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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검찰의 칼끝을 피하지 못했다. 인생을 검찰개혁과 맞바꾼 제66대 법무부장관 조국. 재임기간 35일, 그의 취임과 사퇴는 그에 대한 지지와 별개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떨어지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양분된 대규모 촛불집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담감. 또 검찰개혁 과제 중 법무부장관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에 사퇴했다는 진단이다. 나머지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인데, 패스트트랙 법안처리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조국사퇴’를 조건으로 걸고 있어, 조 전 장관은 자신이 있는 한 국회에서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컸다 한다.

 

그렇다면 조국의 사퇴로 공수처 설치를 포함한 검찰개혁법안, 맞물려 있는 선거법 개정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을까? 정치권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는 반응이다. 선거법이 통과될 리 없고,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법안도 그러하다는 우울한 예측이다.

 

 

조국 퇴진, 검찰개혁의 꿈도 사라지나 

 

선거법에 국회의원 지역구 의석수 줄이는 안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있을까. 이미 그들의 시계는 내년 4월 총선에 맞춰져있다. 국회의원 뱃지 한 번 더 다는 거 외에는 관심 없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면 여당 내에서도 반대표가 상당수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자연스럽게 공수처 설치 법안도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다. 국회의원들에게 공수처 설치 법안은 안중에도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 20명도 안 되는 공수처 검사들이 있는 별도의 검찰을 설치해서 누구를 잡겠느냐? 겨우 검사 잡아들이겠다고 공수처 설치하나? 공수처 검사들이 힘이 셀 거 같나, 일반 검찰청 형사부 검사들이 힘이 셀 거 같냐? 이런 식의 반응이다. 조 장관 사퇴 후 문 대통령이 법무부 차관을 불러 직접 검찰 감찰안을 비롯한 개혁안을 챙기는 행보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0월 말 패스트트랙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선진화법 관련 규정 해석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헌법학자들은 만약 문 의장 예고대로 10월 말 본회의에 상정하여 법안을 처리한다고 해도 효력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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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법안은 최장 논의 기간으로 소관 상임위 180일,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90일, 본회의 부의 후 60일을 거칠 수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사법개혁안을 '사법개혁특위 법안으로 법사위 논의기간 90일은 건너뛸 수 있어 10월 말에 처리해도 된다'고 본다. 반면 한국당은 '법사위가 아닌 사법개혁특위 소관으로, 법사위 고유법안이 아닌 만큼 체계·자구심사를 별도로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본회의 자동 부의 날짜는 이달 29일이지만, 한국당 주장대로라면 내년 1월 29일이 된다.

 

헌법학자들은 '사법개혁특위가 법사위가 아닌 만큼 사법개혁특위 활동이 종료되어, 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온 9월 1일부터 날짜를 세어 90일을 채운 후 본회의 부의해야 국회법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적어도 12월 2일에는 본회의에 부의해야 효력 다툼 발생여지가 생기지 않는다. 만약 본회의 부의해서 가결되면 아마 자유한국당이 무효를 주장하면서 효력을 다투기 위한 법적분쟁을 시작할 것이라 본다. 이 로드맵대로 진행된다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걸어놓고 법적분쟁에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과 언론, 환장의 콜라보레이션

 

검찰은 “국감 전에 끌어 내리겠다”고 작심한 모양새였다. 국감 절반을 지나면서 사퇴했으니 검찰의 당초 예상보다는 늦어지긴 했지만,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검찰개혁의 나머지 공을 국회에 넘긴 채 사퇴했음에도 조국 정국은 계속되고 있다. 국정감사는 '조국 국감'이고, 언론도 여전히 ‘조국 일가’ 타령이다. 급기야는 최근 뇌종양과 뇌경색 진단을 받은 정경심 교수의 진단서에 의사와 병원명이 없다는 이유로 꾀병, 사기꾼 환자로 몰고 있다. 

 

광란의 칼춤을 춰대는 검찰도 검찰이지만, 언론의 조국에 대한 미쳐버린 보도는 '광기'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 된다. 앞, 뒤, 좌, 우를 막론하고 조국 앞에서는 대통합이다. 조, 중, 동을 비롯한 보수 매체는 물론, 언론의 사명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며 우리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조질 건 조져야겠다’던 진보 언론의 보도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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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겐 가혹하면서 검찰총장 윤석열과는 완벽한 파트너십, 환상의 팀플레이를 보여줬다. 오랫동안 주류 매체에서 근무했던 한 기자는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면서 ‘검찰이 사냥꾼이라면 언론은 사냥개’와 같았다 표현했다. 

 

왜 이러는 걸까? 인사에 목 매는 조직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그 출입처의 구성원들과 친해져야 한다. 국세청, 검찰청, 감사원 같이 검찰, 수사, 조사 기능을 주력으로 하는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더하다. 그들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가야 정보도 얻고, 기사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과 친해지면 동화되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일체화와 동조화는 출입처가 힘이 셀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이것만으로 조국 일가에 대한 언론의 살의에 가까운 보도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가 있을까?

