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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결심했다. 본 각종문제전문가(이하 전문가)가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가 될 예정인 '진화심리, 세상이 10배는 더 잘 보인다' 집필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필에 들어가면서 일부 내용을 올린다. 여러분들은 정말 '계' 탄 거다. 150여 년 전 당시까지의 인간사고 체계를 뒤엎어버린 다윈의 '종의 기원' 발간 이후 전 은하계의 지성 세계를 뒤흔들 이 새로운 저서 발간에 앞서 여러분들은 남들보다 먼저 이를 눈치채고 주위에 '썰'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로또를 맞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진화 심리를 토대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분석해 보겠다.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있는 '부부싸움', '애정 문제', '자녀 문제'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이 다 훤히 보인다. 놀랍지 아니한가.

 

오늘은 맛보기로 최근 후끈했던 '반려견 논란'을 분석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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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연예인의 반려견에 물린 이웃 주민이 사망하면서 반려견 관리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개는 사람을 물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공통 불후의 욕 '개새끼'가 어떻게 전 인류 입에 짝짝 붙는 욕이 됐는가 살펴봄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놀랍지 아니한가. 욕으로 이 문제를 후련하게 해결해보겠다는 게. 본 전문가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경이로운 연구라 하겠다.

 

우선 '진화 심리'라는 걸 가볍게 알아보자. 2~3살 때 처음 뱀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난생 처음 보는 꾸물거리는 생물이 뱀인지 뭔지 모르면서도 말이다. 진화심리라는 게 그런 거다. 우리 심리의 많은 부분이 수십 만 년의 진화에 의해 형성됐다는 것이다.

 

 

태어나부터 억울한 '개의 자식'

 

벌써부터 '개새끼'와 진화심리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따지고 있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부 인간들에겐 평생 아버지 엄마를 부르는 것보다도 많이 입에 올리는 '개새끼'라는 욕. 우리나라뿐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언어에 그 욕이 존재한다. 영어에는 암컷 개(bitch)라는 단어를 사용해(수컷 개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 'son of bitch'다. 중학교 때 그 욕을 처음 듣고 미국 애들은 왜 '해변가의 개'라고 욕할까 생각한 적 있다. 미안하다. 아재 개그다.


각설하고, 왜 인간들은 혐오스런 '뱀 새끼'라든지 교활한 '하이에나 새끼', 못생긴 '꼴뚜기 새끼' 등등등, 상대방이 몹시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욕을 할 수 있음에도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를 데려다 그렇게 육덕 지고 소름 끼치는 발성으로 욕을 할까. 하긴 듣는 입장에선 '기린 새끼'나 '꿩 새끼', '고양이 새끼'라는 욕에선 그렇게 모욕감을 안 느낀다. 최근 '쥐새끼'나 '닭'이 유행을 타고 있지만 유구한 역사의 '개의 아들'이라는 욕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개의 역사'가 그 해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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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와와도 세퍼드와 부부가 될 수 있는 이유

 

개들의 조상은 '회색 늑대'라는 게 이쪽 업계의 정설이다. 개와 회색늑대의 유전자는 99.6%가 같다. 유전자가 98% 이상 같은, 사람과 침팬지보다 더 가깝다. 분자유전학 분석 결과 개는 아주 최근인 3만 5천 년 전(진화의 역사에서는 정말 찰나다) 분화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본격적으로 인간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만 2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

 

개의 학명은 카니스 루프스 파밀리아스다. '가족', '친근한'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파밀리아스가 있는 걸 보면 개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중딩 생물시간으로 잠깐 돌아가 보자. 생물학계의 거두 린네가 개발한 생물의 분류법 '계-문-강-목-과-속-종'이 머나먼 의식 속 아련히 떠오르시나. 여기서 다른 분류는 학자들 몫이지만 우리도 '종'에 대해서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종'이란 번식 활동을 통해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생물의 군집이다. 여기서 번식 활동이라고 하니 '특정 행위'를 연상하고 있는 일부 여러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번식 활동으로 '행위'를 하는 동물은 아주 극히 일부다. 일례로 아메바는 세포가 짤려 나와 후손이 된다. 그것도 번식 활동이다. 너무 심심하지?

 

중요한 것은 후손을 남길 수 있냐는 거다. 너무 외로운 수컷 당나귀와 왠지 모르게 몸이 꼬이는 암컷 말이 물레방아간 옆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눈에 불꼿이 튀었다. 밤을 불태웠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 암말의 배가 불러오더니 덜컹 힘이 아주 좋은 애가 태어났다. 노새다. 그러나 수컷 노새는 씨 없는 수박이고 암컷 노새는 불임이다. 후손을 만들 수가 없다. 이렇게 종이 다르면 어케어케 지들은 애를 만들 수 있어도 그 이후는 없다. 호랑이와 사자를 억지로 한 방에 넣어서 만들은 라이거, 타이온 등은 그렇게 대를 이을 수가 없다.

 

개는 늑대의 아종이다. 멀지만 같은 종이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진화가 몇십만 년 계속되면 아마 다른 종으로 나뉘겠지만 현재로서는 서로 만나 후손을 만들 수 있다.

