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건 개인이건 직업 따라 성향이나 분위기가 결정되곤 한다. 한때 문화예술잡지 기자로 일했다. 예술가 만날 때마다 늘 그 생각이 들었다. 화가냐, 문인이냐, 연극배우냐에 따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그 무엇. 야구 잡지 기자 할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투수냐, 타자냐, 심지어 포지션이 포수냐, 내야수냐, 외야수냐에 따라 미묘한 분위기 차이가 있었다. 같은 야구 선수라 해도 말이다.
노가다판도 마찬가지다. 같은 노가다꾼이라도 공정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단적인 예로 전기공들은 전반적으로 ‘차도남’ 같은 분위기가 있다.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작업복과 안전화에. 간결하고 깔끔한 작업방식까지. 가장 노가다꾼스럽지 않다고 해야 할까.
노가다판에서는 외국 노동자들도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다. 해체나 철거처럼 묵직하게 힘써야 하는 공정엔 몽골인들이 많다. 키가 크고 날렵하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스템 비계팀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추운 나라 사람들이 많다. 키나 힘보다는 요령과 기술이 더 중요한 형틀 목수팀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많다.
공정에 따른 성향 차이를 주저리주저리 길게 설명한 건, 내장목수와 용접공 얘길 좀 해볼까 싶어서다.
인력사무소 다니던 시절, 우연히 내장목수를 보름 정도, 뒤이어 바로 용접공을 한 달쯤 따라다닌 적 있다. 그때 난 참 재밌는 경험을 했다. 똑같은 노가다 일이고, 내 입장에서는 똑같은 데모도(조수라는 뜻으로 일본어 てもと[데모또]에서 파생) 일인데, 모든 것이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야지 성격부터 현장 분위기, 작업 스타일, 다루는 연장과 자재 등등 모든 것이 말이다.
모든 차이의 근원, 물성(物性)
내장목수와 용접공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 우선, 다루는 자재부터 다르다. 내장목수는 단어 그대로 나무 다루는 사람이다. 용접공은 철을 다루는 사람이다. 실은, 모든 차이가 여기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나무와 철이 가진 각각의 물성(物性) 차이가, 모든 차이의 근원인 것 같달까.
내가 생각하는 나무의 기본적인 물성은 양(陽)이다. 나무는 빛을 받고 자란 덕에 양의 기운이 가득하다. 내장목수 작업장에 들어가면 산뜻하고 따뜻한 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다. 틀림없는 양기(陽氣)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내장목수 따라 일할 때는 어쩐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양의 기운이 가득한 나무는 다듬을수록 부드러워진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부드러움은, 철의 매끈함과 또 다른 질감이다. 샌딩기로 곱게 갈아낸 나무 만져볼 기회가 생기면 ‘아~’ 하고 느낄 수 있을 거다. 나무의 속살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또,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단단해진다. 나는 이걸 깊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말하자면 나무는 뿌리가 뽑히고, 밑동이 잘려도 죽는 게 아니라 자연과 조화하면서 거듭나는 거다. 이것 또한 분명한 양기(陽氣)의 흐름이다.
반대로 철의 기본적인 물성은 음(陰)이다. 철은 땅속 깊은 곳 광물에서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철을 만지고 있으면, 말한 것처럼 매끈하긴 한데 차갑고 쎄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무가 시간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것과 달리, 철은 시간과 자연에 순종, 혹은 균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녹슬고, 결국에는 삭아버린다. 나무가 유(柔)에서 강(剛)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철은 강(剛)에서 유(柔)로 쇠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거다. 분명한 음기(陰氣)의 흐름이다.
이렇듯 극명하게 다른 나무와 철의 물성 차이가, 내장목수와 용접공의 성향 차이로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더디지만 정교한 시간
건물을 짓고 나면 내부에도 목공 작업이 필요하다. 그걸 하는 게 내장목수다. 대표적인 작업이 카페 인테리어다. 각자 자주 가는 카페를 떠올려보자.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목재들, 가령 마룻바닥이나 카운터 선반, 테라스 바닥, 주방과 화장실의 수납장, 테이블과 책장, 창문틀과 문 등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걸 만든다.
내가 내장목수 따라 보름간 했던 작업도 카페 인테리어였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내가 인테리어 한(?) 카페가 지금도 어딘가에 있다. 아주 가~끔 그 카페에 간다. 지인과 같이 가면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여기 인테리어 내가 했잖아~(소곤소곤)”
“인테리어는 무슨~ 목수 데모도 하면서 페인트칠이나 한 주제에.”
내장목수 작업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매우 더디다. 책장을 만든다 치자. 합판이나 각재를 사이즈에 맞게 켜거나 자르는 게 시작이다. 재단한 나무에 목공본드를 발라 고정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수 말로는 목공본드 바른 후에 고정한 것과 목공본드를 안 바르고 고정한 결과물의 내구성이 하늘과 땅 차이란다.
