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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코로나 국면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동시에 바뀌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동시다발적 인식의 대변환의 중요성과 그 영향.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세계적 수준의 동시다발적 인식의 대변환’을 잘 활용하여,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사례를 찾아보았고, 이 사례들을 통해 현재 어떤 상태에서 미래에 어떤 상태로 우리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를 예상해 보았다. 

 

기사가 조금 길 수는 있겠으나, 막상 읽어보면 재미있는 기사이니 모두 즐겨주시길. 

 

 

프로이트도 말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역사에서 자존심을 크게 상한 경우가 세 번 있다.” 첫 번째는 천동설이 깨지고, 지동설이 인정되었을 때, 두 번째는 인류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윈의 진화론), 세 번째는 인간이 노이로제, 콤플렉스, 우울증, 피해망상 등의 약한 모습들을 가진 ‘병든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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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프로이트>

 

인류는 이 세 번의 사건에서 자존심을 상함과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인식 대변환이 일어났고, 이 인식의 대변환을 잘 활용했다. 그 결과, 천체물리학, 생물학, 진화학, 정신의학, 심리학 등의 많은 현대 학문과 기술을 발전시키며 현대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는 코로나 국면에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적 전염병으로 인한 대혼란이다. 전에 페스트, 스페인 독감 등의 전염병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 범위의 세계적 대혼란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 상황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 터라 코로나 사태에 성공적 대처를 하고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이 동시에 변하고 있다.     

 

많은 언론들이 해외 언론들의 보도를 소개하며, 국내외 인식의 변화를 소개한다.

 

외신 인식변화 기사.PNG

< 기사 링크 >

 

‘해외에서 우리를 이렇게 알아준다. 특히, 우리가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던 서구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서구 세계가 우리를 칭찬해준다’ 등

 

위의 기사가 나쁜 기사라는 말이 아니다. 좋은 기사다. 그리고 보도의 내용도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논조의 보도들만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 하던 서구에서도 대한민국의 대처와 기술, 시스템, 민주주의 등을 칭찬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국내외 인식의 변화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칭찬받아 기분 좋은 상태로만 우리의 인식이 멈춰서는 안 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포스트 코로나 대통령.PNG

 

인류의 역사상 이 정도 수준의 세계적 ‘동시다발적 인식의 대변환’은 전쟁, 세계적 혁명, 획기적 발명 등 정도의 사건을 통해서나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구촌 사회가 되면서 전염병의 파급력도 커졌고, 그에 얽힌 정치,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며 이 코로나 사태에 대한 성공적 대응은 가히 전쟁을 통해서나 이루어지던 인식의 대변환을 이끌어냈다.

 

이 인식의 대변환이 얼마큼, 왜 중요한지 또 어떻게 이 대변환을 이용해야 좋을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알아보자. 

 

 

세계적 인식의 대변환 사례1 : 신대륙 발견

 

우리는 첫 번째 세계적 혁명을 ‘산업혁명’이라 배운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세계적 혁명의 첫 번째는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신대륙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과학혁명이 무슨 상관이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일단 신대륙 발견 전과 후의 지식 사회의 차이에 대해 일단 살펴보시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과학적 태도의 유무가 확연히 느껴질 것이다.

 

과거현대 지식인.PNG

 

-과거의 지식

 

과거의 지식사회는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지식사회는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그가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묻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현명한 누군가는 종교의 교리 속에서 그 답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 때문에 지식인의 최고봉은 사제였다.

 

다른 하나는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위대한 신들이나 과거의 현자들이 우리에게 애써 말해주지 않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정의상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사제에게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종교 교리 속에 언급되지 않은 지식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의미했다.

 

-현대의 지식

 

과거에 비해 현대의 지식은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첫 번째로 무지를 인정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도 신성한 것은 없다.

 

두 번째로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신학, 논리학, 문법, 수사학 등의 교육이 중요하였지 수학은 중심에서 벗어난 학문이었다. 이에 반해, 현대 지식은 무지를 인정하며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들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과거의 지식 사회와 현대의 지식 사회를 가르는 과학혁명은 이미 일어났고, 이것은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이 무지의 혁명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당시 유럽의 세계지도를 한번 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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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전, 1459년 세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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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1525년 세계지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1459년의 세계지도에서는 세부사항이 가득 그려져 있다. 유럽인들이 전혀 모르는 남아프리카 같은 곳조차 그렇다. 반면, 1525년 그려진 지도는 거의 공백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 변화가 보인다. 신대륙 발견 전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던 태도가 신대륙 발견 후,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무지로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주었고, 발견 이후 세계지도에서의 빈 공간은 유럽인들의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빈 지도는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약적인 진전이었다.

