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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세계는 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늘어가고, 심지어 사망 소식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혹시나 병을 옮기지는 않을까, 아니면 병이 옮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점차 관계를 끊고 집에 머물기 시작합니다.

 

자가격리라는 말에는 두 가지 비극이 내포돼 있습니다. 우리는 격리’당한다’고 하지 스스로를 ‘격리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격리’라는 단어 안에는 이미 피동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에 ‘자가’가 붙어버리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치 남이 나를 격리하듯 가두어야 하는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철학자 지젝은 현재 우리는 삼중의 위기에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의학적(전염병 유행 그 자체), 경제적(전염병의 결과가 어찌 되든 우리를 강타하게 될), 그리고 정신건강(Žižek 2020)”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몸이 아프거나,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넘어 우리의 정신건강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블루스(우울증)’라는 용어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우울한 방구석

 

 우울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문간에 기다리는 손님과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우울증이 어떤 특별하고 특이한 상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나 흥미가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수 있는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최근의 자가격리 상황은 이러한 우리를 우울의 동굴에 자주 데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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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라고 하는 단어는 사실, 하나의 추상입니다. 그것은 결론으로서의 현상이지, 어떤 단일한 실체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겨납니다. 고전적으로 우울증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교란으로 유발된다고 간주되어 왔습니다. 우울증의 치료 약으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와 같은 약물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코로나 사태에서의 사회적 고립은 우리를 쉽게 우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립은 우울감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인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Grippo 등(2007)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들쥐에서 우울감과 관련된 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야기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Zelikowsky 등(2018)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서 장기적인 사회적 고립이 두려움에 대한 방어적 행동과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Holt-Lunstad 등(2010)은 심지어 사회적 고립이 사망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담배나 술에 버금가는 정도로 말이죠. 게다가 자가격리 중 햇볕을 쬐지 못하면 우울감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해가 빨리 지는 나라들에 우울증이 흔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죠.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사회적 고립은 그 밖에도 다양한 경위를 거쳐 우울감을 야기합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건강에 대한 염려로부터 오는 우울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은 불안을 유발하고, 불안은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야기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집중력을 저하하고, 좀처럼 여유롭게 뭔가를 즐기지 못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수면을 방해하기도 하죠.

 

이처럼 자아가 취약해지는 경우 우리는 쉽게 짜증을 내고 주변을 탓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나쁜 감정을 외부로 투사(projection)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족들과 싸우게 되고, 친구들과도 멀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부부 싸움이 늘어났다는 뉴스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갑자기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들의 육아 노동량이 예상치 못하게 늘어났습니다. 육아노동 때문에 지쳐서, 그래서 짜증이 솟구치는 것은 결코 당신이 자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단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남편이 집에만 있는 것에 이유 없이 답답함이 느껴진다면, 오랜만에 마주하는 자녀들이 얼굴이 어색해 앉을 자리를 계속 찾아다닌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달라진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습관과 행동 패턴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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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바이러스의 가장 큰 횡포는 전 세계의 일자리를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없어진다는 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 자체만으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개인을 생산해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뭔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기 쉽습니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멈춰버리고 뭔가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그러나 이것은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입시,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계획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도 학원,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으니 공부를 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은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탓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얼마든지 우울감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흐드러지는 봄꽃 나무를 아래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셀카를 찍지 못해 우울하다면, 당신은 정상입니다. 셀카를 찍고 공개하는 것은 당신의 일상 속에서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는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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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 손상은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군가의 우쭈쭈를 받지 못하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죠. 평소라면 멋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친구에게 나의 근황을 자랑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반영해보고, 거기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말솜씨를 뽐내면서,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자존감이라는 것을 유지해왔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차단당해버렸습니다.

 

극복 방법 하나: 다시, 관계 맺기

 

“물리적 거리는 멀게, 정서적 거리는 가깝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시복지재단(2018)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잘 짜인 관계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관계망이 촘촘할수록 우울감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지요.

 

다행히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라는 양날의 검을 갖고 있습니다. SNS는 지금까지 현대인을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그것이 우리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Teo 등(2019)은 스카이프와 같은 화상채팅을 사용하는 노인들에서 우울감이 훨씬 낮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만약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가족이 있다면 지금 당장 연락해보세요. 오래된 친구와 소원해졌다면 슬며시 안부 인사를 남겨보는 겁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연락한다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코로나를 좋은 핑곗거리로 활용하세요. 갑자기 연락해서 드는 어색함이 한층 가벼워질 것입니다. .

