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한국 가수들의 끊임없는 발전

 

서현 파트에서 잠시 언급됐지만, 한국 가수들은 아이돌이라도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데뷔하기 때문에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아이돌임에도 정은지 같은 괴물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언급의 배경에는 중국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17년 버전의 영상에서는 자국 연예계 비판이 더 노골적이다. 벌기 쉬운 돈만 노려 아무나 데뷔시키고, 그로 인해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그게 또 화제가 되어 노출빈도가 늘어나는 악순환 때문이다. 

 

이는 연예산업 구조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90년대에 이미 '음반 100만 장 시대'에 돌입, 내수시장의 한계를 경험했다. 팬덤과 굿즈까지 끌어모으더라도 이윤창출이 더 이상 어려운 상황이다. 

 

SM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갔다. 뜻하지 않은 H.O.T.의 중국 인기를 지나치지 않고, 그 나라에 맞춘 기획 가수를 만들어내 성공을 거두었다. 외국 출신에 대한 텃세를 이기고 성공하기 위해선 실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당시 립싱크 가수들에 대한 국내 팬들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를 평가하는 현지 관객들의 수준 높은 태도가 반영됨으로써 아이돌 가수도 상향평준화된다.

 

01.jpg

 

02.jpg

 

<PRODUCE101>을 본딴 <창조101>이 만들어졌을 때, 중국 팬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배윤정 같은 호랑이 선생님의 부재였다. <창조101>을 통해 스타로 부각된 양차오위에(杨超越)는 외모에 비해 실력이 형편없어 네티즌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녀가 한국에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두 프로그램을 짜깁기해 짧은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링크). 중국 아이돌을 대하는 자조적인 시선이 읽히는 사례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1위는 한국 아이돌그룹 ‘우주소녀’의 중국인 멤버 미기다)

 

'중국 아이돌 가수의 실력이 한국만 못하다'고 하면 대개 수긍한다. 외국을 생각할 필요 없이 내수만으로도 엄청난 이윤창출이 가능하므로, 다른 기획사보다 좀 더 눈에 띄는 정도면 되는, 아니 그보다도 TV에 얼굴을 비치는 기회가 많으면 되므로 실력에 공들일 필요가 적은 것이다. 

 

또 다른 요소, 즉 '팬들의 수준'이 작용해야 할 텐데, 불행하게도 중국은 ‘밑에서부터의 요구’가 관철되기 힘든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정치부터 소비까지 모두에 해당하는 구조적 문제다. 

 

중국 시청자라고 한국 예능 베끼는 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겠는가? 혐의는 제작발표 때부터 제기되고, 1회가 방영되고 나서는 넘쳐날 정도로 지적이 많다. 그러나 방송국은 이런 요구를 일절 무시해왔다. 무시한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속성, 정치의 구조가 여기에도 작용되는 것이다. 하물며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 ‘가수의 실력 부족’ 불만을 기획사나 방송국에서 들어줄 리 있겠는가.

 

아이돌을 제외하더라도 중국에는 '실력 있다는 가수'들이 한국만 못하다. 내지는 수가 적다. 이유는 다르지 않다. 얼마든지 인지도만을 무기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드넓은 중국에선 자기 지역에서 콘서트 한 번 구경하기 쉽지 않으니 실력 나쁘단 얘기를 검증하기도 참 어렵다. TV에선 후보정하면 그만이다.

 

03.jpg

 

‘Bili_3591722’라는 제작자가 2017년 만든 중국어권 가수 랭킹 영상이다. 홍콩 최고의 가수였던 왕페이(王菲)에게 'A'를 주면서도 이렇게 언급한다. 

 

“…발성기술은 그녀의 크나큰 단점이었고 이후에도 보완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대형음반사의 마케팅에 의존할 수 있어 정상급 가수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그 아래 아무런 특색도 가지지 못한 가수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팬들은 한국 가수들의 끊임없는 발전에 상당한 점수를 준다. 랭킹 영상에서 아이유나 은지에 대해 '앞으로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는데, '발전가능성'이 랭킹 부여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읽을 수 있다. '정상급의 가수'란, 그러니까 '지속적인 발전을 이룬 인물'이라고도 해석된다. 랭킹을 다시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한국 정상급 가수의 영상 댓글에서 중국 가수에 대한 푸념을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왕페이(王菲)는 이제 갔다'느니, '리쟈웨이(李佳薇)는 괜찮지만 아직 비교하긴 무리'라는 등의 반응이 그렇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국 방송에서 굉장한 가창력의 가수를 보았을 수 있다. 탄징(譚晶) 한홍(韓紅) 등의 가수를 알 수도 있을 것이고. 여기서 국가대표(國家隊), 즉 ‘국대급’ 가수의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중국의 ‘국대급’ 가수

