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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시선]호구

2018-02-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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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돌아온 걸 환영할 겸 가족끼리 외식을 하기로 했다. 군에 있는 아이와도 시간을 맞췄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백숙을 파는 식당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있었다. 빈 자리에 주차를 하는 중에 주차안내인이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고 주차위치를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알았다고 대답하는 순간 충돌이 있었다. 후진으로 차를 빼던 BMW가 조수석을 추돌했다. 부딪히는 소리에 비해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충격과 소음에 어리둥절해 하는 식구들도 괜찮아 보였다.

 

내려서 차량을 확인하니 범퍼와 조수석 쪽 휀다가 우그러 들었다. 상대방 운전자도 당황한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이었나 보다. 뭐 별일이 아니다. 사람은 괜찮고 차는 맡겨봐야겠다고 말했다. 별일 아니니 보험접수하고 접수번호만 주면 된다. 대물만이냐고 물어온다. 명함을 보니 병원실장님이다. 대물이면 된다.

 

대화 중에 작은 남자아이가 운전자에게 아빠 사고난 거냐고 물어온다. 아이가 우선이다. 아이는 괜찮은지 묻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애초의 목적대로 식사를 했다. 가벼운 접촉사고로도 입원진료를 받고 상당액의 합의금을 받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마음 한 켠에 불로소득에 대한 부러움도 조금 생기지만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인지를 당사자를 앞에 두고 입밖으로 내놓지 않을 정도의 융통성은 있다. 어쩌면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는 비겁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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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잘 상황을 마무리한 것 같다. 20년전에 보험사 직원에게 진단 합의금에 대해 들었다. 사람을 보고 액수를 결정한단다. 기본으로 끊어주는 2주진단이 나왔을 경우 보통사람은 7~80만 원, 진상은 100만 원, 택시기사는 120만 원, 특정회사의 버스기사는 130만 원으로 합의한다고 했다. 세 식구가 진상이 되면 제법 쏠쏠한 몫돈이 생길 기회였다. 보험이 접수되면 상대방 운전자와 마주칠 일도 없고 시스템을 상대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생겨날 여지가 적어진다.

 

그래도 옳지 못한 일이다. 옳지 못하다는 걸 아는 일을 욕심 때문에 할 정도로 궁핍하지는 않다. 사고처리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서 가족과의 식사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상대방 운전자의 불운과 행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딸 아이는 어쨌거나 세계일주를 하고 왔고 엄마는 밥을 먹이는 길고양이가 아홉마리다. 가난한 사람들 중엔 우리가 제일 잘 사는 것 같지 않냐고 가족들에게 농을 건넸다. 반응이 좋았다. 반응이 좋으니 기분도 좋았다.

 

가끔은 가만히만 있어도 다른 사람들처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날려버린다. 천품이 온전한 선인이라면 오히려 그 편이 마음도 편하고 괜찮지만 그도 아니다. 무지해서 모르고 지나면 아까울 마음도 들지 않으련만 눈치는 제법 빠른 편이다. 후회를 막고 앞으로도 스스로 추하다 싶지 않게 살아가려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보상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온 발언이다.

 

5년 전 한참 심적으로 쪼들릴 무렵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가족들과 장을 보고 오는 길, 신호대기 중에 뒤에서 차가 추돌했다. 뒷 범퍼를 정통으로 받은 차는 다마스였다. 차를 보고,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상대방 운전자의 입성과 얼굴 표정을 보고 그냥 보내주었다. 한동안 목과 허리가 결린다는 아내를 달래야 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에게 조금 뻔뻔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는 데 두 달 쯤 걸렸다.

 

가진 것이 풍족한 사람은 드물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이 많은 이건희도 형제들과 재산싸움을 했다. 최고의 권력을 쥐었던 사람들도 사흘 굶은 거지처럼 돈에 집착을 보였다. 사람 사는데 우열이 어딨겠냐만은 그래도 그들보다는 마음을 여유롭게 산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승리고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귀다툼을 하며 생존경쟁을 하고 우열확인을 해야하는 삶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다.

 

다음날 카센터를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공업사에 차를 맡겼다. 삼일 후 사고 상대방에게 연락이 왔다. 수리비 견적이 많이 나왔으니 좀 사정을 봐달란다. 천성이 고결하고 선해서 빛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숨이 나왔다. 우리 식구들 병원검사도 안 받아 보고 보혐료 많이 나오지 말라고 렌트도 안 하고 있는데 너무한다는 생각이 말로 나왔다. 조금 목소리가 줄어들지만 자기 힘든소리를 하면서 보험 할증이 안 나오게 부탁한단다. 공업사 견적이 170만 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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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낡았다고 부품과 공임이 싸지지는 않는다. 나한테 왜 이러나 싶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던 꼬마아이를 떠올렸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생각보다 많이 밀리고 깨졌단다. 미수선으로 해서 네가 고쳐보던지 해서 견적을 좀 낮춰달라는 부탁을 했다. 딱 백만원 어치만 고쳐가지고 왔다. 운행하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될 일이다. 조금 삐뚤어진 전조등과 살짝 균형이 어긋난 보닛을 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공업사에서 차량이 이미 해체된 상황이라 친구가 가져오지 못했단다. 안철수의 말대로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업사로 차량을 알선하면 공임의 10%를 먹는 공생관계다. 공업사는 일부러 보험사에 견적을 넣는 시기를 수일간 미룬다. 하루면 고칠만한 고장도 며칠이 걸리는 이유다. 그래야 공생관계의 한 축인 렌터카 업체도 먹고 살고, 비싼 수리비에 놀란 차주가 차량을 자가수리한다고 할 때 보관료를 청구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열 명 중 일곱 명이 자동차 관련일로 먹고 산다는 말이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