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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영웅시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지난 10년간 극장 영화로 연속극을 만들어왔고 그 클라이맥스가 현재 극장에 걸려 있다.

 

수퍼히어로 장르는 유럽/아랍의 고대 신화와 거의 같은 구조다. 선과 악이 있고, 그들이 반목하며, 강력한 악에 대항해 선은 시련을 넘어 승리하지만, 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이분법적 시각은 유라시아 대륙 서반부의 특징이며, 일견 우리 세상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인류 역사가 진화한 만큼 수퍼히어로 장르의 구조는 신화의 구조보다는 좀 더 복잡해져 있다. 악은 어쩌면 악이 아닐 수도 있고, 충분한 이유가 있는 필요악일 수도 있다. 이원론적 세계관에 다원론적 세계관을 끼얹은 형국인데, 이 둘을 상호보완하는 형국이 딱 현재 인간이 와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수퍼히어로의 부흥기인 지금, 그래서 이 장르의 선악 구분을 들여다보는 것은 근본적인 고민에 대한 사유가 될 수 있다.

 

특히 선악의 개념을 배워야 할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당최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단순히 좋고 나쁨이라고 설명해버리면 우리의 어린이들은 이해하는 척하다가 후에 더 어려운 질문으로 역습해오곤 한다. 우리가 평소 철학적 정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답을 내려둬야 하는 필요성이다. 그래서 선악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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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게 좋은 거야-" 순응 혹은 복종과 선을 혼동하는 것 같다. "(네게)좋은 게 좋은 거야-"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일단 이기심과 선을 혼동하는 것 같다. "양심에 따르는 게 좋은 거야-" 양심이 없는 죽돌 편집장 같은 사람에겐 의미불명의 문장이다.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게 좋은 거야-" 무관심이나 비사회성을 선과 혼동할 위험이 너무 크다. 사고가 이쯤 오게 되면 짜증이 난다. 그냥 영화나 보고 애랑 놀아주는 일에 왜 이리 골치가 아픈가. 근데 세상사가 다 그렇다. 그래서 우린 가끔 출근길 한가운데에서 인상을 구긴다. 대체 이건 뭐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이 우주의 본질은 무엇이길래 나는 지각하는가 등등의 질문 말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나오는 답은 적게 잡아도 수십 가지고, 하나하나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다. 선악 이분법의 반영인 수퍼히어로 장르의 등장인물들은 선악의 여러 가지 측면을 가져와서 만든 캐릭터들이다. 각각을 탐구하면 선악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의는 아니더라도 일부의 정의는 얻을 수 있다. 수퍼히어로의 양대 산맥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는, 선을 대표하는 수많은 히어로들의 대척점에 빌런들을 둔다. 그 빌런들 중에는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작가들이 이런 최종 보스를 만들 때는 그들이 생각하는 '악의 정수'를 캐릭터에 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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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의 퀘템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최종 보스를 탐구해보면 인간이 무엇을 악이라고 정의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면 된다. 그렇다. 이것은 어린이날 퀘스트다. 선악에 눈을 뜬 아이들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

 

최종 보스로는 DC의 다크사이드와 마블의 타노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타노스는 현재 어린이들이 자라면, 우리가 다스베이더를 기억하듯 추억하게 될 캐릭터의 유력 후보가 되었다. 그러니 탐구해보자. 무엇이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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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사이드 / Darkseid

(DC코믹스 저스티스 리그의 메인 빌런)

 

고대 신화와 구조가 같은 수퍼히어로에는 신적인 존재들을 설정한다.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존재에서부터 실제 세계에서 활동하는 존재까지 다양하다. 뉴 가즈니 올드 가즈니 하는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다크사이드는 악신의 역할을 한다. 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 법칙처럼 취급되지만 분명한 인격이 존재한다. 그런 만큼 상당히 평면적이기도 하다.

 

그의 목적은 통일이다. 그것도 '우주 모든 생명의 통일'이다. 아아, 가슴 벅차다. 우리 한국인은 꿈에서도 통일을 노래해 온 통일의 민족 아닌가. 하지만 삼국지연의의 서두에 나오듯, 분열은 통일을 부르지만 통일은 다시 분열을 부른다. 다크사이드 폐하께서는 이 동아시아 스타일의 역사 인식을 매우 싫어하신다. 통일했으면 영원히 하나여야지.