목공본드로 고정한 후에는 타카(순간적인 공기 압력으로 얇은 핀을 쏘는 기계. 영어 Tacker[압정을 박는 사람]에서 파생)나 전동드릴, 망치 등으로 완전하게 고정한다. 다음으로는 샌딩기로 곱게 갈아낸다. 내장목수나 클라이언트 취향에 따라 그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고, 샌딩한 이후에 바니쉬(나무 표면에 바르는 투명 코팅제)나 오일스테인(나무 고유의 무늬를 살릴 때 주로 쓰는 마감재), 페인트 등을 발라 멋을 내기도 한다.
풍류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내가 같이 일했던 내장목수는 섬세하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풍류와 낭만도 즐길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노래 트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다. 이문세나 김광석 노래 같이,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들으면 좋을 법한 노래를 주로 틀었던 거 같다. 이따금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다. 난 그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노가다판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적은 없다. 낯설었지만,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맨날 종이컵에 휘휘 저어 주던 믹스커피나 마시다가, 머그잔에 따라준 아메리카노라니.
그 목수는 내가 한참 동생이었는데도 내내 존대를 해줬다.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거듭 얘기해도 그랬다. 그러면서 세세하게 목공 작업을 알려줬다.
“OO 씨, 이렇게 테이블톱으로 합판 켤 때는 양쪽을 잘 잡아줘야 해요. 안 그러면 합판이 확 튕겨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돼요.”
그 또한 낯선 경험이었다. 노가다판에서 그토록 친절하게 설명해준 사람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작업할 때는 분명했다. 목공 작업 특성상 그 자체가 마감인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멋을 더하는 바니쉬나 오일스테인, 페인트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단 1mm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목수는 톱날 두께까지 계산해서 나무를 켜거나 잘랐다.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보이면 다시 작업했다.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OO 씨 여기 봐봐요. 합판이랑 합판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죠. 아는 사람이 보면 이런 게 딱 보이거든요. 일 못하는 목수가 작업했다고 할 거예요.”
마감재 바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샌딩과 도장이어서, 주로 붓을 들고 다니며 바니쉬나 페인트칠을 했다. 한참 칠하고 있으면 목수가 다가왔다.
“OO 씨가 바른 거랑 내가 바른 걸 비교해 봐요. OO 씨가 바른 건 붓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아있죠? 일단 붓을 합판에 댔으면 끝까지 쭉 밀고 나가야 해요. 그래야 깔끔해 보여요.(웃음)”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다 보니 작업이 더뎠다. 그래도 개의치 않아 했다. 성격 급한 내가 오히려 조급해하면, 목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OO 씨. 후딱후딱 해서 돈 몇 백만 원 더 남겨 먹는 목수보다 꼼꼼하게 해서 나중에 욕 안 먹는 목수가 더 좋은 목수예요. OO 씨도 목수가 되고 싶댔죠? 배우려면 진짜 목수 만나서 제대로 배워야 해요. 개목수한테 배우지 말고. 이 바닥엔 개목수가 너무 많아. 대충대충 작업하는 목수들.”
뜨겁고도 거친 시간
조립식 주택이나 창고, 공장 등을 지을 때, 혹은 철근콘크리트 건물 외벽에 특수한 마감 작업할 때, 우선은 철, 그 중에서도 주로 각파이프로 와꾸(테두리, 틀, 영어로는 프레임을 뜻하는 일본어 わく[와꾸]에서 파생)를 짠다.
그렇게 와꾸를 짜면 거기에 합판이나 철판, 샌드위치 패널(철판과 철판 사이에 글라스울[glass wool, 유리를 섬유 모양으로 만든 것. 단열재·흡음재 등으로 쓴다]이나 스티로폼을 끼워 만든 패널. 단면이 샌드위치처럼 생겼다) 등을 붙여 건물을 만든다.
노가다판에서 말하는 용접공은, 쉽게 말해 그 와꾸를 짜는 사람이다. 참고로 사전에서 말하는 용접공은 ‘금속, 플라스틱, 유리 등을 영구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연결될 부분에 열을 가해 녹이고 융합시켜 연결하는 사람’이다.
용접공 작업은 매우 간단하다. 고속절단기로 각파이프 자르고, 자른 각파이프를 용접기로 붙여가며 와꾸를 짠다. 이게 끝이다.
물론, 그 과정이 간단치는 않다. 말했듯, 주로 하는 작업이 와꾸 짜는 것이다 보니 수직과 수평 잡는 일이 어느 공정보다 중요하다. 가로 폭 100m짜리 건물 와꾸를 짠다고 했을 때, 한쪽에서 1mm만 수평이 어긋나도 저쪽 끝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벌어진다. 해서, 용접공들은 사게부리(다림추라는 뜻으로 수직 잡을 때 쓰는 연장. 일본어 さげふり[사게후리]에서 파생)와 수평대, 레이저 레벨기 등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수직과 수평을 체크한다.
