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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성들은(특히 힘 있는 남자들은) 여성을 사는 게 쉬웠다. 기생 말고도 ‘성매매’를 하거나 굳이 돈을 주지 않더라도 ‘관계’할 수 있는 ‘노비’라는 존재가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그렇다면 ‘집창촌’이란 개념은 어디에서 나왔냐는 거다. 조선시대엔 일본의 ‘요시와라’같은 집창촌이 없었다.

 

집창촌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어야 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다.

 

“수요와 공급”

 

대도시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욕망’이 수요로 치환됐다. 그리고 이 수요를 충족시켜줄 ‘공급’이 나타나게 된 거다. 그런 의미로 조선 시대에는 대규모 집창촌이 등장할 만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최대 도시는 한양이다. 한양의 인구가 얼마나 됐을까? 정조 시대 한양의 인구수는 20만 명 수준이었다. 노비가 있었고, 술집이 있었고, 기생들이 있었다. 이들로 충분히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규모 집창촌의 등장은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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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사례

 

19세기 영국 정부는 하나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성매매 여성들은 한 곳에 모으자.”

 

크림 전쟁이 끝나고 10여년 뒤인 1869년. 더 이상 군대 주둔지 근처의 ‘여성’들을 방지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거다. 병사들의 관리도 문제였지만, 결정적으로 여성들이 ‘접촉성 전염병’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걸 볼 수 없었던 거다. 물론, 이 결정이 ‘전문 여성’들을 위한 건 아니다. 이들이 성병(매독)에 걸리면, 병사들에게 들불처럼 번지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결과 영국은 11개 곳을 지정해 ‘전문 여성’들을 집단 거주 시켰고, 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이렇게 나오자 미국도 이를 시행한다. 아니, 미국도 ‘경험’을 통해 관리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었던 상황이다. 후커장군(Hooker)이라고 혹시 들어봤는가?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으로 부대 이동시 창녀들을 대동하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다. 병사들을 위한 '위안부'의 필요성을 역설한 장군인데, 이후 영어단어 Hooker가 창녀의 대명사가 된다.

 

남북전쟁을 경험한 미국도 ‘전문여성’을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한술 더 떠 세인트루이스에서는 공창제를 선언했다). 프랑스도 공창제를 시행했다(프랑스의 경우 1949년까지 공창제를 유지했다). 그럼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일본은 유럽의 선진국들에 시찰단을 보냈다. 이들은 헌법을 포함한 국가 시스템과 교육, 의료, 군사 등등 빨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게 유럽의 ‘공창제’였다.

 

일본은 개항 이전에도 공창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나라였기에 공창제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근대 국가, 그리고 현대화 된 군대를 육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일본에게 있어서 ‘공창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아울러 그들의 ‘전통’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일본의 공창제와 유럽의 공창제는 그 ‘결’이 달랐다(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여성들의 ‘선택의 자유’였다.

 

물론, 유럽의 경우에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압박(하층 여성들의 생계수단의 한계)이 있었기에 완전한 의미의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자유가 인정됐다. 이들은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로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업소에 감금되거나 족쇄를 차지도 않았다.

 

일본의 경우는 ‘여성’이 거래의 대상이 됐다. 여성을 사 왔기에 포주는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강제적으로 구속시켰다. 봉건 잔재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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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을 시찰하고 돌아온 일본의 엘리트들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공창제는 유지한다. 단,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근대적인 공창제로 발전시킨다.”

 

그들이 말한 근대적인 형태의 공창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강제적인 성병검사

둘째, 성매매 여성이 자발적 의지로 성매매를 하고, 이를 등록한다.

 

강제적인 성병검사는 당연한 결론이다. 만약 성병검사를 하지 않는다면, 공창제의 의미가 없다. 일본은 근대를 열어야 했고, 근대를 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력의 확충, 그 중에서도 해군 전력의 확장이다. 이때 일본의 파트너가 된 게 영국이다. 당시 영국 군사지도자들이 병사들의 생활관리에서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게 바로 ‘성병’이었다(농담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군은 매독과의 전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영제국의 근간인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또한, 곁다리인 육군의 전투력도) 이들은 공창제를 유지해야 했고, 전문여성들의 성병검사를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했다. 만약, 이걸 유지하지 못한다면 ‘해가지지 않는 나라’는 안으로부터 붕괴될 것이 분명했다.

 

제국을 붕괴 직전까지 밀어붙인 자는 영국 내에 있었다. 바로 1세대 페미니스트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조세핀 버틀러(Josephine Butler)였다. 이 똑똑한 여인은 영국 군사지도자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가장 오래된 악의 뿌리이며,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것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

 

매매춘에 대한 조세핀 버틀러의 주장이다. 그녀는 성매매 추방을 ‘신의 사명’이라고까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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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ine Butler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성매매는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거래가 아니다. 성매매는 여성이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다. 여기에 애정이 동반되지 않는 섹스를 추구하는 남성들의 비윤리성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되는 거다."

 

그녀는 성매매 여성들의 보호와 함께 성매매 여성들을 구제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나온 결과가 ‘폐창운동’이다.

 

“창녀촌을 없애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폐창 운동이 먹혔다는 점이다. 그녀는 결국 영국 내의 창녀촌을 없애게 된다(공식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건 보여주기 식이었다.

 

영국 본토에서는 공식적으로 유곽을 없앴지만, 식민지에서는 공창제와 유곽을 계속 유지했다(상식적으로 영국 식민지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이 모든 걸 시찰하고 돌아 온 일본은 성병검사와 함께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함을 확인한다.

 

일본은 1900년 ‘창기단속규칙’을 발표한다. 이 규칙의 핵심은 전문여성으로 활동하고 싶은 여자의 경우 호주와 친족의 허락을 받은 뒤 경찰서에 비치된 창기명부에 등록을 해야지만, 영업을 할 수 있게 했다. 겉으로 보면,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전문여성을 직업으로 택한 것 같지만, 그때까지 일본은 봉건의 잔재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지금도 일본 여성의 인권은 선진국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에게 팔렸거나, 인신매매의 의해 집창촌으로 들어갔고, 이 곳에서 반강제적으로 영업을 뛰어야 했다.

 

이 즈음해서 일본 내, 그리고 일본 본토 밖(조선, 뒤이어 대만과 만주까지)까지 집창촌은 급속도로 확장됐고, 그 규모도 점점 커져갔다.

 

이유는 전쟁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은 급속도로 군대를 확장했고, 이 확장된 군대를 가지고 식민지 개척에 나서게 된다.

 

병사의 숫자가 늘어나자 일본 군부는 이들의 전력 유지를 위해 집창촌의 확장을 원하게 된다. 공창제를 확대해야지만, 이 군대의 ‘수요’를 맞출 수 있고, 이들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병’도 관리해야 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어디서 일어났냐는 거다.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전쟁이라면, 일본 안의 집창촌을 늘려 가면 상관없겠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전쟁은 본토 밖에서 치렀다. 일본 군이 해외로 뻗어나가면 나갈수록, 식민지가 확대되면 확대 될수록 공창제는 ‘나라 밖’으로 확산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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