 

이후로 유럽의 과학과 기술은 많은 발전을 이뤘고, 그 기술의 변화에 맞춰 사회의 시스템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성큼성큼 아시아와의 간격을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1750년 이후로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한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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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인식의 대변환 사례2 : 산업혁명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한 유형의 에너지를 다른 유형으로 바꾸는 방법을 몰랐다.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는 기계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우리 몸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몸은 대사 과정에서 식품이라는 유기 연료를 태워서 거기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근육의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사실 이런 에너지 전환은 9세기 중국에서 이미 일어났었다. 대포이다. 화약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발사체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대로 9백 년이 그대로 흘렀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을 깨달은 신기술은 영국의 석탄 광산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성장하는 경제에 연료를 대고 집과 경작지를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나무들이 베어져 나갔다. 땔감이 부족해지면서 석탄을 땐 데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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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

 

석탄을 캐다 보면 지하광산에 물이 고이는데 이 물을 퍼내기 위해 발명된 것이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의 유형은 여러 가지 였지만 모두가 공통된 원리로 작동했다. 석탄을 비롯한 모종의 연료를 태우고 거기서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증기가 팽창하면서 피스톤을 밀어내고, 피스톤이 움직이면 거기 연결된 것은 무엇이든 따라 움직인다.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킨 것이다. 중요한 점은 9세기에 중국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이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을 영국에서 깨달으면서 중요한 심리적 장벽이 깨졌다는 것이다. 직조기를 돌리기 위해서 석탄을 땔 수 있다면 가령 운송 수단처럼 다른 것들을 움직이는 데도 같은 방법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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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들이 ‘에너지 전환’이라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히면서 과학과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전기가 발명되고, 핵폭탄이 발명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에너지의 전환을 통해서 만들어진 에너지이다.

 

산업혁명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너지 사용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세계적 인식의 대변환 사례3 : 미국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먼로 독트린의 영향으로 철저한 ‘고립주의’를 유지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유럽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서구 열강들에게는 3류 국가로 인식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 기조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에도 유지가 되었고, 독일 잠수함에 의해 영국 해안에서 미국인 승객 128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17년 1월, 치머만 전보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은 참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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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머만 암호 전보 >

 

치머만 사건이란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외무 장관에게 보낸 암호 편지가 연합군에게 입수되어 해독되었는데 그 내용이 ‘미국이 우리와 전쟁을 시작할 경우, 멕시코가 우리를 도우면 1848년 멕시코가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엄청난 자원 지원력과 군사력을 보여줬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서구열강세계에서 미국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잘 쳐줘봤자 2류 국가에 불과했다. 미국은 다시 중립, 고립주의로 돌아갔다. 

 

세계의 파워 및 주도권은 여전히 영국과 프랑스가 가지고 있었다. 이때, 미국이 다시 중립, 고립주의로 돌아간 것은 당시의 미국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세계적 파워 수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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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진주만 공습 >

 

그러나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945년 독일은 패망하고, 미국이 일본에 두 번의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전쟁은 끝나게 된다. 이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인 스스로뿐 아니라 세계인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미국의 성장한 힘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 구도는 1차 세계대전 후와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미국은 자신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세계의 인식변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국제기구(UN)와 국제동맹(NATO)의 창설을 주도하고, 많은 UN의 산하기구, 전문기구들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유엔 산하기구이고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그룹(World Bank Group), 세계지식재산권기구(UNWTO) 등은 유엔산하 전문기구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기구, 동맹들을 주도하며 세계는 미국 중심의 세계로 재편되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세계가 재편될 수 있었던 여러 중요 요인 중 중요한 하나는 세계인들의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적 인식의 변화’이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다른 나라들도 이제 확실히 알았다. 미국이 자본주의 체제 국가들의 리더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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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인들 스스로도 확실하게 인지하였다. 그들이 최강이라는 것을.(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 재편 구도에 대해서는 소련을 빼놓을 수 없지만, 이 부분에서는 미국만을 중심으로 다루겠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까지 다 다루기엔 기사가 아닌 책이 되어버릴 것이다.)

 

미국 자신과 다른 세계 국가들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면 전쟁 후의 미국 중심의 세계 재편은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당시 세계인들의 인식 변화를 잘 이용하였고, 결국에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다시, 지금 우리는

 

현재 전 세계적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의 위상은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다. 때문에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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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 링크 >

 

 

5월 4일의 전세계 코로나 상황이다. 잘 안 보이겠지만, 대한민국은 37위이다. 이제 코로나 국면에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읊어보겠다.

