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4.화요일 알려지지않은 주시자 0. 들어가며
일단 부족한 글에 긴 반론 적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저도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이니 반론을 읽기만 하고 다른 글을 쓸 수도 없는 문제이고, 제 나름대로 몇 자 재반론을 적어 보겠습니다.
경어를... 써야겠지만, 글의 길이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읽으실 거라는 점에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닉에 그냥'님'을 붙이면 좀 어색해서 '문화불패님'으로 호칭했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는 한국과 일본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글쎄다...
내가 지금까지 딴지일보에 올린 글 가운데 흔히 말하는 '딴지 부활' 이후의 글은 저번 글을 포함해 총 18편이다. 이것 말고는 저저번 월드컵 직후와 그 1년 뒤에 각각 한편씩 쓴 글이 남아있는데, 하나는 게임시장에 관한 분석기사(...지금 읽어보니 그냥 감상문 수준이었다... 죄송할 따름)였고, 하나는 그냥 노래방을 소재로 유머글 하나 적어본 거다. 자세한 설명은 블로그를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
그럼, 나머지 글은 어떤가.
(1)배신자의 나라- 이건 국방과 애국심에 관한 글인데, 친일 잔재를 청산하자는게 주제였다. 친일잔재를 청산하기 전에 그 후예들이 국방을 이야기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는 말도 했군. 여튼, 한국과 일본을 비교분석한 글은 아니었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프랑스를 비교대상으로 삼긴 했네.
(2)법대로 합시다- 이건 일본에서 100년도 전에 있었던 어떤 일화 하나를 소개한 글이다. 당시 일본 재판관들이 좀 양심적이긴 했지. 버뜨,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요건 일본이 서양식 사법제도를 받아들인 직후의 이야기로, 이후 일본 사법부도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 부분은 살짝만 언급하고 생략을 하긴 했다만(본 주제와 상관이 없으니), 이걸 가지고 일본은 '지금도' 잘 하는데 한국은 왜 못하냐는 식의 글로 받아들였다면 그건 좀 곤란하다. 당시 한국에도 찾아보면 양심적인 관리가 있었을 테고, 내가 배운게 없어서 그런 일화를 모를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냥 역사상의 일화를 소개한 글이었다. 한국 사법부가 잘했다는 소리는 아니다만.
(3)민영화는 만병통치약인가- 이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글 맞다. 근데, 난 철도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이 글 쓰면서 내가 정말 책임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두 가지 소재만 건드렸다. 안전과 비용. 안전은 차창 이야길 했다. 일본식 차장제도를 한국도 도입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고. 이 주장은 아직 철회할 생각 없다. 두번째 주제인 비용 문제는 일본처럼 민영화 했다간 조뙈는 수가 있다는 말을 했다. 난 아직도 철도 탈 때 마다 속이 쓰리다. 왜 한 역 갈아타는데 2천원 가까이 내야하나 옌장.
(4)광화문 광장 이야기- 일본에 관한 내용은 한 줄도 없다.
(5)내 고향 대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 이야기가 나오는데, 장소가 일본일 뿐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다.
(6)3억원짜리 청산가리- 전여옥씨의 발언에 대한 반론겸 딴지였다. 그녀의 책을 언급하긴 했지만, 혼네-다테마에 이야기와 함께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버뜨, 다시 읽어봐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글로는 보이지 않는다.
(7)막말에 대항하는 우리의 자세- 변희재씨에 관한 기사였다. 일본 이야기 안 나온다.
(8)실천하는 딴지인- 변희재씨의 올인코리아 투고 글에 대한 리플이었다. 일본 이야기 안 나온다.
(9)그가 남겨놓고 간 희망-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글이었다. 일본 문화 개방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을 그냥 수필 형식으로 쓴 거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내용은 없다.
(10)역사, 역사관, 역사의식- 아직 정말로 부족하지만 일단 역사에 관한 내 평소 지론을 쓴 글이었다. 일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11)일본 정권교체 후 관전 포인트- 그냥 일본 정치권에 관한 기사였다. 일본 이야길 한 건 맞는데, 한국과 비교를 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로 일본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는 거 자체가 양국을 비교하는 거라는 논리라면 좀 받아들이기 힘들다.
