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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인천 사태는 당시 운동권의 역량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습니다. 하늘같던 공권력이 시위대에 밀리는 기현상까지 빚어졌지요. 이 상황은 고스란히 TV에 비춰졌습니다. 페퍼포그 차에 매달린 전경이 시위대에 각목으로 엉망으로 두들겨 맞는 모습은 9시 뉴스 내내 반복됐습니다. 당연하게도 정권은 ‘불순분자 일망타진’에 나섭니다. 경인 가도에 늘어선 공장들에는 가짜 주민등록증 들고 ‘위장취업’한 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고 경찰은 그들을 꼼꼼히 찾아내 수갑을 채우게 됩니다. 그 와중에 한 여학생이 부천경찰서에 끌려왔죠. 권인숙.

 

여기서 그녀가 당한 일과 이후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읊어댈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녀는 지옥을 경험했고 악마에게 상처받았습니다. 단어 자체도 떠올리기 싫은 ‘성고문’이었죠. 그런데 그녀가 이를 세상에 폭로하고자 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건 그녀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예 머리 싸매고 드러누웠고 언니는 끔찍한 피해를 당한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네가 그것을 계속 문제로 삼고 나온다면 부모님이 아마 돌아가실 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내가 너를 죽여 버리겠다"

 

권인숙의 기록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성고문 폭로 내용을 읽을 때보다 더 참담했습니다. 아무리 정권이 두렵다고 해도, 전두환의 세상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해도,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치솟는 패악을 당한 가족에게 또 다른 가족이 저토록 극단적인 말까지 해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정권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물고문 전기고문을 폭로하고자 했다면 권인숙의 언니는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공포는 정권 뿐 아니라 그들이 수십 년 살아 온 세상 그 자체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여자는 유리 같은 것이며 한 번 금가면 끝”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던 시기, 집에 침입한 성폭행범에게 변을 당해도 남편이 그를 사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가정이 파괴된다 해서 ‘가정파괴범’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썬데이서울 류의 잡지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어떻게 결혼에 골인했는가’에 대한 기사가 종종 실렸는데 놀랍게도 부인을 납치, 감금하여 '며칠 동안 사랑을 호소'해서 결혼했노라는 인터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호소’했을지는 뻔하겠지요.

 

권인숙의 부모와 언니는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부모는 투사로서의 딸의 인생을 넘어서 여성으로서의 딸의 구만리같은 여생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했을 겁니다.

 

“왜 그 많은 여대생 중에 걔만 당했대?” 하는 쑥덕거림이 일찌감치 귓전을 때렸을 것이고 “당한 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그걸 동네 사람들도 아니고 온 대한민국에 광고를 낼 수가 있어. 참 독하다.” 하는 수군거림이 천둥처럼 들렸겠고 “빨갱이 같은 애가 엄한 경찰 옭아매려고 저러는 거 아냐? 보통 여자가 저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봐. 어디 입끝 하나 벙긋 하겠어?” 하는 중얼거림이 번갯불처럼 온몸을 지져 댔겠죠.

 

그러나 1986년 7월 3일 권인숙은 그녀의 용기에 호응하여 달려온 변호사들과 함께 문귀동을 고발합니다. ‘성고문’이라는 끔찍한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죠. 처음에는 검사들이 의욕을 과시합니다. 권력의 핵심에 가 있는 선배들에게 연락해 이건 한 번 해 보겠다고 기염을 토했고 법무부장관도 그렇게 지시를 내립니다만 ‘관계기관대책회의’가 모든 판을 뒤집어 놓습니다.

 

기껏 써 놓은 수사 보고서는 휴지조각이 됐고 ‘성고문’은 ‘성모욕’으로 바꾸고 운동권 학생들이 ‘성(性)을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으며 저 문귀동이라는 악마 새끼는 성고문은 커녕 “티셔츠를 입은 가슴을 몇 차례 쥐어박은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검찰청 뜰을 오가는 도둑고양이도 낄낄댈만한 거짓말을 늫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0년 이상 경찰에 봉직하여 성실하게 근무하여 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들어 문귀동을 ‘기소유예’ 한다고 선언합니다. 검사가 기르던 애완견이 그 허벅지를 물고 “이 개새끼야.” 부르짖을 판이었지만 이에 가장 절망한 사람은 권인숙이 아니라 오히려 권인숙의 가족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는데...”

