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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선 별반 영향력이 없는 자민당 

 

지난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도쿄와 경계선을 나누고 있는 지바현(千葉県)의 지사 선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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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현은 나리타 공항과 도쿄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광역지자체이다. 도쿄와의 관계는 한국의 ‘서울-경기도’ 정도의 위치 관계에 있다. 뜬금없이 일본의 일개 광역자치단체의 단체장 선거를 소개하는 것은, 이 선거가 일본 정치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로 투표율을 보자. 

 

전체 519만 7,045명 유권자 중, 2백 26,112명이 투표를 하여 38.99%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투표율은 지난 선거보다 7.81%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투표율이 40%를 밑돌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3~40%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0% 대의 투표율도 드물지 않다. 기초 지자체 의회선거의 경우, 의원 입후보자가 정족수에 달하지 않아 무투표 당선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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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투표는 ‘자서식 투표’이다. 우리처럼 지지하는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닌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작성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번 지사 선거에는 총 8명이 입후보했는데, 정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한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듣도보도 못한 정당인이 두 명 있을 뿐, 전부 무소속 출마자다. 무소속이면서도 자민당 추천과 일본 공산당 추천을 받은 후보자는 있다. 

 

이는 정당이 지방정치에 영향력이 미약하다는 방증이며, 자민당이 중앙정치에서는 압도적인 위치에 있지만, 지방 정치무대에서는 별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선거 결과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지바시장을 역임한 42세의 젊은 후보가 70.47% 득표율로 140만여 표를 얻어 당선됐다. 2위를 기록한 자민당 추천의 무소속 후보가 19.24%의 득표율로 38만 4천여 표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 자민당의 참패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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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가이 도시히토(熊谷俊人, 가운데) 전 지바 시장이 21일 오후 지바현 지사 선거에서 당선이 결정된 후 만세를 하고 있다. / 출처-<연합뉴스>

 

이는 2012년 12월 자민당의 정권 탈환 이후,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정권과 그 뒤를 이은 스가 정권에 대한 국민 신뢰도 저하로 보인다. 

 

아베노믹스가 정권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그 허상이 점차 드러나고 있으며,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더믹에 대한 정부의 무능・무대책 대응에 더해, 아베노마스크로 상징되는 어처구니없는 정책과 황당무계한 예산낭비 등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배경에 드리워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지바현지사 선거뿐만 아니라 올해 치러진 전국지방선거의 결과를 보면 더욱 일목요연하다. 

 

 

지방선거에서 자민당의 지지는 역대 최저 상태이다

 

지난 1월 22일 치러진 기타규슈시(北九州市) 의회선거에서 자민당 의석수는 22석에서 16석으로 줄어들었다. 1월 24일의 아키타현(秋田県) 지사선거에서는 현직의 무소속 여성 지사가 70.3%를 득표하며,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 추천 후보 (29.7%의 득표율)를 압도적으로 제치고 4선을 이루었다. 같은 날 치러진 기후현(岐阜県) 지사선거에서도 무소속의 현 지사가 49.2%의 득표로 5선을 이루었는데, 자민당은 후보조차도 내지 못했다. 

 

이렇듯 지방 선거에서 자민당의 지지나 신임은 역대 최저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럼 이런 상태에서 곧 치러야 할 해산 총선거(또는 10월의 중의원 임기 만료에 따른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여 다시 한번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면 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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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가 힘든 이유를 정식으로 들자면 기사 한 편의 분량만큼 들 수 있어 여기에선 일단 정권교체가 힘들다 정도만 언급하고 다음 편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이유를 언급하겠다) 

 

우선 현실 상황으로서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집권 자민당은 전에 없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도록 한다. 

 

이런 자민당이 어떻게 60년 가까운 세월을 집권정당으로 군림하며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 의문을 풀기 위해선 자민당의 탄생 배경과 성장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일 간 충돌과 일본의 행태의 원인도 파악해볼 수 있다. 간결하게 살펴보자.

 

 

거대 보수 정당 자민당(자유민주당)의 탄생

 

자민당의 탄생은 1955년 일본 좌파 세력의 결집이 이루어지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의 통합을 통하여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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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창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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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시게루(좌) / 하토야마 이치로(우)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이끄는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가 이끄는 일본 민주당이 보수 세력끼리의 대립을 중지하고 합치게 된다. 그리하여 보수 정당 자민당과 좌파 일본 사회당에 의한 여야 정치 구도가 탄생하게 된다. 

