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어린 날의 한 소녀

2009-11-02 16:52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신짱 추천0 비추천0

2009.11.9. 월요일
파토



낮의 번잡함과 저녁의 소음이 결국 잦아들고 정신 없는 또 하루가 끝난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오늘따라 피곤한데도 유독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몸은 힘드니 계속 누워는 있는데, 점점 꿈도 망상도 아닌 생각들에 빠져든다.


 


잠재되었던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논리도 맥락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들 사이로 스리슬쩍 비집고 나오는 거다.


 


그럴 때는 주로 옛날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들이 기억나고, 후회의 감정이 평소의 몇 십 배로 커지면서 지친 맘을 난데없이 몰아치는 경우가 많다. 밑도 끝도 없이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무력감과 허무함의 무게 때문에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너무도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사람들과 그들과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아마도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을, 마치 꿈 속에서 만나고 꿈 속에서 헤어진 것 같은, 이미 내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


 


문득 깨닫는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없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떡하면 좋지...?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 것이 이런 몽롱한 상태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심각한 일처럼, 크나큰 상실처럼 여겨진다. 평소에 입고 있던 이성과 논리의 갑옷이 해제되면서, 잠깐이라도 인연을 가졌던 사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토록 무섭게 흘러간 세월과 또 변해 버린 나 자신에게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는 거다.


 


이런 맘 상태가 한 두 시간 동안 계속되어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르면 결국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기도 한다. 싸이월드나 구글을 통해 몇 시간이나 잊혀진 이름들을 검색해 본다. 작은 근황이라도 하나 알면 그들의 존재를 무의식의 허무와 죄책감의 영역에서 정보와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내가 두뇌로 ’처리’ 할 수 있는 형태가 되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지쳐서 새벽에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면 이제 그 이름들은 다시 잠재의식 속으로 돌아가 있다가 언젠가 다시 똑 같은 모습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내가 약해져 있을 때 다시 돌아온다.


 


오늘 하려는 것은 그런 이야기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소위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모두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인데, 어릴 적에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고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름 조숙했던지 중학생이 되자 태어나서부터 종교가 결정된 상태로 사는 것이 점점 싫어졌고, 목사나 신자들 사이에서의 알력이나 위선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차마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 집안 분위기여서,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즈음에는 일요일 오전에 교회 간다고 나가서는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예배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에 부속된 교육관에 숨어 죽치고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늘 그러듯 그날도 교육관의 한 작은 방으로 숨어 들었다. 피아노 한 대와 책상 몇 개가 놓인 작은 이 방은 예배 시간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라, 그 시절부터 팝 매니아라며 깝쭉대던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기 딱 좋았다. 반지하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으면 누가 문을 열고 봐도 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매주 한 번씩 이곳에 몇 달을 오다 보니 나중에는 마치 개인 아지트처럼 느껴졌고, 한없이 편하고도 비현실적인 나만의 공간이 되어 갔다.


 


그날도 여느 때나 다름 없었다. 예배 시작 조금 전 교회 정문 근처에 숨어있다가 아는 사람들(친구들, 중등부 선생님들, 전도사님,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 )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려 슬쩍 교육관으로 잠입했다. 당시 내가 즐겨먹던 간식인 꼬깔콘 한 봉지를 들고 능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미로처럼 복잡하고 서늘한 지하 복도를 거쳐 그 방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손잡이에 손을 대려는 순간, 나는 내 성스러운 아지트에 누군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누군가가 그 속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월광'이었다(솔직히 그땐 몰랐고 나중에 그건지 알게 됐다).


 


피아노를 친다고 하지만 거의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던 나로서는 그 연주가 마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처럼 느껴졌다. 누굴까? 다들 예배 보는 이 시간에 여기 와서, 방에 불도 안 키고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저 사람은...?


