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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6. 리더의 자세와 사내 불륜이 미치는 영향

7. 20년 다닌 직장을 관뒀다

8. 퇴사 후 느끼는 것들

 

 

 

1.

퇴직 당일 간단한 소회를 적은 '퇴직 인사' 메일을 오후 5시에 예약 발송했다. 그날 자정을 기준으로, 회사 메일에서 계정이 사라졌다. 메일을 읽는 사이 권한이 끊겨, 접속 권한 없음이라는 경고 창이 떴고 그제야 나는 퇴사를 확실히 체감했다. 언젠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있다. 오래전 일인데,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단박에 헤어지지 못하고 한동안 관계를 지지부진 이어갔는데, 어느 갑자기, 한낮 분식집에 마주 앉아 각자의 돈가스를 말없이 먹다 말고 갑자기 '우리 오늘 정말 헤어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로 헤어졌다. 바로 기분이었다.

 

아마 이쯤에서 얘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속으로 웃을 거다. 한 때 연인이었다는 사람과, 회사라는 관념을 혼동할 있느냐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했다 해도, 너는 그저 현대판 노예 아니었냐고, 아닌 말로 규모가 컸을 종살이는 어디까지나 종살이 아니었냐고, 게다가 함께 일하던 놈들에게 타작까지 당하고 나온 주제에 무슨 얼어 죽을 회한이냐고, 글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은 내게 있어 맞다, 아니다,  잘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곳에서 박힌 20년의 세월을 보냈다면, 감정이 뭐가 됐든 정도의 감정은 남지 않을까, 원망이든 후회든 아쉬움이든 어떤 종류든 간에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요즘 친구들 말마따나 내가 '구시대'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한참 어린 후배가 내게 이렇게 충고 적이 있으니 말이다.

 

"요즘 ㅁㅁ씨처럼 회사 다니는 사람 없어요. 다들 대충 해요. 그냥 월급 많이 주는 피시방 다닌다 생각하고 사세요"

 

진짜 그럴까, 그렇게 마음먹고 다녔다면 지금 마음이 나을까,  글쎄 모르겠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가 있는 거다. 나도 안다. 내가 조직에 완벽하게 무해한 사람이었다면, 당하지 않았다는 . 나도 없다. 내가 궁금한 , 아무리 사람이 밉다고 한들 대체 그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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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퇴사 당일이었다. 업무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지난 년간 내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갑자기 그만두는 거냐고. 나는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며 답했다. "갑자기 결정한 아닙니다.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어디... 옮길 데는 있고?" 말을 듣는데,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화가 차올라,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거는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보는데 가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이나 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저럴 있나,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있나. 속을 없었다. 번이고  번이고 양보해 내가 이만큼 아플 거라는 , 몰랐다 치자. 그렇다 해도 질문은 잔인한 아닌가.

 

퇴사 얘기가 나오면 대개, 측도 당사자도 서로 여유를 갖고, 업무 정리를 한다. 물론 중차대한 잘못을 저질러 해고를 당한 경우에는 인사 공고 직후 바로 책상을 뺀다. 하지만 나처럼 사표를 스스로 경우, 이렇게 빨리 퇴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미 지난 년간 수십 차례 마음속으로 사직서를 썼기에 정말이지 깜짝할 사이에 털고 나왔다. 어렵지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하던 업무도 매일 상세히 기록해 뒀고, 이메일도 수시로 비웠다. 해서 그야말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처럼, 읽던 책을 바닥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 수업 중, 아니 근무 회사를 빠져나왔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성격인데 평소에도 나는 매사에 중간이 없다. 기면 기고 아닌 죽어도 아니다. 해서 여태 빈말로라도 '이놈의 회사, 때려치워야지' 하는 소리를 어디 가서 없다. 20 동안 공식적으로 지난해 7 이후 2번에 걸쳐 각기 다른 팀장님과 상담한 전부다.

 

갑작스러운 나의 퇴사 소식에 무엇보다 오래 알고 지내온 동료들이 놀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버틸 같던 내가,  모진 일을 겪고도 다시 자리에 앉은 내가 이제 나간다고 하니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몇몇은 숫제 앞에서 엉엉 소리 울었다. 퇴사 당일에는 더했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남자고 여자고 없이 눈만 마주치면 오나가나 울어재껴 어디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 건물을 빠져나와야 했다. 아마 이들도 지난 년간 내가 했던 싸움을 알고 있으며, 어떻게 주지 못해 괴로웠으리라. 정말이지 싸움은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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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덜컥 그만두지 말고 일단 회사에 적을 상태에서 다음에 찾고 나오라고. 글쎄,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니다. 그럴 재주 있었으면, 애초에 싸움 자체를 했겠지. 그러자 다들 나한테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 물었다.

 

질문에 나는 그때그때 대충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지만, 실제로 내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왜냐면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말고 것도 없이 도저히 견딜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딴지 달에 한 두  글을 올리는 있겠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난다 긴다 하는 전업 작가들도 나자빠지는 세상이다. 그런 와중에 글로 먹고 산다는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다.