 

현재 우리는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진단키트, 진단장비를 수출하고 있다. 마스크는 수출하고 있지 않지만 수출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그리고 진단키트, 장비를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진단키트 수출문의.PNG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산실이다. 그러다보니 가짜 한국산 마스크도 해외에서 등장하고 있는 판이다. 중국도 수출을 했었지만, 불량률이 너무 높아 수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중국 수출품.PNG

 

앞서 말한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도 기저질환이나 면역력이 엄청나게 약해져 있는 않는 한 완치가 보장된다.   

 

전 세계 거의 유일하게 사재기가 없는 나라이며 오히려 휴지, 라면, 손소독제 같은 방역, 생필품들을 수출하고 있다. 봉쇄와 외출금지령 같은 초법적인 조치 없이도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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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헤럴드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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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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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을 하고 있으며, 서로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를 돕고 있다. 이 모든 게 극히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세계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자연스런 사례는 아닌 것 같다. 

 

의료진 감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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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부산 MBC >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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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

 

 

오사카 시장 비옷 기부호소.JPG

 

출처 - < 뉴시스 >

 

정부는 민주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모든 절차가 코로나 사태 해결을 위해서만 집중이 되고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IT기술도 발달이 되어있어 국민들은 그 기술을 적극 이용하며 실시간으로 전국적 코로나 사태에 대한 동향을 제공 받는다.

 

마스크마저 이제는 수급이 안정되어 1인당 구매량을 2장에서 3장으로 늘렸다. 약국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마스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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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시사저널 >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예정되어있던 선거가 연기되지 않고 안정적 관리하에 진행된 유일한 국가이다. 우리의 선거에 세계가 집중했고, 코로나 속 선거 국면에서의 우리의 방역을 배우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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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한국은 코로나 국면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거의 30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

 

한국기사.JPG

 

드라이브 스루, 워크 스루라는 검사 시스템까지 도입해서 검사 속도를 높여갔고, 다른 나라들도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워크 스루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방역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코로나 앱을 활용하기 위한 법 개정에까지 돌입했다.   

 

미국이 그들의 코로나 사태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여, 우리나라에 의료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의 이러한 지원요청은 예전의 파병 요청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의 힘으로는 사태 해결의 여력이 안 되는 것이다. 역사상 이런 적은 없었다. 미국이 파병 ‘협박’이 아닌 도움을 요청하다니.

 

암튼 그리하여,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60만 개의 진단키트가 1차분으로 미 연방재난관리청 화물기에 실려 미국으로 갔고, 백악관 조정관은 한국 코로나19 통계치를 바탕으로 매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 상황 보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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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우리의 방역체계를 공부하기 위한 스터디 그룹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항이 봉쇄되고 항공편이 끊겨서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 주도로 비행기 편이 마련되고, 그 비행기에 우리 국민뿐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독일, 일본 국민들까지 태워 그들을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대사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도 그 비행기에 타기를 요청하여 머물고 있던 나라를 빠져나왔다.

 

현재도 유럽 각국은 봉쇄 강도를 강화하고 있고, 미국은 100만 명을 훌쩍 넘긴 확진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정치 싸움이 멈추지 않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국가 비상사태를 잇달아 연장하기로 했고, 이탈리아는 휴교령을 9월까지 연장했다. 유럽의 도심은 텅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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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텅 빈 도심 >

 

러시아도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안 되며, 급격히 확진자가 늘고 있고, 브라질은 사망자 수가 6천 명에 육박하면서 아파트형 묘지까지 등장한 형국이다. 이러는 와중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PNG

 

이러는 와중 우리는 4월 30일 첫 코로나19 국내 감염 0명의 시대를 맞이하며, 하루하루 확진자 0명이 아닌 날에는 실망하는 정도까지 상황이 호전되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전 국민 항체 조사를 통해 전국 항체 지도를 만들어 코로나19 대응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는 다른 수준으로 나아가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방역과 일상생활,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에 오는 6일부터 들어간다. 이에 따라 회식과 모임이 원칙적으로 허용되고, 공공시설도 단계적으로 개방된다.  

 

불법체류자 문자.PNG

< 5월 3일에 보건복지부에서 온 문자 >

 

코로나19 사태 초기 모범 방역국으로 꼽히던 싱가포르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매일 수백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온 사례들을 참고하여, 정부는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단속을 당분간 중단하고 코로나19 진단 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동시에 그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지 않을 것이며, 나중에 단속이 재개되더라도 그 정보를 이용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도 적극 참고하며, 최고가 된 한국의 방역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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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IT조선 >

 

세계 각국 정상들이 우리의 방역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화상회의를 하고, WHO에서는 코로나 사태의 방역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이라 볼 수는 없으나,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나라의 수장에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는 것은 세계가 코로나 사태에서 대한민국의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국면이다.

