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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us sommes en guerre» (누 쏨 졍 게르,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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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 TV 특별담화>

출처 -  < AFP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16일 특별 담화에서 '우리는 전쟁 중'이라는 말을 6번 반복했다. 표현도 특별담화를 이어간 시간도 이례적이었다. 국민을 향한 간곡한 요청이자 강력한 경고였다. 그리고 이날 이후 프랑스에서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이른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한 과정을 되짚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과연 이 전쟁이 외세의 침략일까, 아니면 작은 갈등의 씨앗을 그들의 손으로 커다란 내전으로 키운 건 아닐까?

이번 편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대응과 정책을 중심으로 바이러스 전쟁을 시간순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전쟁의 서막: “바이러스, 리스크는 없다”

인접국인 이탈리아에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2월 말까지, 프랑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이슈와 동향을 주로 다루는 <르 몽드(Le Monde)>조차 1월 23일 우한 봉쇄령이 내려진 이후 2주 동안 고작 73개의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그중 유럽이나 프랑스에 대한 경고성 기사는 5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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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녜스 뷔쟁 >

출처 - < bfmtv.fr >

 

심지어 당시 '사회연대와 보건부(Ministre des solidarité et de la santé, 우리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아녜스 뷔쟁은 1월 24일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될 위험은 사실상 거의 없으며, 전파의 위험은 매우 낮다(Le risque d’importation depuis Wuhan est pratiquement nul. Le risque de propagation est très faible)”고 발표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인물은 이후의 흐름에서도 등장한다)

완벽하게 틀린 분석이었다. 매년 8천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방문하는 관광 대국의 안일한 일면이었다. 정부 차원의 보건안전 경고도, 안내도 없었다. 마스크는 고사하고 손을 씻고 소독하는 것조차 홍보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질병관리본부가 1339 콜센터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모든 문의와 환자접수를 받은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 119에 해당하는 사뮤(SAMU)에 신고하는 것으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확진자는 단 3명이었고 그마저도 중국에서 온 외국인 또는 중국계 프랑스인뿐이었다.

이 시점에 프랑스 사회에서도 다른 서구사회와 마찬가지로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시내보다는 교외에서, 성인보다는 청소년과 어린이 집단에서 더 많이 보고됐다.

 

프랑스는 차별에 관용이 없는 사회다. 차별적 언행과 행동을 하는 것이 상당히 금기시된다. 뉴스에서는 각종 인종차별적 범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프랑스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아시아의 일이었다.


전쟁 전야 : 적은 소리 없이 온다

2월 16일 프랑스는 사회연대와 보건부 장관을 교체한다.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19가 상당한 맹위를 떨치는 시점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유는 선거였다.

마크롱의 측근으로 알려진 파리시장 후보 벙자망 그리보가 성 추문 스캔들로 사퇴하면서 그 자리에 사회연대와 보건부 장관을 긴급 투입한 것이다. '리스크는 없다'던 아녜스 뷔쟁 장관은 전진하는공화국당(La République en marche, 라 헤퓌블리크 앙 마르슈)의 파리시장 후보가 되어 3월 지방선거에 나선다. 공석이 된 사회연대와 보건부 장관에는 올리비에 베랑이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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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시장 후보자 >
출처 - < AFP >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할 본부의 수장이 바뀌는 동안 바이러스는 유럽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2월 24일경부터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2월 28일 우아즈(Oise) 지역에서 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지역감염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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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우아즈(Oise) >

출처 - <WIKIMEDIA COMMNS>
 

이쯤부터 프랑스인들은 바이러스가 프랑스에서도 유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위기를 감지한다. 코로나 환자를 전담하는 SAMU에는 전화가 몰려 대기시간이 몇 시간이 될 만큼 길어졌다(SAMU에서는 의사가 직접 상담을 한다). 증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중증 환자가 아닌 경우 치료는커녕 상담이나 검사도 어려웠다.

