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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최악의 왕을 매긴다면 누가 챔피언이 될까. 이견은 많겠으나 개인적으로 고려 28대 왕인 '충혜왕'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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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패악질은 늘어놓다 입이 아파질 정도다. 부왕인 충숙왕의 부인이자 몽골인이기도 했던 경화공주, 즉 계모라 할 사람을 성폭행한 게 대표적이다. 왕족부터 평민까지 가만히 두지를 않았고 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듯 했다. 도처에서 끌려온 여자들을 궁 안에 모아 뒀는데 그 중 두 명이 눈물을 흘리자 그게 기분 나쁘다고 철퇴로 때려죽이는 인간이었다.

 

이 소식은 당연히 고려 왕좌를 좌지우지하던 원나라 조정에까지 들어갔고, 원나라 사신 고용보가 밀명을 띠고 고려로 찾아온다. 그의 임무는 고려 왕을 폐위시켜 압송하는 것이었다. 다만 충혜왕이 나쁜 쪽으로 머리가 도는 사이코패스였지 바보는 아니었다. 본인도 꽤 무예에 능했고 함께 횡포 부리고 다니는 무뢰배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대원제국 칙사라고 해도 한 나라의 왕좌 주인을 바꾸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고용보는 작전을 세운다. 말안장과 교자를 사 갈 거라며 변죽을 올리며 잔뜩 긴장한 충혜왕을 안심시키며, 황제의 사면령을 가져 왔다고 꼬드긴다. 이에 충혜왕이 몸이 아프다고 하며 원나라 칙사와의 만남을 피하자 고용보가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를 던진다.

 

“칙서를 직접 받지 않으시면 오히려 의심받으실 텐데요?”

 

결국 충혜왕은 정동행성으로 나와 칙서를 받들어야 했다. 그래봐야 사신 일행은 8명, 일을 꾸미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이니 뭔 일이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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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이 고용보 앞에 서서 사면장(?)을 받으려는 찰나였다. 몽골인 한 명이 몸을 날렸다. 이단옆차기 수준의 기습이었다. 젊고 힘도 넘치는 충혜왕이었지만 소리를 지르며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머지 사신 일행들이 일제히 칼과 창을 빼들었고 충혜왕을 도우려는 이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충혜왕이 이게 무슨 일인가 눈알을 굴리는 사이 고용보가 큰소리로 꾸짖기 시작한다.

 

"황명으로 너를 황제께 끌고 가기로 했다."

 

이는 기철 등 고려 귀족들과도 얘기가 된 치밀한 거사였다.

 

날은 겨울이었다. 충혜왕은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북쪽으로 끌려간다. 천하의 폭군이니 누가 챙겨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평안도 숙천인 숙주 고을에 들어서 숙소를 정했는데 마침 겨울 바람이 엄청나게 독했다. 허리를 배배 꼬며 추위를 참던 충혜왕이 고을 수령에게 이부자리를 청했다.

 

그러나 안균이라는 숙주 수령이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뭘 잘 한 게 있다고 이불을 찾소?” 여기까지 했으면 통쾌하게 끝났을 테지만, 안균이 고용보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한다. 

 

“고대인. 제 말씀 좀 들어 보십시오. 저 죄인이 말입니다. 글쎄 이불을 달라 뭘 달라 타령을 하지 않겠습니까요? 아직 혼이 덜 난듯 싶습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고용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균이 다시 한 번 호들갑을 떨면서 얘기를 늘어놓자 고용보가 벼락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이놈의 자식아. 너를 이 고을 수령을 시켜준 게 누군데? 네 왕이다. 아무리 네 왕이 죄를 짓고 끌려간다기로손 이부자리 하나 달랬다고 나한테 와서 꼬나바쳐? 너 오늘 맞아 보거라.”

 

고용보는 가지고 있던 쇠자를 쳐들었다. 숙주 고을 수령은 반쯤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말 한 마디 잘 못했다가 황천길 갈 뻔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선비가 이렇게 평했다.

 

“충혜왕이 폭군인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충혜왕을 왕 대접 아니한 것이 무슨 죄겠는가. 폭군에는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안균의 죄는 불충한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를 무시한 것이었다. 이불 하나로 트집을 잡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게 하려는 삿된 마음이 하나요, 그를 원나라 황제의 칙사에게 일러바쳐 본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 나댄 것이 둘이요, 그래도 지켜야 할 가치를 혓바닥으로 깔아뭉갠 것이 셋이다.”

 

무릇 후세 사람들은 “생각이 바뀔 수는 있고 처지가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을 어기는 자는 망한다.”고 수군거렸다.

 

쇠자로 죽도로 두들겨 맞은 안균의 고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고려 3경 중의 하나인 남경 관악 출신이라 전하며, 그 고향 사람이 안균의 봉변을 듣고 지은 시가 고려사 부록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有感串惡宜大嘷 유감관악의대호

악을 꿰뚫고자 하는 마음 있으니 마땅히 야단도 칠 것이고

 

侮習慘街聯何耐 모습참가련하내

(충혜왕이) 풍습을 깔아보고 거리를 더럽히는 일 이어지니 어찌 참을 수 있었겠소만

 

古來道伊念妥令 고래도이념타령

예부터의 도리는 정당한 영(令)을 세움을 염두에 둠이니

 

當愼而進正求殆 당신이진정구태

마땅히 삼가고 바르게 나아갔으면 위태로움에서 (스스로를) 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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