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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나 개학연기, 온라인 개학 등의 이유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게임을 적극 권장하하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시각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게임이자,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방송을 통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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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 시리즈를 접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동물의 숲>은 벌써 20년의 역사를 가진 장수 시리즈입니다. 첫 작품인 <동물의 숲>이 닌텐도64로 2001년에 출시되었으니까요.

 

 <동물의 숲>이 처음 나왔을 때는 상당히 이질적인 게임이었습니다. 기존의 게임들과 전혀 다른 형식의 일상물 게임으로, 동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나무열매를 따거나, 낚시를 하고, 곤충 채집을 하는 등,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게임이었죠. 그 시절 필자가 처음 접했던 동물의 숲에 대한 소감은 다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재미없는 게임"

 

뭔가 감동적이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레벨업이나 장비를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싸워야 할 적도 없고, 보스도 없으니, 전투는 당연히 없겠죠. 몬스터를 모으는 것도 아니고, 모험을 떠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엔딩도 없었습니다. 그냥 마을에서 이웃 동물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나무열매를 따거나 낚시, 곤충 채집을 하고, 집을 꾸미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특히, 국내에선 한글화는 물론이고, 정식발매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유저가 <동물의 숲>의 재미를 알기는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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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숲>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려진 것은 DS로 출시된 <놀러오세요 동물의숲> 부터였습니다. 일본에 비해서 출시시기가 많이 늦기는 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한글화로 정식 발매된 덕분에, 어린 학생들과 여성유저들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DS라는 기기 자체가 국내에서 ‘닌텐도’라고 불리며 라이트 유저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성공의 이유였죠.

 

이후 <동물의 숲> 시리즈는 <타운으로 놀러가요 동물의 숲>,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시리즈의 인지도를 쌓아 오긴 했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주류게임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기존의 게임들과는 게임성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판매량만 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편이지만, 슈퍼마리오나 마리오카트와 같은 닌텐도의 다른 대작 시리즈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약간은 마이너한 게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스위치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이 출시되면서,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게임과 함께 발매된 동숲 에디션 스위치는 품귀현상을 일으키며 두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게임 타이틀도 쉽게 구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게임과 전혀 관련이 없는 커뮤니티나 사이트에서 까지도 동숲에 대한 게시물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회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동숲만의 재미요소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잠깐 숨돌릴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섬

 

언제나 그렇듯, 현실 세상은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과 수입이 줄어 들면서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들, 개학이 연기되면서 할 일도 늘고 걱정도 늘어만 가는 학부모님들, 온라인 개학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생들까지, 모두 다 힘든 요즘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지만, 사람 많은 곳은 눈치가 보여서 나갈 수 없고, 가족끼리 놀러 갈 만한 유원지나 공원은 대부분 휴업중입니다. 하다못해 친구들끼리 모여서 같이 떠들고 놀면 좋겠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답답할 때, 만약 나만의 무인도로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동숲의 배경은 바로 그런 무인도입니다. 친절한 개발업자 너굴이가 제공해주는 무인도 이주패키지를 이용하여 언제라도 현실을 벗어나 무인도에서 살아볼 수 있죠.(단, 무료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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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이름도 내 마음대로 지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나만의 섬입니다. 무인도답게 야자수도 있고, 무인도 답지 않지만 사과, 배, 복숭아, 체리 등 다양한 나무열매도 따먹을 수 있습니다. 낚시대를 들고 강이나 바다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도 됩니다. 잠자리채를 들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곤충채집을 해도 되죠. 꽃을 심고 화단을 꾸밀 수도 있고,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입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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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자유, 할 수 있는 자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앞서 나열한 이 모든 행동들에 대해 어떤 강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채집한 것들을 팔아서 돈을 벌어도 되고, 박물관에 기증해서 컬렉션을 완성해도 됩니다. 섬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짓고 길을 만들어도 되고, 그런 일들이 귀찮다면 하루 종일 해변가 누워서 햇살을 즐겨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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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굴이가 빌려준 이주비용, 건축비용의 대출이 부담스럽다면 빨리 대출을 갚아서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지만, 대출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압류가 들어오거나 무서운 형님들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 대출따위 무시하고 자유롭게 살아도 됩니다. (심지어 대출이자도 없습니다.) 

