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오지 말래도 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인간을 내쫓는 세상이 오고 있다. 아니, 왔다.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도올 김용옥 선생이 언젠가 안철수 전 대표를 비판했다. 안 전 대표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던 때였다. 도올 선생이 말하길,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건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거고, 우리 사회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여러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주 쉽게, 자율주행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뉴스에서도 몇 차례 나왔듯, 자율주행 자동차는 이미 수년 전 개발됐다. 근 미래에는 더욱 보편화할 거다. 그러면 ‘기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일자릴 잃어버린다. 택시기사, 버스기사, 화물차기사 등. 도올 선생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지적하는 거다. 자율주행 자동차로 일자리를 잃게 될 수많은 소시민의 삶과, 그들로 인해 타격을 입게 될 수많은 소상공인의 삶을, 그리하여 더욱 심화될 양극화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거냐는 거다.

기술의 발달은 노가다판에도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기술이 발달하는 바람에 일거리가 줄어버렸다. 노가다꾼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현장 대신 공장에서 하는 추세다.

일거리가 줄었단 얘기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노가다꾼 숫자는 그대로인데 일거리는 점점 줄어드니,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뻔하다. 갑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황을 방관하고, 을끼리 제 살 깎아가며 피 튀기게 경쟁하는 시대, 도올 선생이 예견한 그대로의 결과가 벌어지고 있다.

1년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한다면?

이 글에서 어떤 기술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설명하는 건 크게 의미 없을 거 같다. 중요한 건 기술 발달이 노가다판에 미친 영향일 테니까. 난 지금부터 형틀 목수(이하 목수)를 예로 들어 설명할 건데, 상황은 다른 공정의 노가다꾼도 비슷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하나의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줄다 보니, 한 현장에 머무는 기간도 짧아졌다. 아파트 현장이라고 해봐야 목수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5~10개월 정도다. 1년도 안 되는 시간마다 현장을 옮겨야 한다. 그게 뭐 별거냐고 물을지 모르겠다만,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우선, 목수 개인의 삶을 보더라도 그렇다. 직장인으로 비유하자면 1년이 안 되는 시간마다 전근을, 아니 정확하게는 재취업을 해야 한다. 상황이 안 맞아 다음 현장이 바로 정해지지 않으면 얼마간은 놀아야 하고, 또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타지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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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생각해보라. 지출은 매달 고정적일 텐데 수입이 왔다 갔다 한다면? 수입의 불안정이 한 가정에 미칠 영향,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다.

그게 싫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지역 현장을 택해도 문제다. 얼마나 지내게 될지 모르니 보통은 혼자 간다. 기러기 아빠가 되는 거다. 현장에서 기러기 아빠들 많이 본다. 보고 있으면 좀 안쓰럽다. 평생 노가다판에서 뒹군 사람이 밥이나 할 줄 알 거며, 빨래는 제대로 하겠느냐고. 라면 끓여 먹거나 외식하고, 신었던 양말 대충 털어서 또 신을 테지.

노가다판에서 기러기 아빠들은 딱 티가 난다. 홀아비 냄새 폴폴 풍기면서 다닌다(가사노동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노가다꾼들이 타지 생활하면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다).

그렇다고 주말마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러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가다꾼은 토요일까지 일한다. 때에 따라 일요일에도 일하다 보니 잘 해야 한 달에 한 번쯤 집에 가는 거 같다.

사실 이런 문제, 부차적일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용 불안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가다꾼이 현장 옮기는 건 전근이 아니라 재취업 개념이다. 직장인의 전근과는 상황이 다르다. 노가다꾼에겐 보장된 다음 현장이 없다. 1년도 안 되는 시간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거다.

노가다판은 오야지가 팀을 꾸려 현장을 따내고, 그 팀에 속한 목수들은 오야지를 따라가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목수 오야지와 그 팀에 속한 목수의 관계다. 무슨 근로계약서 같은 걸 써서 “앞으로 3년 동안 오야지가 가는 현장에 무조건 따라간다.” 하고 꽝꽝 도장 찍는 게 아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오야지 눈 밖에 나면 쫓겨나는 게 노가다판이다.

