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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의 세계관에선, 사물이나 사건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의 인식에 따라, 그것 또는 그 일은 엄연한 사실로 존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아예 없기도 하다. 어쨌든 뇌리에 한번 인식된 무언가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어렸을 적 이런 물음을 종종 하곤 했다. 만약 북한 사람들이 정말로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믿는다면, 구태여 진실을 아는 것이 좋은 일일까? 그대로 살다가 죽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물음의 시작은 꽤 일렀지만, 답을 찾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인식론이며 유물론을 알게 되어도, 공리주의와 의무론적 도덕관의 차이를 배우게 되었어도 그러했다. 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할 순 있으나, 그게 나 자신의 삶이라면? 과연 그 진실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냥 이렇게 살게 놔두라고 오히려 짜증을 내지 않을까?

 

이 물음을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선 코로나19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에서 코로나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만큼 사망자도 적게 집계되고 있다. 그로써 일본인들이 안심하게 된다면 이는 나쁜 일인가? 우리는 아니라고 금방 답을 말하겠지만, 만약 일본의 조치가 정말 성공한다고 해도 옳지 못한 일인가? 급기야 중국 정부는 3 23일에 확진자가 더 늘지 않았다고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중국의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우리는 믿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정말로 믿는 중국인들에게는 굉장히 기쁜 소식일 것이고, 조금만 더 참자고 힘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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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사라면 몰라도, 나랏일에서 이런 은폐와 기만은 아주 빈번히 써먹는 정치술이고, 꽤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천하태평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시키는 일이 어찌 중국과 일본에만 해당될까. 그렇다면 결과론일 뿐이다. 공식 입장보다야 남은 불씨가 제법 있겠지만 어쨌든 중국이 큰불은 진화한 듯하다. 그러니 시진핑은 위기를 넘겼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아직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았다. 그러니 아베는 위기를 앞두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결국 결과론,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 따른 인식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결과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결과들은 제쳐두고, 그간의 과정들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말이다.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여기는 사람을 깨우쳐줘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당신이 잘 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배불리 먹고 즐겁게 노는 삶을 ‘좋다’고 여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지상낙원에 살면 행복해진다는 인식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답을 찾지 못한 이유였다. 내가 지상낙원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판단 지점 또한 가능하다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이 주었던 강렬한 메시지다.

 

그러니 중국이 코로나19를 성공리에 퇴치하더라도, 혹은 일본이 이대로 은폐에 성공하더라도, 이는 시진핑과 아베를 지지할 확고한 명분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갑자기 제2의 신천지가 나타나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본격적인 팬데믹이 발생하게 됐을 때, 이를 현 정부의 실패로 규정하고 따라서 비판 대열에 가세할 것인가? 단언할 수 없다면, 이는 우리가 확진자와 사망자 수의 결과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복잡다단한 결과와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지 점을 찾는다면, 이제는 고리타분하게도 들리지만, 결국 민주주의가 해답일 것이다.

 

일본, 안 보이면 없는 거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내각제를 채택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 그때의 반대 명분도 그랬지만, 최근 일본의 정계를 보면서 내각제의 폐해를 정말 실감하고 있다. 국민들을 정치적 의사결정과 최대한 멀어지게 만드는 것,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보다 더 큰 해악은 없을 것이다.

 

비싼 의료비로 말 많은 미국과 비교해보자. 돈 많은 미국인은 어쨌든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불만을 가진다면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뽑을 수도 있다. 이조차도 간선제의 제약이 있지만 어쨌든 그럴 자유가 주어져 있긴 하다. 소수의 자유지만, 누군가에겐 주어진다.

 

일본에선 이 모두가 불가능하다. 병세가 확연한 경우에만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크루즈선의 승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검진 없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기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자. 아베 정권을 무너뜨릴 방법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역구에서 자민당 의원을 뽑지 않는 것뿐, 아베 정권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당내 세력만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내각제의 특징이, 개인의 정치 참여를 낯설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일찍부터 지적돼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는 좋은 비교 지점을 가져다주었다.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같은 위기 상황은 모든 나라가 겪지만, 그 시기와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체르노빌 아니면 비교 대상이 없다. IMF 외환위기가 중남미에서 터지면 한국 사례를 검토하겠지만 경제 구조가 달라서 같은 대처방안을 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방역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그 방법이 유럽과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각국 정부의 방역 대처를 보며 시스템을 비교하기가 훨씬 용이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kIxQFeePK6s

<일본 참의원, PCR 검사 실태에 대한 질의와 성의 없는 답변>

 