 

그래서 다크사이드는 반생명 방정식(Anti Life Equation)을 찾아다닌다. 이것은 지식의 형태일 수도 있고 본질적 에너지의 형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걸 얻으면 우주의 통일을 완수할 수 있다. 어떻게? 반생명 방정식은 전염성이며 생명의 어떤 작용을 역행시킨다. 예를 들면 개인적 자아 같은 것 말이다. 다크사이드는 이 반생명 방정식을 모든 지성체에게 '감염'시켜, 생명 고유의 자아를 없애 다크사이드 자신의 자아에 통합시키고자 한다. 그러면 영원한 통일이 가능해진다. 모두가 다크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파시즘의 이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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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반생명 방정식을 다크사이드가 얻었을 경우의 수식 형태로 '제안한' 것이다.

최종 등식이 "사랑은 거짓, 생명은 죽음, 자아는 다크사이드"로 도출된다.

 

인류 문명은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변화해왔다. 집단성, 전체성이 지나치게 강해졌을 경우 그 사회와 사회에 소속된 개인이 어떤 파괴성으로 치닫는지를 학습한 결과다. 따라서 집단의 규율은 존재하되 그것이 개인을 압도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연습이 현재 인류 문명이 하고 있는 숙제다. 아직 숙제인 이유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도 작으나마 파시즘의 조각 정도는 존재하고, 가끔 그것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곤 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의 빌런이었던 로키 또한 비슷한 개념을 영화에서 설파했다. '너희 인간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지배당하기를 갈망한다. 자유에서 자유로워져 행복한 노예가 되어라.' 이 소리를 들은 한 독일 노인은 - 연배로 볼 때 2차대전과 나치 정권을 겪었을 - '너 같은 놈들 많이 봤다'며 꿇었던 무릎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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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eel!

 

다크사이드 캐릭터의 핵심인 파시즘을 거칠게 요약하면 두 단어가 된다. 억압과 강요. 현대 인류가 찾아낸 악의 정수 중 하나다. 따라서 아이에게 '나쁜 짓'을 이해시킬 때도 저 개념을 다운그레이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닥치고 말들어'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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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스 / Thanos

(마블코믹스 어벤져스의 메인 빌런)

 

영화의 타노스는 신념학살자이지만, 원작의 타노스는 그렇지 않다. 조금 덜 섬뜩하지만 조금 더 복잡하다. 한창 개봉중인 영화의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원작의 타노스만 살펴보자.

 

타노스의 고향 행성인 타이탄은 원작에서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다. (현실에서도 토성의 위성 중에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위성들이 있지만, 타이탄은 가능성이 낮다.) 타이탄의 거주 종족인 이터널즈는 인간의 일종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형제 종족으로, 고대 지구에서 이탈해 타이탄에 정착했다. 이터널즈는 다른 형제 인간 종족인 사피엔스나 데비안츠보다 여러 모로 우월했고, 그 덕분인지 유토피아 건설에 성공했다. 지구 이탈 당시에 겪었던 종족내 내전을 제외하면 수천 년 동안 전쟁도 범죄도 무기도 없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타노스가 태어나자 이터널즈 사회는 들썩였다. 아이의 생김새가 이터널즈의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 데비안츠의 흉측한 외모였기 때문이다. 타노스의 어머니는 타노스를 처음 안자마자 수술용 메스로 아이를 죽이려 했다. 타노스의 검은 눈 속에서 죽음을 보았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눈 안에 죽음을 숨긴 아이 치고는 타노스는 참 착하게 자라났다. 홀로 독특한 외모는 오히려 친구를 사귀기 편하게 해주었다. 손재주가 뛰어나 미술과 공학에 재능을 보인 타노스는 동물 해부 수업에서 속이 역겨워 토하는, 외모를 빼면 그냥 천재성이 있는 평범한 이터널즈 아이였다.

 

어느날 친구들과 모여 동굴 탐험을 갔다가 친구들이 모두 동물 먹이가 되어 죽고 혼자 살아남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타노스는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고, 이내 삶에 대한 허무감에 빠져들게 됐다. 삶과 죽음을 탐구하게 되니 해부는 이제 쉽고 지루한 작업이 되어버렸다. 같은 이터널즈를 해부하는 것도. 타노스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자신은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탐구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 해부를 선택했고, 결국 갓난 자신을 죽이지 못하고 미쳐버렸던 생모까지 해부 - 살해했다.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된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사이코패스다.

 

그것도 허무감과 외로움에 고통받는, 중증인데 예민하기까지 해서 최악인 사이코패스다.

