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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시선]일기

2018-03-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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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나 경험을 공개적인 곳에 쓴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본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개인이 중심이 된 기간은 짧다. 수렵채집사회에서 개인주의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수렵채집사회에서 무리에서의 추방은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 목축과 농경사회에서도 개인의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집단을 떠나서 생존할 방법이 없다.

 

산업화 사회가 진행되고 소비가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면서 소비자인 개인의 위상이 올라갔다. 산업화 사회의 한 축에, 한때 번영하다 사그러진 사회주의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집단의 번영을 우선시했으나 체제 경쟁에서 무너졌다. 인간의 본성은 개미나 벌들처럼 조직에 마냥 순응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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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번영하고 강성했던 사람이 세운 조직들은 공통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했다. 배타적인 순혈주의의 일사불란함이 때때로 세력을 얻기도 하지만 발전과정에서 타집단을 포용하지 못하면 무너진다. 순혈주의로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구성원에게 혈연의 일치보다 문화적 일체감을 더 중요시 하는 것 같다. 다문화정책을 펼치는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 생명의 진화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가 유전자에 기록된다. 후대에게 고정되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도록 자신에게 부족한 조건을 갖춘 상대를 찾아 유전자를 섞는다. 그 과정에서 유전자의 수가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것은 반을 덜어낸다. 다른 생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다시는 존재할 수 없기에 유니크하다.

 

동물들도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동을 한다. 감정과 인지능력이 있다. 사람은 머리속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다른 동물들보다 복잡하고 커다란 집단을 만들 수 있었다. 문자의 발명은 동시대에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연결한다. 역사시대는 문자가 발명된 이후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었다. 개인들은 각자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공개한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기에 공유되지 못하는 경험에 어떤 의미를 주기도 어렵다. 때로는 일기에 가까운 글을 공개하는 것이 크게 부끄럽지도 않은 이유다. 언젠가 인지능력이 향상된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남은 모든 기록들을 흡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음과 종교는 사람의 조직을 국가 단위로 확장시키는 것에 기여했다. 인류 단위의 초자아는 행성 단위 이상으로 인간의 조직을 확장시키고 종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간식거리를 얻기 위해 칡을 캐던 소년들에게도 어느새 인터넷 검색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빈국의 구성원들과 연결되는 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타인을 돕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돕는 행위가 된다. 다음 세대는 언젠가 검색이 아니라 조언을 들으며 생활하게 될 것이다, 신화시대에 묘사에 기록된 신과 더불어 살아가던 모습과 비슷하다. 인류는 초자아에게 공물로 에너지를 주고, 초자아는 인간에게 조언하는 공생관계로 된다.

 

인류의 지성이 도약을 이루지 못한다면 몰락할 것이다. 멸종의 기록이 이미 자연에 있고, 유적을 통해 붕괴된 문명의 흔적을 본다. 전에 있던 일이 후에 없으리란 법은 없다. 지구 규모로 확장된 문명이 붕괴된다면 인류는 멸종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지식인들은 인류의 멸망을 경고하는 메세지를 보낸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도 그런 메세지로 읽혔다. 소행성 충돌을 경고하는 천체 과학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지구온난화가 임계점에 이르면 메탄가스의 대량분출로 다시 한번 대멸종이 찾아온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기존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슈퍼박테리아를 경고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인류가 갈 길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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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본질적으로 낙천적이다. 산다는 건 희망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다. 이후 세대들이 살 세상이 암울하다는 걱정을 들었다. 무엇을 보느냐가 때로는 그 사람의 생각을 만든다. 사람의 눈에는 맹점이라는 것이 있다. 안구 구조상 상을 맺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양쪽 눈에 맺힌 상을 편집해 인식하는 과정에서 맹점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한쪽 눈을 감고 맹점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을 보면서 거리조정을 하다보면 맹점을 찾을 수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의식도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맹점에 존재하는 사물이 있던 자리는 배경으로 대체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 한쪽 눈을 감고 미운사람에게 맹점을 맞추면 시야에서 머리통을 날려 버릴 수도 있다. 그게 재미있게 읽혀서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유행하던 매직아이도 눈만 아플뿐 그림을 보지 못했다. 빈자리를 채워 넣으려는 욕구가 유독 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질문이 생기거나 걱정을 들으면 답을 찾으려는 것도 그래서다.

