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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벽두부터 와장창이었다. 설계사무소로부터 '현장 철거공사 하다 옆집 하수도관을 건드렸고   반지하가 물바다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아니, 옆집 하수도관이 왜 우리 땅에? 현장으로 달려갔더니 박소장, 설계소장, 구청담당이 모여 있었다. 지하는 물이 들어차 엉망이었고, 집주인은 핏대를 높이고 있었다.

 

동네 설비하시는 분을 급히 모셨다. 고인물이 맑은  보니 수도관인  같다며 장비를 갖고 한참을 둘러보시더니, 옆집 1 화장실 수도꼭지가 동파되어 물이 지하로 새어 들어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열흘 넘게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보일러는 꺼져있었다. 하필 그즈음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참았다. 수도꼭지를 교체해주고  퍼내주고 수리비도 지불했다. 앞으로 공사하는 동안 옆집에 피해를  테니  정도는 내가 처리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한껏 목청을 드높여 성질을 내던 집주인은 미안하다 사과하긴커녕 겸연쩍은 웃음도 없이 쌩하니 들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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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으로 옆집은 건물이 무너지려 한다며 안전진단을 요청했. 다음날    앞집과 좁은   앞집이 안전진단을 요청했다. 당연히 해야지. 현장을 둘러싼 5가구의 안전진단을 실행했다. 민원인 쪽에서 업체를 선정하고 비용은 내가 지불하기로 했다. 내가 업체를 선정하면  믿을 사람들이니까.

 

안전진단 업체는 집집마다 장비를 부착해서 기울기 등을 조사하고 크랙이나 누수 흔적 등을 촬영했다. 현장조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분석과 보고서까지는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구청에서는 안전진단이 완료돼야 착공계를 내주겠다고 했. 그렇게 공사는 중단되었다.

 

안전진단  2 정도 지나 대상 건물들의 진단에서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보고서 작성은 시간이 걸린단다. 약식으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장짜리 결과 보고서를 구청에 제출하고 착공계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구청은 네 면에 방음벽을 설치하라고 했다. 어차피 설치해야 하는 것이니 했다.

 

방음벽을 설치하고 보니 때가 타고 군데군데 그림 조각과 낙서가 있다. 아마 다른 현장에서 사용했던 것이겠지. 구청에서 깔끔하지 않다고 야단을 쳤다. 속으로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뭐가 나쁘냐 꽁알거렸지만  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더러운 방음벽도 가릴  '새해  많이 받으세요라는 현수막을 크게 걸어 붙였다그렇게 나는 부처, 그러니까 생불이 되어 갔다. 옴마니 반메흠

 

이번에는 구청이 게이트를 설치하라고 한다. 게이트는 커다란 아파트 현장 같은 곳에나 설치하는 슬라이딩 도어 같은 출입문이다. 하지만 폭이 겨우 9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곳에 설치하면 타설 작업  펌프카를 사용하기 어렵고 자재를 놓을 공간도 더욱 비좁아진다.

 

토목공사 장비가 움직일 공간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커튼 형식으로 설치하겠다고 했더니 무조건 게이트로 설치하란다. 300 원짜리 착공계용 게이트를 설치했다. 이런  보고 '행정편의주의'라고 하는 건가구청의 민원처리와 이러저러한 지시를 충족시키면서   넘게 속을 태우다가 착공계가 나왔다. 하나님 아부지, 옴마니 반메흠.

 

드디어 토목공사. 토목공사는 건물을 짓기 위한 바닥 기초공사로, 지하 공사가 있어서 만만치 않다. 고맙게도 형틀 김사장이 기준점과 중심선을 점검하러 왔. 토목팀은 바닥의 흙을 고르고 회오리 감자 같이 생긴  나사가 달린 오거크레인을 들여와 지하 벽을 따라 직경 40cm 정도의 구멍을 팠.

 

천공이 끝나면 구멍에 원통형 철근 망과 자갈, 철근을 넣은 다음 콘크리트를 붓는 공정은 흙막이 공사로 ‘CIP 심는다라고 한다. 작업 도중에 장비가 들어와야 해서 게이트는 아침 일찍 떼어내었다. 고물 값도  쳐주었다.