 

생모를 죽인 후 타노스는 타이탄을 떠나 살인을 끊고 우주를 방랑한다. 이번엔 생명을 거두지 않고 생명을 퍼뜨려보기 위해 여러 종족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여러 아이들을 낳아 봤지만, 그의 허무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좀도둑질도 하고, 해적질도 하며, 되는 대로 살던 타노스는 결국 살인을 하게 되고 학살자로 각성해 해적단 하나를 이끌게 되었다. 타노스의 약탈과 학살은 고향 타이탄에까지 이르렀다. 타노스는 자신의 모성 타이탄을 멸망시켰다. 그는 이제 우주 전체로 자신의 학살 활동 범위를 넓혀간다. 그 이유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타노스가 사이코패스 학살자로 성장하는 과정 내내 그는 한 여자를 만났고, 그리워했다. 유일하게 교감을 나눴고 대화가 통했던 그녀에게 타노스는 동경 내지는 사랑을 느꼈고, 그녀는 타노스의 살인 탐구를 응원해주었다. 타이탄에 돌아온 타노스에게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동안 낳은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을 죽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타노스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과거 연인들과 그들이 낳은 자기 친자들을 모두 죽였고 이내 모성 타이탄도 멸망시켰다.

 

또 다른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이 여자는, 타노스와 같은 필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죽음의 본질이 그대로 의인화된 존재, 데스(Death)였다. 생명의 반대항으로서 데스는 죽음을 늘려나가는 것이 본질이다. 데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타노스는 우주의 반이라도 학살하겠다고, 그렇게 그녀에게 우주를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아우 로맨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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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의 사랑을 얻으면 타노스는 허무와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타노스 자신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한다. 오직 이 방법에만 가능성이 있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더 죽이고 더 죽이고 더 죽여서 불멸의 왕이자 죽음의 화신이 되어, 데스의 진정한 사랑을 얻어봐야 한다. 그 끝에 또다시 배신이 있다 한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이런 타노스의 캐릭터는 이제는 낡은 사이코패스 이론에 기초해 있다. 잠시 작품 바깥의 현실계로 나와보자.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현재는 정식 의학 용어가 아니다. 현재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카테고리 아래에 있는 예시에 불과하다. 공감 능력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허무감이나 호전성이 드러나고 사회성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정신질환이 반사회성 성격장애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이 질환의 형태 중 일부다. 이 질환의 요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질환이 맞는지, 치료법은 있는지조차 아직 논의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선천적인 두뇌 형태가 기본적인 원인이며 여기에 유아기 학대 등의 사회적 요인이 마감재 역할을 한다는 유력한 가설이, 범죄를 유발하는 정신질환에 대부분 붙는 가설이 있을 뿐이다.

 

그 이전의 가설은 순수하게 선천적 뇌의 오작동 때문이라는 가설이었다. 그러니 사회적 요인은 이 호전적 본성을 억누를 수 있을 뿐이다.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 논리의 바닥에는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를 순수한 악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통계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당수의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들은 의외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간다. 자신의 미약한 공감력을 다른 지적 능력으로 보완하면서 사회성을 인위적으로나마 만드는 것이다.

 

타노스에겐 동생이 있다. 에로스라는 이름의 동생은 타노스와 성장 환경이 똑같다. 어쩌면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이미 생모는 타노스를 낳으면서 반쯤 미친 상태였으니까. 형제는 일에 바빠 무관심한 아버지와 미친 어머니 밑에서 함께 자랐다. 둘 다 교우관계도 좋았다. 같은 성장환경이었지만 타노스는 어머니의 예언대로 죽음의 사도가 되었고 에로스는 지구로 피신해 실버폭스란 이름의 히어로가 되어 어벤져스에 가입했다. 둘의 차이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목격했느냐 하는 것뿐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차이가 둘의 앞길을 갈라놓았다. (이후 실버폭스 - 에로스는 성폭행을 저지르긴 하지만 말이다.)

 

즉, 타노스는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가 선천적이고 불변하는 장애라는 낡은 이론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런 반영이 악은 아니다. 아직 과학이 다 밝혀내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공감력이 약한 사람, 특히 아이가 있다면 적절한 교육과 인간관계를 통해 후천적으로라도 교육하면 된다. 사실, 왠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후천적 교육을 받았거나 스스로 독학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존재하는 스테레오타입을 통해 낙인을 찍는 것은 폭력이고 악이다. 거기에서 차별과 혐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낙인 효과는 전염성이 있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

 

다시 작품 안의 캐릭터로 들어가 보자. 옛날 이론의 반영이라 한들, 타노스에게 학살자가 되지 않는 선택지가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의 내적 논리를 재구성해보면 여러 번의 비약이 보인다.

