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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기자, 근육병아리

 

강헌 선생과 황교익 선생을 이을 거물 음식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딴지에 입사하였으나, 전 지구를 덮치고 있는 바이러스에 청운의 꿈은 잠시 유예 상태다.

 

어떻게 하면 조중동의 치졸한 뉴스에 깊숙이 똥침을 날리며 질병관리본부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선배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지고 있는 편집회의.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접 대구에 내려가 질본과 시민들이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현장을, 리얼리즘적으로다가 취재해보겠다’라고 당차게 발제했으나. 끄덕끄덕 듣던 죽돌 편집장, 위험한 짓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란다. 그래서 일단 가마니 있는 중이다.

 

보통의 조직에서는 윗사람이 가마니 있으라고 할 때 가마니 있는 게 상책이지만, 여기는 딴지잖아? 가마니 보니 편집장도 총수 말 잘 안 듣더만. 아하, 아무래도 그것은 아름다운 사풍인가 보다. 그렇다면 따라야지.

 

그러던 찰나, 딴지 게시판에서 한 글을 발견했다. 대구에서 한약방을 하는 친구가, 쌍화탕을 달여 대구 의료진에게 전달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당장 그분과 인류애 넘치는 인터뷰가 하고 싶어졌다. 글 작성자께 인터뷰 연결을 부탁하는 쪽지를 보냈다. 답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죄송해서 어쩌죠? 인터뷰 요청을 전달받은 친구가,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조용히 묻어가고 싶다네요. 이 친구가 해병대 나와서 평소에도 의협심이 남다른 친군데.. 한사코 거절해서 저도 아쉽습니다."

 

따쉬. 도대체 이 가슴 후끈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런 쿨하고 정중한 거절이라니. 또 아이템이 좌절되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이름 모를 사나이에 대한 존경심이 마구 치솟아 오른다.

 

허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야 한다는 것은 예스러운 가치관이다. 그것이 정당한 일이라면 왼손도 알 자격이 있다. 하물며 그 일이 가치 있고 귀감이 될 이야기라면 오른발도 알아야 하고 왼발도 알고 온몸 세포 신경 구석구석, 뉴런에 울려 퍼져야 마땅하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 그들이 손해 보지 않고, 다치지 않는 세상. 대접받으며 돈도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세상. 그리하여 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도 열심히 좋은 사람 되어서 저렇게 졸라 잘나가봐야지'라는 야심을 품어 볼 수 있는 세상. 여기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어 그런 세상에 일조하겠다. 딴지 신입기자로서 새롭게 품는 포부다.

 

신입 사수, 챙타쿠

 

이상한 신입이 들어왔다. 가만히 있질 않는다. 입도 쉬질 않는다. 곁에 두고 조지겠다고 신입을 옆자리에 앉힌 편집장, 아차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급기야 수습 기간에 기사보다 시말서를 먼저 쓰는, 딴지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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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있겠단 말은 아니네

 

결국 옆자리에 파티션을 치고 신입으로부터 스스로 격리조치에 들어간 편집장. 하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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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운영팀에 주문한 '파티션'

 

하지만 신입의 마음, 나도 알 거 같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업종의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본인도 먹고살기 힘들 텐데,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을 텐데, 타인을 염려하고 위로하며 자기의 선행을 굳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자 생활 동안 나도 정말 많이 듣고 만났다. 감동적이고 훈훈한 것이라면 알러지가 있는 딴지 편집부 기자들. 근병의 뜻을 같이 할 사람. 나밖에 없지 암. (신입에게 숟가락을 얹는 것으로 보인다면 기분 탓이다.)

 

천신만고 끝에 좋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한 인터뷰, 성공했다. 본인보다 더 힘들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이들, 적지 않았다. 세상엔 생각보다 기부성애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들도 역시 처음엔 멋쩍고, 민망해하셨다. 이제 안 물러선다. 기어코 설득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힘든 시간을 어깨동무하며 뚫어나가고 있는 달구벌 사람들의 이야기다.