 

물론 집을 확장하거나 섬의 이웃주민을 늘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것이 좋고, 주어진 미션을 해야 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게임에서 보여지는 퀘스트들과는 달리 정해진 제한시간도 없고,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페널티도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됩니다. 

 

해야 하는 일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동숲은 기본적으로 샌드박스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들에 비해서 자유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저, 시스템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정해진 행동만 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바꿔서 말하자면 시스템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뭐든지 해도 됩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컨셉질’입니다. 자신만의 컨셉을 정해 두고 그걸 만들어가는 것이죠. 물고기를 모은 후 해변에 수족관을 쌓아서 횟집을 차린다거나, 입시 준비를 위해 지옥 같은 학원을 만든다거나, 이끼 낀 지하감옥에 사람들을 가둬두는 것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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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세상. 답답한 현실과는 다른 자유로운 세상, 그것이 바로 동숲의 세상입니다. 

 

의외로 현실적인 가상세계

 

동숲을 처음 보면 동화 같은 그래픽의 가벼운 게임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현실적인 세상을 닮아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적힌 글을 읽은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기분 탓 일겁니다.) 디테일한 자연환경부터 경제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동숲은 현실적인 부분을 잘 반영한 게임입니다.  

 

먼저 낚시나 곤충 채집 등을 통해서 물고기나 곤충, 공룡 화석을 모아서 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는데, 이렇게 모인 수집품은 각각의 전시관에 전시되어 언제라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곤충의 움직임이라든지, 물고기의 생김새, 화석 등의 표현이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것들을 모으는 재미가 있고, 박물관의 컬렉션을 완성하는 것이 동숲의 주요 목적이 됩니다.  

 

동숲의 목적 중 또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크게 키우고,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고, 높은 곳에 쉽게 올라가기 위한 계단을 놓는 등의 공사를 통해 섬을 발전시켜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꽤 큰 돈이 필요하죠. 물론 나무열매나 꽃을 채집하거나 물고기, 곤충 등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동숲에서는 훨씬 더 쉽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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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트코인’이라고도 부르는 투자시스템인데, 먼저 일요일 오전에만 등장하는 NPC (Non-Player Character,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 에게 ‘무’를 매수하고, 이후 일주일간 매일 오전, 오후에 걸쳐서 등락하는 무시세에 보며 적당한 타이밍에 매도하면 되는 간단한 시스템입니다. 마치 현실의 주식투자와 흡사지만, 매수는 일요일에만 가능하다는 점과, 일주일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팔지 못하면 무가 썩어버린다는 점 때문에 현실보다 더욱 잔혹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이머들이 오늘도 무장수를 찾아다닌다는 걸 보면, 이것 역시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와 같이 흘러가는 느린 호흡의 게임

 

동숲에서 이런 현실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요소는, 게임 속의 시간이 실제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스위치 본체에 설정된 시간을 현실과 동일하게 맞춰 두고 나면, 낮과 밤의 변화는 물론, 계절의 변화 역시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새해라든지, 부활절이나 연말 등의 기념일 시즌이 되면, 그에 맞춰서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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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의 변화에 맞춰 봄에는 벚꽃이 피어서 잎이 날리고, 가을에는 도토리나 솔방울이 열리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며 눈꽃이 날립니다. 새하얀 눈길 위를 걸어갈 때 느껴지는 뽀득거리는 소리와 감각까지도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어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 지기도 합니다. 대출을 갚는 것도 좋고, 건물을 짓는 것도 좋지만 모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쉬는 것도 좋습니다. 조급하게 달려갈 필요 없이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걸어가도 됩니다. 어차피 현실의 시간만큼 많은 시간이 동숲의 세계에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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