 

이는 1993년 반자민당 연립정권인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이 탄생할 때까지 38년간 자민당 우위의  지배체제로 이어진다. 이를 흔히 ‘55년 체제’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흔히 자민당은 보수 우파 정당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애초에 자민당은 보수의 대결 구도에서 좌파 연합에 위기를 느끼며 통합하여 탄생한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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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수상

 

 

자민당 내 보수 ‘본류계’와 ‘방류계’

 

흔히 요시다 시게루가 이끌던 자유당이 관료 출신 중심으로, 미·일 안보체제를 축으로 한 대미 외교 중시, 일본의 경무장을 지향하며, 국제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둔 비교적 온건 보수의 특징을 띠었는데 이를 보수 본류(本流)로 규정한다. 

 

보수 본류로 구분되는 파벌은 이케다파 고치카이(池田派宏池会), 다나카파 목요클럽(田中派木曜クラブ), 다케시타파 케세이카이(竹下派経世会), 오부치파 헤이세이켄(小渕派平成研) 등이 있으며, 지금은 기시다파(岸田派), 누카가파(額賀派)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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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파 회장 ‘기시다 후미오’(좌) / 누카가파 회장 ‘누카가 후쿠시로’(우). 누카가는 현재 한일의원연맹의 일본 측 회장이기도 하다. 

 

이런 파벌 형성과 유지를 통하여 결속을 다져온 보수 본류로 분류되던 유명 정치인으로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하토야마 이치로(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의 조부)가 이끌던 일본 민주당은 정당인 출신이 주를 이루며, 헌법 개정과 계획 경제. 보호주의 등의 노선과 함께 매파 성향을 띠고 있었는데, 이를 보수 방류(傍流)라고 분류한다. 

 

(첨부설명을 하자면, 하토야마 유키오는 2009-2010년 일본 총리를 지낸 인물로 일본 최초로 단독 정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한 인물이다.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다. 여기서의 민주당은 그의 조부가 이끌었으며 1955년 자유당과 합쳐 자민당(자유민주당)을 탄생시킨 민주당과는 이름만 같을 뿐 관계없는 중도주의 정당이다. 재미있는 점은 조부가 기틀을 잡은 정당을 꺾고 단독정당으로 최초 정권교체를 한 인물이 손자라는 점이다. 하토야마의 민주당은 1998년 창당되어 2016년에 해산되었다) 

 

이런 흐름을 이어가는 파벌로는 기시파(岸派), 후쿠다파 세이와카이(福田派清和会) 등이 있으며, 지금은 호소다파(細田派), 니카이파(二階派) 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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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파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좌) / 니카이파 회장 ‘니카이 도시히로’(우). 호소다파는 현재 자민당 최대 파벌이자 아베가 속해있다.

 

역대 수상으로는 보수 본류가 많았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등 보수 방류 계열의 수상이 속속 등장했다.

 

이처럼 자민당 내에는 보수 본류와 방류로 나뉘어져 정책 대립과 갈등을 빚어왔으나, 근래에는 보수 방류의 흐름을 잇는 호소다파가 당내 제1의 파벌이 되어 있으며, 고이즈미와 아베 전 수상의 장기집권으로 입지를 강화해 왔다. 

 

현재는 무파벌로 분류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수상이 아베 신조의 뒤를 이어 정권을 계승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과거와 같은 보수 본류니 방류니 하며 구분 짓는 것은 이미 의미를 상실했으며, 보수 본류라는 말 자체도 사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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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일본 수상 ‘스가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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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수상

 

이런 자민당 역사 속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고이즈미의 5년 5개월(재임 기간 2001년 4월 26일~2006년 9월 26일)에 걸친 집권과 그 후의 아베의 1년간의 집권,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재차 아베에 의한 정권 탈환과 함께 일본의 국가 운영이 전체적으로 우경화로 기울고, 대 한국 정책도 강경 일변도로 변화하게 된 배경에는, 장기집권 세력인 자민당 내의 보수 본류와 방류 세력 간의 역학관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계속>

 

 

 

 

 

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읽어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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