일본이 이번 사태에서 보이는 특징, 지금까지의 결과물은 ‘은폐’임을 다들 아실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개방’ 정책을 일본에서 꽤나 왜곡하고 있음도 알려져 있다. 만약 확진자와 사망자 수의 결과만을 인식한다면, 일본의 은폐가 꼭 실패하리란 법은 없다. 정말로 운 좋게 바이러스가 사그라들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판단 지점인 민주성. 즉 국민 개인을 인격체로 대우하는 양상을 놓고 보면, 이 은폐로 인해 수많은 일본인들이 치료시기를 놓쳐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묵살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선 언론이 정부를 깎아내리기 바쁘나, 동의 불가능한 시각도 민주 사회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이다. 반면 일본에선 일본인의 위생관념이 철저하다며 자화자찬을 하며 양심적 지식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예전 어른들은 이를 두고 일사불란이니 단결력이니 찬양하기도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저 개인의 굴종으로밖에 볼 수 없다. 내각제보다 일본 사회의 관습이 더 큰 이유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게 그거라고 본다. 관습과 맞지 않는 정치 구조가 오래 지속될 순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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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일본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양상에서 지독한 비민주성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도 꽤 큰 충격이었다. 사회의 룰을 따르면 그래도 먹고살게는 만들어주는 것이 일본의 미덕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식으로 일본인이란, 개인의 정치 참여는 적을지언정 민주 사회 시민으로서 우리처럼 억압받지는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처럼 개인의 생존권을 묵살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본령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식은 코로나19의 결과와 관계없이 일본 내부에서, 또한 국제 사회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본과 비슷하게 진단에 소극적인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물리적인 의료 설비가 부족해서다. 그리고 영국은 엄청나게 언론에 두들겨 맞는 중이다.

 

중국, 승전보를 울리다



아무리 그래도 은폐라면 중국이 일본보단 한참 앞선다. 중국은 이미 찬양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나뉴스 첫머리에 떠 있는 건 보도기사가 아니라 정부 홍보물이다. 새마을운동이 따로 없다.

 

3월 5일 쑨춘란 부총리가 우한 아파트 단지에 내려와 시찰했을 때, 다수의 주민들이 베란다에서 ‘다 가짜다’ ‘형식주의’라고 소리쳤다. 당시 주민들은 고기와 채소 등을 제때에 보급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간부들이 정상적인 상황처럼 연출하며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자 이에 항의한 것이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찍어 업로드한 덕분에 상당히 퍼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Tuz0vNBXaqA

<‘다 가짜외치는 장면. 12초경부터>

 

덕분에 늦게나마 3월 9일 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이를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3월 10일 시진핑이 우한을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하필 그다음에 쓰레기차로 고기를 배급하는 일이 벌어져 소동이 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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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은 여전히 봉쇄 상태지만, 중국은 하루빨리 승전보를 울리고 싶어했다. 3월 10일 시진핑이 우한을 방문하며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주 시진핑은 마스크도 벗었다. 코로나19에서 해방됐다는 목적이 우선되면서, 이의 제기는 기각된다. 시진핑의 방문에 맞추어 우한의 확진자 수를 의도적으로 감소시켰다는 주장, 방문 당시 빌딩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했다는 증언, 방문한 병원 사진이 조작됐고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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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병원에 방문한 시진핑의 사진. 그림자를 보면 방향이 다르다>

 

중국이 일본보다 더한 점은 은폐에서 더 나아간 자화자찬이다. 시나통신 3 23일 자에는 캠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현재 푸단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있는 마틴 잭스(Martin Jacques)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마지막 질문과 답을 옮겨본다.

 

기자: 영국정부가 확실한 결정을 못 내리고바로 강경 조치를 채택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이미 영국 사회가 중국식의 봉쇄를 집행할 수 없다고 가정했다는 말씀이시죠사람들이 호응하지 않고장기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며일단 통제가 취소되면 다시금 확산될 거라는 생각에서요저는 몇몇 서방국가들이 이미 봉쇄 조치를 채택했음에 주목합니다만많은 사람들이 방역 규정을 어기고 있습니다영국인들이 앞으로 정 부에 적극 따라줄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틴 잭스: 저는 사람들이 정부에 따라줄 거라 생각합니다다들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니까요유럽의 다른 나라들 상황은 확실히 영국인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최근 수많은 마트에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 파스타통조림 등의 장기 보관 가능한 식품들과 화장지가 동이 났습니다이 현상에 비록 반사회적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공황상태를 느끼고전염 상황의 악화가 자신과 가족에게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여정부의 응급조치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이는 사람들이 이미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원문 (링크