 

 

머리 굴리는 놈, 말 하는 놈, 도구 만드는 놈

 

여기서 본 각종문제전문가의 자랑인 '삼천포로 빠지기' 기술 들어간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다. 머리 좀 굴리는(사피엔스) 호모 종이라는 뜻이다. 우리와 같은 종은 사실 무척 많았다. 대표적으로 호모 하빌라스(말 좀 하는) 호모 에렉투스(도구 좀 만드는)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멸종됐다. 그 중 가장 최근까지 남아 있었던 호모종이 네안데르탈인이다. 유럽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은 3만 5천 년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진 턱, 뒤로 비스듬히 경사진 이마, 움푹 들어간 눈덩이, 꾸부정한 자세.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영화 속에서 그려진 모습이다. 이렇듯 인간은 네안데르탈인을 약간 무식하고 난폭한 데다 다소 지능이 떨어진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최근 분자유전학 연구 결과, 유라시아 인간들의 4%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로 남녀 간 교류를 했다는 거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피플은 리버사이드대 인류학 교수인 이상희 저 '인류의 기원'을 보시라.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안 된다. 책은 꼭 사서 보는 거다. 향후 본 전문가의 책도 그렇게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인간과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라고 쓰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한 거다. 그러면 후손이 안 생긴다. 네안데르탈인의 학명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다. 같은 호모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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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놈은 없다, 우월한 개도 없다'

 

다시 '개'로 돌아오자.

 

개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진화가 철저히 왜곡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진화를 얘기할 때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적자생존'. 영어로는 Survival of fittest 다. 그러나 이 용어는 잘못 이해되면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적자(fittest)를 우월한 존재로 착각하는 것. 이 같은 몰이해의 결과 사회진화론 같은 해괴망측한 이론이 등장하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인종 간의 우열이 있다는 그릇된 사고가 서양세계를 중심으로 만연했던 것.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 우월론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 결과 인종청소 같은 경악스런 범죄까지 등장하게 되고.

 

여기서 적자라는 것은 환경에 대응한 적자라는 것이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누가 적자가 될 것인지도 계속 바뀌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면 후손을 남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는 게 생물의 숙명인 것이다. 진화는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난 여우인가요, 개인가요? "넌 볼세비키 여우야"

 

개의 진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환경은 바로 인간이다.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줄 때 개의 표정을 보라. 가히 오르가즘의 절정에 다다른 모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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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살면서 개는 모습부터도 서서히 바뀐다. 친척인 늑대와 달리 꼬리가 말리고 귀가 늘어지고 외피에 점무니가 생길 뿐 아니라 다리가 짧아지고 두개골이 넓어진 동물은 무엇일까. 바로 개다. 개와 다른 포유류들과의 차이점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보통 신체특징의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뤄진다고 한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먹기 위해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 등에서 알 수 있다. 본 전문가의 '엄청 잘생김'도 마찬가지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개의 특징의 변화는 도대체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일까. 도무지 잇점을 찾아볼 수 없는 변화다.

 

종종 아무 연관 없는 행위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볼세비키 혁명이 진화론의 새 장을 연 것. 20세기 초 러시아의 유전학자 벨랴예프는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모스코바에서 시베리아로 추방당했다. 소련 정부는 이 학자에게 노동을 시키는 대신 돈벌이에 이용하기로 했다. 주력 수출상품인 모피 생산증대를 위해 모피동물 품종개량국이란 연구소를 세워 이를 맡긴 것. 그 연구소의 제일 목표는 최고급인 은빛여우 모피생산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야생동물인 은빛여우는 우리에 가둬 기르면 번식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쉽게 말해 양식이 안 되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가둬 기르면 왜 번식이 힘든가는 다음에 알려주겠다. 너어무 친절하다 아니할 수 없다)

 

벨랴에프는 여우를 길들이는 것(인간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에 목표를 뒀다. 생후 1개월 된 새끼에서 완전 성체가 될 때까지 발달과정에서 어느 정도 길드는지 측정한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잘 길들여지는 여우들만 선별해 번식시켰다. 40년 동안 4만 5천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마침내 신품종을 개발한 것이다. 이 신종 여우들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혀로 핥기를 좋아했다. 생후 1개월도 안 된 새끼도 똑 같았다. 이 여우 유전자들에 있는 진화심리가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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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만 변한 것이 아니다. 꼬리가 말리고 귀가 늘어지는 등 마치 개와 같은 형태로 변해간 것이다. 이는 진화학계의 커다른 미스터리를 풀어낸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그간 환경 적응과 상관없는 변화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의문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모든 생물의 신체는 서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가설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곳이나 어느 기관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하면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유전자 분석으로 검증되고 있다.

 

위와 같은 개의 진화는 그나마 환경(인간과의 교류)에 대응한 자연스런 진화였다. 문제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인위적인 진화(이건 사실 진화가 아니다)'가 오늘날의 개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슬픈 동물의 아픈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나 보다. 지친다. 다음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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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일부 여러분들이 요새는 '개의 아들'보다는 'ㅈ의 후손' 혹은 'ㅆ의 후손'이 더 많이 사용된다고 반항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다. 외국말은 '너를 ㅆ할거야'라고 행위를 사용해 욕하지 우리처럼 자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한국인의 창의성은 경이롭기만 하다.

 

 

 

편집부 주

 

위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바,

독자투고 및 자유게시판(그 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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