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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봉쇄소송?

2010-03-03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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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월요일

 

육두불패 수도승

 

 

 

 

 

 

 

 

[미디어 오늘]에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요약하면, 김영선이 이상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현장에서 사실을 근거로 공익을 목적으로 보도한 기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한 해당 언론사와 기자를 압박하고 나아가 다른 언론에 파장되는 것을 막겠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의 전형적인 사례"이므로 거꾸로 명예훼손, 무고(기사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거의 100%의 확률로 들어갔을 겁니다) 등으로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대충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용어가 생경한 분이 있을 겁니다. 이걸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용어는 저도 처음 들어보는 겁니다. 더 정확한 용어는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보통 줄여서 SLAPP(저는 '슬랩'이라고 읽습니다)인데, '공공 참여에 대항하는 전략적 소송' 정도의 의미가 되겠지요. 고려대학교 법학과 박경신 교수는 '공공의 참여를 저해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 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번역하더라도 '전략적 봉쇄 소송' 따위 보다는 의미가 분명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보겠듯이,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뉘앙스와는 다릅니다.

 

 

 

 

 

 

 


 

 

 

 

 

 

지금 이게 왜 문제되냐 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이 슬랩이 흑사병처럼 창궐하고 있지만, 이 슬랩에 대한 법학자나 변호사 등 실무가의 인식이 없고, 그보다 국민들이 슬랩을 그냥 다른 잡다한 소송과 마찬가지로 그냥 소송이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으로 1억원을 청구한다고 하면 순수한 소송비용(법원에 납부하는 인지대와 송달료 따위)으로 대략 4~50만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제 지갑에는 지금 2천원 밖에 없지만, 만약 누군가 오로지 남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1억원을 청구한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4~50만원이면 된다는 말입니다.

 

 

 

 

 

배우인지, 탤런트인지 김민선씨(김규리로 개명했다고 하더군요)에 대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업체들이 그의 발언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도 그 정도의 비용 -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부터 이기겠다는 결의가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으로 김민선씨에게 금전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슬랩의 가장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래서, 슬랩을 '공공참여에 대항하는 전략적 소송'이라고 하면 뭔가 부족합니다. 김민선씨가 싸이에 미국산 소고기를 쳐먹느니 차라리 뒈지겠다(라고 말했나요?)라고 끄적인 것이 제 관점으로는 '공공 참여'는 아닙니다.

 

 

 

 

 

그럼, 슬랩이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위키는,

 

 

 

 

 

 

 

 
"SLAPP은 비판이나 반대를 포기할 때까지 법적 방어 비용을 부담지우는 방법으로 비판자들을 검열하고 위협하며 침묵을 의도하는 소송이다. 승소는 SLAPP를 제기하는 자의 필요적인 목적이 아니다. 원고의 목적은 피고가 공포, 협박, 늘어나는 소송 비용 또는 소모전에 대한 굴복 및 비판을 포기하면 성취된다. SLAPP은 또한 다른 이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도 위협한다. SLAPP은 종종 법적 위협으로 행해진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슬랩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소송입니다.

 

 

 

 

 

 

 

번역하자면 '슬랩당한(전략적 봉쇄소송을 당한) 시민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이 SLAPP의 천국이 되어버렸습니다.

 

 

 

 

 

o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참여연대에 대한 경찰 및 광화문 주변 상인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o 김민선씨에 대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업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o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고소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

 

 

o 진중권 교수에 대한 듣보잡씨(정말로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음)의 형사고소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

 

 

 

 

 

... 뭐, 끝도 없을 겁니다.

