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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성 노예범죄

 

매일 매 순간 굵직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와 싸우기도 바쁜데.

 

속칭 ‘텔레그램 N번 방 성 착취 사건’은 말이 좋아 ‘착취’지 실제 잠입 취재를 했던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날것 그대로 언론을 통해 보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해서 사실상 ‘성 노예’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정도다.

 

이 사건은 텔레그램이나 디스코트와 같은 보완성이 좋다고 알려진 메신저 앱을 이용해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다. 미성년자가 상당수 포함된 여성들을 약취, 유인하여, 협박 음란물을 찍게 하고, 이 음란물의 수위에 따라 대화방의 등급을 나눠 게시하면서, 입장료를 받아, 돈을 내고 입장한 사람들에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들은 대화방에서 피해 여성을 실제로 ‘노예’라 칭했다. 단순히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음란물을 찍은 정도를 넘어서, 미성년자를 공중 화장실에 감금시켜 강간까지 실행한 대규모 성범죄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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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방을 개설한 자로 알려진 닉네임 ‘갓갓’은 1번 방부터 8번 방(일명 ‘N’번방)까지 여덟 개의 채팅창을 만들어 여기에 성 착취 음란물을 올렸고, 닉네임 ‘와치맨’은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방에 링크를 올려 접속하게 했다. 그러다 이러한 N번방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2019년 9월경 없어졌고, 이후 다른 방들이 이름만 바꿔 재생산됐다. 그중 닉네임 ‘박사’가 운영하는 ‘박사방’이 가장 큰 논란이 되었다. 성 착취 영상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배포하고, 암호화폐로만 결재해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여성들을 협박하고 신상정보를 파악해 가학적인 사진과 영상을 찍고 올리게 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를 보도한 기자의 신상정보까지 파악해 유포하였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9일 경찰은 ‘박사’를 체포했고, 그의 실명이 알려졌다. 조주빈. 경찰은 그를 체포할 당시 그의 방안에 있던 현금 약 1억 3000만 원도 압수했다. 조주빈이 운영에 활용한 암호화폐 추적 결과, 최대 32억 원에 이르는 자금 흐름이 있었다.

 

경찰이 현재까지 확인한 ‘박사방’의 피해자만 74명이다. 이 중 미성년자만 16명에 이른다. 그리고 N번방을 통해 성 착취 영상물을 봤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대 26만 명이다.

 

조주빈의 허세 어디서 비롯됐나?

 

지난 주말 국민일보 보도로 사건의 심각성이 새롭게 재조명됐다. 경찰이 ‘조주빈’을 검거하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청원수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N번방의 가입자 전원(26만 명)에 대해서도 모두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26일 오후 2시 기준 190만 명이 넘게 동의한 상태다.

 

이렇듯 국민적 분노가 치솟자 문재인 대통령은 가입자 전원에 대한 조사 및 엄벌을 지시했고, 그중에서도 공직자를 가려내라고 지시하였다. 또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가해자 전원에 대한 엄중 처벌을 공표했다. 또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T/F팀 구성과 함께 법리 사항을 검토해 텔레그램 N번방 개설자들에 대해서는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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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한대도, 포토라인 앞에 선 조주빈의 표정은 당당했다. 여론은 분노했다. 진혜원 대구지검 서부지청 부부장검사는 “(N번방 범죄자들) 자신들이 검거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검거되더라도 훈방될 것이라는 오만, 그리고 특정 정치적 세력에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이상 자신들의 세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 오만, 착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던 정치집단과 사법체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N번방 전 운영자 와치맨은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음 걸렸을 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나와서도 똑같은 죄를 저질러 또다시 기소되었으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관할 검찰청인 수원 지검은 지난 19일 수원지법 형사 9단독(판사 박민) 심리로 열린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와치맨’ 전 모 씨(38)에게 고작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수원 지검은 변론재개를 신청하여 내달 9일로 예정됐던 선고 공판이 취소되었다.

 

뿐만 아니다. N번방의 시초인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넘겨받은 닉네임 ‘켈리’는 지난해 9월 N번방에 음란물을 재판매해 2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으나 지난 11월 재판에서 고작 징역 1 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에 검찰은 항고도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람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악랄하다. 여론의 분노는 그 때문만은 아니다. 본격적인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이러한 범죄 유형이 너무나도 많았다. 익히 예견됐음에도, 가해자들은 그동안 너무나 가벼운 처벌을 받아왔다. 어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우리 사회가 너무 게을렀다. 그리고 이것이 그 후안무치들이 저토록 뻔뻔하게 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범죄 처벌이 약한 이유는?

 

왜 유독 성범죄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이렇게 낮은 걸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일까? 어떤 이들은 정보통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범죄도 진화하고, 발전하는 데 법규정이 이를 못 따라간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누구는 성범죄 혹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낮아서 문제라고도 한다.

