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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에게 가업을 물려받을 필요가 없는 둘째 아들이란 위치는 무척 쾌적했을 것이다. 지금은 유대교 커뮤니티 지나고그(요덴뷔르트) 차기 수석 랍비 자리에다 아버지의 사업체까지 떠맏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망한다.

 

아버지 미겔 스피노자 역시 큰아들처럼 폐질환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피노자의 나이 21살 때였다. 이제 졸지에 가업을 이어받게 된 스피노자에게 예상치 못한 공격이 들어왔다.

 

여동생이었다.

 

지나고그는 보수적인 종교공동체였고, 자치구역이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의 경제법에서조차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여동생은 유대인이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네덜란드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유산상속에서 딸만 배제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는 인류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였다.

 

스피노자는 법정에서 여동생 측에 언변으로 압승을 거뒀다. 오빠와 상의도 없이 소송으로 덤비기에 받아 준 결과였다. 그러나 정작 소송에서 이기고 나자 모든 게 우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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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란 혈육의 몫을 빼앗아 뭐할 것이며, 재산은 있어봐야 어쩔 것인가? 어차피 재산은 그에게 짐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자본금과 경영이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역상에게 신용은 곧 그의 자산이다. 상인 가문 출신에게 재산 상속은 가업 승계와 동의어다. 자산보유량과 경영은 함께 굴러가는 바퀴다.

 

스피노자는 재산권을 포기하고 여동생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러나 여동생에게 불의의 뒤통수를 맞았다. 그녀는 재산만 원했다. 경영 책임은 스피노자에게 떠맡긴 채 자본금을 모두 차지해버렸다. 이건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자금 없이 경영권만 떠안은 스피노자. 남동생을 이끌고 고군분투했지만 적자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조용히 진리를 탐구하는 삶을 꿈꿨던 스피노자에게 2차 파도가 공격해 들어왔다.

 

유대인 공동체는 기어이 스피노자를 랍비로 만들 생각이었다. 지나고그의 원로들은 스피노자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아침마다 유대교 기도 낭송으로 이웃 유대인들을 깨우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인간 수탉이었다.

 

죽을 맛이었다.

 

경영 적자는 쌓여가고 아침마다 자기 생각엔 틀렸다고 판단되는 구약을 낭송하던 스피노자.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애초에 경영을 싫어했고 돈놀이는 더욱 혐오했다. 성공한 상인의 후계자답지 않게, 스피노자는 정직한 노동을 좋아하는 성품이었다.

 

법정에서 스피노자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스피노자는 일단 파산신고로 신용불량 등록을 해 놓았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물려준 경영권을 '아버지가 남긴 빚'이라는 프레임으로 탈바꿈시켰다. 뒤이어 자식이 빚마저 인수인계할 수 없다고 주장해서 관철시켰다.

 

그렇다면 여동생을 제외한 온 가족이 무일푼이 된다. 그래서 어머니 몫의 유산은 지켜내기로 했다. 어떻게?

 

편모 고아에게 아버지는 없는 존재

 

그러나 살아계신 어머니는 현실의 존재

 

라는 기가 막힌 논리였다.

 

빚은 돈이며 돈은 화폐다. 화폐는 기본적으로 '이 화폐로 얼마의 현물을 바꿀 수 있다'는 현물성을 근거로 한다. 비트코인이 논란인 이유가 현물 근거가 없어서이다. 법정분쟁에 존재(어머니)와 비존재(아버지)의 철학적 개념을 끌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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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 측 변호인단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질 수가 없는 소송이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독보적인 말솜씨로 그들을 유린하며 빚에서는 해방되고 유산은 지켜내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그럼 빚은? 빚이라는 게 안 갚아도 되는 것인가? 이거 모럴 헤저드 아니냔 말이다.

 

그 자신이 유대인이었던 스피노자는 유대인 금융업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불로소득을 혐오했기에 죄책감도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먹고 사는가?

 

스피노자에게는 이미 렌즈세공기술이 있었다. 일한 만큼 렌즈를 얻고, 렌즈의 품질만큼 값을 받는 정직한 밥벌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 난리통을 통과하며 그는 실연을 겪게 된다.

 

스피노자는 이 때 클라라라는 소녀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스피노자는 부드럽고 지적인 미남에 부유한 상인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기껏 지킨 재산권을 여동생에게 주고 빚쟁이가 되더니, 치열한 법정소송을 거쳐 겨우 렌즈세공사로 먹고 살 미래를 남겨놓았다.

 

한 번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렌즈세공은 고급노동이지만 어쨌거나 노동이었다. 클라라는 노동의 삶을 선택한 스피노자를 재빨리 탈출했다. 그녀는 경영권을 물려줄 사업체가 있는 집안의 대학생에게 시집갔다.

 

우리는 클라라를 속물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작 스피노자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자본가의 아내로 살고 싶은 클라라의 욕망을 선악과 귀천으로 구분짓지 않았다. 개인의 욕망은 범죄가 아닌한 불가침의 영역이다. 누구나 자신의 욕망에 해명할 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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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조금 고독한 표정의 스피노자

 

하지만 스피노자는 조금 고독해졌다. 그리고 그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성찰>을 읽는다. 철학적 상상력의 스케일을 맛본 그는 진정한 해방을 맞기 위한 일전을 준비했다.

 

유대 공동체와의 결별이 남아있었다.

 

'나의 뜻대로 철학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나'

 

스피노자는 '나 자신'을 쟁취하지 않으면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확신했다. 데카르트는 선언했다 :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생각으로 존재하는 스피노자여야 한다. 그의 생각에 구약은 거짓이었다.

 

스피노자는 구약에 명시된 십일조를 거부하면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을 포함,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 포진한 유대인 사회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대 랍비들이 스피노자를 논파하고 회개시키기 위해 총출동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의 논쟁에서 모조리 거꾸러졌다.

 

유대교는 모세, 기독교는 예수,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종교다. 다시 말해 그들이 모시는 신은 바로 그 분 하나다. 스피노자는 유일신의 성격부터 파고들어갔다. 신이 있을 수는 있다고 치자. 왜 남성의 정체성을 지니고 인간사에 불공평하게 개입하며, 이다지도 불완전한 세상을 내버려두는(혹은 세상을 불완전하게 창조한) 인격신이어야만 하는가?

 

이쯤 되자 카톨릭과 유대교의 대연정이 일어났다. 카톨릭 신부들까지 스피노자와의 논쟁에 참전했지만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말로 안 되면 이제 남은 것은 협박과 보복 뿐이었다. 스피노자 역시 자유는 공짜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질 집단적 폭력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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