 

참 대한민국은 잔인하고 뻔뻔했습니다. 보도지침이라는 독침에 꿰뚫려 있던 언론은 정권의 발표를 받아쓰기할 뿐 아니라 두어 수를 더 뜹니다. 1986년 7월 18일 경향신문 사설은 그 하이라이트라 할 만합니다.

 

“첫째로 피의자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피의자와 경찰의 문제에 개입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의도는 반 정부 반 공권력을 유지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둘째로 피의자와 그 주변 반체제 세력의 의식화 문제이다. 검찰 발표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이들 세력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획책하고 있다.

 

혁명을 위해 성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격 세력의 이와 같은 전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간의 비난을 유도하여 공권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 있다. 셋째로 부분을 통해 전체를 매도하는 일반적 의식 성향에 대한 경계이다. 어떤 한 조직의 구성원이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그 조직 전체를 성토의 대상으로 삼은 시류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만 해도 한 수사 경찰관의 과격한 취조 태도가 사건화된 것이지 경찰 공권력 전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 이 사건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둘째 이 사건을 어떤 의도를 충족시키려는 도구로 사용한다. 셋째,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개인의 문제지 조직의 문제로 확대시켜서는 안된다. 여기에 검찰이 문귀동을 기소유예한 논리를 덧붙여 보면, 넷째 ‘문귀동은 성고문 문제를 일으키긴 했으나 유능하고 성실한 경찰이었다.’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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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2년, 한 세대가 흘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웬만큼 마르고 닳을 만큼 시간이 지난 2018년 벽두에 우리는 어디 운동권 학생도 아니고 현역 검사를 선배 검사가 성추행한 사건, 그리고 그 외에 잡다하고도 쳐다보기도 싫은 사건들의 폭로 릴레이를 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제 검찰 내에서 일하시기가 좀 힘드시겠네요. 이런 말 자체가 말도 안 되지만" 이라고 안타까워하던 손석희 JTBC 사장의 실언에 가까운 우려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1986년 경향신문의 사설의 그림자가 먹지를 대고 그린 듯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거나 부장검사라는 작자가 폭로 앞에서 ”피해를 당했으니 서울로 발령내 달라, 대검 보내 달라, 법무부 보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신다면 그런 요구는 도와드릴 수 없음을 깊이 양해 바랍니다.“라면서 피해자가 ‘성을 출세 도구화’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나 “안태근 국장이 일 하나는 잘했다.”는 소리가 부끄럼 없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부모님은 주변에서 소문난 부부 금슬로 유명했고 딸을 깊이 사랑한 분들이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서지현 검사의 글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여직 생존해 계셔서 서지현 검사가 선후배 동료검사들의 성추행 퍼레이드를 폭로하겠다고 선언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과연 32년 전 위장취업자 권인숙의 가족과는 다를 수 있었을까요. 달랐다면 얼마나 달랐을까요. 과연 그 차이를 우리는, 우리 사회는 자신할 수 있을까요.

 

1986년의 여대생 권인숙이 2018년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권인숙 위원장의 가슴 속에서는 몇 년 전 히트를 쳤던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이 재연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86년의 여대생 권인숙이 2018년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장에게 묻는 거지요. “거기도 그럽니까?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저걸로 뭘 얻으려 한다고 쑥덕거리고 나쁜 사람 만들고, 정작 가해자들은 기억에 없고 그저 몇 번 툭툭 친 거 뿐이고, 지금까지 성실히 업무에 임해 온 사람이니 용서되는 그런 세상인가요? 그래도 30년이 넘게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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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위원장이 32년 전 법정에 섰을 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온몸을 짜내 쓰고 읽었던 변론의 일부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32년 전의 자신에게 읊어 주고 대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경찰과 검찰과 사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하여 말한 것은 우리 국가와 사회가 권양에게 가한 온갖 부도덕하고 비열한 박해와 일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전반적인 도덕적 위기의 한 징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본 변호인단은 확신하거니와 이 도덕적 위기야말로 그 어떤 군사적, 정치적 혹은 사회 경제적 위기보다도 앞서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인 것이며, 이것이 정당하게 극복되지 아니하는 한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앞날은 실로 암담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에서 현재의 형사가 과거의 형사에게 했던 대사처럼 이렇게 덧붙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뀔 수 있습니다 .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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