 

아무튼 이런 연유에서, 나는 당분간 다음 직업을 구할 때까지 퇴직금과 실업 급여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쯤 되면 다들 퇴직금이 궁금할 거다. 20년이나 회사에 다녔으니 금액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한데 실망스럽게도 별거 없다. 별 생각 없이 차에 퇴직금을  땡겨  데다 하필 지난해 고과가 C였어 올해 급여가 삭감된 뒤라, 퇴직 3개월 월급이 전년도에 비해 10프로 낮다. 하여 연봉 된다. 게다가 이마저도 의미가 없는 , 그간 이래저래  살면서 정리하고 보니 그야말로 수중에 얼마 남지 않았다.

 

이쯤에서 의문이 거다. 어떻게 대책도 없이 좋은 회사를 그만 있는 거냐고. 생존 공포보다 더한 세상에 있기나 거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그러니까 더는 그렇게 하루도 없어서 그만둔 거다.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로 죽을 같아서 하다 하다 도저히 어쩌지 못해 그만둔 거다. 그러니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상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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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퇴사 달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백수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일단 리듬이 완벽하게 깨져 버렸다. 시간과 공간이 주는 압박이 없어지자 나는 자주 밤을 새웠고, 끼니도 곧잘 걸렀고 그러다 번씩 먹으면 미친 듯이 폭식했다. 탈이 자주 났다. 진짜로 월급을 받는 백수가 되고 보니 생활 물가가 급격하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엔 적정한 가격이 매겨져 있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는 했다. 사실이 놀랍도록 새삼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오랜 시간 식당에서 파는 소주 맥주 값도 제대로 모르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난 이 십 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여태 술이고 밥이고 주고 먹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번씩 밖에서 내가 밥을 사고 술을 사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어쩌다 번이니 돈의 무게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건강보험이니, 전기세니 하는 각종 공과금은 그렇게 많이 드는지. 딱히 사치를 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생활비가 무서운 속도로 통장을 잠식해 나가는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아픈 마음 아픈 데 아니었다. 그대로 백수가 쏟아져 내린 많은 시간 동안, 나는 그간 내가 그곳에서 주었던 마음들과 돌려받은 마음들을 헤아려 봤다. 확실히 쪽이 손해였다. 지난 년간 수많은 선의가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해서 매일 다짐했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자. 더는 그렇게 살지 말자. 누구든 먼저 의심부터 하고 보자,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무렵 평소 따르던 선배가 밥을 사준다며 나오라길래 별 생각 없이 슬리퍼를 끌고  고깃집에 앉았는데, 그가 전해  작은 봉투 하나를 열어보고 나는 또 다시 사람 많은 식당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다른 아니라, 봉투에는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직장 후배들이 각자 폴라로이드 사진을 장씩 찍고 밑에 짤막하게 응원 멘트를 적은 서로 얼마씩 돈을 모아 노란 봉투 안에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은 순간 나는 전날 밤까지 줬니 줬니 셈하던 마음을 전부 잊었다. 그렇다. 어떤 마음들은 이렇게 남아 돌아온. 내가 주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면서 말이다. 나는 돌아오지 않은 마음들에 대해 이상 생각하지 않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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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백수가 된 지 만으로 달이다. 솔직히 말해 아직은 휴가 중인 같다. 이토록 백수라는 역할은 여러 의미로 내게 낯설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십 중반부터 지금까지 편하게 살았다. 자유를 담보 잡힌 대가로 조직이라는 커다란 동물원 안에서 매끼 사육사가 먹기 좋게 손질해주는 끼니를 먹고 살던 짐승이었다. 이제 나를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손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한데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정작 용기를 내어, 막사를 빠져나오고 보니, 앞으로 계속해서 지금보다 삶의 질이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어떤 의미에서든 '자유' 몸이 되었으니, 이제 ' 인생' 사는 거다. 팔을 펴고 보란듯이 절벽에서 뛰어내렸으니 앞으로의 일이야 알게 뭔가, 대로 되라지. 혹시 모르지, 착지를 반동으로 날아오를지.  다시 날아오르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떨어진 김에 쉬어가면 되니까, 하든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살아지니까. 

 

언제나 그랬듯 말이다.

 

 

추신: 이래놓고 다음편을 쓸 때 질질 짤지도 모를 일이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필자 주

 

http://www.podbbang.com/ch/1770326

 

안녕하세요산만언니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불행에 대해  다르게 고민했고우연히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말로   있는  글로  하지 못해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지난 연재글의 연장 선상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주변에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친구들을 섭외해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패널들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보니내용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고,  밝은(?) 목소리 탓에 더러 ' 본의' 오해 받곤 하지만이를 통해 성장하고 싶고전에 제가 글을 올리며 독자분들께 받았던 진심어린 위로와 감동에 보답하고자 기획한 팟캐스트니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봐 주세요나름의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질문있으시면 molaseo99@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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