 

한 때 ‘대형가수’란 표현이 널리 쓰였다. 정부 주도의 행사에서 제법 웅장한 노래를 부를 만한, 혹은 그런 창법과 목소리를 가진 가수, 해외에 국위선양을 했다고 여겨지는 가수 등을 뜻하는 단어였다. 더 좁게는 가창력 좋은 가수를 뜻하기도 하는, 정의 내리기 애매모호한 단어이기도 했다. 내 기억에 패티김이 그런 가수였다. 

 

이 말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아마도 격식 있는 이벤트가 줄어들고 장르 선곡이 다양성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엄숙한 이벤트에 부합하는 특정 장르, 거기에 어울리는 음색이 정해져 있을 때 대형가수란 말이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대형가수란 말을 좀 썼던 듯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표현은 ‘국대급’ 가수다. 이 표현은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서 훌륭한 무대를 선보인 탄징(譚晶)으로부터 유행했는데, 유래를 알려면 CCTV청년가수텔레비전대상경연(CCTV青年歌手电视大奖赛, 이하 ‘청가상’)이라는 이벤트를 설명해야 한다.

 

unnamed.jpg

 

중국중앙방송국인 CCTV는 1984년부터 2년에 한 번 씩 ‘청가상’ 이벤트를 개최해왔다. 경연을 통해 음악 인재를 발굴하고 홍보도 하는 관영행사라고 보면 되겠다. '청가상'의 경연방식인 미성(성악), 민족(민요), 통속(대중가요)의 세 파트는 현대 중국 음악 교육의 일정한 정형성을 만들었다. 중국 퍼스트레이디인 펑리위엔도 ‘청가상’ 출신으로, 2회 민요부문 금상을 받아 유명해졌다. 

 

하지만 2013년(한 해 미뤄졌다)에 있었던 15회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는데, 수상자들의 인기로 인해 너도 나도 한몫 잡으려는 경쟁이 과열되었고, 수상을 목적으로 하는 보컬 교육이 판을 치면서 원래의 취지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04.jpg

 

05.jpg

 

<차이니즈 아이돌> 오디션에 나온 마치(马旗)라는 참가자는, '2008년 지역 오디션에서 1등을 했지만 정작 베이징 본선에는 다른 사람이 갔다'고 털어놓았다.

 

이때 심사위원인 한홍(韩红)은 자신이 그 해 심사위원이었지만 당신 이름은 못봤다고 말하며, 그런 흑막이 절대 없을 거라 참가자를 격려한다. 댓글로 지역명이 나오고 ‘위험해 위험’이라고 경고하면서도, 모두가 다 아는 대회명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CCTV 이벤트에서 수상하는 것은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은 물론 인지도를 한순간에 올릴 기회다. 성악가라면 교수직, 민요가수라면 지역 대표 가수 타이틀이 보장될 것이다. 대중가요 가수는 엄청난 인기와 부를 쌓을 수 있다. 각종 쇼, 드라마 주제곡이 줄 설 테니 말이다. 

 

대학과 지자체를 빽으로 삼는 성악가와 민요가수는 상관없지만, 대중가요 가수에게는 이게 꼭 장점이라고 할 수가 없다. 대중가수는 정부 주도 행사, CCTV가 제작하는 정치색 짙은 드라마 주제곡을 거절할 수 없다.

 

거기가 관영 경연의 특성상 대중가요라고 해도 웅장하고 트인 목소리의, 앞에서 말한 '대형가수'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국대급' 가창력을 지닌 ‘청가상’ 출신의 대중가수는, 대중성과는 일치하지 않는 행보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연예산업이 발전한 2000년대 이후 더 두드러진다. 중국에는 '국가 공인의 N급 관광지', 'N급 요리사'처럼 정부 인증을 부여하는 관례가 있는데, 연예계에도 ‘국가 1급 연예인(国家一级演员)’이라는 지위가 있다. 연기자와 가수 모두가 계획경제 하에서 직업군을 배정받아야 했던 시절에 유효했던 것이다(ex. 산동성 제2화학공장 예술부 소속의 가수). 

 

이 지위는 지금도 존재하나 중국어권 연예계 범주가 매우 확대된 현재, 정치적으로 반중 성향 없는 연예인이면 당원 아니어도 주는, 명목상의 훈장처럼 돼버렸다.

