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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일 하나 읎어

 

직영 잡부로 일할 때다. 한 번은 철근공을 유심히 보던 직영 반장이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손목을 휙휙 돌려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쟤네는 이것만 하면 돼. 저건 기술도 아녀~”

 

얼핏 맞는 말 같았다. 하는 일이래 봤자, 갈고리(철근과 철근을 결속선[가는 철사]으로 엮을 때 쓰는 연장. 정식 명칭은 결속핸들이다.) 하나 들고 다니면서 철근 엮는 게 작업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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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저 정도면 반나절이면 배우겠네요. 근데 철근공은 얼마나 받아요?”

 

“많이 받으면 스물세 개도 받어~ 목수들보다 쎄~”

 

“그래요? 저렇게 쉬운데?”

 

“대신 쟤네는 지붕이 없잖아.”

 

얘기인즉, 이랬다. 철근콘크리트 건물 공사는 대부분 비슷한 공정을 거친다. 기초를 닦고 나면 철근을 엮고, 그 철근을 뼈대 삼아 거푸집을 짠다. 그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그런 식으로 1개 층을 완성해나간다. 물론 그 사이사이 설비와 전기, 해체와 정리 등의 세부적인 공정이 끼어들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그렇다. 그 공정을 반복해 건물을 쌓아 올린다.

 

그러니까, 철근공은 건축공사에서 첫 번째 공정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그런 까닭에 평생 지붕 밑에서 일할 일이 없다는 거다. 다른 기공보다 일당을 더 받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 직영 반장은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한여름에는 뙤약볕에서, 한겨울에는 칼바람 맞아가며, 여름에는 뜨겁게 달궈진, 겨울에는 차갑게 얼어붙은 철근을 만져가며 일해야 하니, 말하자면 철근공들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싸우고 있는 거였다.

 

언젠가 철근반장한테 물어보니 한겨울에는 철근에 장갑이 쩍쩍 달라붙어 버릴 만큼 차갑단다.

 

“종일 철근 만지고 있으면 손가락이 꽁꽁 얼어. 겨울에는 틈틈이 장작불에 손 녹여가면서 일해야 돼. 더군다나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철근 엮어봐. 20~30년씩 하면 허리가 아작나. 현장에 허리디스크 환자는 전부 철근이여~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 세상이 쉬운 일 하나 읎어.”

 

그나마 요즘이야 타워크레인이 철근을 옮겨줘서 크게 힘쓸 일 없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 무거운 철근을 전부 이고 지고 끌고 다녔단다. 철근반장은 비교적 젊은 철근공을 바라보며 이렇게 넋두리했다.

 

“요즘 어린 철근공들이야 일 쉽게 하는 거여~ 대전에 아파트 처음 생길 때 말이여. 그때도 내가 철근했었는데, 그 시절에 타워가 어딨어? 다 짊어지고 다녔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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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광야를 어슬렁거리는 수사자 무리

 

이런저런 얘길 듣고 나서부터는 철근공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그들이 수사자처럼 보이곤 했다.

 

우선은 구릿빛 피부톤. 노가다꾼치고 피부 안 타는 사람 없지만, 철근공들은 유독 새카맣다. 한여름, 현장엔 티도 안 입고 맨살에 낚시조끼 하나 덜렁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열에 여덟아홉은 살 타는 것에 무뎌졌거나 포기한 철근공이다. 그런 철근공이 철근을 어깨에 지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락없는 수사자다. 막 사냥 마치고 사냥감을 질질 끌고 가는 수사자 말이다.

 

철근공이 더 수사자처럼 보였던 건 특유의 집단 작업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많아야 10명 남짓 움직이는 다른 공정과 달리 철근은 보통 20~30명 정도가 떼로 붙어 철근을 엮는다. 조회를 마치고 탁 트인 현장에 투입되는 철근공 무리(?)를 보고 있자면 광야에 떼 지어 어슬렁거리는 수사자 무리를 연상케 한다.

 

마지막으로 특유의 야수성까지. 어느 현장이든, 어떤 공정이든 노가다꾼들, 대체로 거칠긴 하다. 그렇긴 한데, 철근공들은 유독 더 그렇다. 물론, 모든 철근공이 그렇진 않겠으나, 적어도 내가 만난 철근공 대부분은 상당히 거칠고 걸걸했다.

 

평생 자연과 싸워온 것에서 오는 악다구니 때문인지, 단순하고 지루한 방식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무겁고 차가운 철을 다루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아마도 그 모든 것이 더해지고 곱해지고 엎어져서일 테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렇다. 드세다.

 

누군가는 목수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노가다’ 하면 망치든 목수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판의 상징적인 기공은 철근공이다. 낚시조끼 하나 덜렁 걸친 구릿빛 피부의 철근공 말이다. 그 야수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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