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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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중근 사격재현을 위해서 자료를 조사할 때 가장 고심했던 대목이 덤덤(Dumdum)탄에 대한 부분이다. 군사 상식이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일 거다. 덤덤탄은 인도의 공업지대였던 덤덤(Dumdum)지방의 조병창에서 생산된 탄을 의미한다.
일반 탄과 다른 점이라면, 총알 탄두 부분에 구멍을 내거나 흠집을 내는 거였다. 이렇게 하면, 목표물에 명중하는 순간 총알이 벌어지거나 찢어져서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거다. 좀 더 냉혹하게 표현하자면, 탄환이 인체에 박히는 순간 앞부분이 파열하면서 납조작을 몸 이곳저곳에 퍼뜨려 버리는 거다. 19세기 중반부터 이런 형태의 탄을 연구했었는데, 1897년 영국군이 제식채용하면서 유명해졌다. 덩달아 사냥꾼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유행을 타게 된다.
그러나 곧 이 총알의 문제점을 확인하게 되는데, 너무 ‘잔인’하다는 거였다.
1899년의 헤이그 협약(Hague Convention)에서 이런 총알을 쓰지 말자는 주장이 나오게 됐고, 영국군은 1903년에 덤덤탄을 연습용으로만 사용하겠다며 전량회수하게 된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덤덤탄에 대한 규제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8조 전쟁범죄 항목을 보면,
『총탄의 핵심부를 완전히 감싸지 않았거나 또는 절개되어 구멍이 뚫린 단단한 외피를 가진 총탄과 같이, 인체 내에서 쉽게 확장되거나 펼쳐지는 총탄의 사용』
라고 명시 돼 있다. 덤덤탄, 그러니까 할로우 포인트(Hollow Point)탄의 사용을 전쟁범죄로 규정한 거다.
(현대에 들어와서 할로우 포인트와 같이 팽창하는 탄약은 경찰이나 대테러 특수부대 등에서는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정규군의 지급은 가급적 피해왔다. 제네바 협약이나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규정 등등에서 제한했던 탄이기에 정규군이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거다. 미 해병대가 최근에 탄두 끝 부분을 개방된 형태로 설계한 Mk318탄을 개발했는데, 탄 개발과 동시에 법무당국이 법리검토에 들어갔고, 결국 이 탄이 국제협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탄 자체의 성능이 어떠한지, 정말 할로우포인트 탄이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벌어지는 탄에 대한 군대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
문제는 안중근 의사가 의거 당시에 사용한 총알이 덤덤탄이냐는 거다. 이미 이때쯤이면, 덤덤에서는 덤덤탄을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병사들이나 총을 사용하는 이들이 탄에다 일부러 흠집을 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냥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부분을 생각해 보라)
영화 <도마 안중근>
안중근 의사가 의거에 사용된 탄환에는 십자가 형태로 금이 그어져 있었다. 일본 측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①
질문 : 그대와 같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나왔을 때 안응칠도 단총을 갖고 있었는가
우덕순 : 가지고 있었다.
질문: 단총의 탄환 끝에 십자형의 금을 그은 것은 어떠한 까닭인가?
우덕순 : 그것은 모른다.
질문 : 그대가 가지고 있던 탄환 끝에도 십자형의 금이 들어 있는 것이 7. 8개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입수하였는가.
우덕순 : 안응칠은 나의 총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나의 총을 이 사람으로부터 받았을 때에 탄환이 들어 있었으므로 이 사람이 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 : 그러면 우 탄환은 안응칠로부터 받은 것인가
우덕순 : 안이 총탄을 장전한 대로 주었다.
질문 : 그대는 탄환의 끝에 상처를 내지 않고 또 안으로부터 받았을 때 총에 장전되어 있었다고 하면 그 탄환은 안응칠의 것이겠는가
우덕순 : 처음부터 그러한 탄환이 들어 있었는지 안이 상처를 내었는지 그것은 모른다.
질문 : 탄환에는 안이 상처를 내었는지 그대가 내었는지 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우덕순 : 나는 탄환에 상처를 낸 일은 없다. 또 안이 상처를 낸 것도 모른다.
②
질문 : 그대가 십자형의 흠이 있는 탄환을 우의 총에 재어 준 이유는 어떠한가.
