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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떠들썩 한가운데, 흔히 선진국이라 불리던 서유럽 국가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에서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느지막이 창궐하기 시작한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셧다운’(shut down) 조치가 벌어지는 등 불안과 공포가 시민사회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조치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현재, 영국 정부는 코로나19와 관련, ‘통제(containment)에서 ‘지연’(delay) 단계로 전환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추격 및 격리 등은 하지 않고, 지연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인데요. 손 씻기 혹은 자가격리를 통해 개개인이 코로나19에 대응하도록 한 것입니다. ‘확산’이라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제대로 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죠.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 실시와 함께 최대한 천천히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자가 면역이 생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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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PA>

 

물론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 주진 않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자문 위원인 ‘패트릭 밸런스 경’(Sir Patrick Valance)는 코로나19의 특성상 전체 인구의 약 60%가 감염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집단  면역체계 구축하는 것이 현재 상태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죠. 사실, 영국의 국가 의료기관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늘 말해 왔던 게 ‘자연 치유’입니다. 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병원에 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권고, 한 번쯤을 들어봤던 얘기죠. 약을 복용하고 수술을 하는 등의 행위보다는 인체의 면역체계가 질병을 치료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보고 있는 것인데요. 따라서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많은 인구가 감염이 되면 집단 면역을 형성하게 되고 결국 바이러스도 서서히 수그러들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공리주의의 나라, 영국

 

그렇다면, 영국 정부는 왜 이러한 방향의 정책을 내놓게 된 것일까요? 그 답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토대로 발전한 영국은 개인과 사회가 모두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영국의 철학자들이 공리주의를 창시하게 된 배경이죠. 주지하다시피 공리주의는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보는 윤리적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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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철도가 있다고 가정하고, 한 철로에는 3명의 철도 근무자, 또 한 쪽에는 아이를 안 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고 하면,  둘 중에 누구를 살려야 할까요? 바로 이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공리주의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상황을 예시로 이론을 만든 건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실리적인 사고방식은 지금까지도 영국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어린아이나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혹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더 위협적입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전염성을 낮출 수 있는 묘안은 없고 백신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고 어느 곳에 재화와 용역을 집중시켜야 할까요? 당연히 노약자 혹은 만성질환자들이 고위험군에 있으니 이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현재, 영국의 국민의료 서비스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 종사자가 100만 명에 육박합니다.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 병원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 묶이게 됩니다. 고위험군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학교 수업은 중단할 수 없다는 결론이 가능한 것이죠. 영국 정부는 지난 17일, 학교 수업을 일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에 의료인, 경찰, 배달원 등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종을 가진 이들의 자녀들에게는 선택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계획을 수정하긴 했지만요.

 

추가적으로 영국의 의료총책임자(Chief Medical Officer)인 ‘크리스 위트니’(Professor Chris Whitty) 교수는 코로나19 감염자의 동선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가장 초기 단계에서 실시해야 할 추적, 즉 동선 파악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이니 만큼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동선 노출을 통해 개인의 생활권을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의료 총책임자의 입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3T,  ‘Trace’(추적) 하고 ‘Test’(시험) 해서, ‘Treat’(치료) 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코로나19는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가진 특성보다 웃도는 전파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가 많고 젊고 건강한 사람은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제한적입니다. 치사율 또한 기존에 발발했던 에볼라, 사스 그리고 메르스 등과 다르게 낮은 편인데요. 따라서, 손을 자주 씻고 감염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할 경우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는 데이터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나면 악수나 포옹과 같은 신체적 접촉을 통해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일상인 이들에게 행동 양식의 변화를 주어 감염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인 것이죠..

 

사실, 손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라 정도가 어떻게 국가 정책이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젊은이들이겐 위협적이지 않다 해도, 어린아이들 중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가의 정책이 감염자가 높은 중증 환자들에게 집중하겠다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이것을 택하겠다는 방식은 공리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분히 영국스러운 것이죠.

 

하던 대로 

 

영국인들 중 코로나19가 ‘매우 두렵다’고 답한 이들이 5%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별로 두렵지 않다’, ‘ 전혀 두렵지 않다’는 44%, 26%입니다. 비록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할지라도, 영국 내의 분위기는 침착해 보입니다. 물론, SNS를 비롯 각종 포털에서는 정부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실생활에서 보이는 사회적 불안감은 크지 않은 편입니다.