 

 

 

 

 

반면, 미국의 대표적인 슬랩으로는 이른바 '스트라이샌드 효과' 를 일으켰던 스트라인샌드가 아델만에 대하여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유명 팝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그의 대저택이 있는 캘리포니아 해변가를 촬영한 항공촬영기사와 그가 소속된 회사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된다면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결국, 스트라이샌드는 소송에서 졌지만, 그보다 그 소송 때문에 자신의 저택 위치가 더욱 광범휘하게 노출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제가 듣보잡이 무슨 뜻인지, 그게 누구인지도 몰랐다가 진중권 교수로 인해서 알게 된 것 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 집

 

 

 

 

 

이런 류의 소송이 거듭되자(주로 대기업의 환경오염, 부도덕한 경영에 대한 반대 운동을 상대로 한 소송)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주에서 이른바 반 슬랩(Anti-SLAPP)법이라고 불리게 되는 법이 제정됩니다. 이 법의 특징은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을 당한 상대방은 소송이 있게 한 그의 행위나 발언이 헌법상 근거(주로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원고는 승소가 가능하다는 합리적 개연성을 증거를 통해서 소송 초기에 모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소송은 더 진행할 필요도 없이, 바로 기각됩니다.

 

 

 

 

 

California Anti-SLAPP Project

 

 

SLAPP Solution 역시 선진국이다. 김규리씨 같은 분을 위한 솔루션도 있다.

 

 

 

 

 

(그런데, 이 반 슬랩법을 '언론사에 대한 소송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하면서 마치 언론사만을 위한 것인 양 생각하고 있는 분도 계시더군요.

 

 

 

 

 

 

 

딱 보면 알겠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와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슬랩의 사례는 거의 대부분 민사소송입니다. 즉, 개인 대 개인, 회사 대 개인 간의 싸움이 주가 되는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검찰 같은 국가기관이 많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슬랩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는 아직 일천한 상황인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면 우리나라는 국가기관이 많이 개입하므로 슬랩으로 다루어지면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도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위와 같은 소송을 슬랩으로 분류하고 미국의 경우 반 슬랩법으로 다스리는게 어떤 실익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아셨겠지만, 소송이 일찍 끝납니다. 그래서, 김규리씨처럼 황당하게 피소된 이의 사회적, 심리적 부담이 줄어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반 슬랩법은 소송비용(변호사 비용 전부를 포함해서) 일체를 원고에게 부담시킵니다. 금전적 손해 - 어떠면 금전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도 있겠더군요 - 가 없습니다.

 

 

 

 

 

국가기관이나 대기업 - 미국과 유럽의 슬랩 소송 사례의 많은 숫자가 대기업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 등 힘있는 자들에 대한 비판을 소송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실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suit(정장)를 입고 suit(소송)를 풍자하는 시민

 

 

 

 

 

우리나라에서 PD 수첩에 대한, 김규리씨에 대한, 진중권 교수에 대한 소송은 그들의 표현의 자유와 소송을 제기한 농림수산부 장관, 심재철, 미국산 소고기 수입업체의 명예와 재산권 및 검찰의 국가 형벌권의 충돌의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두 승소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1심이 끝났을 뿐이고, 최종적으로 이긴다고 하여도 그 동안의 정신적, 사회적, 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나라에도 반 슬랩법이라는 게 있었다면 전부는 아니라도 - 최소한 모든 민사소송 - 대부분이 초전박살 났을 겁니다. 그로 인해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도 대폭 줄었겠지요.

 

 

 

 

 

슬랩 법논리는 원고(검찰 포함)가 제기하는 소송이 슬랩임이 밝혀지면 - 피고는 내가 설레발친 게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면 됩니다 - 모든 부담이 원고에게 넘어가고, 원고는 소송 초기에 모든 증거자료를 펼쳐 놓고 봐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랬을 경우, 작금에 대한민국에서 문제된 슬랩 중에서 몇개나 버텼을지, 전 개인적으로 하나도 없다에 엄창.

 

 

 

 

 

이상호 기자가 김영선 의원에게 결의에 차서 내지른 '전략적 봉쇄소송'이 오버한 것처럼 보이지만 - 지금도 언론사는 개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폭넓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 마음으로부터 응원합니다. 그리고, 더 자주 '전략적 봉쇄소송'이 언론에 오르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더 뜻이 분명한 표현으로요.

 

 

 

 

 

그건 그렇고, '공공참여에 대항하는 전략적 소송'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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