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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얼떨결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됐다. 늘 챙겨보는 프로그램도 아닌데, 정말 우연이었다. 보고 나서 기가 찼다.

 

21살 파릇파릇한 청춘이 군대에 갔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죽었다. 故 홍정기 일병의 이야기다.

 

백 보 양보해 그럴 수 있다. 백혈병이니까... 암이지 않은가? 그리고 젊을수록 암은 더 빨리 진행된다 하지 않은가? 그런데, 방송을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죽인 게 아닌가?'

 

연대 의무실에서 홍일병을 돌려보냈다. 사단 의무대도 갔지만, 두드러기라며 피부과 약만 처방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나온 건 진통제와 피부과 약이 다였다(‘멍’을 보고 피부병이라 생각했다). 놀라운 건 홍일병을 진찰한 군의관의 전공이다. 정신과와 피부과... 더 놀라운 건 홍일병 사망 3일 전에 행보관과 함께 일반 ‘사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무슨 대학병원이 아니라 일반 ‘의원’ 수준이었다). 바로 병명을 유추해 냈다.

 

“혈액암 가능성 있어 즉각적인 혈액내과 내원 필요함”

 

대한민국 국군병원의 ‘상황’이야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다 알지 않은가?

 

나 역시도 그 피해자(?) 중 하나였다.

 

 

 

난 반병신이었다

 

난 재수 없게도 유격을 두 번 받고, 혹한기를 두 번 받은 군번이었다. 정말 재수 없었던 건 두 번째 유격 때였다. 병장 달고 뛰게 되는 유격이라니...

 

'급식차 뒤에서 눈치 좀 보다 빠져야지.'

 

란 생각을 했었는데, 대대장이 바뀐 뒤로 대대 분위기가 돌변했다.

 

“1명 예외 없이 훈련 참여!”

 

21개월 이상 짬밥을 먹은 눈치로(95년 군번이었으니 이때는 26개월 복무였다), 이건 못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 되는 거 붙잡고 씨름 할 바에 시원하게 포기하고 깔끔하게 훈련이나 받자라고 결론을 냈다. 문제는 첫날 수색대 애들이 너무 ‘분위기’를 잡은 거였다.

 

그냥 PT나 좀 시키고, 장애물 극복 훈련이나 하지 갑자기 교관이 튀어나와서, 선착순을 시킨 거였다.

 

얼탄 애들이 미친 듯이 선착순을 하는데, 문제가 그때 터졌다. 올빼미들이 미친 듯이 연병장 끝에 있는 60트럭을 찍고 돌아오다 앞 열이 자빠진 거였다. 거기에 휘말려 나도 자빠지며, 순식간에 뒹굴고 있는데, 뒤에서 달려오던 병력이 내 무릎을 밟은 거였다.

 

“악!!”

 

내 왼쪽 무릎이 바깥쪽으로 꺾였다. 뽀얀 흙먼지가 가라앉고, 뒤엉킨 병사들을 보고 조교들이 뛰어왔다.

 

“올빼미들 기상하십시오!”

 

“올빼미 여기가 내무반입니까? 기상하십시오!”

 

유격조교 특유의 저음에 날카로운 음색이 뒤엉킨 올빼미들이 등을 때렸고, 난 고통 속에 뒹굴어야 했다.

 

“XXX번 올빼미 요령 피우지 마십시오!”

 

“XXX번 올빼미 꾀병 부리지 마십시오!”

 

난 반응을 할 수 없었고, 내 뒤에 있던 2명의 ‘아저씨’들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이 아저씨 무릎이 꺾이는 거 봤는데요?”