(12)사람 패지 맙시다- 일본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일본 문화의 쓰레기 같은 잔재를 빨리 청산하자는 이야기 말이다. 일본은 이런 쓰레기 같은 문화 일찌감치 청산했는데 왜 우리는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혹시 이것도 '일본이 먼저 청산했으니 우리도 맹목적으로 따라서 청산하자는 말은 짜증난다'고 반론하신다면, 솔직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13)냄비 근성에 관한 소고- 일본 이야기 한 줄도 안 나온다.
(14)혐한을 말하다- 일본의 혐한론자들은 대부분 그냥 악플러 수준의 아해들로, 신경 쓸 거 없다는 이야기였다. 못 쓴 글이긴 한데,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글은 아니다. 뭐, 일본의 혐한론자와 한국 악플러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분석'이라고 하신다면, 건 좀 오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15)소망교도소에 바람- 내가 요즘 가장 걱정하고 있는 테마, 소망교도소에 관한 글이었다. 일본 이야기 한 줄도 안나온다.
(16)신념에 대하여- 일단, 이것도 역사적인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거의 60년 가까이 전 이야기이고, 그냥 한 일본인 학자의 개인적인 시국선언과 같은 글에 내가 감명을 받아서 소개한 글이기도 하다. 그 학자의 양심과 지성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이걸 가지고 '한국과 일본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 일본 따라하자고 한 글이다'고 하신다면, 많이 오바이지 않나? 여튼, 이 글을 통해서도 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진 않았다.
(17)가카의 표절 의혹에 관하여- 가카가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별명을 스리슬쩍 표절한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시한 기사였다. 비교라... 다나카 가쿠에이의 말로를 소개하며 (옛 일본 따라해서) 불도저 무식하게 밀어부치면 조뙈여라는 말을 하긴 했군. 이것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글이라고 하신다면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일본은 조뙜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이니 잘 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18)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위한 제언- 문제가 된 기사다. 있다가 천천히 설명할테니, 여기선 그냥 지나가자.
간단하게 정리하면, 내가 지난 반 년간 쓴 18편의 글 가운데 6편은 일본이라는 나라 이야긴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나머지 12개 중, 이번 글을 제외하면 11개가 남는데, 그 가운데 양국을 비교분석해서 '일본에도 이런 좋은 점이 있으니 우리도 도입하면 어떨까?'라고 쓴 내용은 딱 한 줄 있다. 반 년간 글 써서 딱 한 줄. 차장제도 도입하자는 제안이 그렇게 천벌을 받을 만한 망발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제 10개가 남는데, 유명한 일화를 소개한 게 두 편, 그냥 일본 정치에 대해 요점정리 한 게 한 편. 나머지 7개는 '일본 따라하다간 조뙈는 수가 있다'는 내용이나, 친일잔재 청산하자는 내용이나, 아니면 그냥 내가 평소에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소재 혹은 내 경험담의 배경장소로 일본이란 나라가 등장하거나 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추모 글이나 전여옥씨 발언에 대한 반론 같은건 솔직히 일본에 관한 글이라곤 볼 수 없지.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자.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렇다' 혹은 '일본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까지 포함해서, 진짜 일본이라는 나라를 소재로 맘먹고 쓴 글은 몇 개 일까? 내 기준에선 딱 일곱개다. 1/3이 조금 넘는군. 번호로 이야기하자면 2, 3, 11, 14, 16, 17, 18 번 글은 일본에 관한 글 맞다.
좀 유치하지만 한 마디 드리자. 도대체 내가 언제 '엄연히 다른 나라인 한국과 일본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 한국도 일본을 따라해야 한다는 식의 고압적인 글'을 썼나?
혹여 '지금까지 글들은 다 괜찮았는데, 이번 글이 특별히 문제였다'는 말씀이시라면, 그 점에 관한 반론은 다다음 장에서 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다른 이야기 좀 하자.
나는 딴지에 다시 글을 쓰면서 '전문적으로 일본에 관한 글을 쓰는 인간'이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특파원인 테츠님이 계실 뿐더러(테츠님 글은 예전부터 즐겨 읽었다), 내가 일본에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메인 테마가 일본은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서 난 사실 소재를 선택할 때 순수하게 일본만을 이야기 해야하는 소재 보다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소재를 우선적으로 골랐고(편집장님 죄송합니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도 대부분의 경우 '역사'에 초점을 맞춰왔다. 즉, 현재의 한국사회와 일본사회를 대놓고 비교한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내가 정말 궁금하게 여기는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불패님 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넌 왜 그딴식으로 일본을 칭찬하냐'는 말을 참 많이들 한다는 거다. 정말 차장제도에 그렇게들 알러지가 있으신가들?