 

하지만 3월 초까지도 정치권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선제 조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관광객이 넘쳐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보호장구도 없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야’ 전쟁 중이다

이제 옆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나 도시마다 이동 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 기세가 프랑스까지 몰려오자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3월 12일 목요일 마크롱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TV 담화에서 16일부터의 휴교령을 발표한다. 각 기업에는 구성원의 재택근무를 강력히 권고하고 일반 시민에게는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일 오후 대통령 담화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사람들은 슈퍼마켓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방선거만큼은 15일에 그대로 치른다고 전했다(이 선거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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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보러 줄 선 사람들 >

 

이틀 후,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당일 자정을 기점으로 모든 식당, 카페, 바, 클럽 등의 휴점을 선포했다. 이동 제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테라스에서 여유를 즐기는 안전불감증 프랑스인들 때문이었다.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된 것처럼, 실제로 이날 마지막 불토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온 번화가가 붐볐다. 마스크는 여전히 쓰지 않았다.

3월 16일, 마크롱 대통령은 두 번째 TV 특별담화에 나선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Mes chers compatriotes)을 꼬박꼬박 붙이지만, 국민을 향해 역정을 내는 대통령의 모습이 20분간 전파를 탔다. 아무리 다수의 프랑스인이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지언정 자녀를 훈육하는 듯한 모습으로 국민을 다그치는 대통령의 모습은 이례적이었다.

 

앞선 다른 대통령과 다른 긴 담화 시간, 6번이나 반복된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라는 메시지 등등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CNEWS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역사의 한 장면에 남은 것은 명백하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전쟁이 선포됨과 동시에 이동자제는 이동 제한 조치가 되었다. 모든 것은 급작스러웠다. 다음날 정오부터 프랑스 국민은 이동 시에 각자 이동에 대한 사유서를 작성해 지녀야 한다.

 

국경을 통제하고 보건정책과 경제정책을 제안했으며 지방선거 2차 투표를 연기했다. 갑작스러운 휴교령, 휴점령에 이어 한순간에 더욱더 강력한 조치가 취해졌다. 사람들은 새 규정을 익히고 적응할 새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4주째 진행 중이다. 이후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보건비상사태법을 제출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사이 프랑스의 확진자는 약 11만 4천 명(4/9 기준, CSSE at JHU)까지 늘어났다. 확산세가 누그러들지 않자 낮시간의 운동을 제한하는 조치도 시행될 예정이다. 이동제한령은 이미 4월 15일까지로 연장되었다. 하지만 13일 대통령의 새로운 담화가 예고되어, 대부분의 언론은 이 조치가 더 오랜 기간 지속될 것임을 확신한다.

 


적은 누구인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우한의 이례적인 중증 폐렴에 대해 공식적인 리포트를 발표한 것이 1월 8일.
중국 우한이 봉쇄된 것이 1월 23일.
프랑스의 첫 확진자가 나온 것이 1월 24일.

프랑스 정부는 코로나19에 대비할 시간이 최소한 2개월 이상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프랑스 중앙정부는 선거에 몰입했고, 담당 부처마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사스(확진자 7명, 사망자 1명), 2008년 메르스(확진자 2명, 사망자 1명)에서 큰 피해를 보지 않았던 자신감이 자만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원지가 멀리 떨어진 아시아라는 이유로 과도한 여유를 부린 것일까.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췄다. 프랑스에서만 이미 십만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전쟁의 피해자는 언제나 그렇듯 약자다.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센-생-드니(Seine-Saint-Denis) 지역의 확진자와 사망자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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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센-생-드니(Seine-Saint-Denis) >

출처 - < Wikipedia >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국민들은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가 제한됐다. 하지만 여전히 길에는 햇볕을 쐬러 나온 많은 사람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중에도 저녁 8시가 되면 고생하는 의료진을 향한 박수갈채가 집집마다 쏟아진다.

혼란스러운 전쟁터다. 분명 적은 외부에서 왔다. 모두를 위협하고 모두에게 해가 되는 존재다. 아직 무기도 방어구도 없는 우리는 맨손으로 싸우러 나서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전술과 전략이 중요하고 그에 맞는 훈련과 대응이 소중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지난 3개월은 어느 하나도 적절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내전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한쪽에선 더욱 강제적인 조치를 취한다. 자연히 그에 따르지 않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선 적에게 침공을 당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전쟁을 한바탕 벌이는지 구분할 수 없다.

프랑스는 이제 전쟁의 후반부에 들어섰다. 확진자는 이제 곧 정점을 향할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는 하나의 군대가 되어 바이러스라는 적을 물리치게 될까. 지난 3개월처럼 각각의 작은 전투를 치러가며 이 전쟁을 지루하게 이어가게 될까.

 

앞으로 지켜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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