작업이 심플한 것에 비해 위험 요소는 매우 많다. 우선, 화상 사고가 빈번하다. 용접기로 용접하는 걸 전문 용어로 아크용접이라고 하는데, 이 작업만 해도 여기저기에 불꽃이 튄다. 장갑과 옷에 구멍이 송송 난다. 제법 큰 불꽃이 튀면 옷을 뚫고 들어와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가스를 연소시켜 용접하는 가스용접은 그야말로 큰 화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작업이다. 또한, 작업 특성상 강한 광선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보안경을 쓴다 한들 시력 나빠지는 걸 피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노가다판 용접공들은 주로 외벽에서 아시바(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일본어 あしば[아시바]에서 파생)를 타고 다니며 작업한다. 늘 추락사고 위험이 있는 거다.
시원시원하고 화끈화끈한
카페 인테리어가 끝나고 내장목수와 아쉬운 작별을 한 다음 날, 용접 현장에 가게 됐다. 현장에는 용접공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데모도까지 네 사람이 한 팀이었던 모양이다. 바로 직전 현장에서 데모도 하던 사람이 추락 사고를 당했단다. 7m에서 떨어졌다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꼬리뼈 부러지는 정도로 끝났다고. 그러니까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모도 대신 투입된 상황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철근콘크리트 건물 외벽에 각파이프로 와꾸를 짜는 거였다. 우리가 와꾸를 짜놓으면, 이후에 테라코타 패널(점토를 구워서 만든 패널. 쉽게 설명해 가로 세로 1m정도의 평평한 기와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드는 재료나 과정이 기와와 비슷하다)을 붙여서 멋진 건물이 될 거라고 했다.
첫날, 나를 위아래로 쓱 훑어본 용접공 오야지가 믹스커피를 휙휙 타주며 이렇게 말했다.
“몇 살이여? 우리는 여기서 한 달쯤 작업해야 되니까 열심히 해봐. 오늘 하는 거 봐서 일 좀 한다 싶으면 계속 부를 테니까. 너도 한 현장에서 쭉 하는 게 편하잖어?”
용접공 오야지는 좋게 표현하자면, 시원시원하고 화끈화끈한 사람이었다. 때때로 후끈후끈해서 문제였지만.
“별거 없어. 우리가 사이즈 불러주는 대로 각파이프만 잘라주면 돼. 용접은 수직과 수평이여. 길이는 좀 길거나 짧아도 돼. 5mm까지는 우리가 커버할 수 있으니까 1mm~2mm 가지고 낑낑거리지 말란 얘기여. 여기 고속절단기 앞에 있다가 줄자로 한 번 딱 재고, 대강 잘라서 주면 돼. 오케이? 아 그리고 우리가 쭉 용접해나가면 용접한 데에 용접똥이 덕지덕지 붙어있을 거라고. 그걸 털어줘야 나중에 녹이 덜 슬어. 저기 보면 똥망치 있어. 대가리 쥐 X만 한 거. 그걸로 톡톡 쳐주면 돼. 오케이?”
그 현장에선 정말 정신이 없었다. 말한 것처럼 어차피 테라코타 패널로 마감해야 하는 공사여서, 수직과 수평만 잘 잡으면 그만이었다. 오야지가 수직과 수평을 잡으면서 치고 나가면 나머지 두 사람이 순식간에 용접하면서 쫓아갔다. 사방팔방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절단한 각파이프를 정신없이 날라줬다. 조금만 늦거나 어리바리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쌍욕이 날아왔다.
“어이어이!!! 이 새꺄!!! X발, X나게 늦네. 우리 손 놓고 있는 거 안 보여? 빨리빨리 가져오라고!!!”
그렇다고 뒤끝이 있는 건 아니었다. 욕하는 것도 그때뿐, 금세 “하하하”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쳐줬다.
“고생했으니까 밥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 먹고. 많이 먹는다고 뭐라고 안 할 테니까. 하하하. 아 그리고 우리가 용접할 때 절대로 불꽃 보면 안 된다잉? 아다리(명중, 적중이라는 뜻으로 일본어 あたり[아따리]에서 파생) 몇 번 나면 밤에 잘라고 누워도 눈이 침침할 거여. 하하하.”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버렸다. 마초들 틈바구니에서 걸쭉한 농담을 들으며, 시큼털털한 믹스커피 마시며, X꼬가 근질근질해지는 높이에서 아시바 타고 다니며, 정신없이 각파이프를 날라줬더니 어느새 건물 외벽에 와꾸가 다 짜져 있었다.
“이 쉐끼 이거 제법이네? 고생했어~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언젠가 또 보자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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