 

'친구들이 허무하게 죽었다.' - '죽여봤더니 사람 생명 한순간이다.' -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던 내 생명도 그렇다.' - '심지어 나는 외모에서도 천재성에서도 유니크한데 말이다.' - '모든 생명은 허무하다.' - '죽음만이 가치 있다.' - '죽음의 전문가인 내가 죽음 자체인 데스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겠지.' - '그렇다면 이 사랑은 내 허무를 채워줄지도 모른다.' - PROFIT!

 

작품 바깥의 코드와 작품의 안의 코드가 하나로 이어진다. 타노스는 전 우주의 모든 지적 생명을 자기 허무를 채우고 자기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다. 공감력이 떨어져 타인을 인격체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능력으로 메꾸지 않는 한은, 타인을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인격의 도구화는 극도의 이기심과 자의식에서 온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악을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다크사이드의 악과도 연결이 되는 코드다.

 

 


 

 

지금까지 살펴본 두 최종 보스 외에도 DC와 마블에는 여러 최종 보스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빌런이 악인 것은 아니다. 서사에는 안타고니스트(Antargonist)라는 개념이 있다. 번역하면 반동 인물이다. 주인공이 서사를 끌어가고 관객의 감정이입을 받는 '주동 인물'이라면 그 반대항에 서서 극을 만드는 역할이다. 그리고 모든 반동 인물이 악의 포지션인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악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영도의 소설 <폴라리스 랩소디>의 엔딩 장면에서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뭐든 다른 사람들의 반대라는 뜻 같아요. 그 말을 생각하다 보면 악마는 당신이 아니라 나인 것 같아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중략...) 반대인 것은 적이 아니라 그냥 반대인 것입니다."

 

이원론/이분법적 인식에는 흑백논리로 흐를 수 있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적대하고, 반대에 있지만, 악은 아닐 수 있다. 데스는 악이 아니라 법칙이다. 죽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죽음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저 생명의 반대에 있으니 생명의 입장에서 악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틀은 다원론이 우세했던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특히 한자 문명권의 사고방식에 녹아들어 있다. 이원론 사고는 분류를 빠르게 하고 발전 전략을 세우기에 적합하나, 다원론의 보완이 없으면 흑백논리로 빠지기가 쉽다.

 

따라서 반대를 쉽게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분법을 넘어 흑백논리로 가는 옅은 경계를 조심해야 한다. 흑백논리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사람들의 세계는 뺄셈의 세계가 된다. 악을 척결해 세상을 더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너 죽이고, 너 죽이고, 너 속이고, 너 세뇌하고. 다크사이드와 타노스가 되기 5분 전이다.

 

그리고 떠올려 보라. 우리 속을 뒤집어놓았던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자들이 흑백논리에서 출발한 말과 논리를 구사했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될 유산 아닌가.

 

마지막으로, 악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안타고니스트 둘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 덕후 사라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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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모니터 / Anti Monitor

DC코믹스의 세계에는 우리 물질 우주와 물리적 성격이 반대인 반물질 우주가 존재한다.

(평행 우주와 다른 개념이다.)

물질 우주에는 모니터(Monitor)라는 신적 존재가 관찰자로서 존재한다.

반물질 우주에는 모니터의 정반대인 안티 모니터가 존재하는데, 반대이기 때문에 파괴자로서 존재한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쌍소멸을 이루듯, 물질 우주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해온다.

안티 모니터의 침략은, 침략이라 표현하고 그렇게 나타나서 그렇지 물질-반물질 관계의 우주적 적용에 가깝다.

이것이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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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투스 / Galuctus

마블의 세계에는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나기 이전에도 우주가 존재했다고 설정한다.

이 이전 우주는 빅뱅와 반대 현상인 빅 크런치로 멸망했다.

(현대 물리학이 알아낸바, 우리 우주는 가속 팽창을 하므로 빅 크런치가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다.)

갤럭투스는 이전 우주의 타아(Taa) 행성 출신 탐험가다.

모종의 이유에 의해 빅 크런치와 빅뱅을 통과해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신적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성을 먹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갤럭투스가 우주 문명들에게 감행하는 공격은, 거칠게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식사에 불과하다.

이것이 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