난 대부분의 경우 그냥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엄연히 다른거다. 김태희씨에 대해 이런저런 일화를 섞어 이야기하는 것과 김태희씨를 칭찬하는 것은 다른 것 처럼.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나는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하고싶은 말을 하는 사람. 좀 쓸데없이 긴 글을 쓰긴 하지만 꾹 참으면 읽어줄 만 함. 주로 다루는 소재는 일본, 역사, 가카' 를 추구하건만 걸핏하면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 일본에 대한 글을 쓰는 넘. 가끔 다른 이야기도 쓰지만. 근데, 툭하면 일본 칭찬하는게 좀 거슬림. 사상은 그럭저럭 왼쪽인거 같음'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내 내공이 아직 영 부족한건가. 아니면 '일본에 대한 글 쓰는 사람은 다들 이렇다'라는 선입견이 내 예상보다 더 강한건가.
이번 글은 확실히 '일본은 이런 좋은 점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게 무슨 계몽주의까지 가는건진 모르겠지만, 그 이야긴 있다가 하자.
굳이 한 마디 쓴 소리를 더 하자면,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을 칭찬하는 거다' 비슷한 논리 혹은 인식쪽이 더 위험하다. 여친 옆에 두고 전도연씨의 연기를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그녀의 출연작을 거론 하는데 여친이 '그럼 저런 여자 사귀지 그래?'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전도연 이쁘다'에 대한 반응이라면 그나마 이해는 간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예전에 전도연씨 나오는 영화를 봤는데...'이란 대사에 저런 반응 보이면, 솔직히 '지나치게 의식하고 계신거 아니신가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본은 없다고 하셨는데, 일본은 있다. 어디에 있냐고? 그냥 지구상의 한 나라이고 한국과 무역하고 사람 오고가고 이 물건 팔고 저 영화 사는 한 '나라'를 굳이 '저 딴 나라 없어져 버려. 아니, 이미 없는거나 마찬가지야'라고 굳이 부정하려 드는 그 의식 속에 존재한다. 아니면, 일본 열도가 물에 잠기고 일본인이 멸종되면 행복하실텐가? 난 이나라를 그럭저럭 좋아하지만, 내 마음속의 일본보다 이런 분들 마음속의 일본이 훨씬 더 크고 선명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실연당한 여자 그리워하며 술먹고 '너 따위 잊었어'라고 소리치는 남자 맘 속엔, 그 여자는 그 어느때 보다 선명히 존재한다. 그 여자가 '없어지는' 날은, 그 남자가 걍 딴 여자 사귀고 결혼해서 그런 여자와 사귄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날이다. 이대로 가면 그 날이 과연 오기나 할지 의문이다만.
일본과 한국은 다른 나라다. 왜 비교하냐. 왜 한국이 일본 따라해야 하냐. 기분 나쁘다. 이게 첫번째 주장이신 거 같은데, 내 첫 반론은 이거다.
다르니까 비교하는 거다.
... 글을 읽다가 정말 몇 번을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서 저런 좀 싸가지 없는 표현을 썼다만, 진짜 내 심정이 저렇다. 똑같으면 왜 비교하나. 내가 비싼 밥 먹고 할일없는 넘도 아니고.
예를 들어, 한국인과 일본인은 똑같은 황인종이다. 이걸 뭐 어떻게 비교해서 무슨 글을 써야하나. 한국인이 좀 더 먹음직스럽게 노란가? 지역별로 노란 정도를 정리해 볼까?
똑같은 두 개의 대상을 비교한다는건 말이 안된다(...당연한 거 아닌가!). 뭔가를 비교를 할려면, 다른점이 있어야지. 그걸 인정을 안하고 있는게 아니다.