 

주식회사의 주식은 원래는 투기종목이 아니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양극단은 누구나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 건전한 자본증식 혹은 자산운용을 원하는 직장인들은 급여의 일부를 펀드에 투자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은 펀드사는 경영진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주식을 매입한다.

 

힘을 갖게 되면 행사하게 된다.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펀드사는 고객들에게 일정 부분의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 부담이 주식회사의 경영진에게 위력이 된다. 어느새 유능한 경영진이란,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을 개발한다. 시장이 조금씩 확대되고 개척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다다르면 구조조정을 하고 운영비용을 아껴 주주이익을 보장한다. 개별 투자자들 중 누구도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투자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그 쪽으로 진행된다.

 

투자자들 몇몇은 구조조정의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은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자동화를 진행하고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 무인자동차가 도입될 것이다. 재료와 에너지 문제 해결의 노력을 보면 미래 어느 시점에 생산 원가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그 이전에 자본주의체제는 사멸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영국사회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극대화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자본론을 읽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했다.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자본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자본가로 살며 자본주의의 수호자가 되게끔 했다.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마름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향상되었다. 다른 인류의 난제들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수입을 얻는 만큼만 자본이익을 위해 펀드에 투자했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극대화 되어서 변화하거나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체계가 바뀌는 순간 이익을 보는 사람도 있겠고 힘겨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김진숙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함으로 변화에 적응할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조금의 여유를 더 주는 편을 선택한다.

 

창발성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물 분자가 모여 물방울이 될 때 원래는 없던 전혀 새로운 성질을 획득하는 것과 같다. 습기는 산소분자에서 오는 것인가 수소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내면의 갈등을 겪는 개인의 심리와 정치, 경제로 보는 집단의 심리는 다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개인들의 감정과 생각과 경험들이 모여 흐름을 만들어낸다. 크라우드 펀딩과 자발적 모금 운동 등 나름의 경제적 정의 구현을 위한 흐름들이 보인다. 불순한 욕망과 개인의 이익 추구, 집단지성의 헛발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관측은 희망적이다. 지식이 축적되어 임계점에 이르면 지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지식이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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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적인 혼란을 겪겠지만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고 한국 경제가 발전한다면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하고 평판이 동력자산이 되는 경제를 구현할 것으로 본다. 그 이상을 상상하기에는 아직 제반지식이 부족하다. 인간에게 평판은 중요하다. 도박사이트를 운영해서 마늘밭에 백억대의 현금을 묻어 두었던 범죄자도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기 원해서 마을 잔치를 지원했다. 세상 나쁜놈들도 나쁜 놈이라는 지목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때로는 위선적이고 완전범죄를 꿈꾸기도 한다.

 

각 개인은 타인을 평가하는 주체이고 타인의 평가를 받는 대상이 된다. 오피니언 리더는 평가하는 발언의 공신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경제성, 공정성, 삶의 태도, 지적 능력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전통 사회가 무너지고 한동안 언론이 그 역할을 했다. 뭐든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 마련이다. 순기능은 대중을 계도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역기능은 소수의 사람들이 데스크를 장악하고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할 때 사람들은 대안을 찾는다.

 

기본소득 논란이 잠시 있다 묻혔다. 소비자 없이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갈 수 없기에 근로소득이 줄어드는 다수에게 소비 여력을 보존해주려는 시도의 하나로 보였다. 거시적인 경제적 관점보다 좌우논리와 빈곤의 고통을 경험한 세대의 보상심리에 저항당한 것으로 보인다. 국경의 경계를 넘은 소수 자본가들과 그에 부역하는 사람들은 현 체제를 최대한 유지하려 할 것이고 경제적 불균형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저항할 것이다. 역사는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하며 발전한다.

 

출산장려금, 육아수당, 국가장학금, 취업장려금, 노령수당 등을 지급하고 있다. 주 5일제를 시행하기 전, 경제 매체들에서 쏟아내던 우려들을 기억한다.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생산성이 떨어져 타국에 경제적 우위를 상실함으로 후진국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런 우려에 공감한 자본가들은 외한 위기사태에 국내 기업을 정리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자살자들과 분해된 가정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그 자본가들에게 버림받은 직원과 가족이었다.