 

 작업이 엿새 동안 이어졌다. 크레인과 철근, H  자재와 10 정도의 인부들이 작은 현장을  채웠다. 작업의 소음과 진동은 계속되었고 민원 또한 계속 이어졌다.    사리도 점점 커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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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사람은 포크레인에 자신의 차를 바짝 주차하고 사라진다. 인류애도 같이 사라진다. 골목 도로에 덤프트럭, 포크레인, 앞집 차가 나란히  있다. 포크레인이 지하 방향과 덤프트럭 방향을 회전하면서 작업할 수가 없다. 포크레인 기사가 30cm정도 이동하고 나는 그 차와 포크레인 사이에 서서 작업을 지킨다. 만약 포크레인이 앞집 차를 티끌만치라도 건드린다면 난리가 날 테 차라리 다리를 갈아넣겠다는 심산이었다.

 

CIP 지하 벽을 만들었으니 지하 바닥을 만들기 위해 흙을 퍼내야 한다. 콘크리트 벽을 만들기 전까지 CIP  견디도록 H빔으로 띠장을 설치한  포크레인이 들어와 흙을 퍼낸다. 골목 안을  채운 덤프트럭에 포크레인이 흙을 떠서 넣어준다. 보고 있자니 ‘지하로 4미터는 파야 하는데 나중에 포크레인은 지하에서 어떻게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다음날 알  있었다. 쪼꼬미 포크레인이 등장했다.  포크레인이 쪼꼬미를 들어서 지하로 넣어주고 쪼꼬미가 퍼주는 흙을 지상에 있던 포크레인이 받아서 덤프트럭에 담는다.(쪼꼬미의 운전기사는  포크레인 운전기사의 아들이었다. 현장의 나이든 작업자들이 “아들~ 커피 마시고 .” “아들, 기운 .” “아들, 오른쪽으로!” 하며 챙겨주고 훈수 두고 한다. 나도 아들~”하고 불렀다)

 

터파기를 모두 마치고 돌아갈 때에도  포크레인이  모양을 떼어내고 갈고리를 걸어 쪼꼬미를 들어올린 뒤 트럭에 올려준다. 나름 큰데 엄청 귀여웠다.

 

골목 안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버티고 있어서인지 시민들은 통행을 불편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지상의 포크레인이 워낙 커서 무섭다는 민원도 들어왔다. 하지만 현장에  가까이 붙이면  포크레인이 팔을 지하로 내리는 과정에서 무게 중심을 잃어 추락할  있기 때문에 절대 불가하다고, 윤사장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따라서 장비에 대한 민원 압박은 관철되지 않았다

 

포크레인 작업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같은 현장, 같은 장비지만 어떤 기사는   없다 하고 어떤 기사는 조심스레 작업을 완수한다. 누군가 포기하고  작업을 다른 기사가 와서 완수하기도 했다.  잘하는 기사는 그런 작업을 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민원 심하고 일정도 늦어졌으니 기술 좋은 기사님으로 현장 작업해 달라고 윤사장한테 빌어 팍팍한 공사를 마무리했다. 역시 장비보다 사람이 먼저다!

 

토목공사가 마무리 단계이므로 형틀 김사장이 요청하는 자재와 단열재를 발주한다. 흙을 퍼낸 지하엔 CIP작업 형체가 드러났다. 처음 보는 CIP작업. 둥그런 대들보를 경계에  둘러 세워 놓은 모양이다. CIP하단부 H 띠장 설치를 마무리하고 바닥에 자갈을 깔고 버림 콘크리트를 친다. 반듯한 바닥이 만들어졌다. 박소장과 어려운 과정이 하나 지났으니 힘내자고 서로를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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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지키면서 예전에 겪었던 성희롱이나 진상, 갑질은 애교에 가깝다는  알게 됐다.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하면서 느낀 건 '인간이 이렇게까지 천박할  있다'는 것이었다. 민원’에 대해서는 책을 하나 쓸 수 있다. 당연히  단편적인 경험이 전부일 수는 없겠으나 오십이면 결코 적지는 않은 나이다. 근데 겨우 지금에서야 이제사 인간이라는 종의 바닥을 들여다  기분이었다.

 

민원의 이유가 실제로 존재하는 소음이나 진동 때문이면 이해가 되었다. 면전에서 악을 쓰고 욕을 해대는 사람 앞에서도 인내할  있다하지만 생기지도 않은 피해를 만들고, 이것을 상대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면  다른 거짓 피해를 만들 때문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부류를 맞닥뜨리게 되면 ‘인간자체가 싫어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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