 

 

잘 곳을 나눈 사람들

 

대구 의료진의 어려움 중 하나는 잘 곳을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제공하는 숙소만으로는 수용인원을 채울 수 없고, 일반 호텔이나 모텔에 묵기에는 일반인과의 접촉이 두렵다. 의료진만 이용하는, 별도의 숙박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숙소, 그러니까 자신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빌려주겠다는 사회적기업이 나타났다. '(주)공감씨즈'의 이야기로, 총 세 채의 게스트하우스 중 두 채를, 무상으로, 무기한 빌려주기로 했단다.

 

북한 이탈주민과 지역 청년들이 일하고 있는 '(주)공감씨즈'의 허영철 대표와의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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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의료진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로 했나

 

A: 공중보건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모텔 구하는 것도 힘들고, 모텔 들어갈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일반 사람들은 현장에서 진료하고 오시는 그분들이 겁날 거 아니에요.

 

Q: 현재 몇 명 정도 계시나

 

A: 3일 전부터는 열세 분 정도 주무시고 계신 것 같아요. 게스트하우스로 쓸 때는 수용인원이 많지만(한 방에 침대가 여러 개 있으니까), 의료진을 한 방에 같이 자게 할 수는 없잖아요. 방 하나에 한 분씩 묵으시니까 두 건물 합쳐도 15개 밖에 안 돼요.

 

Q: 언제까지 머물게 할 예정인지

 

A: 따로 기간 제한은 안 뒀어요. 일단 저희가 코로나 진정될 때까지 괜찮다고 대구시에 말씀드렸고.

 

다시 말해 의료진에게 무기한,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단 말이다.

 

Q: 남들 몰래 장사 잘 되는 거 아니냐?

 

A: 아뇨, 힘들죠. 코로나 생기고부터 관광객이 안 왔어요. 대구에 확진자가 많이 생기기도 했고. 숙박객이 있긴 있는데 많지 않아요. 지역의 취약계층 청년들, 탈북청년들 다 합해서 17명이나 일하고 있는데.

 

Q: ...?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나?

 

A: 예전처럼 주지 못하니까, 3월부터 차장급 이상 간부들은 풀타임 근무하되 월급을 50% 삭감하고, 젊은 직원들은 면담을 통해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에서 20시간으로 바꾸기로 했어요. 지금 다 같이 안 낮추면 누군가를 해고해야 되니까 서로 고통을 나누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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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대구 분위기는?

 

A: 조용하죠. 밖에 마스크 안 한 사람 거의 없고.

 

Q: 코로나가 얼른 종식됐으면 좋겠다.

 

A: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시 먹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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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 것 때문에 얼굴이 많이 팔려서, '얼굴 알리려고 (기부) 했냐'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허 대표(누가 얼굴 알리려고 월급의 반을 포기하겠냐구).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겨내야죠."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을 나눈 사람들

 

먹을 것은 몸을 뉘일 곳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 육체적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어려울 때 나눈 음식에는 마음이 더 묵직하게 담긴다.

 

대구의 한 재래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았다. 방역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의료원과 보건소 사람들에게 떡을 전달했다. 인적이 끊긴 휑량한 점포를 지키면서 말이다. 대구 서남신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상인회 현호종 회장과의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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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시장분위기는 어떤지?

 

A: (한숨) 사람들이 이동 자체를 자제하는 상황이라서요. 손님들이 영 안 나오는 것은 아닌데 뭐 딱 필요한 것만 사들고 바로 가버리죠. 전국 어디 시장이나 똑같을 겁니다.

 

Q. 떡 기부는 어떻게 시작된 건지?

 

A: 평소에 재래시장이 힘들 때면,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줍니다. 우리도 힘들지만, 지금 대구지역 의료원이나 보건소에 계신 분들만 하겠습니까. 그분들께 떡 좀 드린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될 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라도 전하면 그분들이 여유가 좀 안 생기겠나 싶었습니다.

 

Q. 지원 품목이 떡인 이유는 무엇인가? 회장님께서 떡집 하시나?

 

A: 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족발같은 것은 바쁜데 먹을 상황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우리 시장 떡집 중에 ‘영양떡’이라 카면서 하나씩 작게 개별 포장돼있는 게 있거든요.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이게 그분들도 드시기 좋겠다 싶어 상인회 이사회에서 결정했습니다.

