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7.6.화요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직까지도 "게이"라고 하면 큰 바위 얼굴에 화장품을 뺑끼칠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야시시하게 내면서 히쁘짝을 살랑거리며 걷는 사람들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동성애에 대한 용어를 몇 가지부터 설명하고 시작할란다.
구야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려면 소개부터 해야 겠군. ( 구야가 누구냐고? 보면 몰라? 내 애칭이지. ) 88 꿈나무 학번,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남정네, 허우대 멀쩡함, HiTEL 동성애자 인권 동호회 <또 하나의 사랑> 대표시삽을 두 번 해 먹었으며, 현재는 동성애 전문지 <버디>의 편집위원직을 맡아서 돈도 전혀 안 되는 일에 목숨 걸고 있지. 물론 위의 두 가지 일 말고 직업은 따로 있어. 나도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그리고 중요한 거. 현재 애인은 없어. 여기서 애인이라 함은 당근으로 남자를 야그 하는 거지. 게이가 여자 사귈 일 있냐? 이 대목에서 으.. 하는 이성애 남자들 많겠지. 근데 그게 타고 나는거면 우짤꺼냐고. 누군 일부러 그러는 줄 알어. 그리고 지난 번에 깨트펑이가 사진 공개 안 했다고 시비를 건 인종이 있다며? 난 사진 공개 할테니 프린트 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걸어 놓던지, 똥꼬를 닦던지 니 꼴리는 데로 하렴... 첫사랑 구야가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은 중3 때였어. 근데 그 친구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거나 얼굴이 잘 생겼다거나 하는 축에는 전혀 들지 못했어. (지금 생각해 봐도 얼굴은 진짜 드럽게 생긴 애였음) 그 친구와 짝이 된지 한참이 지나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난 그 동안 그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야릇하고도 요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어. 늘 붙어 다니고 싶고,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 왕짜증이 나고, 학교에서 하루종일 붙어 있었으면서도 집에 오면 전화질 해대고 편지 보내고 기타 등등... 구야는 그 친구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참 많이 갈등하고 힘들었었지. 왜 힘이 들었냐고? 그 당시만 해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정보는 딴지일보의 유일한 라이벌지 선데이 서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고, 그 내용 또한 동성애자를 극장이나 사우나에서 옆 사람 허벅지나 슬슬 건드리는 변태, 정신병자로만 취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당근 난 내가 정신병자가 아닐까 졸라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야. 난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잘못한 거 없는 그냥 어린 중학생이었는데 말야. 니들은 그렇게 선천적으로 타고 난 사람들이, 우리나라 같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분위기에서 겪을 정신적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니. 상상도 할 수 없겠지. 겨우 중학생이 뭘 알겠어. 그냥 내가 변태거나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지. 어떤 사람이 좋다는 것 밖에 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데, 스스로를 변태나 미친놈인지 의심해야 하는 어린애의 마음이 어떻겠어. 하긴 니들이 어떻게 알겠니. 청소년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느끼는 유사 동성애적 현상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쉐이들도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내 나이 서른을 가뿐히 넘겨버린 지금에 와서 곰곰히 씹어보고 되새김질 해 봐도 그때 구야가 느꼈던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어. 그게 내 첫 사랑이야.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기까지..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지. 같은 반 친구를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사랑하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대학에 가서도, 취직을 해서도 늘 마찬가지였어. 대갈통이 뽀개지는 시기였지. 대갈통이 뽀개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빌어먹을 놈의 사회가 나 같은 놈을 비정상으로 쾅쾅 못박아 놨기 때문이지. 사람은 통조림이 아니쟎아. 각양 각색의 생선들이 통조림 공장에 들어가면 똑같은 크기로 썰려서 똑같은 양념을 쳐 바르고 똑같은 깡통에 담겨서 똑같은 가격에 팔리지만 사람이 어디 그러냐고. 암튼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적인 생활을 비정상적으로 억지로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던 나는 그렇게 혼자 고민하며 10년이란 세월을 깡그리 날려 버렸지. 분명히 이야기하건데 이 사회가 엉터리 교육과 억압으로 10년간 구야를 마음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시킨 것에 대해 구야에게 충분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해야 할 것이야. 암튼 안 되는건 정말 안 되더라구. 교회도 열심히 댕기고 여자를 사귈려고 노력도 해 보았어. 급기하는 자살 시도도 해 보았었지. 하지만 내 동성애적 성향은 절대로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어. 나는 그야말로 타고난 "선천적 동성애자"인 것이지. 가끔씩 정신이 혼미한 정신과 의사들이 동성애적 성향이 선천적이네 후천적이네 원인이 뭐네 하며 인도 코끼리 방구뀌는 소리를 해대는데 개수작 그만 들 떨라고 그래. 구야가 느끼는 동성애적 성향은 선천적인 것이며 절대로 고쳐질 수 없는 것이야. 동성애적 성향을 타고 난 사람들에게는 동성을 사랑하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뿐이지. 니들이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사랑하고 하는 것이 어디 누가 가르쳐줘서 그렇게 된거야. 아니쟎아. 구야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데, 원래부터 그래. 암튼 구야가 스스로의 동성애적 성향을 인정할 수 없어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 거의 지쳤을 무렵 구야의 인생에 하나의 전환점이 생겼지. 구야가 스물 일곱 되던 해인 95년도 봄이었어. 습관적으로 통신을 뒤지다가 우연히 동성애자 대화방을 발견하게 되었지. 극장이나 게이바에만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던 동성애자들이 통신상에 버젓이 대화방을 만들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 며칠을 대기실에서 서성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지. 어렵게 어렵게 들어간 동성애자 대화방에서 구야는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어. 그들과 채팅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구야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어. 구야 스스로도 동성애자면서 동성애자는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 박통 시절. 공산당은 머리에 뿔 달린 빨갱이라고 해서 그대로 믿었던 것처럼 말야. 하지만 나름대로 부작용도 심했지. 내게는 잘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고 동성애자 사회 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가벼운 윤리 의식"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 이리저리 부딪혀서 상처도 많이 받아야만 했고. 또 통신상에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요상한 인종들이 많아서 게시판, 대화방에서 그들과 힘겨운 말싸움도 끊임없이 해야 했지. 그러다가 95년 말 경에 몇몇 대화방 멤버들이 의기 투합해서 각자의 또는 다른 이의 글을 모아서 동성애자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어. 그 소식지가 바로 하이텔 내의 300여개 동호회 중에서 늘 20위권 안에 랭크되는 <HiTEL 동성애자 인권 동호회 또 하나의 사랑>의 모태가 되었지. 요 이야기는 담에 할께. 기대 하던지 말던지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더 알고 싶은 것 있으면 내 홈페이지로 직접 와서 구경하도록 해. 내 홈페이지는 동성애자들의 조용하고 편안한 휴식 공간이니까 게시판에 욕이나 요상한 글, 희한한 답장 요망하는 편지도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해. 난 편지가 열 통이 오면 아홉 통은 기냥 씹어버리니까.
- 지극히 정상적인 구야 : ( ddolove@netian.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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