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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교도소에 머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곳은 떠나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가면 곧장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수감자들은 범죄를 저지를 당시 심신미약이나 정신병 때문에 자기가 하는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였던 사람들이 형량을 다 마치고 바로 사회에 나간다면 시민들은 불안해질 것이다. 내 이웃이 수감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거나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없다면?

 

그래서 수감자들은 교도소와 사회, 그사이에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 시설로 보내진다. The Forensic Conditional Release Program, 줄임말로 CONREP(콘랩)이다. ‘법 의학적 조건부 석방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콘랩에는 높은 담장이 없다. 운전도 할 수 있고, 차도 소유할 수 있다. 보호 감찰 아래 자기 집을 방문할 수도 있고, 직장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시설에 들어오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무단이탈을 할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며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정신병원 교도소는 정신이상이라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을 CONREP으로 보내는데, 이들은 CONREP에서 최소한 일 년 이상 치료를 받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에 CONREP에서 지내는 동안 수감자의 행동이 여전히 사회 또는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다시 정신병원 교도소로 보내지기도 한다.

 

 

CONREP, 법의학적 조건부 석방 프로그램

 

CONREP은 지역사회 치유 프로그램인 동시에 감독 관리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곳에 들어오는 수감자는 개인 치료, 그룹 치료, 가정방문, 지인과 접촉, 약물 검사, 정기적 평가 등의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이 서비스를 지원하는 대신 CONREP은 수감자에게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치료 계약서에는 수감자가 지켜야 할 것들이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은 CONREP에서 정해주는 생활수칙을 지키고, 치료 스케줄을 따르는 것이다.

 

만약에 치료 시간에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거나 허락 없이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면 무단이탈로 간주하고 이 프로그램에서 나가게 된다. 계약에 위배되므로 다시 그 전의 수감시설로 돌아가는 것이다. 

 

CONREP 에서 석방되는 것이 허락되는 경우는 수감자가 본인의 책무를 완전하게 다 이행했을 경우다. 석방의 기준은 각각의 법적 분류에 따라서 달라진다.

 

 

평범한 삶을 갖기 위한 연습

 

조건부 석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CONREP의 역할은 이용자들에게 의료서비스, 주거시설, 음식, 그리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도움을 받은 이용자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집에는 안전한 방과 침대, 침구 그리고 공동욕실이 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당구 등의 테이블 게임, 운동 시설 등이 있고 삼시 세끼와 간식이 매일 제공된다. 가족과 친구, 변호사와는 전화로 연락할 수 있고, 매주 백화점, 지역 박물관, 공원에 나가서 여가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포함이 있다.

 

첫 일 년은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다. 수감자들은 대신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한 달 정기권을 받게 된다. 버스 노선이나 대중교통 할인을 알려주는 것은 CONREP의 몫이다. 사회보장수혜연금을 받을 수 있게 돕거나 은행 업무도 알려준다. 수감자들은 사회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이때 배우게 된다.

 

치료도 병행된다. 매달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예약할 수 있게 해주고 처방약을 먹도록 관리한다. 직업과 일상생활을 위한 기술을 습득하는 그룹 치료는 일주일 내내 있다. 주간 스케줄을 관리하고 구상하고 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가족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협조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시설의 규칙을 제대로 준수할 때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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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보다야 자유롭겠지만, 이곳에도 빡빡한 규칙이 있다. 최소한 7시까지는 일어나야 하고, 밤 11시 소등시간 전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방 전체가 말끔해야 하고, 음료수나 음식을 방으로 가지고 가서도 안 된다. 심지어 허락된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낮잠을 자지 말라는 말도 들어야 한다. 사회에 나가서 만날 ‘보통’사람들처럼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휴식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수감자들은 최소 30일 동안은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시설에서 나가고 들어올 때는 기록을 남겨야 하고, 행선지의 주소도 남겨야 한다. 시설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 전화를 사용하는 시간, 세탁 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 심지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간도 10분씩으로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시설이 비슷한 룰을 적용한다. 사회에 나가서도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게 하기 위함이고, 스스로 규칙을 지키는 자율성을 익혀나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정해진 치료 시간을 지키는 것,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사회의 규칙을 지키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 이 시설의 목적이다.

 

 

CONREP에서 사회로

 

교도소엔 형기가 있지만, CONREP에는 없다. 나가기 위해선,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는 것을 수감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CONREP에는 수감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3단계 레벨이 있는데, 수용자들의 의무와 권리를 제시하는 기준이 된다. 1레벨부터 3레벨까지 올라가려면 자기가 속한 레벨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잘 지켜야 하고,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낮은 레벨로 강등되거나 CONREP 이전에 있던 수감시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정신병원 교도소와 사회 사이의 시설이 모두 같은 체계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처음 수용되었던 시설보다 조금 더 자유를 보장해 주고 스스로 그 자유를 운용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사회에 체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같다. 수용시설에서 많은 제약을 경험한 사람이 갑자기 사회로 나가게 될 경우에 생길 위험요소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타인의 통제에 의해서 살아가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으로 바꾸는 동안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한편으로는 본인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곳을 나가더라도 이용자들은 대부분 계속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을 것이고, 의료시설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CONREP은 이용자들에게 자신이 얻는 자유에 조금씩 책임을 얹어주는 일을 가르친다. 

 

한 사람이 정신 질환을 앓던 중 범죄를 저지르고 마침내 사회로 돌아오는 데 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얼마 전 CONREP 시설에서 이탈한 수감자가 있었다. 아마 레벨 2나 3 정도의 수감자로 예상되는데, 돌아와야 할 시간에 오지 않은 것이다. 경찰에서는 수배령을 내리고 학교와 공공시설에 공문을 보냈다. 탈주자의 인상착의와 국적, 언어 등 자세한 사항이 들어 있었다. 특히 그 지역의 학교에는 비상령이 내려졌다. 한 사람의 이탈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공포와 불안이 이 정도다.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를 치료하고 교화해 다시 사회로 보내는 일을 세금으로 지속하는 것은, 그 과정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