 

추측이긴 하지만 청가상 출신들은 상당수가 당원이거나 이후 되었을 것이다. 관영 이벤트에 자주 출연하는 사람이 당원이 아니라고 예상하기 어렵고, 유명세를 누리지 않은 사람이라도 교수나 협회장 자리를 차지하려면 당원이어야 한다. 물론 공리나(龚丽娜)처럼 청가상 출신임에도 음악에 몰두하는 예외는 있다(실험정신이 강하고, 독일인과 결혼한 후 외국 무대도 많이 경험해, 여러모로 나윤선과 비교되는 중국 가수다).

 

07.jpg

에너지 넘치는 무대 매너가 특징인 탄징(譚晶)의 별명은 ‘대마왕’.

설날 프로그램 춘완(春晚)의 단골 출연자로,

베이징 올림픽, 상하이 국제박람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대한 바 있다.

 

국대급 가수의 대표적인 인물이 탄징(譚晶)이다. 2000년도 제9회 청가상 통속부문 금상을 수상, 현재 중앙군사위 소속 미디어센터 예술총감독이자 텐진 음악학원 객원교수 및 여러 대학의 초빙교수직을 맡고 있다. 

 

2010년 이후 중국판 <복면가왕>이나 <나가수>에 출연했는데, 예전이었다면 민간 TV 프로그램에서 얼굴 보기 힘들었을 인물이다. 중국판 <나가수>에서 외국 가수들(Dimash, 더 원, Jessie J 등이 나왔었다)이 여러 차례 가창력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터라, 중국의 정상급 가수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내부적 압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탄징은 2017년 <나가수>에서의 무대로 ‘국가대표급’이란 찬사를 받았다. 이후 ‘국대급’ 표현이 유행하면서 이전 출연자였던 한홍(韩红), 한레이(韩磊) 등에도 비슷한 칭호를 붙이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자. 랭킹 영상의 라이브 무대에서 한국 가수들의 실력을 보고, 비견할만한 중국 가수를 찾다가 결국 국대급 가수들을 언급하면, 뭔가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 일반적으로 최정상급 가수를 뜻하겠지만,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가수’라는 숨겨진 의미도 있어, 비교하기 좀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대형 이벤트에 종종 나오고 남북정상회담에도 참석한 이선희를 가리켜 ‘한국 국대급 가수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말만 놓고 보면 칭찬 같지 미묘한 뒷이야기가 숨어있다(중국 팬들이 ‘한국 연예계가 우리와 같지 않다’며 설명하곤 하지만). 또 국대급 가수에는 고음에 특화된 중국식 성악가나 민요가수가 많은 편인데, 이렇게 되면 송소희나 조수미를 언급해줘야 공평하다.

 

국대급 가수도 앨범을 내고 무대에 서는 건 사실이니 이쯤에서 넘어가자.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대급’도 한국 S급 가수들이 보여준 기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이 꽤 많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탄징의 <나가수> 무대를 접한 뒤 '과연 국대급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단한가' 아리송했다. 그보다는 한홍의 노래가 훨씬 감동적이었고 실력도 출중하게 느껴졌다. 궁금한 분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09.jpg

2017년 탄징의 ‘欲水’ 무대(링크)

플레이리스트(P1~P5)에서 다른 곡도 선택할 수 있다.

 

10.jpg

2015년 한홍의 ‘天亮了’ (링크)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1999년 귀주에서 있었던 케이블카 추락사건이 모티브다

부모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기를 한홍이 맡아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는 미담이 전해진다.

 

설 수 있는 무대가 제한적인 ‘국대급’에 비해서, 한국 가수들은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뿐만 아니라 <판타스틱 듀오> <신의 목소리> 등 수많은 라이브 쇼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왔다. 음악인이 아니어서 가창력 논쟁은 모르겠지만, 장르의 유연성이나 소화력에서는 절대적으로 한국 가수들이 우위라고 자신할 수 있다. 

 

중국 가수들은 특히 팝송 커버에 취약하다. 중국에서 한국 방송을 자주 보는 팬들이나, 다양한 음악에 목말라 있는 애호가들이 이런 차이를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중국 가수들은 다들 돈만 밝히고 글러먹었다’는 자학적인 반응도 나오는 것이다.

 

‘국대급’ 가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 가수들도 수두룩한데 왜 한국 가수와 비견할 이가 없는 것인가? 왜 실력을 닦아 롱런하는 가수가 드문 것인가?

 

정확한 답은 없겠지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중국의 문화적 특성, 또 하나는 중국 연예계에 특화된 문제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나가자.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