 

물론, 간헐적으로 일부 슈퍼마켓에서 휴지와 손 세정제나 휴지 사재기 풍경이 전해지곤 있지만, 아직까지 거리에서 마스크를 하는 사람을 보기 매우 드물고, 학교와 상점 등도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에 인적이 드물어진다거나 하는 일상의 변화도 없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속으로야 불안한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만 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고 있네요.

 

사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는 건, 단순히 시민의식이나 국민 정서가 그렇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3월 5일이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we should be going about our business as usual."

 

“평상시 하던 대로 하세요.”라는 뜻입니다. 한 국가의 총리가 초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자세로서 올바른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발언에도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는 이유는 나름의 역사적인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Business as usual’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된 슬로건입니다. 전쟁 중이지만, 군인의 역할과 민간인의 역할을 구분하여 민간 경제가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했던 것인데요. 때문에 1916년, 전쟁의 양상이 ‘총력전’ 국면에 이르기 전까지 영국의 ‘침착해’ 모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피해의 규모를 줄이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쟁 물자 지원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출 증가도 느리게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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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향성은 2차 대전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Keep Calm and Carry On’이 그것인데요.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9년, 007의 나라답게 일찍이 첩보를 접수한 영국 정부는 독일로부터 대규모 공중 폭격이 단행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대피하라고 하기보단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고 하던 일 계속합시다.”라는 슬로건을 또다시 제시했습니다. ‘Business as usual’처럼 말이죠.  

 

사실, 전쟁이 한창인데 ‘침착하라’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입니까. 하지만,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한꺼번에 건물 밖으로 나오면 더 큰 혼란만 야기되죠. 물론 당시 영국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전역에 큰 피해를 입기는 했습니다만, 영국인들에게 “Keep Calm and Carry On”은 독일의 공습을 견뎌내는데 원동력이 되었고, 역경을 대하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요. 맹목적인 공포감은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형 바이러스 퇴치법

 

문제는, 데이터를 바탕을 정책을 결정하는 영국 정부의 기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짧은 시기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의 데이터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분석하여 실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영국의 입장에선 전통적인 해결법으로 돌파구를 찾기 힘든 것입니다. 오랜 기간 ‘Business as usual’, ‘Keep calm and carry on’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 역시,  삽시간에 수 천명의 감염자를 만들어내는 바이러스 앞에 점잔 빼는 신사 노릇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죠.

 

그 와중에, 지난 15일이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BBC의 간판 인터뷰 프로그램인 앤드류 마(Andrew Marr) 프로그램에 등장해 주었던 신선한 충격(?)은, 침착하자는 영국의 여론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날 강 장관은, 한국이 어떻게 코로나19에 대응을 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셧 다운’(Shut-down)을 실시하고 있는 유럽과 이렇다 할 뚜렷한 대책 없이 ‘손 씻기 운동’을 하고 있는 영국 사회에서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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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WSIS>

 

지난 11월부터 바이러스 전염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드라이브 쓰루’ 검사라는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발 빠르게 대응해 왔습니다. 현재, 영국을 비롯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한국을 모델로 하여 그러한 대응 방식을 도입, 시행 중이고, 코로나19 진단 키트도 세계 최초로 수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WHO에서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데이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한국형 바이러스 퇴치법이 세계를 장악하게 된 것이지요. 

 

정공법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 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떻게 사스를 대처했는지 제1선에서 봐온 경험자입니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현 질병관리본부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죠. 사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대응한 국가로 우리나라가 선정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 정부의  대처는 결코 임기응변이 아닙니다. 오랜 경험과 그것에 의한 근거가 확보된 정책들이죠. 우리 언론에서는 연일 정부 비난하기에 급급하지만, 각종 외신을 통해 그 효과가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BBC의 서울 특파원인 로라비커는 "정보의 투명성과 정확성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세계가 배워야 한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종류의 감염병이든 대응할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수집, 대처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지구촌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 그녀는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을 세계가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입국 금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걸맞은 방역 대책을 추진한 개방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안에서만 제대로 모를 뿐, 이미 전 세계가 우리의 총력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이익을 위해 숨기고 감추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확산시킵니다. 국가와 정부가 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정공법, 말 그대로 기교한 꾀나 모략을 쓰지 아니하고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 영국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코로나19를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해 왔고, 국민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퇴/휴직 중인 간호사분들이 대구를 찾았고, 어떤 이는 재봉틀로 부족한 마스크를 만들고, 또 누구는 격리 중인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배달합니다. 지금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염자를 찾아내고 치료하고 돌보는 분들의 땀과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눔과 배려 그리고 연대를 원동력 삼아서 말이죠. 그것이 수많은 국난을 극복해오며 다져진 우리의 전통이자,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