다음, '다르면 다른 대로 냅두지 왜 한쪽이 다른 쪽을 따라해야 하나'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은 혼자서 성장할 수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건 그냥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여러 또래 아해들과 '친해지고, 반목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더 친해지고, 또 싸우고...'를 반복하면서 '인간이란 이런 점도 있구나'. '이런 좋은 친구에게도 이런 쒯스런 부분이 있구나'. '이 넘은 완전히 개쓰레기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들때 사람 도와주는 면도 있군' 같은 경험을 통해 '인간'을 알아나가기 때문이다. 신생아를 사회와 격리시켜서 계속해서 거울만 보여주면 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성장하려면 타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타인은 '나보다 이런 점은 좀더 나은 타인', '이런 점은 나보다 못한 타인', '나와 비슷한 타인', '나와 정반대인 타인' 등, 가급적 여러가지 종류가 갖춰져 있으면 더 좋다. 그런 타인들과 비교를 통해서 인간을 더욱 잘 알게되고, 그걸 통해 성장해 나가는 거니까.
사회도 이와 비슷하다. 한 사회가 성장할려면, 여러가지 다른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교훈삼을 건 삼고, 쒯스런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고, 비슷한 점이 있으면 왜 비슷한지도 한 번 생각해 보고, 정 반대인데도 잘 굴러가는 사회가 있으면 도대체 왜 잘 굴러가는지도 한 번 생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 그냥 '우린 우리야. 우리대로 살래'라고 소위 말하는 배짱이라는 걸 튕기면, 그야말로 빙하기의 공룡이다. 얼어죽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다른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한국의 문제이니 한국인의 뚝심과 저력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식의 쌍팔년도식 표어를 난 참 싫어한다. 이유? 다음과 같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니 일본을 따라하는 건 말이 안된다면, 다른 나라도 다 마찬가지다. 다르지 않은 나라는 없으니. 결국 한국은 한국과는 다른 사회를 통해 교훈을 찾는다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 머가 남나. 그래, 한국이 남는군.
한국의 '현재'를 고쳐나가는 건 '미래'를 위한 일이다. 그럼 결국 한국의 현재와 미래는 대안이 안되니(현재의 상황 자체가 대안이 될 거 같으면 애시당초 문제 생길 일도 없지않나), 답은 하나 있네. '과거'다. 먼 소리냐고? 한국의 문제점은 한국사 연구와 이를 통한 교훈의 도출을 통해서 고쳐나갈 수 있고, 이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이 된다. 사실 이런 시도가 과거 한국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대충이런 식이지.
'외모 지상주의'를 타파하고 외모만을 따지 않는 한국사회를 위해, 교훈이 될 만한 선조들의 지혜를 찾아보자. 오호라, 옛날엔 결혼은 부모님들이 다 정해주셨으니 첫 합방까지 상대방 얼굴도 몰랐지. 이런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한국인은 외모를 안 따져도 결혼을 할 수 있는 우수한 민족인게 분명해. 우리 선조들의 얼을 본받아 오늘에 되새겨, 이 외모 지상주의를 한국사회에서 쓸어내자!!
... 농담... 하시나? 지금?
이런 사회가 발전이 있으면 그게 더 신기한 거 아닌가?
'객관적인 글을 써라. 니 주관에 불과하지 않느냐'라는 말씀이라면, '객관이란 건 결국 많은 주관이 모인 것'이라는 보편적인 대답밖에 해 드릴 말이 없다. 여긴 국회가 아니다. 문화불패님이 독투에 글을 써서 딴지 메인에 떡 하니 기사화 됐듯,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양심과 이성을 담보로 말 할 자격이 있다. 거기다가 자로 잰 듯한 객관성을 요구받는 다면, 난 이런 글 쓸 때 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을 열심히 이너넷을 통해 찾아서 최소한 20명이라도 보증을 받은 다음에 겨우 글을 쓰고 딴지에 송고할 땐 그들과 연판장에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 우리, 그래야 하나?
마지막으로, 그럼 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으면 따라해 보는 시도도 필요한가를 살펴보자. '자긍심'은 스스로를 높이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니오, 남을 낮추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자긍심'이다. 그리고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 곧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논리는 그야말로 농담에 불과하다. 그건 자긍심이 아니라 그냥 허영이다. 진짜 자긍심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약점도 인정할 줄 알고 남의 자긍심도 존중할 줄 안다. 고리타분한가?
중국은 '우리가 중국이다'라고 배짱을 튕기니, 그게 자긍심이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는가? 한국도 그랬으면 하나? 그러면 한국이 '자긍심 있는 멋진 국가'가 될까.
내가 생각하는 진짜 멋지고 자긍심 있는 국가는 이런 거다.