 

짧은 대목에도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 우선 중국의 도시 봉쇄 정책이 정당하다는 시각을 내비친다. 둘째로 사재기 열풍이나 방역 규정 위반 등의 이유로 개인 자유의 제한은 불가피한 일이다. 셋째로 개인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적극 협조해야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마틴 잭스는 어린 시절 영국 공산당에 가입해 막시즘을 연구한 학자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인터뷰의 목적은 그의 학문과 사상적 경향과는 큰 상관이 없다. 중국 정부의 방역 조치를 영국인에게 인정받고, 유럽 사회의 자유주의적 행동 양식은 잘못이며, 정부 지시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취지를 중국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이 인터뷰의 취지다. 위 대목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영국을 비판하고 중국의 조치를 칭찬하는 논조가 그렇다.

 

나는 이런 논조의 기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화자찬이야 어느 나라나 있다. 문제는 이면의 비판에 대해 묵살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우한의 봉쇄는 당국이 초동조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료도 못 받고 죽었는지 알 길도 없다. 또한 우한 주민들의 고초는 현재 진행형임에도 이제 좋아졌다는 멘트만 따서 승전보에 이용하는 것도 그렇다. 우한 현장 모습을 전하려 했던 천추실, 당국에 항의해 주목받은 팡빈은 실종 후 어떻게 된 건지 아직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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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상황을 전하다가 실종상태인 시민 기자들. 좌로부터 리저화, 팡빈, 천추실>

 

앞서 부총리의 방문에 우한 주민들이 노골적으로 소리를 지르게 된 이유는, 봉쇄 상황에서 겪은 불만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마스크를 배급 구매하도록 한 것처럼, 이후 우한에서는 고기와 채소류를 실어와 구매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 배급 분량이 노점상들 상품보다도 훨씬 비쌌고, 갑자기 노점상들을 몰아내 독점 판매를 시작해버렸다. 그래서 밤에 구역 주민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와 항의하는 소동도 있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중국에 자기비판을 드러내고 감내하는 혁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병이 확산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중국 정부도 몇 달 동안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확진자 수가 감소하면서 이들이 먼저 준비한 것은 승전보였고, 그와 함께 시선돌리기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에서 가장 핫한 뉴스는 미국 음모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작이 중국 우한이 아니며 미국에서 퍼뜨렸다는 주장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코로나19 COVID가 아닌 ‘China Virus’라고 언급하고 있음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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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탈리아에 의료진과 마스크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뉴스에 날 만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눈에, 특히 우한 사람들에게 이런 뉴스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자. 다시 말하지만 우한 봉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중국의 특성상 감추어졌던 확진자와 사망자를 재조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병상의 환자들이 대폭 줄어들기까지는 자화자찬도 삼가야 되지 않을까.

 

감추어진 사망자를 은폐하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함에도 보지 못하는 인식의 허점, 이것은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은폐며 고질병이다. 전자의 은폐는 결과적으로 미덕일 때가 있다. 그러나 후자는 중국의 잘못을 더욱 부각시킨다. 중국이 코로나19 대처 방법을 유럽에 전수하겠다는데, 대체 그 방법이 무얼 가리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작년 일본의 무역규제가 시작됐을 때,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한국 젊은이들의 인식을 바꿔버린 것이 일본의 가장 큰 패착이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불매운동의 힘을 간과하기 쉽다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일은 현실이 되었다. 거시적 통계에 의존한 분석은 개개인의 행동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문제가 있다. 개인의 행동은 어떤 인식에 근거하는데, 그것이 공통분모를 가지게 되면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다. 한번 바뀐 인식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이를 간과하는 건 여전하다. 내각제와 관습에 의존해, 또는 사상과 체제에 근거해 이를 억누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옅어지는 정책을 함부로 집행할 수 있고, 결과를 은폐하려 시도한다.

 

국뽕을 내세울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는 현 시기에, 다른 나라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건 제2의 신천지가 불가능해서가 아니고, 의료비가 저렴해서도 아니며, 정부의 소득보전지원 때문도 아니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방역 조치를 무조건 비난하는 무리들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가족부터 이민시켰을 것이다. 도무지 동의하기 힘든 그 사람들도 같은 인식을 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제가 더 잘 보이는지도 모른다. 결과의 은폐는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을 은폐하려 할 때 그것은 억압이 된다. 故 김현 선생의 글에, 문학은 억압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억압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 중국과 일본의 상황을 보며 뭔가 한심함을 느꼈다면, 이는 우리가 한심하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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