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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군주제 채택 국가들>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란 국가 운영체계 중 하나로, 어원적으로는 합법적이라는 뜻의 Constitutional군주혹은 왕가를 가리키는 Monarchy가 합쳐진 말입니다.

 

절대왕정 시대부터 이어져 온 군주제 전통은 유지하되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 만들어 낸 시스템이죠. 입헌군주제 국가들은 왕이나 여왕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헌법에서 규정된 형식적 권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실질적 권력이 없는 국가의 상징으로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이 있겠죠. 왕가를 뜻하는 로얄 페밀리’(Royal Family)가 공식적으로 존재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국왕으로서 영국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수상이 이를 대신하죠.

 

각 지역의 대표인 국회의원(상원/하원)들이 의회에 모여 국정을 운영하고, 다수당의 대표가 수상으로서 내각(행정부)을 다스립니다. 왕가의 전통을 이어오고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신구(新舊) 정치체제의 조합이 잘 조화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입헌군주제에는 숨길 수 없는 모순이 숨어있습니다.

 

계급과 계층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군주주의와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국가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는 상반된 개념입니다. 민주주의의 원리에서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지만, 군주주의에서는 왕가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을 합니다.

 

물론 입헌군주제에서 왕가의 권한은 제한되어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고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제1원칙의 예외 존재로 되어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체제가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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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마루타가 되어버린 국민들

 

COVID-19 사태가 약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특히 유럽은 갈수록 늘어만 가는 감염자, 사망자 수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굉장히 특이한 광경이 연출되는 곳들이 눈에 띄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영국, 스웨덴 그리고 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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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국가는 왕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병행하는 입헌군주제라는 공통점이 있고, COVID-19와 관련 집단 면역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동일한 방침을 고수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인구 60% 이상) 사이에 COVID-19가 퍼지고, 그중 바이러스를 견디지 못해 죽을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집단적으로 COVID-19에 대한 면역이 형성돼 더 이상 심각한 병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현재 스웨덴은 이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영국은 너무 많은 국민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뒤, 정책의 방향을 뒤집었습니다.

 

스웨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스톡홀롬 시내의 컨벤션 센터 등을 활용, 집중치료시설과 병상을 구비하면서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고령자와의 접촉을 자제하고 기업과 정부 기관에 재택근무를 권고하는 것 이외는 평소 같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죠.

 

일본의 경우도 스웨덴과 동일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물론 올림픽 유치가 1년 연장되고 난 이후, 감염자를 검사하고 있지만, 그 이전엔 초기 영국이 취했던, 그리고 현재 스웨덴이 하고 있는 집단 면역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었는데요. 이는 결국 일본정부에게 '국민'이란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올림픽 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려 했던 카미가제 역시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기 보단 국가와 권력, 왕의 안전과 안녕을 중요하게 여긴 일본의 자세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집단면역 정책은 바이러스의 종식이 아닌 완화에 방점을 찍은 정책으로 COVID-19 사태를 보다 장기전으로 본 것인데요. 뭔가 대단한 전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무책임하고 냉정한 대책입니다.

 

우리 정부와 비교를 해봐도 국민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인데요. 겉으로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국가의 권력을 행사할 필요는 없다는 멋들어진 핑계가 있지만, 이면에는 국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심리, 풍토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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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이 있는 사회는 우열, 상하가 나뉜 계층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출생을 통해 결정되는 영구적인 계층은 해당 계층의 가치관 형성과 존재 양식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들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관습화되고 결국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죠.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르디외는 사회 구조 속에 내재된 습성을 아비투스(habitus)’라 불렀는데, 입헌군주제는 오랜 기간 정착되어 온 왕족 사회의 아비투스가 남아 있어 고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이지 않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창궐하는 순간 빠르게 퇴치하고, 최대한 많은 이들을 검사하여 데이터를 축척해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과 통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죠. 그래야 빠른 시일 안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고, 다수의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개발 연구소의 전염병 전문가 Jessie Abbate는 일부 바이러스는 너무 빨리 돌연변이 되어 한 사람 내에서 실제로 진화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집단면역이 되어도 또 다른 변형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COVID-19RNA바이러스로서 DNA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로 진화하기 쉬운 바이러스입니다. 집단면역 후에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고, 정부는 마땅히 민주주의의 주인이자 근간인 국민을 위해 일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헌군주제의 경우는 운영 시스템은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국가의 근간은 군주에게 있다는 사고가 아비투스를 통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일반 국민들은 보호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죠. 집단 면역이라는 방법을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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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주문처럼 외우는 슬로건으로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포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것보다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낫단 판단하여 차분히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정부의 지침이었습니다.

 

듣기에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들은 사실상 피지배층이니 엘리트 정치인들과 왕실과 같은 지배층이 어떤 일을 계획하든지 알려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는 뜻도 담겨있는 말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너희 할 일이나 하라는 식의 권위주의 정부의 상징으로도 Keep Calm and Carry On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지요.

 

 

보리스와 찰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COVID-19에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아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영국은 의료장비와 검사키트가 부족해 바이러스 증상이 중증에 달하지 않는 이상 감염 여부 검사를 해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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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비를 개발 중이라고는 하는데 언제 개발될 지는 아직 미지수죠. 그래서 스코틀랜드는 우선 우리나라의 검사키트를 수입해 COVID-19 감염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또한 검사키트를 수입하기 전까지 일반인들은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할 정도가 아니면 병원에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가면 집에 있으라고 권고만 받을 뿐이었죠.

 

그런데, 이렇다 할 증상이 없었던 총리와 왕세자가 COVID-19 양성 확진 판정을 받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중증이 아닌 이상 검사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아무런 증상 없이 매일 브리핑을 하던 총리와 왕세자가 감염되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차별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왕족들은 이미 런던을 떠나 별장으로 이동했고, 찰스 왕세자 역시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에버딘셔발모랄 성으로 떠났습니다. 아무도 버킹엄궁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인데요.

 

영국은 의료진의 감염 문제가 대두될 만큼 심각한 상황임에도, 아비투스에 근간한 선별적 검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입헌군주제가 가진 한계와 모순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특권의 무거움이 누군가에는 차별의 서러움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죠.

 

 

 계급/계층 사회에서 평등을 말한다

 

아직 입헌군주제의 끝을 논하는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 체제에 대한 불만 어린 목소리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데요. 왕족이 존재하는 계층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죠. 모순입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의 국민들은 그 모순에 노출되기 시작하여 오랜 기간 후에 습관이 되었지만, 세상의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인간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세우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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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가 지구촌의 문화를 바꾸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이동이 줄어드니 공기가 맑아졌고, 휴일마다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쓰레기가 줄어들었습니다. 환경문제가 해결되고 있죠. 재택근무 문화, 종교시설 운영 형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 문화까지 많은 것들이 COVID-19로 인해 바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입헌군주제 국가 중 대표적인 영국은 시민사회에서 진정한 평등에 대한 자각을 하며 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는 차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인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국민들이 이를 보기 시작했죠. 과연 모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