을 하는 것도 촛불 시민들의 힘이죠. 전 세계적으로 특수한 무혈 시민혁명을 이룬 거예요.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촛불시민들에게 무임승차 하고 있는 게 맞고, 이용마 기자가 했던 말을 명심해야 될 거 같아요. 스스로 힘으로 얻었다기보다는, 시대적인 변화의 힘에 의해 돌아왔죠. 다시 국민의 믿음을 져 버리지 않도록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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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관심이 없어 힘들다는 말 대신, '우리도 공범'이라는 말을 했다. 광화문 필리버스터의 풍경도 비슷했다. 참가자들은 털어놓은 이야기는 '부끄러움'으로 수렴한다. KBS에 입사하기까지의 이야기, 부모님의 자랑에서 권력의 공범이 된 이야기. 사람들이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뱉은 수치심은 남아 있다. 다시는 기레기로 살지 않겠다는 기록으로.

 

어제, KBS 고대영 사장이 드디어 해임됐다. 노조는 오늘 오전 9시, 업무에 복귀했다. 100일 넘게 추위에 떨면서 새노조가 그토록 얻고자 했던 정상화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권하의 KBS에 입사한 박대기, 정다원 기자는 아직 한 번도, 정상적인 KBS에 근무해본 적이 없다.

 

다만, 이제 사장 하나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들의 말처럼 고대영의 퇴진은 계기일 뿐이다. KBS 구성원들이 광화문에서 했던, 다시는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는 고백을 기억할 시간이다.

 

 

 

인지니어스

사진 : 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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