 

Q. 떡 구매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A: 상인회 회원들이 내는 관리비가 있어요. 그걸로 했죠.. 우예보면 (기부는) 전체 시장 상인들이 마음을 모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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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장 상황도 안 좋은데 공금을 집행하자는 말을 하기 쉽지 않으셨겠다.

 

A: 천 원 갖고 10명이 나눠먹을 수도 있고 만 원 가지고도 10명이 나눠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힘들 때 서로가 조금씩 부담을 나눠 갖는 거죠. 다만 공금이다 보니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전부 "그 생각을 우예했노?"하면서 좋아해 줬습니다. 상인분들이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좋은 생각을 해줘서 고맙다”카면서 흔쾌히 동참을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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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인터뷰는 미담만 전하고 끝내는 그런 기사를 위한 게 아니다. 상황이 좀 진정되면 독자들이 가서 착한 일 한 사람들 돈쭐(돈으로 혼쭐) 좀 내주자고 선동하려고 하는데 어떠시냐?

 

A: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Q. 알아보니.. 서남신시장이 가장 유명한 게 족발이라던데,, 그거 진짜 맛있습니까?

 

A: (엄격 근엄 진지) 맛있어요. 우리 시장 족발은 진짜 맛있습니다. 여기 시장에서 본점으로 시작해서 대구 시내 전체 스무 개씩 체인을 낼 정도로 맛 좋습니다.

 

Q. 대체 서남시장 족발이 다른 족발하고 다른 점이 뭔가?

 

A: 점포별로 개성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여기 족발은 기본적으로 가마솥에 삶아요. 먹어보면 뒷맛에 단맛이 싸악 올라옵니다. 젊은 층한테 인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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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디나 보면 지역 사람들만 은밀히 공유하는 레알 로컬 맛집이 있지 않나.

 

A: (껄껄) 그게 오리지널이죠.

 

Q. 상인회장으로서 서남신시장의 추천 가게 하나만 소개해달라

 

A: 족발 말고도 진짜 맛있는 반찬가게도 있습니다. 거기 사장님이 상인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분입니다. 이번 기부에도 가장 먼저 흔쾌히 지갑을 여셨죠.

 

Q. 돈쭐내겠다. 상호를 알려달라

 

A: (스타카토) 서. 남. 반. 찬.

 

Q. 나중에 코로나가 물러가고 대구에 놀러 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장 자랑 좀 해주시라

 

A: 도심형 골목시장이라 깨끗하고 쾌적합니다. 고객 수용실에서 커피 한잔할 공간도 잘 돼가있고, 시장에 라디오방송국이 있어서 월 수 금 오후에 방송도 합니다. 고객 사연도 받아서 소개하고 음악 신청도 받아서 틀어주고... 아기자기 조목조목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Q. 마지막으로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A: 꼭 대구뿐만 아니라, 지 금 이 상황은 어디나 다 똑같이 힘들 겁니다. 지금이야 난리통이지만 코로나 이거 언젠가는 잡힐 거 아니겠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진정세 이후에 과연 얼마나 고객을 다시 시장으로 유입시킬 수 있느냐죠. 그게 걱정이고 고민입니다.

 

요즘은 대구에서 왔다 카믄 10리 밖으로 사람들이 도망간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실 거고 대구에 놀러 오면 이래저래 먹고 즐길 거리 많이 있습니다.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아 진짜 마지막, 시장 주차는 편한가?

 

A: 도심형 골목시장이라 안 했습니까. 시장이랑 바로 연결되는 주자창 있습니다. 진짜 가깝습니다.

  

 

편집부 주

 

계속되는 코로나 19 여파 속, 

본지는 각지의 의인들을 찾아나설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 이름은 '의인발굴단'이다.

 

해괴한 녀석들의 온갖 잡소리를  

언론이 다 실어주는 세상, 

본지는 그딴 거 말고 

이런 분들 한마디, 한마디를 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헌데 이런 분들, 

은폐, 엄폐 기술이 여간 뛰어난 것이 아니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웃과 사회에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 본지로 제보해 주시라.

 

ddanzi.ma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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