 


빠꼼이 문을 열었다. 끼익하는 소리가 났고, 피아노는 잠시 움찔하는 것도 같았지만 계속 차분한 선율을 흘려 보냈다. 하지만 내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혹시 내가 아는 선생님 아닐까? 괜히 혼 나기 전에 그냥 나가자… 그러면서도 그 순간의 환상적인 느낌 때문인지 발을 돌릴 수 없었고, 반쯤 열린 문 앞에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1,2분 정도 지났을까? 눈이 어둠에 조금 익으면서, 또 문을 조금 더 크게 열고 복도의 빛을 방으로 들여보내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의 뒷모습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였다. 무릎 정도까지 오는, 하늘하늘한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선생님일까? 아니다. 그러기에는 키가 작다…  분명히 나보다 어린애다. 초등학교 5, 6학년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혼자, 저런 옷을 입고, 저런 곡을 치고 있다.


 


아지트를 뺏겼다는 처음의 불쾌함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연주를 방해하기 싫었던 나는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내 또래였다면 그 상황이 먼가 수줍기도 하여 되려 조용히 돌아 나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쪽이 어린애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나이대의 관점에서는 중 2와 초등학생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연주가 끝났다. 기억은 마치 전곡을 다 들은 것 같지만, 아마 그 순간 내 머리 속의 시간이 거의 멈춰 있었을 것이고 사실은 쉬운 앞부분만이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우리라.


 


음악이 멈추니 한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할까, 그냥 나가는 게 좋을까? 잠시 머뭇거리는 찰라,


 


'들어와.'


 


그 소녀가 내게 말을 건 거다. 나한테 이야기하는 게 맞나 싶어 잠시 멍하게 서 있으니 다시 말한다.


 


'들어와서 놀자.'


 


'으, 응'


 


마치 거역하기 힘든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나는 방 안에 슬그머니 들어섰다.


 


'문 닫고 들어와. 불 키지 말구'


 


'응...'


 


그리고는 아이는 피아노 의자에서 (정말 어린애 같은 동작으로) 폴짝 내려와 반지하 창문에 붙은 두꺼운 커튼을 조금 걷었다. 일요일 오전의 나른하고 몽환적인 햇빛이 노란 조명이 되어 작은 방에 흘러 들어왔다. 눈매가 서늘하고 얼굴이 하얀 아이였다.


 


'오빠 피아노 쳐?'


 


'응, 머, 조금'


 


'그럼 여기 앉아. 같이 치자.'


 


매사에 명령조지만, 처음 보는 내게 마치 오래 알던 것처럼 오빠라고 부르고 말하는 게 싫지 않았다. 나는 옆에 앉았고 우리는 꼬깔콘을 먹으며 동요를(그 아이도 결국 월광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엉터리로 치고 놀았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4학년이란다. 그러기에는 키가 컸고, 손가락이 무척 길었다. 그렇게 한동안 피아노 앞에서 놀다가 갑자기 그 애가 일어난다.


 


'인제 가야 돼. 엄마가 기다려. 안녕'


 


그리고는 구석에 놔둔 노란 가방을 집어 들고 탁탁탁… 뛰어 가 버리는 거다.


나는 피아노 앞에 한 동안 앉아 있었고, 잠시 후 예배가 끝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커튼을 다시 치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예배를 다녀왔노라며 익숙한 거짓말을 했다.


 



 


다음 주에도 그 애는 먼저 거기 와 있었다. 우리는 또 꼬깔콘을 먹으며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그 애는 또 그렇게 가 버렸다.


 


그 다음 주에는 피아노를 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예배를 보러 가면서 애를 여기에서 기다리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키마우스 시계를 차고 있었고, 시간이 되자 역시나 뛰어가 버린다.


 


다음에는 그 애 집이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배기 고급주택가라는 사실을 알았고, 피아노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이 독학을 했다는 ‘비밀’도 내게 말해 줬다. 혼자 친 것 치고는 잘 친다고 칭찬을 해 줬더니 무척이나 좋아했다.


 


많이 친해졌고 많이 웃었다. 보조개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거기서 만나서 아예 밖으로 나와 버렸다. 교회 근처에서 빵을 사 줬고,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서울에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배 끝나기 전에 부리나케 교회로 돌아왔는데 와중에 전도사님께 들킬 뻔 했다.