 

촘촘한 관계망이 반드시 사람 사이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반려동물이 있다면 그들과 좀 더 관계를 맺어보세요. 방치했던 식물이 있다면 이번에 다시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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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피커와 대화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현대인에게 무생물과의 네트워킹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 죽은 사물을 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지 이미 오랩니다. 거기에는 모종의 소통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Cameron et al. 2017, Sharma et al. 2018, Kataria et al. 2018)은 이미 정신건강을 위해 챗봇과 같은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물들과도 가능한 많은 관계를 형성해보십시오. 기존에 익숙하게 만지고 접하던 물건들을 조금은 새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최근 떠오르는 ‘마음 챙김’ 기법도 어떤 면에서는 이런 관계성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법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건포도 만지기’라는 게 있습니다. 눈을 감고 건포도를 쥔 다음 그것을 마치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것처럼 자세히 만져보는 것입니다. 주름 하나하나를 직접 만지며 그 결을 느끼고, 그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보는 것이지요. 천천히 걷기, 천천히 먹기를 통해 땅, 음식과 풍부한 관계를 맺어보는 것, 이로써 ‘현재’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 기법의 골자입니다. 이런 관계 맺기는 우리가 ‘자기 대상’과 끊임없이 관계 맺음으로써 우리를 공허하고 고독한 상태에 갇히지 않게 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극복 방법 둘: 자존감 회복

 

글을 쓰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인터넷 방송을 하고 나서 우울함이 나아졌다고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우리 자신을 반영해 주는 대상들을 통해 피드백을 받으며 자존감이라는 것을 유지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그런 것들을 차단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정신이라는 것은 굉장히 이상합니다. A라는 대상의 결핍으로 야기된 우울감이, 전혀 상관없는 B라는 대상을 통해 회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자신을 지지해 주고 반영하던 애인과의 관계가 틀어진 후 생긴 우울감이, 자신의 인터넷 방송을 들어주는 애청자 1-2명으로 인해 회복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거나 뭔가를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자존감을 높여주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잠재적 타자와 연결되고, 그들로부터 모종의 인정과 관심을 끌어모을 수도 있다는 기대로 인해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집에 있는 요즘, 한 번쯤 흔히 말하는 ‘관종’이 되어보세요. 영 성미에 맞지 않더라도요. 의외로 즐거울 수 있습니다.   

 

약간의 공상으로 자존감을 상승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울감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는 조금 스스로를 속여봐도 괜찮습니다. 내가 좀 잘났다고 생각해봐도 돼요. 조금은 김칫국을 마셔봐도 되고, 허황된 꿈을 꿔봐도 좋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판타지나 공상이 차라리 도움이 됩니다.

 

통제감을 갖는 것도 자존감을 상승시켜주는 좋은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억지로 그 일을 당했다고 느낄 때보다 훨씬 우울감을 덜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죠. 자가격리에서 ‘자가’의 의미를 조금 적극적으로 바꿔보는 겁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내 스스로 격리를 해보겠다. 이번 기회에 격리를 통해 뭔가를 해보겠다. 이런 생각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존적이 되는 것도 괜찮습니다. 평소에 독립적이고 강했던 사람이라도 이런 시기에는 얼마든지 의지할 곳을 찾게 될 수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다면 종교에 의지해보세요. 그동안 신을 믿지 않았던 무신론자였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나면 다시 무신론자로 돌아가도 돼요. 당신이 필요할 때만 잠깐 신을 찾는 건 결코 죄가 아니에요. 지금은 우리가 단지 일시적으로 취약해져있을 뿐이고, 신도 그런 당신을 용서할 것입니다.

 

집에 있는 당신에게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해봐도 잘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편하게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오십시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지젝이 말했듯 우리는 지금 “모두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Žižek 2020). 그 배의 이름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일 테죠. 어찌 보면 의사나, 상담가나, 환자 모두 어느 때보다 공감능력이 최대로 발휘될 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여러분의 짜증, 분노, 푸념을 들어주는 것에는 도가 튼 사람들입니다. 그것만을 위해 최소 4년 이상 수련을 받은 사람들이니까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태양이 우리를 비추기 전까지, 마음 단단히 먹고 함께 연대합시다. 그리고 이겨냅시다. 우리는 당신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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