한국은 한국, 일본은 일본, 중국은 중국이다. 다 사람 사는 사회다. 인간이 완벽할 수 없듯, 그런 인간이 모인 사회와 국가도 완전할 순 없다. 우린 다 장단점이 있지만, 지금껏 기나긴 역사를 헤치며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 나갈거다. 중국은 좋은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은 좀 고치는 게 어떨까(...남의 나라 차 디자인 좀 도용하지 마시지?). 우리(한국)도 너희들 보다 못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딱 똑같이 좋은 나라다. 근데, 요즘 미디어의 잘못된 유도 덕인지 요 몇 년 사이 정말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외모중시 풍조가 생겼다. 어라? 일본엔 이런 좋은 점(칭찬하는 문화)도 있군. 좀 배워 볼까?
이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국가 정체성을 뒤흔들고 일제의 잔재 청산에 역행하는 일인가? 아직 한국과 한국의 문화가 그 정도 역량밖에 없는 건가.
한국이 국가로서 존중받고 싶다면, 일본도 똑같이 존중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 없다. 한국은 있다. 한국은 한국이다. 배짱 튕길테다'를 반복하는 나라라면, 그런 나라를 '자긍심 있는 국가'라고 말해주긴 힘들지 않을까.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신 듯 하다. 글이 좀 어렵고 내가 모르는 전문용어가 많아서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니, 좀 핀트가 어긋난 반론이 될 지도 모르겠다.
... 일본인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권위에 노예처럼 복종하는 넘들이고, 그런 숨막히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네와 다테마에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와 다른데 왜 따라해야 하나. 일본은 참 지랄맞은 나라다. 대충 이렇게 요약하면 되나?
흐음... 외모 이야기에 왜 이 이야기가 튀어나온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만, 그냥 쉬어가는 '칼럼 속의 칼럼' 삼아 조금 놀아보자. 서비스 업을 예로 드셨으니, 나도 서비스 업을 예로 들겠다. (1) 시부야에 '109'라는 원기둥 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쇼핑센턴데, 저어번에 테츠님이 '일본 불량아들 축제'기사를 쓰셨을때 나온 그런 아가씨들의 성지같은 곳이다. 가보면, '갸루'라고하는 금발에 얼굴은 짙은 갈색으로 화장한 좀 어이없는 아가씨들이 건물 가득 진을 치고 옷 고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점원들도 다 그런 아가씨들이라는 거다. 당연하지. 알마니 정장 입힌 점원들 세워놓으면 쇼핑센터 분위기 망가지지 않겠나.
이 아가씨들이 점원한테 '저 코트 좀 보여주세요'그러면, 뭐라고 할 거 같나? '예, 알겠습니다. 고객님' 할 거 같나?
'응' 그런다. 그것도, 매우 한정적으로.
시부야 109는 점원이 반말을 깐다. 이건 그냥 사원 교육차원에서 반말을 까도 된다고(사실상 까라고) 시키는 거다. 왜냐고? 일단 여기 오는 아가씨들이 그런 고아한 경어법에 별로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일일이 그렇게 예의범절 차리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라면 '고객에 맞춰서 사원교육 시키는 거니 똑같지 않나'라고도 할 수 있겠지. 아까 '한정적으로' 그랬는데, 이유는 이거다.
'뭐? 저 코트? 저건 언니한텐 안 어울려. 이거 입어봐' 그러는 경우도 있다. 대박이지?
점원들이 까다롭게 예의를 차리면, 그런 예의범절에 익숙하지 않은 '109 쇼핑센터에 옷 사러 오는' 아가씨들 한텐 오히려 부담인 거다. 그럴땐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구는게 낫다는 게 이들의 사고방식이다. 덕분에 여긴 오늘도 10대 아가씨(들 중에서 이런 문화와 코드가 맞는 아해들)로 붐빈다.
(2) 도쿄에 있는 와세다 대학 가까이에, 재미있는 식당이 하나 있다. 티비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 식당은 '메뉴를 주방장이 고르는' 식당이다. 이런 식이다. 대학생 네 명이 자리에 앉아 '전 까르보나라' '전 미스소스' '전 나폴...'
'그냥 미트소스 네개 먹어라. 그거 언제 일일이 다 만들어'
반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좀 무섭기도 하다(말할때 아저씨 표정도 대박 무표정이고).
...학생들, 닥치고 주방장이 만들어 주신 미트소스 먹고 돈 내고 나간다. 다만, 비교적 싸고 양이 많아서 한창 먹을때인 대학생들과 운동부 애들한텐 꽤나 인기가 많다.