 

 

① 기자세계가 변했다

 

검찰출입하는 기자들은 대체로 매체에서 ‘에이스’라고 불린다. 전통적으로 ‘사회부’ 기자를 가장 기자다운 기자로 취급했고, 검찰은 사회부에 있다. 과거에는 검찰 출입 기자들이 단연코 에이스였다. 

 

그러던 것이 최근 바뀌었다. 사회부에 안 가려 한다. 경찰/검찰 출입을 담당하면 현장에 많이 나가야 하고 잠도 못 잔다. 집회, 시위라도 벌어지면 전부 따라 다녀야 한다. 물가에 비해 월급은 안 오르는데 막막하다. 그들도 신념이 있겠지만 직장인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기자들은 정당출입을 가장 선호하고, 그 다음으로 경제부 혹은 산업부를 선호한다. 업무강도가 그리 세지 않고, 언제까지 이 기자하면서 먹고 살겠냐 불안감에 기업에 출입하며 인맥을 형성하고 싶어한다. 기자를 그만둔 다음, 취업길을 내다본다. 

 

한 산업부 기자는 더 좋은 매체로 이직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게 있는데 여기서 추석은 나고 이직해야지!” 

 

추석 지나 그 말뜻을 알았다. 기자의 집에 추석선물이라고 온갖 선물이 도착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검찰 출입하는 기자들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개와 깡다구는 접어둔 지 오래고, 법에 대한 지식은커녕 기본적인 법률도 모른다. 출입처 바뀐 첫날부터 점심 대접 받으며 낮술 마신 걸 무용담으로 늘어놓는다.

 

김영란법 전엔 기자들 접대비를 출입처의 공보실이나 대변인실에 공공연하게 얘기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더치페이가 되는가? 기자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단언컨대 ‘놉!’이다.

 

 

② 조국 개인에게 가지는 지식인 계층의 감정적 분노 

 

조, 중, 동은 원래 그랬으니 논외로 해도, 이번엔 진보매체도 가세했다. 

 

전직 진보매체 기자는 “‘기계적 중립’을 넘어서 ‘우리 편에게 더욱 가혹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거기에 조국 개인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까지. 교수 시절 사회활동을 하면서 했던 말과 다른 삶을 살아온 데 대한 실망감이 적개심으로 변질되는 지점을 관찰했다고 한다. '조국 대전'을 거치면서 지식인 그룹이 가하는 조국에 대한 비토의 목소리가 유독 도드라진 것도 그 그룹이 조국 개인에게 가지는 이상한 적개심 또는 감정이 아니면 설명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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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조국 개인에게 가지는 미움, 질투와 같은 감정선이 격발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나도 지식인인데, 나도 산다면 살고, 잘났다면 잘난 사람인데, 너는 특출난 줄 알고 나대더니, 다르긴 뭐가 달라!’ 라는 마음이 분출된 면이 있다. 

 

검찰이 어떤 작전(?)을 펼칠 때 미디어와 지식인들이 검찰의 '와꾸'에 맞춰 따라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조국 일가에 가해진 폭격은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사냥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나름 목소리도 내고 정권을 막내리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해 문재인 정부에서 한 자리 얻기를 기대했는데, 수포로 돌아간 미움이 ‘문재인의 남자 조국’에게로 향했다는 분석도 있다. 

 

 

③ 기자의 하향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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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은 것에 반해 매체의 영향력은 저하되면서 기자들의 역량이 하향평준화되었다. 이것은 매체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그저 하향평준화된 기자들의 실력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게 이번 언론의 보도였다. 

 

 

④ 무너진 직업윤리

 

기자의 직업윤리가 많이 무너졌다. 같은 매체 안에서도 선·후배가 좋게만 지내려고만 하지 미움 받을 각오하고 아픈 소리를 못하는 문화가 정착되었고, 일단 규율이 설자리를 잃었다. 생존만이 우선시되어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그 또한 ‘각자도생’의 한 방식으로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직업윤리와 나름의 미덕마저 사라진 환경 속에서 방만해진 윤리의식이 조국 일가에 대한 인권유린적 보도행태로 드러났다는 진단이다. 

 

중견 기자들도 흐름을 바꾸거나 교정할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한겨레 출신 기자도 '한겨레는 1987년 민주화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그 정신은 가버렸다. 계속 안 좋은 쪽으로만 진행될 것으로 본다. 한겨레가 가장 한겨레다운 정신과 장점을 발휘해 마지막 불꽃을 태운 건 2016년 하반기 박근혜, 최순실의 비위를 끈질기게 추적한 보도였다'고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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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10년 넘게 언론 또는 언론 주변머리에서 밥먹고 살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석, 박사 공부하며 나름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능숙하고 완숙한 언론인으로 살았다고 자신 못한다. 항상 모자란 마음이다.  

 

다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공부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던져준 자료에 의지해 기사만 쓰면 자업자득의 길은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왕 그리 살기로 했으면 억울해 하지 말고 욕이라도 당당히 먹고 살자. 니들이 원하던 거 했으니 그 정도는 먹어줘야지, 다 가질 순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