 


그 다음 주에는 엄마가 교회에 안 왔는데도 그 애 혼자 왔다고 했다. 피아노도 치고 돈까스를 먹었다. 그리고는 놀이터 가서 놀다가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줬다. 언덕배기 주택가는 걸어가니 생각보다 멀었는데, 집 근처에 도착하자 이제 혼자 갈 테니 날보고 돌아가란다.


 


그 말 때문인지 그때 처음으로 '지금 내가 이 애랑 사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도 엄마는 오지 않고 혼자 왔다. 피아노 치고 밥 먹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아빠는 지금 미국에서 돈 벌고 있다고 구구이 설명을 한다. 아빠가 돈 잘 벌어서 큰 집에서 엄마랑 둘이 살고 있다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외로워 보여, 우리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졌다(혹시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나도 어렸고 이미 어머니 아버지 누나가 모두 교회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가자고 하니 기분 좋게 따라 나서길래 손잡고 한 5분 걸어갔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선다.


 


'오빠, 나 안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왜?'


 


'그냥. 담에 가도 돼?'


 


'으응, 그럼...'


 


내심 서운했지만 본인이 안 가겠다는데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다.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 애는 늘 그렇듯 탁탁탁… 뛰어갔다. 가다가 잠시 멈추더니 한번 뒤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담 주에는 꼭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아야지.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나는 다시는 그 애를 보지 못했다.


 





 




교육관의 작은 방은 이제 다시 나 혼자의 아지트가 되었다. 모든 것이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이 즐겁지 않았다. 그저 어둡고 쓸쓸하고 초라했을 뿐이다. 한달 정도, 어느 순간 그 애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사라지는 날 나는 그곳을 나왔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시간은 바람같이 지나,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 술도 마시고 여자도 사귀고 어른이 되고 결혼도 하고 유학도 하고… 정신 없는 세월이 흘러갔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평소에는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시간도 없다. 그러다가 어느 피곤한 날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누우면, 오만 가지 망상과 잡념들 속에서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던 천사 같은 소녀(기억 속에서 조금은 미화되었을)의 환상만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 애의 진실은 과연 뭐였을까. 아빠는 정말 미국에 갔던 걸까? 엄마는 진짜로 그 교회에 다니기나 했던 걸까. 언덕의 그 고급주택가는 정말 그 애의 집이었을까?


 


왜 늘 혼자였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또 그날 이후 다시는 그곳에 돌아오지 않았던 걸까. 혹시 내가 무서웠던 건가. 괜히 경솔한 말을 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이사를 가기라도 한 걸까?


 


그 답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가끔씩, 혹시 그간 살다가 마주친 사람 중에 그 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나중에 알게 될 사람 중, 또는 이 글을 읽는 독자 열분들 중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서른 다섯이 좀 넘은 나이니 지구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 결국 언젠가 다시 만나 즐겁게 옛 추억을 회상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애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는 아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어렸지만 그 애는 더 어렸지 않은가.


 


이제는 단지 그 어두운 방에서 피아노를 치던 뒷모습, 그리고 손 흔들고 가던 그 마지막 모습과 탁탁탁… 하는 구두 소리만이 각인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머지 않아 내가 죽고 나면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어쩌면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 의미와 감정들과 함께, 마치 이 우주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그렇게 무(無) 속으로 사라져 버릴 짧은 인연의 연약한 기억들.


 


죽어도 다시 만날 수 없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떡하면 좋지...?


 




낮의 번잡함과 저녁의 소음이 결국 잦아들고 정신 없는 또 하루가 끝난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지만 잠은 오지 않고, 대신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일상의 무게들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모든 지나간 것들, 잊혀진 사람들의 빈 공간이 그 순간만은 너무도 크다.


 


가끔씩 그럴 때가 없으신가.



파토(patoworld@gmail.com)
     트위터: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