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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롤모델이 로마였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로마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미국을 대표하는 새가 되었고, 미국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의 'Capitol'은 로마의 신전이 있는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에서 유래되었어. 그리고 미국의 도시 신시내티(Cincinnati)는 로마를 구한 한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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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원전 519년에 태어난 킨키나투스(Cincinnatus)가 어떻게 미국 도시의 이름을 차지했는지 살펴보자고.

 

로마에서 누구보다 잘 나가던 킨키나투스는 군인 아들이 대형사고를 치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어.

 

“여보! 우리 아들 카이소를 저대로 감방에 둘 건가요? 일단 보석금을 내고 애를 집으로 데려와야죠!”

“군인이 민간인을 살해하다니. 보석으로 잠시 풀려나도 사형을 면키 어려울 것이요.”

 

보석으로 잠시 풀려난 사고뭉치 아들은 그 길로 외국으로 도망쳐버렸고, 모든 책임은 아버지 킨키나투스가 뒤집어썼어. 자식이 사고 쳐도 아버지가 권력만 있으면 모두가 무탈한 어느 나라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야.

 

“아들의 보석금으로 전 재산을 날린 것은 아깝지 않으나, 그동안 쌓아놓은 명예를 잃은 것은 참으로 애석하오. 부인, 더이상 로마에 미련이 없소. 우리 귀농합시다.”

 

그의 부재와 상관없이 로마는 무탈했고 그도 농부의 삶에 차츰 적응해가고 있었어. 

 

그러나 영웅은 위기에서 나타나는 법! 주변 부족의 공격에 로마가 휘청거리던 어느 날, 원로원에서 대책마련을 위한 긴급회의가 열렸어.

 

“큰일입니다. 집정관이 이끄는 군대가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답니다. 이러다 우리 로마의 숨통이 끓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먼가 대책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탈출할 수 없소이다.”

“역시 그 사람밖에 없겠군요.”

“그 사람이 우리 제안을 수락할까요? 로마에 대해서 서운함이 있을지 모르는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지요. 6개월 임기의 독재관직을 제안하는 겁니다.”

“헉! 그건 대통령과 국무총리직을 동시에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그가 딴마음을 먹기라도 한다면 그자를 제어할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그 일은 나중에 걱정합시다.”

 

원로원의 특사는 급히 농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던 킨키나투스를 찾았어.

 

“로마가 위급합니다. 지금 들고 있는 호미를 당장 내려놓고 닥타토르(독재관)의 자리에 올라 로마를 위해 칼을 들어달라는 전갈입니다.”

“로마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부인, 올해 농사를 망치기 전에 내 금방 다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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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Antonio Ribera(1806)

 

현직 농부이자 전직 집정관 출신의 장군 킨키나투스는 마치 관우의 포스를 풍기며 전장으로 향했어.

 

그리고 2주 후, 로마 원로원이 다시 발칵 뒤집혔어.

 

“큰, 큰일입니다. 킨키나투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로마로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요? 이거 큰일이구먼. 아직 임기가 5개월이 넘게 남았는데 딴마음이라도 먹는 날에는.”

“딴마음 안 먹으면 바보지요. 권력 앞에 장사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로마를 위기에서 구한 장군 킨키나투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어.

 

“내가 할 일은 다 끝났소. 임기가 아직 남아있지만 평화로운 로마에 독재관은 필요하지 않소. 나는 농사일이 바빠서 이만.”

“저, 저런 세상 쿨한 척하기는. 이보시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소이다.”

“흠… 저자는 몇천 년이 흘러도 후손들에게 기억될 것이오. 바보 아니면 위인으로."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회자되고 있으니,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그의 선택이 옳았어.

 

 

2. 

두 번째 바보는 첫 번째 바보로부터 무려 2000여 년이 흘러서야. 오늘날의 통일 이탈리아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1807년생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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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는 없었어.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형태로 이어져 왔어.

 

이탈리아를 통일하자는 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는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으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이었어.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중심에 있는 사르데냐 왕국의 전력 회의를 살짝 훔쳐보자고.

 

“지금 우리 이탈리아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베네치아 왕국, 프랑스를 등에 업은 교황령의 로마, 시칠리아 왕국, 마지막으로 우리 사르데냐 왕국입니다.”

“우리가 오스트리아와의 일전을 승리로 이끌려면 현재 은둔 중인 빨간 셔츠 사나이의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주세페 가리발디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밑협상을 통해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합시다.”

 

주세페 가리발디는 정치적 감각은 떨어지지만 탁월한 군사 전문가였어. 항상 빨간 셔츠만 입고 다니는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지. 이런 이유로 그의 군대를 '빨간 셔츠단'이라고 불렀는데, 전투 도중에 일체 민간의 피해를 주지 않아 국민적 지지가 대단했다고 해.

 

“장군! 우리는 이미 이탈리아 통일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소. 이번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오. 우리의 정치력과 장군의 군사력이 합쳐진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오.”

“좋습니다.”

 

주세페 가리발디는 즉시 붉은 셔츠 군단을 이끌고 시칠리아 왕국으로 돌진했고,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는 기적을 만들었어. 기세를 몰아 칼라브리아와 나폴리를 점령하니 그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국민 영웅이 되었어.

 

하지만 이탈리아 나머지 지역의 통일을 위해서는 권력의 일원화가 필요했어. 사르데냐 왕국의 왕인 에마누엘 2세와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 중 한 명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양측이 최종 담판을 짓기로 한 날.

 

주세페 가리발디는 33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동지이자 아내인 아니타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늘 입던 빨간 셔츠를 입고 나타났어. 그리고 바보 같은 자신의 결정을 모두에게 알렸어.

 

“온 국민이 이탈리아의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한 쪽은 양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내가 획득한 이탈리아 남부의 모든 통치권을 넘기겠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오! 어서 말해 보시오.”

“1년 동안 먹을 마카로니를 제공해주시오. 그것이면 충분하오.”

 

주세페 가리발디는 그렇게 1년 치 마카로니만 받고 은둔하고 있던 섬으로 돌아갔다고 해. 이런 바보 같은 결정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셔츠를 여성용으로 리폼하여 입는 패션까지 유행하였고, 1864년 영국에 방문했을 때는 록스타급의 환대를 받았다고 해. 그의 명성은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전해졌고 링컨이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어.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의 군사력과 권력을 내려놓는 용단으로 인해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졌고, 1870년 마침내 통일 이탈리아가 완성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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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해군 출신인 그를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 해군의 항공모함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급의 명성과 존경을 받는 주세페 가리발디 되겠어.

 

영원한 권력은 없지만, 이것을 쫓는 자들은 역사에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고, 권력에 대한 바보 같은 결정을 한 이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반드시 기억했으면 해.

 


 

 

편집부 주

 

 필자의 책 "찌라시 한국사"에 이어

드디어 "찌라시 세계사"도 출간됐다.

 

필자의 본업과 사연에 대해선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시라.

 

 43년 차 좌천된 추심원과 4년 차 작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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