안중근 : 이토를 죽이기 위해 재어 주었다.
질문 : 흠을 낸 탄환은 힘이 있으므로 그대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나누어 주었는가.
안중근 : 나는 탄환 끝에 흠을 낸 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질문 : 끝에 흠을 낸 탄환은 명중하면 상처가 크게 되기 때문인가.
안중근 : 나의 탄환은 다 끝에 흠이 나 있다. 특별히 상처를 크게 할 목적은 아니다. 나는 흠이 나 있는 탄환을 샀다.
질문 : 어디서 샀는가.
안중근 : 나는 윤치종에게 부탁해 샀다.
질문 : 윤치종은 그 탄환을 어디서 샀는가.
안중근 : 그것은 모른다.
③
질문 : 우는 그때 탄환은 몇 개쯤 소지하고 있었는가.
안중근 : 몇 발 있는지 묻지 않았으므로 모르지만 당시 나는 30발 가량 있었으므로 우에게 나누어 주었다.
질문 : 우가 소지하고 있는 보통 탄환보다 그대가 소지하고 있는 십자형의 새김이 있는 것이 그 힘이 강한 까닭에 그대가 소지하고 있던 것을 준 것이 아닌가.
안중근 : 당시 나는 거기까지의 생각은 없었고 또 어느 것이 강력한가도 몰랐던 것이지만 처음부터 십자형의 새김이 있는 것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준 것이다.
3.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한 총탄이 덤덤탄이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첫째, 이 시기에 덤덤(Dumdum)에서는 덤덤탄 생산을 중지한 상황이다.
둘째, 총탄에 줄이나 도구를 가지고 흠집을 내는 건 병사들이나 일반인들에게 흔한 일이다.
셋째, 안중근 의사는 이 탄을 샀을 때부터 이미 상처가 나 있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덤덤에서의 생산은 중지됐다. 국제적으로 ‘정규군’이 이런 탄을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 되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덤덤탄을 생산하기는 힘들 거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병사나 민간에서는 자신들의 총알에 개인적으로 흠집을 내는 건 일상이었다. 어렵거나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기에 힘든 일도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총알에 십자가를 그었다는 ‘설’이 퍼진 이유도 이런 이유가 한몫 했을 거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안중근 의사가 이 사실을 부인했다는 대목이나, 신문이나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는 십자가 흠집이 나 있는 덤덤탄을 샀다고만 말했다. 그것도 일관되게 말이다.
‘특별히 상처를 크게 할 목적은 아니다. 나는 흠이 나 있는 탄환을 샀다.’
‘어느 것이 강력한가도 몰랐던 것이지만 처음부터 십자형의 새김이 있는 것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준 것이다.’
이 부분이 신빙성이 가는 것이, 이미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할 결심을 했을 때부터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내려놓았던 게 안중근 의사다. 더구나 이때는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걸 확인했고, 재판장을 정치 투쟁의 장으로 삼던 때였다. 이 자리에서 굳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 측은 일부러 십자가 흠을 내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더 큰 고통을 주려고 했다는 논리를 성립시키려 했지만, 안중근 의사는 탄환에 이미 흠집이 나 있었다고 말을 했다.
이 당시 만주 지역에서 총기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인들이나 장사를 하는 이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권총 한 두 자루 정도를 구해서 가지고 있는 건 일상이었다. 총이 넘쳐나니 총알도 넘쳐났을 것이고, 이 당시에 상식이었던 덤덤탄을 만들어 파는 거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신앙의 힘을 빌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의를 담아 총탄에 십자가를 그었다면 이야기는 드라마틱 해졌을 거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스토리를 지지하지만, 밝혀진 사실을 보자면 이토 히로부미에 박힌 총탄은 모두 사온 것이고, 총탄의 흠도 안중근 의사가 새긴 게 아니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안중근 의사는 덤덤탄에 대해서는 별다른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당시 나는 거기까지의 생각은 없었고 또 어느 것이 강력한가도 몰랐던 것’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데 집중했을 뿐 사용탄의 파괴력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덤덤탄 사용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악감정의 증거이며, 이를 사용해 쓸데없는 고통을 주었다는 논리를 전개하려던 일본으로서는 머쓱해 지는 순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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