이상신/국중록 웹툰'츄리닝' [욕쟁이 할머니편] @Stoo.com
손님은 왕이고 종업원은 개/노예라...
오므라이스 좋아들 하시나?
일본어에 '마카나이 요리'란게 있다. 마카로니 아니다. 마 카 나 이. 직역하기 힘든 말 중 하난데, 설명하자면 '주로 식당에서 종업원들 먹으라고 만드는 음식'이란 뜻이다. 주방장이 알바생들 먹으라고, 혹은 주방 요리사들 끼리 허기 때울려고 만들어 먹는건데, 일단 당연히 돈을 안 받고 일하느라 바쁘기도 하니 비교적 간단한 재료를 잘 활용해서 만든다. 버뜨, 여기서 또 장인혼 발휘하는 아해들이 등장하는 거다. 간단히 만들되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종업원들 끼리 요리실력 경쟁하듯 간단한 재료를 충분히 활용해서 양 많고 맛있게 만드는 메뉴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게 종업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 그게 입소문으로 손님들 귀에도 들어가 '우리도 만들어 줘요. 돈 낼게' 하는 시츄에이션이 생긴다. 오므라이스도 이렇게 만들어 먹던게 시초라는 설이 꽤나 유력하다. 계란 프라이 덥밥 같은것도 그렇고. 장인정신으로 오무라이스를 만든다는 내용의 휴먼일본드라마 '런치의여왕' 여기서 중요한 건, 종업원들이 간단하다고는 해도 재료, 조리시설 맘대로 써서 자기들 먹을 별식 요리를 만들어 먹는게 하나의 문화로 정착이 되어 있다는 거다. 돈 안내고 배 부를때 까지 이 재료 저 재료 써서 먹을 만큼 만들어 먹어도 뭐라 안하는 문화 말이다. 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히려 이 마카나이 요리가 (주방 스텝이 직접 먹을거니) 더 맛있다는 가게도 많다. 한국 겜방 사장님도 알바생한테 마트 가격이 아니라 겜방 가격으로 컵라면 파는 곳도 있는 판국에, 이만하면 양반이지 않나? 옆길로 샛군. 딱딱한 이야기만 하다가 먹거리 이야기 하니 재밌네. 담엔 이런 기사나 하나 쓸까.
본론으로 돌아가자.
오래간만에 쌍욕 먹을 각오하고 충고 한마디만 하겠다.
한국에서 가장 간단하게 영웅이 되는 방법은 일본을 욕하는 거다. 일본에 대해 비판을 하면 그냥 인문학쪽 전문용어 몇 개만 적어도 '매우 날카롭고 지적인 비판'이 되고, 그냥 욕만 도배를 해도 '그래, 일본넘들은 개새끼야'라는 식의 동조를 얻어낼 수 있다. 추천, 리플, 칭찬...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말이다, '칭찬을 받을 게 분명한 글'만 쓰고 있는 한, 지적인 성장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한국의 이너넷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본 까대기'는 이 선을 넘기가 참 힘들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난 문화불패님의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저 선을 매우 월등히 뛰어넘는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와 생활양식이라는 가치가 마침내 발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어제 처음 들어서 매우 기쁘다. 인류 보편을 기준으로 일본이 독특한 민족이라... 인류 보편이 뭔가? 미국적인거? 중국적인거? 설마 근대화 된 거라는 말은 안하시겠지. 아프리카의 소수부족과 비교해도 일본은 인류 보편을 기준으로 삼았을때 지나치게 독특한가?
일본인들의 훌륭하다 못해 지나치다 싶은 서비스, 극도로 발달한 겸양어와 겸손한 생활태도, 마치 개미와도 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협력하는 국민성등등...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제1의 원리에서 발생된 그들만의 문화인 것이다. 서양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하이 컨텍스트 컬처로 묶여지는 여타의 아시아 국가에도 이런식의 문화와 사회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무지해서 하이 컨텍스트 컬처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지나치게 무식한 인간이라는 건 알지만, 무식한 자들을 대변해서 한마디 하자면 이 정도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배운 자의 아량이요 미덕이다.
개미처럼 움직이고 협력하고 질서 잘 지키고... 시부야나 신주쿠 한 번만 가보시면 그들이 얼마나 미친듯이 신호를 안지키는지 잘 알게 되실텐데.