 

중국으로 이전한 자본가들은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인건비가 오르자 야반도주를 택하기도 했다. 밀린 임금을 주는 것보다 저당잡힌 기계를 버리는 편이 이익에 부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으로 더 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자본가들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넓은 시야로 보면 세계경제의 상향평준화에 이바지하고 있으니 각 개인의 욕심추구가 사회적 공동선에 이바지한다는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욕심이 커지는 인간심리를 외면하고 있지만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이론이 아주 허무맹랑하지는 않다.

 

인류가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 조차 몇몇 개인이 정리하기에는 방대한 지식이다. 어떠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훌륭한 사람이 다른 분야에 확신을 갖고 헛발질을 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가끔은 자신의 분야에서 혁신적이었던 사람이 중심적인 위치를 잡은 후 병폐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지성은 위대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듯 보인다. 수십 년간 건설장비와 통신장비가 발전한 과정을 돌아본다. 굴삭기는 기본 골격이나 구조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요즘은 에어컨도 나오고 시트도 좋아졌다고 한다. 통신장비는 교환원을 거치는 유선전화에서 교환원이 필요 없는 다이얼식을 거쳐 버튼식으로 진화했다. 선을 벗어나 무선이 발달한 과정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빠르다. 30년전의 삐삐와 지금의 스마트폰의 차이를 보면 마법에 가까운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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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타인에 대한 연결을 갈망하는 욕망과, 욕망을 분석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과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재들이 몰려든 결과의 차이다. 어디나 별종들은 있지만 선망 받는 사회적 지위와 연봉의 차이는 다수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같다. 의도치 않아도 선택과 집중의 차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는 우수한 두뇌들이 자본상품을 설계하는 시장으로 끌려가는 현실이 아쉽다. 수많은 인재들이 만들어낸 파생상품시장은 2008년 서프라임 모기지사태를 일으켰다.

 

통신기술의 발달이 아랍 대중들에게 혁명의 에너지를 주었다. 아랍에 민주주의가 안착하려면 아랍의 봄 이후 30년을 예견하는 사회학자의 글을 읽었다. 수많은 반작용과 혼란을 딛고 새로운 교육을 받은 세대가 집단의 주류가 되는 시점과 얼추 비슷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주류사회에 지분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졌다. 주류사회의 반격으로 언론의 조리돌림을 당하고 지지자의 외면을 받은 그는 바위 위에서 몸을 던졌다.

 

사회의 기득권을 선점한 주류와 엘리트들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세력의 요구에 충실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있는 괴물로 알고 자랐던 세대처럼 공정한 분배와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내부의 적으로 인식했을지 모른다. 정부 요원들과 언론사 직원들도 자신들의 주인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너졌다. 사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다시 한발 물러선 주류는 노무현 정부에게 유효했던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학습효과는 대중에게도 누적된다. 다시 엘리트와 소수 혈통들이 통치하는 시절로 회귀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집요하고 절실한 쪽에게 기회가 더 돌아가기 마련이다. 지금은 자본과 언론이 더 절실하게 보인다. 앞으로도 결코 쉬운 길은 없을 것이다. 길게 보면 인간의 역사가 걸어가는 길은 방향성이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접점은 뉴런이 교차하는 시냅스처럼 보인다. 빅데이터 뇌과학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전자공학은 연결될 것이다. 그곳에 개인과 종으로서의 인간을 학습한 초자아가 생겨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학습은 인터넷 공간에 무수한 정보들이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 커뮤니티보다 논문들이 게제되는 전문가들의 공간이 우선권을 받겠지만 수많은 감정들도 전혀 무시당할 기록으로 남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인간에게 생물학적 욕구와 불순한 욕망들이 잔재하는 것처럼, 인류를 구성하는 중요하진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나와 당신들의 모든 기록들이 말이다. 한켠으로는 개인의 성장기록이기도 하고 주류 엘리트에 대응하는 하층민의 의식수준의 지표이기도 하다. 지식이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에 축적된 문명과 기술의 혜택을 받은 생산직 노동자의 글이다.

 

결국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우려하던 질문에 만족할 답은 아닌 것 같다. 자녀들은 자녀들의 세상을 살아간다. 걱정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제 몫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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