 

(당시 ‘아저씨’란 말 쓰지 말라고, 대신 ‘전우’란 말을 쓰라고 상급부대에서 명령이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아저씨’란 말을 썼던 게 기억난다. 나중에 이들은 우리 중대 텐트까지 와서 행보관과 인사행정관에게 ‘증언’을 해줬다. 나중에 생각난 건데, 내 무릎을 밟은 게 이 둘 중 한 명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과도하게 친절했고,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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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땅에서 뒹구는 나에게 다가오는 조교들, 한 명은 어딘가로 달려갔고, 유격교관과 우리 본부중대 행보관과 인사행정관이 달려왔다. 난 우리 중대 투고와 조교의 어깨를 빌려 겨우 일어서는데,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명징하게 내 귓가를 때리는 소리. 왼쪽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고통이 엄습했다.

 

“윽-”

 

어찌어찌 중대 텐트로 갔을 때 동갑이었던 인사행정관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존나 불쌍한 놈’

 

‘그래도 우리 새낀데’

 

란 연민의 눈빛,

 

“누워 있어 새꺄.”

 

그 눈빛 사이에 1할 정도 섞여있는,

 

‘이색희 뺑끼 치는 거 아냐?’

 

란 의심의 눈초리.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대장에 이어 대대장까지 텐트에 와서 날 봤다. 역시나 인사행정관의 눈빛과 비슷했다. 다만 비율은 좀 달랐다. 불쌍한 표정 반, 뺑끼치는 거 아냐? 란 표정 반. 이때 내 뒤에 있었던 ‘아저씨’ 둘이 증언을 해줬고, 난 ‘부상’이 됐다.

 

유격장에 있는 앰뷸런스는 이용하지 못하기에(내 부상이 ‘경미’해서), 난 영광스럽게도(?) 닷지에 실려(덤으로 내 군장과 함께) 곧장 연대 의무대로 넘어갔다.

 

다행히(?) 난 훈련 중 부상이 됐고, 얼떨결에 ‘응급환자’가 됐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을 대기하고 만났어야 할 군의관을 십 몇 분 만에 만났다. 그리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닷지 타고 왔다고 해야 하나?) 설명하라고 한다. 훈련받고, 선착순 하다가 앞열이 쓰러져서 덩달아 쓰러졌고, 뒤에 오던 병력이 내 무릎을 밟고 지나갔다고 했다.

 

“무릎 밟혔다고? 기브스 해야겠네? 야 석고 준비해라!”

 

끝이었다. 하다 못해 그 흔한 X-레이 한 장 찍지 않고, 군의관은 덮어 놓고 기브스를 하겠다고 나섰다. 에? 그래도 군의관이니까... 그리고 뼈 부러지고 아프면 기브스 한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기에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히 ‘장교’ 그것도 우리 중대장이랑 같은 계급의 장교에게 질문 할 처지는 아니었다)

 

물론, 어떤 검사도 없이 내 말만 듣고는 진단을 다 내리고, 어떤 병명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뭐 의사니까 믿을 수밖에... 그런데, 불안한 말들이 이어졌다.

 

“야, 석고 이거밖에 없냐?”

 

“예, 지금 이거 밖에 없습니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하다.

 

“괜찮아. 그냥 고정만 시키면 되니까.”

 

뭔가 좀 불아했다. 기브스는 정확히 내 무릎 바로 밑에까지만 둘러쳐졌다. 다친 건 무릎인데, 종아리만 단단하게 고정시킨 거였다. (안 믿기겠지? 그런데 이게 사실이다)

 

나도 뭔가 좀 이상했는데 군의관은 친절하게 날 보면서,

 

“한 2주 있으면 나아질 거야. 인대가 살짝 놀란 거야. 당분간 움직이지 말고, 병장이니까 눈치 볼 일도 없잖아? 그냥 내무반에 누워있어.”

 

“아... 예, 알겠습니다.”

 

“그래, 약 받아가라.”