보통 현장 옮길 때마다 오야지 주도로 대대적인, 혹은 부분적인 물갈이가 이뤄진다. 이번 현장 공사하면서 마음에 안 들었던 사람은 안 데려간다. 목수 입장에서 보자면 재계약 주기가 더 잦아진 거다. 기술이 발달해서.

행정은 쌍팔년인데, 기술만 21세기

그럼 자기 팀에 속한 목수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오야지 마음은 편하냐. 절대 편하지 않다. 보통 20명 안팎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데, 오야지는 본인 포함 20명의 보장된 일거리를 따내기 위해 5~10개월마다 하청 소장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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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겠지만 노가다판에 투명한 입찰 시스템 같은 거, 없다고 봐야한다. 입찰 시스템이 없진 않겠으나, 온통 불법 투성이다. 오야지는 현장을 따내기 위해 하청 소장들에게 로비를 한다. 접대도 하고, 모르건대 용돈도 좀 찔러줄 테고, 또 아니면 리베이트를 조건으로 현장을 따낼지도 모른다. 하나의 현장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졌으니, 더 빈번하게 말이다. 더욱이 경쟁도 치열해졌으니, 알아서들 단가 후려쳐가며.

하청 사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거다. 오야지가 하청 소장에게 하는 것처럼, 하청 사장은 원청 소장 쫓아다녀야 한다. 마찬가지로 더 빈번하게, 알아서 단가 후려쳐가며(이상의 수주 과정은 주워들은 얘기와 현장 상황을 토대로 한 합리적 추측이다. 내가 직접 불법적인 상황을 목격한 것은 아니니, 믿거나 말거나다).

자본사회에서 이윤이 줄어든 사용자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인건비를 줄이거나 원자재 값을 줄이거나. 혹은 둘 다 하거나. 오야지와 하청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저기 로비하느라 불필요한 지출 늘고, 공사비 자진 삭감해서 마진까지 준 오야지와 하청 소장도 인건비 아끼려고 인부 달달 볶고, 단돈 백 원이라도 값싼 자재 쓰려고 기를 쓴다. 이건 필연적으로 안전사고와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문제다.

거기다가 오야지들이 말 잘 듣고 일 잘하고 일당 조금만 줘도 되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 데려와 부리다 보니(하청과 원청, 심지어 발주처까지 그걸 눈감아주고), 한국 노가다꾼 일거리는 더 줄어드는 상황이다. 경제 살린답시고 건설붐 억지로 일으켜봐야 남의 나라 청년들 배만 불려주는 꼴인 거다. 지금까지 쭉 나열한 문제가, 내 글에서 몇 번 얘기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의 주요한 흐름이다.

정리하자면, 노가다판의 행정·인사·계약 시스템은 여전히 70~80년대 수준인데, 기술만 급격히 발달한 거다. 기술이 발달해서 근시안적으로 당장 일하기 편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건설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한마디로 더욱 엉망진창이 됐다.

여기서, 기술 발달을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다. 도올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기술 발달이 노가다판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고민하고, 그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거다.

위에서 구구절절 나열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과연 어제, 오늘 문제일까. 혹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문제일까. 아니, 우리나라에 늘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그 이전에 와우아파트가 붕괴한 것도,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었고, 그래서 문제가 심화됐을 뿐이다.

그럼 혹시, 높으신 나라님들이 이런 문제를 몰랐던 건 아닐까. 설마. 노가다 초짜인 나도 금세 알게 된 문제를, 나라님들이 몰랐으려고. 그냥 쌩까는 거다. 어차피 피해 보는 건 힘없고 빽없고 가난한 을(乙)이니까.

난 아직 본 적 없는데, 몇몇 현장에서는 벌써 무인 타워크레인을 쓴단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꼭대기에 올라가 운전대를 붙들고 조종하는 게 아니라, 밑에서 리모컨으로 타워크레인을 조종한다는 거다. 아마 이것도 조만간 보편화할 거다. 이렇듯, 기술은 급속한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아닌 말로 10년 뒤에 망치질 대신 하는 로봇, 나오지 말란 법 없다.

무인 타워크레인이 많아졌단 얘길 듣고 좀 무서웠다. 그때가 되어도 왠지 오야지들은 하청 소장에게 로비할 것 같아서, 아마도 더욱 치열하게 로비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 결과로 제일 말단의 노가다꾼들을 더욱 쥐어짤 것 같아서 말이다. 난 그게 좀 소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