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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터키 언론에 마트(치바현 코스트코)에서 마스크를 사러 달려드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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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세계적으로 '사재기'가 일어난 것을 보지 않았나. 일본에서도 사람들이 격투하듯 물건을 쟁취하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얌전히 있다가 밀려서 살 것도 못 산다. 일본에서 경쟁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 전략적으로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느냐가 포인트다. 스스로 시민의식이 높다는 일본인이라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아베노 마스크(아베의 마스크)

 

얼마 전 아베 총리가 전국의 가구에 천마스크를 2장 씩을 나눠주겠다고 발표했다. 그 유명한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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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무려 466억 엔의 세금이 들어가는 데다(당초 200억 엔으로 예상했다) 가족이 몇 명이든 가정 당 2개 밖에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심지어 기능성 마스크도 아닌 면마스크다). 

 

아베노마스크는 먼저 임산부에게 배부되었지만 곰팡이와 머리카락 등이 들어 있어 문제가 되었다. 이어 초등학교 등에 배포된 마스크에는 벌레가 들어있었다. 일반 가정에 보급될 마스크의 검품단계에서도 비슷한 불량이 발견돼 24일 정부가 '미배포분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점검 후 재배포한다고 함).

 

가격에 비해 사이즈나 품질에 문제가 많은 걸 배송비용까지 들이면서 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 (임시) 중지되었다. 처음부터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음에도 밀어붙이더니, 결국은 중지된 것이다. 

 

마스크는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아베 총리의 친구 회사에서 만든다고 했다. 나의 이웃은 '일본에서 만들지 않았다면 가격이 그렇게 비쌀 리가 없는데, 저런 (질 나쁜) 제품을 만든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처음 들 거라고 예상했던 200억 엔의 두 배 이상을 썼음에도 그런 제품을 만들었냐, 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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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에서 마스크를 제조한 뒤 개인에게 판매한다고 했지만, 주문이 밀려서 서버가 다운되었다. 파나소닉과 아이리스 오야마도 마스크를 제조한다고 하는데, 아이리스 오야마 쪽은 금방 될 것 같지 않다. 경제재생상(경제재생본부의 장관급)에게 '7월이나 8월에나 1억 5천만 장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미야기현 공장에서 6,000만 장 생산계획을 2.5배 늘려서).

 

당장 마스크를 구하긴 힘들다는 말이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이웃은 평상시에도 마스크를 많이 사둔다. 마스크 파동이 나기 전에도 많이 사두었는데, 그 때 60장에 490엔(1장 당 약 8.2엔)이었던 것이 지금은 더 나쁜 품질의 마스크도 한 장당 60엔 정도 한단다. 파동 전에 비해 7~8배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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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품질이 나쁜 마스크도 50장에 3000엔 정도 한다. 빨아서 쓸 수 있는 마스크는 1장에 3000엔도 했다. 직접 보고 한 장에 천 엔을 낼 가치가 있으면 사겠지만 사진만 보고 한 장에 천 엔이나 주고 배송비를 물면서 사는 것은 리스크가 높기에 사지 못한다. 요새는 인터넷에서 마스크를 주문하면 마스크 그림이 그려진 책이 배송된다고도 한다. 

 

이런 상황이니 마스크를 '만들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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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야후 옥션에서 팔고 있는 수제 마스크

 

주변에도 마스크를 만들어 쓰는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외출 자제'에 집에서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소일거리로 마스크를 많이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도 흔히 볼 수 있어서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는 이웃1에게 우선 두 장을 부탁했다. 재미있는 건 돈을 주고받기는 뭐하니 원시시대처럼 물물교환을 한다는 점이다. 내가 마스크 두 장 대신 준 것은 머위장아찌였다. 공원에서 만난 이웃2는 자기가 만들었다는 마스크를 한 무더기나 갖고 있었다. 나는 역시 머위장아찌를 건넸고, 이웃은 본인이 만든 마스크를 넉 장 주었다. 

 

동네 이불집은 아예 장사를 한다. 자체적으로 만든 천마스크를 한 장에 200엔에 판매하고 있다. 이웃이 만든 것이 훨씬 질이 좋았지만 굳이 찾아간 김에 한 장만 샀다. 이렇게 짧은 사이에 천마스크를 몇 장이나 입수했다. 당분간은 지낼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각자도생한다. 사실 각자도생 밖에는 길이 없지만.

 

 

의료현장에는 마스크도 없대

 

20일 오사카부 나미하야 재활병원에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났다. 신규 감염자 중 다수가 병원관계자라고 한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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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간호사를 계속 일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감염은 확산됐다. 어처구니 없게 들리겠지만, 지금 일본의 의료현장이라면 가능하다. 

 

얼마 전 '医療の現場から(의료현장에서, 링크)'라는 제목의 일본 글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 언론의 기사(링크)로도 나왔다(자세한 내용은 기사에도 잘 나와있다). 작자는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로, 현재 일본의 의료현장, 혹은 의료붕괴 현장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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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조차 'N95 마스크'가 모자라서, 멸균한 뒤 돌려쓰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전부터 의료현장에서 '의료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현실을 사는 사람에겐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오사카부 지사가 '병원에서 쓸 방호복이 모자라서 쓰레기봉투를 쓰고 있다. 우비를 기부해달라'고 하는 걸 들었을 때도 설마했다.

 

그런데 현실은 방호복은커녕 마스크마저 돌려쓰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신오쿠보에 가면 마스크를 인터넷보다 싸게 많이 살 수 있다고 하고, 일본 비행기는 상해로 마스크 상자를 싣고 온단다. 시중에도 마스크가 돌고 있다는데, 우선적으로 받아야 할 의료진에게 공급이 안 된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건 마스크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배부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의료현장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한편 일본 정부는 5월 6일로 비상사태를 마칠 것인지, 아님 연기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비상사태선언이 길어지면 그만큼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상사태를 빨리 끝내기 위한 선결조건인 '적극적 대처/방역'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전하는 천마스크라는 '부적'도 행방불명이고, 재난 지원금 10만 엔 신청도 빨라야 5월부터다. 그 사이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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