 

끝이었다. 진통제로 추정되는 약 1알이 들어있는 약봉지를 잔뜩 받아왔다. 그렇게 닷지를 타고 다시 대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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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에는 이미 유격을 끝낸 A팀이 남아 있었기에 내 수발(!?)을 들어줄 인원은 넘쳐났다. 상병 6호봉 때부터 견장 찼던 터였고, 상병 8호봉 때 왕고 됐던 터라 내무반 생활은 늘상 하던대로 하면 됐다. 간부들도 병장 된 놈이 기브스 한 걸 보니 ‘뺑끼’친 건 아니란 눈빛이었고(평소 내가 군생활은 좀 했다), 나름 고생했다며 몸조리나 좀 하라고 하면서 인원통제 못한 유격교관에 대한 욕을 했다.

 

나 역시도 계산을 해보니, 유격장 가서 뺑이 치는 것 보다는 이렇게 한 며칠 누워 있는게 낫겠다 싶어 나름 손해 보는 장사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편하게 며칠 보내는가 싶었는데...

 

 

 

난 운이 좋았다

 

약을 먹어도 계속 아팠다. 다리는 계속 욱신거렸고,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브스를 한 다리가 무거웠다(기브스 무게 때문에 더 아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기브스가 내 다리를 더 악화시켰다). 의무대에서 건네 준 목발을 쥐고 걸었지만, 아예 왼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유격 B팀이 돌아올 때까지 다리는 낫지 않았고, 계속 아파왔다. 의무대에서 준 약도 다 먹어서, 대대 의무실에서 진통제를 가져와 먹었다.

 

간부들도 꾀병 그만 부리라고 농담처럼 말을 던졌지만,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날 강릉 국군병원으로 보내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XX 꾀병 부리는 거 아니지?”

 

“에이, 그래도 병장 짬밥이 있는데 저놈이 꾀병 부리겠어요?”

 

“어디 봐봐.”

 

행보관이 내 무릎을 만지자 난 비명을 질렀다. 무릎에서 열이 올랐다. 행보관도 부어오른 내 왼쪽 무릎의 열기를 느끼더니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걸 느꼈던가 보다.

 

“안되겠다. 너 강릉가자.”

 

내가 군수병이란 사실이 이때만큼 도움이 됐던 적이 없었다. 보통 대대에서 의무대로 넘어갈 때는 진찰 받는 날짜가 있고, 후송을 하는 단계가 있다고 했다(그때까지 병원 갈 일이 없었다). 응급이라고 해도 한 번에 국군병원으로 점프 한 적은 없다고 한다(어지간한 응급이 아닌 경우에는). 근데, 난 그냥 점프를 했다. 본부중대장의 힘일까? 행보관의 힘일까?

 

배차도 군수업무 배차를 받았다. 강릉 군지단에 보급품 수령을 하러 가는데, 거기에 날 끌고 가서 강릉병원으로 가겠다는 거였다. 보급품 수령이 주 업무가 아니라, 날 병원으로 끌고 가는 게 주 업무였다. 배차도 바로 냈고(내 부사수가 배차 신청하고, 같이 따라왔다), 닷지 뒤에 모포를 쫙 펴 다리에 충격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강원도 고성에서 강릉까지... 수십 번을 오간 길이었지만(군지단 가느라), 그때만큼 기억이 또렷했던 적이 없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고, 사수가 걱정된다며 닷지 뒤에 같이 탄 부사수는 그때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다.

 

“야, 담배나 한 대 줘.”

 

아플 때마다 담배를 한 대씩 빼어 물었다. 선탑이던 행보관은 속초를 지나 양양쯤에서, 안 되겠는지 근처 약국에서 차를 세우더니 진통제를 사와 내게 내밀었다.

 

“야, 쫌만 참아. 다 왔어.”

 

“모포세탁 하러 갈 때는 빨리도 가드만, 왜 일케 느리게 가는 겁니까?”

 

“네가 계속 아프다니까 OO이가 최대한 안 흔들리게 가려고 저러잖아! 아 씨바, 차라리 내 차로 갈 걸 그랬나?”

 

“아님다. 물건 수령도 해야 하는데... 그냥 가시죠.”

 

“그래, 다 왔어. 조금만 참아. 금방 가.”

 

7번 국도가 그렇게 멀게 느껴진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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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