 

국가

처벌규정

미국

18 USC 2252A (a), (b) “전송, 배포, 배포목적 복사, 광고, 판매, 판매 목적 소지5 이상 20 이하 징역  벌금 병과(성범죄 전과 있는 경우, 15 이상 40 이하 징역  벌금 병과), “단순 소지, 시청 목적 접근10 이하 징역 또는 벌금 (병과가능)

영국

Protection of Children Act 1978 §6, §1 정식재판시 “촬영, 배포, 상영, 배포 또는 상영 목적 소지, 광고시10 이하 징역 또는 벌금(병과가능) 약식재판시 “촬영, 배포, 상영, 배포 또는 상영 목적 소지, 광고시6 이하 징역 또는 벌금(병과가능)

캐나다

Protection of Children Act 1978 §6, §1  “제작, 출간, 출간 목적 소지1 이상 10 이하 징역 “전송, 배포, 판매, 광고, 수입, 수출   행위 목적 소지1 이상 10 이하 징역 “단순소지, 접근6 이상 5 이하 징역

독일

독일형법 184b, c “반포, 전시, 게시, 상영, 제조, 취득, 보관, 공여, 광고, 수입, 수출3 이상 5 이하 징역(영업목적, 조직 범죄의 일환인 경우 6 이상 10 이하 징역) “단순소지2 이하 징역 또는 벌금

한국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 “제작, 수입, 수출무기징역 또는 5 이상의 유기징역 “영리목적 판매, 대여, 배포, 제공, 소지, 운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10 이하의 징역 배포, 제공, 전시, 상영7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 벌금 “알선3 이상의 징역 “소지1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

 

(참조 : 전윤정최진웅, “다크웹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규제현황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1636  강은정김혜정황태정,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한 국민인식과 효과적인 규제방안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

 

실제 여러 보고서를 살펴보고 전문가 및 실무가들의 진단을 수렴한 결과, 법규정은 영국이나 미국 등 외국과 비교해도 낮지 않았다(위의 표 참조). 다만,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실제 처벌형량이 낮은 게 문제였다.

 

아울러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한 정의 규정이 모호하다. 즉,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제2조(정의) 제4호와 제5호 6)에 “그 밖의 성적 행위”의 내용이 적시되지 않았고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의 대상과 범위 역시 모호하여 수사와 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규정이 모호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본래 ‘음란’ 표현은 태생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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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PA>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재판에서 형이 낮아지는 걸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형의 가중, 감경 사유를 정하고 있다. 가중 사유로는 “가학적 · 변태적 침해행위 또는 극도의 성적 수치심 증대”, “다수 피해자 대상 계속적·반복적 범행”,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등을 정하고 있다. 감경요소로는 “상당 금액 공탁”, “진지한 반성”, “처벌 불원(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등)” 등이 있다.

 

이전에 동일 범행으로 구속 기소되었던 와치맨은 형 가중사유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형을 감경 받았다는 소리다. 어떻게? 판사한테 반성문 열라 쓰고, 피해자 찾아다니며 합의 봐달라, 탄원서 써 달라 붙잡고 늘어지고, 텔레그램에 성 착취 영상물 뿌려 번 돈으로 공탁금 내고 집행유예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성범죄 같은 경우 피해자들은 나서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구조인 반면, 피의자들은 매일같이 판사들에게 반성문 쓰고 법정에서 자신을 적극 변호한다. 판사의 눈앞에는 피의자만 있고 피해자들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판사들은 피의자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어쩌면 이번 조주빈 사건도,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또는 자신이 피해 사실 자체를 떠올리는 게 끔찍해서, 피해자로 당당히 나서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거나, 가해자들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들에 대한 처벌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질 못할 수도 있다.

 

 

반면, 피의자들은 그동안 피해자들 착취해서 번 돈으로 고액의 수임료 내고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자신을 적극 방어할 수도 있다. 형식적일지언정 반성문도 열 장이고 백 장이고 써 낼 수 있다.

 

중요한 건 처벌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법무부가 피해자들에게 전원 국선변호인 선임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은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 진혜원 대구지검 서부지청 부부장검사는 “피해자들이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피의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법정형과 선고형의 괴리는 오래된 사법체계의 문제 때문이기도 한데, 실제로 ‘법정형이 무기징역도 가능한 일정 뇌물죄, 수백억 원을 횡령한 재벌 총수들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데, 그보다 덜한 죄인 청소년 음란물에 어떻게 그보다 더한 형을 선고할 수 있겠냐’는 ‘선고형의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다수의 재판부 구성이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선고형이 낮은 데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범인들은 남성 범죄자에 대한 판사들의 동조 의식을 악용한다. 심리 법칙에 ‘정들면 판단하지 않는다’, ‘자주 보면 정든다’는 법칙이 있다. 이는 세계 각 대학에서 FMRI를 이용한 뇌 영상 검사로 거듭 증명된 법칙이기도 하며, 이 심리 법칙은 재판 과정에서 일종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위 같은 전제하에 현실 법정을 바라보자. 남성 피고인은 매번 재판부와 얼굴을 맞대지만 여성 피해자는 2차 가해 우려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재판부와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는 얼굴을 계속 맞댄 피고인에게 점점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 측은 유리한 판결을 얻어낼 여지를 확보한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엄정 수사 및 강력 처벌 의지를 천명하였지만, 그 앞에는 전제가 따른다. 진 검사는 “(조주빈 등 N번방 피의자들을) 형식적‧대외적으로는 크게 처벌할 것 같다”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수사기관이) 명단을 독점하고 있는 기회로 특정인을 몰래 배제하는 거래를 하거나, 아니면 없는 특정인을 마치 명단에 있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자질과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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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가해자 처벌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피해를 주장하고, 피의자들의 강한 처벌을 원하며, 이후에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피해자 지원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피해 상담 등을 통해 자신들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도록 해야 하는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 지원에 대한 체계가 굉장히 열악하다. 범죄 피의자 교정으로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연간 2조 원 정도 되는데 반해, 범죄 피해자에게 들어가는 지원 비용은 800억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수치도 10년 사이에 많이 좋아진 결과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비롯해 심리 상담치료 지원 등의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