 

우리도 경제가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락다운 없는 방역의 성공적 대처의 영향으로 우리는 경제마저 IMF에서 발표한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OECD 36개 국가 중 탑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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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분류상 세계 선진국 국가로 선정된 39개 국가 중에서도 경제성장률의 하락 폭이 제일 적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1위이다.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적 쇼크가 온 상황에서도 한국 시장은 국채, 외환, 증권시장, 그 어떤 것들도 흔들림이 없다.

 

스페인 월간지.JPG

 

이러한 상황을 스페인의 한 언론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한국이 군대도 없이 지구를 침공하고 있다.”

 

 

촛불혁명 전, 우리는

 

나는 김어준 총수의 글과 책을 대학 시절부터 봐왔다. 그래서 그의 가치관과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해외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해외에 나가서 살아도 봤고, 이곳저곳 배낭여행도 해봤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총수의 관점을 많이 따라가 봤었다. 그래서 서구인들을 대하는 동양인들의 태도를 유심히 봤다. 확실히 같은 서구인끼리의 태도와는 달랐다. 뭔가 위축되어 있었다. 길거리 삐끼, 레스토랑 점원에게조차 ‘과잉’친절했다. 

 

단순한 언어 문제 때문에? 영어에 관해서 ‘브로큰 잉글리쉬’인 것은 비영어권 다른 서구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설마 하겠지만, 맞다. 그들이 백인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마닐라, 베트남의 하노이, 태국의 방콕의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안 그런다. 나이, 학력, 돈과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태도의 차이다. 외국의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나오게 된다. 이때도 서구 친구들과 동양 친구들은 큰 차이가 있었다. 친구가 본인의 나라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하면, 서구 친구들은 “아, 그래?”하며 당연하게 넘긴 반면, 동양의 친구들은 꼭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나라를 좋아해 줘서 고맙단 말을 듣는 서구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뭐가 의아한지 궁금한 나는 물어봤다. 그 답변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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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올리버쌤 유튜브 채널 >

 

“내가 너네 나라에 관심이 있다는데, 너가 왜 고마워하지?” 

 

본인 나라에 대한 관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서구 친구들. 반면, 무슨 은혜라도 받은 듯 감사해하는 동양 친구들(그중에서도 한국 친구들은 더욱 그랬다).

 

나는 차라리 건방져 보이더라도 당연하게 고개들고 있는 서구 친구들의 태도가 부러웠다.

 

서구가 그들의 상대적 우월성이 담보되도록 동양에 부여한 이미지와 그를 근거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우위를 당연시하는 인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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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학교에서 많이 보는 광경일 것이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우리의 교육은 우리 문화의 역사와는 이질적이고, 그래서 하나도 멋지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서양미술 작품들을 구도, 색감, 원근법이 어떻다니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어떻다니 하며 억지로 좋아하는 ‘척’을 하도록 가르친다. 

 

그 작품이 탄생한 시대 상황, 지리, 날씨, 문화 등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하등 상관없이 그 미적 감수성이 나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감수성을 수입해와 억지로 주입한다.

 

역사 시간에도 우리들의 삶과 역사에 그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한 알렉산더를, 겨우 아시아 남단 인도까지밖에 오지 못한 그를, 세계를 제패한 대왕이라 칭하도록 배운다. 겨우 한반도의 절반 크기에 불과했던 지역 부족의 통합에 불과했던 솔로몬의 나라를 한국 기독교는 위대한 솔로몬의 제국사로 가르친다. 

 

유럽의 역사를 ‘세계사’로 칭하며 배운다. 같은 대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아시아와 분리된 유럽‘대륙’이라 따로 칭하도록 배운다. 각기 다른 생김새와 판이하게 다른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시아는 오히려 유럽과 더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뺀 나머지는 ‘아시아’라 퉁쳐진다.

 

이러한 우리네 교육과정은 18세기 이전의 동양과 서양의 관계는 잊은 채, 당연히 서양은 대단하기만 한 냥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시키는 작업이며, 이러한 교육이 서구의 식당 웨이터 앞에서마저 주눅 들게 만드는 족쇄를 채운 것이다.

 

서구라면 붙어보지도 않고 쫄던 이러한 내면의 오리엔탈리즘이 촛불혁명 전 우리였다.

 

 

두둥, 예고편

 

기사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기사를 2편으로 나눴다. 다음 편에서는 족쇄에 결속 당해있던 우리가 촛불혁명과 코로나 국면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다루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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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