혼네와 다테마에로 규정되는 인식구조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부작용도 존재한다. 더욱이 그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었을때에는 선과악, 그리고 법률과 도덕마저도 초월하는 무서운 권력, 두려운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말하는 권력과 빅브라더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천왕이나 총리와 같은 특정 지배층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또한 헌법이나 도덕과 같은 보편적인 법률체계나 가치관과도 다른 것이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바로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비정한 통제사회인 것이다. 일본은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일상생활에서조차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눈치를 봐야 하고, 한번 휩쓸리는 기운이 나타나면 모두가 침묵한 채 한배를 타야한다.
일본은 조지 오웰이 예언한 그 나라였던 게로구나. 내가 여태 그것을 모르고 살았군. 혼네는 죽이고 다테마에만을 열심히 사용해 빅브라더의 감시를 따돌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지. 어라, 혼네는 본심이라는 뜻일텐데. 온 국민의 본심이 그런 감시를 싫어한다면 서로 감시 안하고 살면 되는거 아닌가. 비정한 통제사회라...
... 그만 깝작거리자. 내가 딴지를 걸기엔 지나치게 지적이고 어려운 글이군. 뭐, 난 외모 이야기만 했지 개미와 노예처럼 일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건 넘어가자. 이게 내 결론이다.
문화불패님이 생각하시는 일본은, 현해탄 건너 그 나라가 아니라 한국의 도서관과 이너넷상에(만) 존재하는 나라다.
저번 내 글에 대한 댓글 중에서 참 씁쓸해지는 댓글이 있었다. 일본애들 취향은 얼굴은 원조교제, 몸은 업소용이라던가? 일본 인구가 1억 3천만이니 툭 잘라서 남자가 6천만명 여자가 6천만명 전후로 있겠군. 한국 인구를 능가하는 매춘부와 한국 인구를 능가하는 성매입자로 구성된 나라를 상상할 수 있는 은하계적 배포와 스케일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그걸 또 자기 이름으로 가입한 사이트에 글로 남기는 호연지기는 정말 숙연해 질 따름이고.
문화불패님의 글은 훨씬 고차원적이긴 하지만, 발상 자체는 솔직히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온 것 같은, 한국에도 없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지만 일본에만 존재하는, 무지하게 이론적인, 그리고 그 실체를 확인하는 길은 염력을 통한 '심증' 밖에 없는 '눈 보이지 않는 규범'이 실존하리라 믿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망상'에 불과하다. 이런 망상 내가 왜 아까 음식점 이야길 길게 늘어놓은 거 같나? 한국의 책과 이너넷이 소개하는 일본, 그 지독하게 단편적이고 끔찍하게 좁아터진 인식들. 일본은 이렇다, 저렇다. 한 나라를 그런식으로 자로 잰듯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모험이다(그래서 외모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통한 한정된 경험담이다'라고 강조한 거고). 한국 여자는 모두 된장녀인가? 한국 남자는 다 정장에 흰 양말을 신나? 한국인은 다 매운 걸 잘 먹나? 한국인은 다 대범하고 호방하나. 다 술 잘먹고 음주가무가 인생의 낙인가? 그 한국인은 도대체 누군가. 일본은 그냥 평범한 나라다. 돈이 좀 많긴 하고, 좀 재미있는 문화도 몇 개 있지만, 전 지구상에 독버섯 처럼 기생하는 악의 제국도 아니오 한국인의 인식을 좀먹을 신종 바이러스도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지나친 과대평가지). 일본의 개개인은 그냥 오늘도 하루 하루 때론 재미있게 때론 슬프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간다. 온 국민이 기계처럼 일하고 움직인다고? 이 아해들이 맘먹고 일 땡땡이 깔때 얼마나 잘 까는지 경험을 못해보신 게로구만. 온 동네 라면집이 누구덕에 장사를 하는데. 외근 돌다 라면 먹는건 영업사원의 낙이요 도덕이다. 노예처럼 일하고 대학생은 미친듯이 공부한다고? 휴가 독하게 찾아쓰고 학생들 수업 제끼고 노래방 잘 만 간다. 질서의식? 역 마다 다르다. 시부야는 조또 내가 신호등이다. 에비스는 우아한 동네라서 다들 신호 잘 지키더만. 참고로 바로 옆 역이다.
한국도 신종플루 유행한다던데 건강 조심하시길 빈다. 긴 글 읽어주신 독자제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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